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6)
Chapter 38. 타락한 자의 문장
아주 조그마한 용암의 웅덩이였다.
하얀 녀석은 사라져가는 불의 장막 너머에 카프리곤이 고요하게 앉은 광경을 보며 빠르게 내딛던 걸음을 잠시 주춤거리며 세워야 했다. 카프리곤이 검은 털의 윤기를 용암의 붉은 광채에 번들거리면서, 용암이 꾸물거리는 웅덩이 한복판에 앉아 있는 탓이었다.
하얀 녀석의 둥근 머리가 갸웃거렸다.
더듬이처럼 솟아난 하얀 뿔, 토끼 귀처럼 생긴 것이 둥근 머리 위에서 까닥거리며 허공을 더듬는 시늉을 했다.
뜨거운 바람이 지름 3, 4미터 정도 되는, 저편의 호수와 비교하면 아주 조그맣기만 한 웅덩이에서 터져 나오듯이 불어나왔다. 하얀 녀석의 토끼 귀 같은 뿔 더듬이가 그 바람에 밀려 둥근 머리 뒤편으로 기울어질 정도였다.
키아아아앗!
하얀 녀석이 바람을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토해냈다.
바람은 그런 소리 따위 알 바 아니란 듯이 한꺼번에 몰려나와서 멀리 사라져갈 뿐이었다.
하얀 녀석의 입꼬리가 처졌다.
마치 자신이 엉뚱한 것을 향해 바보 같은 위협을 했다고 뒤늦게 알아차린 듯이.
그리고 하얀 녀석의 눈이 크게 부릅떠지며 바로 카프리곤을 향했다.
하얀 뿔, 토끼 귀처럼 생긴 더듬이로만 보이는 것이 다시 허공을 매만졌고, 하얀 녀석은 저 카프리곤이 조금 묘한 상태인 것을 알아차렸다. 여느 때처럼 한 15, 16미터 정도의 간격이면 튀어 오를 텐데 지금은 그 허리 아래가 용암 웅덩이에 푹 빠진 채로 꼼짝도 않는 모양이었다.
하얀 녀석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캬앗, 캬아앗!
사람이라면 ‘잡았다, 이 놈!’이라고 외친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는 소리가 하얀 녀석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 채 열린 입에서 흘러나왔다. 살랑거리는 열 몇 가닥의 꼬리가 저절로 주변을 향해 쿡쿡 쑤시는 듯이 움직였다.
용암 웅덩이 주변의 땅에 고랑이 파였다.
일렁거리며 살랑거리는 아지랑이가 웅덩이 주변에 기둥처럼 피어올랐다.
캬아, 카캇!
하얀 녀석의 둥근 머리에서 눈과 입이 휘어지며 웃는 듯한 표정이 생겨났다.
마치 이제는 카프리곤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쉬익, 스으읏.
카프리곤의 몸이 맴돌았다.
하얀 녀석의 웃는 듯하던 표정이 변했다.
여태 바라보던 것이 카프리곤의 등짝이었다는 것을 하얀 녀석은 겨우 깨달은 듯이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전에 본 카프리곤과 어딘가, 뭔가 기묘하게 달라 보이잖느냐고 의심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푸릇, 므흐흣.
카프리곤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꼴이 하얀 녀석의 입매를 처지게 했다.
용암에 사로잡힌 놈이 구경하는 녀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였고, 이는 하얀 녀석에게 제대로 느낌을 전한 모양이었다.
하얀 녀석은 바로 카륵거리는 목젖 울림을 거칠게 뿜어냈고, 손처럼 보이는 앞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엉덩이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었다. 이게 용암 웅덩이와 하얀 녀석의 간격은 3, 4미터 정도였고 그 중심에 다리와 엉덩이가 잠긴 듯한 카프리곤이 있었다.
캬아아!
하얀 녀석이 ‘넌 이제 잡혔다!’라는 듯한 소리를 내며 카프리곤을 노려봤다.
이제껏 껑충거리며 도망친 것이 다 소용없어졌으니 어쩌냐고 놀리는 듯한 분위기가 서린 분위기로 하얀 녀석의 눈매가 휘어지기도 했다.
“므흐흣, 신기한 녀석이야…….”
카프리곤의 입가에서 사람의 말이 흘러나왔다.
하얀 녀석의 더듬이, 토끼 귀처럼 생긴 두 가닥 흰 털 가득한 돌기가 꼿꼿하게 치솟아서 이제는 완전히 뿔이라 여길 만한 형태로 우뚝 섰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나온 사람이 말에 확실히 충격받고 놀란 듯한 모양이었다.
절대로 카프리곤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소리가 나온 상황에 하얀 녀석이 당황하는 순간, 카프리곤이 몸을 숙였고 두 팔이 용암을 젓듯이 움직였다.
용암 줄기가 치솟으며, 거대한 두 팔처럼 하얀 녀석을 향해 뻗어갔다.
용암 웅덩이가 크게 파문을 일으켰고, 사방을 향해 넘쳐 흘렀다.
하얀 녀석이 그 풍경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붉은 광채로 번들거리는 마그마가 검은 암석의 파편을 뿜어냈다. 용암 속에서 검은 뼈가 파편을 이루며 생겨나는 듯한 광경이었고, 뼈는 곧 용암의 흐름을 삼켜 힘