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5)
뼈와 살이 끊어지고 터지며 땅을 물들이며 번져 갔다.
하지만 붉은 그랑츄의 그르렁거림과 저돌적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카프리곤은 그런 붉은 그랑츄의 강인한 공격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듯, 그러나 적당히 봐줄 낌새는 전혀 없이 후려치고 걷어차고 있었다.
한 무리의 붉은 그랑츄가 기꺼이 그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들고, 검은 털빛을 찰랑이는 카프리곤은 자신이 받은 고기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이 기꺼이 죽음을 부르는 타격을 베풀어준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저게 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냐 할 것이고, 생명을 지닌 자라면 대부분 그런 사람의 입장에 동의하고 공감할 터였다.
붉은 그랑츄는 그런 동의나 공감 따위가 전혀 없는 듯, 계속해서 카프리곤을 향해 달려들었고 죽어나갔다. 고리를 잔뜩 씹어 삼키는 카프리곤은 지치지도 않는 듯이 보였고, 거의 이백을 넘길 듯한 붉은 그랑츄를 쉴 새 없이 후려쳐서 박살냈다.
그저 강하고, 사납고 빠른 카프리곤의 주먹질, 발길질이었지만 붉은 그랑츄에게는 그 한 번 한 번이 말 그대로 이뤄지는 사망(死亡) 선고(宣告)였다.
멀리서 보는 쪽이 오히려 답답할 지경이었다.
‘저거 어째서 하나도 변하지 않지?’
투란은 뭔가 얹힌 듯한 기분으로 짜증을 내고 말았다.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은데, 저보다 훨씬 적은 붉은 그랑츄 무리 속에서는 세 마리나 변하는 광경을 봤다. 한데 저 녀석들은 정말 무모하게 달려들어 얻어터지고 죽어나가면서도 한 마리도 변하지 못한 채…… 지금 거의 전멸할 지경이 아닌가!
‘저 호수가 바위 쪽이 특별해서 그런가?’
혹여나 저 상황은 마그마 로드의 영역이 아니라서 저리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투란에게는 달리 생각할 구석이 거의 없으니 이런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투란, 저 녀석들 좀 작고 둔해 보이지 않나?
갑작스럽게 나온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응? 작고 둔해?’
잠시 투란은 눈을 좀 더 가늘게 하며, 더 자세히 지켜봤고 곧 드라고니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용암 호수로 돌출된 절벽에서 보던 붉은 그랑츄를 기준으로 보면, 저쪽에서 카프리곤에게 전멸당하는 녀석들은 확실히 좀 작고 약할 것 같았다. 뭔가 파이로-칸으로 변한 녀석들이 노련하고 강인한 기척을 멀리서도 또렷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줬다면, 저 녀석들은 뭔가 덜 자라고 모자란 모습으로 보는 사람이 애써 봐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좀 그렇기는 하네.’
느끼는 바는 드라고니아의 말대로였지만, 그래도 투란으로서는 쉽게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 보이는 녀석들이든, 그때 봤던 녀석들이든 붉은 그랑츄를 가까이 놓고 보면서 가늠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런 막연한 낌새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꽤나 어설픈 헛짓일 수도 있었다.
‘아, 이제 셋 남았네.’
투란은 쓰러져 나뒹굴거나 박살나 흩어진 그랑츄의 잔해 속에서 씩씩거리는 콧김을 뿜어내며 나아가는 붉은 그랑츄, 달랑 셋이라 세는 것도 어렵지 않은 녀석들을 지켜봤다. 카프리곤도 쌓여 있는 고기를 다 처먹은 듯, 콧김을 흘리면서 슬슬 다른 곳으로 뛰어가 버릴 듯이 보였는데…….
캬악, 크웟! 그워어어어!
붉은 그랑츄 한 마리가 고개를 젖히듯이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울부짖었다.
파앙, 파팡!
가슴도 마구 후려치며 북처럼 울려댔다.
한 마리의 선도(先導)를 따르듯, 곧이어 남은 두 마리도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면서 격하게 발을 굴렀다.
피와 살, 뼈가 바닥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광경이 카프리곤을 조이듯이 펼쳐졌다.
세 마리 붉은 그랑츄는 서서히 세모꼴을 만들면서 카프리곤을 둘러싸려 들었다.
그 울부짖음과 가슴을 두드리며 서로 호응하는 모습으로, 어쩐지 그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듯한 낌새까지 드러내며!
푸릇, 크륵!
카프리곤의 입김이 세차게 나왔고, 코웃음 치는 듯한 숨결도 토해졌다.
누굴 겁주려 하냐는 듯한 조롱처럼 보이는 태도였다.
붉은 그랑츄 세 마리는 그런 카프리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잔뜩 부푼 근육이 붉게 달아오른 살갗 속에서 꿈틀거렸고 울부짖음과 함께, 카프리곤을 두들겨 패서 북소리를 내겠다는 강렬한 움직임이었다.
므힛, 푸르릇!
카프리곤의 입가가 열리며, 콧김과 함께 세찬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움직임이 허공을 채색하는 그림처럼 펼쳐졌다.
“아? 저게 뭔……!”
투란은 놀란 소리를 냈고, 그 순간에 자신이 본 광경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상황은 정말 한순간에 끝장나 버렸다.
카프리곤의 첫 공격은 손뼉을 치듯, 붉은 그랑츄 한 마리의 머리통을 후려친 것에서 시작이었다. 그 손뼉 치는 틈새에 끼인 붉은 그랑츄의 머리통이 그대로 사라졌고, 손뼉 친 카프리곤의 두 손아귀가 머리 없는 목을 들쑤시듯이 파고들어 몸통을 두 쪽으로 찢어놨다.
그래서 남은 두 마리 붉은 그랑츄, 그중 먼저 다가온 하나는 이제껏 그래왔다는 듯이 동족이 어떻게 찢기는가에 전혀 관심 없이 카프리곤의 머리, 두 가닥 뿔을 쥐려 했고…… 카프리곤이 몸을 젖혔다가 뿔로 내리찍는 일격을 머리통으로 받아서, 가슴과 배, 가랑이까지 단숨에 짓이겨진 몰골로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날카로운 절단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악스러운 광경이었고, 역시나 이런 상황 따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카프리곤을 등 쪽에서부터 덮쳐오던 붉은 그랑츄는 내지르는 뒷발에 채여//차여 날아가야 했다.
“저 녀석, 꼭 무슨 무투술을 하는 것 같잖아.”
투란은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모꼴로 포위당하자, 그 꼭지 하나를 먼저 강렬하게 덮쳤고 그다음에 한쪽을 마주하더니, 자연스럽게 등 뒤가 된//선 적을 향해서도 일격을 거침없이 가한다.
모든 상황을 아주 당연하게 미리 염두에 둔 것처럼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그 마지막 일격을 받은 붉은 그랑츄가 2미터가 넘는 덩치 따위는 관계없다는 듯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나뒹구는 광경이 당연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붉은 그랑츄 무리가 전멸하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날 듯한 광경, 그 속에 콧김을 풀어내며 카프리곤이 굽혔던 몸을 스윽 일으키는 너머…….
투란은 문득 저쪽 지평선과 카프리곤의 사이로 하얀 반점 하나가 살랑대는 것을 봤다.
‘녀석이다!’
저절로 투란의 입이 다물어졌고,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역시 저 하얀 녀석은 아직도 카프리곤을 쫓는 듯했다.
―투란, 한 마리 성공한 모양이다.
‘응? 성공?’
크워어어!
그 소리는 투란이 움찔하는 몸짓을 보이게 할 정도로 또렷했다.
소리가 난 곳은 카프리곤의 뒷발질에 채여 날아간 붉은 그랑츄가 떨어진 자리였고, 거기서 굵고 큼직한 팔뚝이 주먹을 치켜올리는 광경이 보였다. 불꽃이 너울거리며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라, 한 마리 변하는 데 성공한……?’
이백여 마리가 달려들어 겨우 한 마리, 결코 좋다고 하기 어려운 결과 아닌가?
한데 그 결과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듯한 모습이 그 뒤를 이었다.
카프리곤이 그쪽을 보며 푸륵거렸고, 저편에서 살랑대고 어슬렁거리는 녀석도 파이로-칸이 귀찮은지 거슬리는지 그쪽을 바라봤다.
투란은 낯을 찌푸렸다.
주먹과 한쪽 어깨는 분명히 변한 모습인데, 일어선 파이로-칸의 가슴이 푹 패여 함몰된 채였다. 그 속에서 불그스름하니 맥동하는 심장이 갈라진 가슴 살갗과 뼈 틈새로 보이는 듯한, 오그라들고 꺼져가고 있었다.
붉은 그랑츄는 새로운 파이로-칸으로 기어코 되겠다는 듯, 세차게 몸부림쳤지만 그 오그라들며 꺼져가는 심장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쓰러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괴성을 질러댔지만…….
크워어!
유언처럼, 마지막 비명처럼 울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변이에 필요한 요소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모양이군.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평가했고, 투란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
가슴이 아무리 깊이 함몰되고 심장이 으스러진 채라도 파이로-칸으로 변이하면 모조리 불길 속에서 다시 멀쩡해졌잖던가. 저 붉은 그랑츄는 그렇게 되지 못했고, 결국 변화의 일부만 보인 채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조건이고 요소인가 궁금하기는 하네.’
투란의 눈길은 다시 카프리곤을 향했다.
카프리곤은 하얀 녀석 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하얀 녀석은 살랑대는 꼬리를 보이며 카프리곤을 향해 다가오려는 모습이었다.
‘흐흠, 꽤나 카프리곤에게 관심이 많은 놈이네.’
그러기를 기대했지만, 투라으로서는 역시나 이상한 녀석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카프리곤이 무슨 맛이기에 저러는가 궁금하잖은가?
―아니, 잡아먹으려 저러지는 않는 것 같다만?
툭 튀어나오는 드라고니아의 핀잔이었다.
뭐라 대꾸하려던 투란은 입을 다물고 카프리곤에게 집중해야 했다.
카프리곤은 하얀 녀석에게서 몸을 돌려서, 정말 단순하게 딱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투란의 정면이었다. 아주 먼 거리였지만, 투란은 뿔수리의 눈을 통해서 껑충거리며 똑바로 다가오는 카프리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붉게 충혈된 듯한 눈알 위로 검게 물든 얼룩처럼 번져가는 특이한 눈동자, 딱 몬스터의 눈동자라고 일컬어지는 모양이었다. 그 눈동자가 제대로 투란을 봤고, 카프리곤의 입술이 조금 뒤틀린 듯한 모습으로 팔랑거리는 꼴이 보였다.
마치 눈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투란에게 뭘 어쩌겠냐고 묻는 듯한 묘한 비웃음처럼 보였으니…….
“널 미끼로 쓸 거야.”
아직 들릴 리가 없는 거리로 보였지만, 듣는다고 해서 저 검은 털가죽을 뒤집어쓴 산양 머리통의 몬스터가 그 뜻을 알아차렸을 리도 없겠지만, 투란은 차갑고 도도하게 읊어줬다.
그리고 바로 투란은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하며 그랑츄의 발가락으로 슬쩍 땅을 긁고 파내는 시늉을 하면서 오른손을 볼 옆으로 붙였다. 오른손 속에 감춰져서 마그마 로드의 형성 속에서도 검은 바위에 짓눌려진 채, 그 뜨거운 붉은 줄기에서 용케 피해 있던 샤벨투스의 이빨이 곧장 1미터의 크기로 굽은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하게 왼손을 내밀어 까닥거리며, 몸을 앞뒤로 슬슬 흔들어대면서…… 누런 털의 카프리곤과 저 검은 카프리곤이 싸울 때 보였던 투쟁의 몸짓을 흉내 내는 모습으로 투란은 기다렸다.
―그 이빨이 뿔 대용이냐?
어이없어하는, 기막혀하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빙긋 웃으면서 아직 멀리 있는 카프리곤을 향해 손짓할 뿐이었다.
과연 이런 짓이 통할 것인가, 드라고니아가 다시 의심스러운 소리를 꺼내려는 낌새를 보이는 순간…… 카프리곤이 반응했다.
푸르흣! 푸앗!
거센 콧김, 뜨거운 입김, 격렬한 발 구름과 함께 카프리곤은 이제 높이 뛰어오른다거나 옆으로 슬쩍 비껴가는 방향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 모습으로 곧장 투란을 향해 뿔을 들이대면서 진격(進擊)해오고 있었다.
제대로 투란의 도발이 먹힌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데 걸리냐!
이제는 투란이 하는 짓보다 카프리곤이 하는 짓에 더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이었다.
가속하는 카프리곤에 집중하면서, 투란은 슬쩍 그 너머를 보는 작은 눈을 눈가에 하나 더 돌출시켰다. 새로운 뿔수리의 작은 눈은 바로 저편에서 당황한 듯, 카프리곤의 가속에 휘말린 듯이 바쁘게 내닫는 하얀 녀석을 포착했다.
투란의 숨결이 살짝 거친 소리를 냈지만, 아주 고르게 숨을 가다듬었다.
‘악마의 심장’이 주변을 향해 날카로운 지각을 발휘했고, 투란의 등은 거뭇한 가죽이 두툼하게 달라붙은 모습이 되어 갔다. 그 검은 가죽은 곧 찰랑거리는 시커먼 잉크의 파문을 드러냈고, 그 속에서 단단하고 검은 바위의 질감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투란은 계속 카프리곤을 향해 도발하는 몸짓을 그치지 않았다.
때문에 더욱 광분한 듯한 카프리곤은 더 빨라졌고…… 마침내 투란과 격돌하기 위한 마지막 도약을 내질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치솟는 불기둥은 하얀 녀석을 움찔하게 했다.
어째서 갑자기 뿔 달린 놈과 작게 까부는 놈이 만난 자리에서 저 기분 나쁜 용암의 불기둥이 치솟을까?
하얀 녀석은 갸웃하며 둥근 머리를 움직였고, 길게 솟아난 뿔처럼 귀처럼 보이는 돌기로 허공을 더듬었다. 그렇게 더듬으면 마치 저쪽의 상황을 아주 잘 알 수 있다는 했다.
카륵.
하얀 녀석의 둥근 입매가 드러나며 잔기침처럼 불만스러움을 표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장벽을 만나서 더듬이로는 알 수 없게 된 것에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쫓아온 사냥감을 놓칠 수는 없다는 듯, 하얀 녀석은 이글거리며 치솟은 채로 버티는 용암의 불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조심스럽게, 조금 더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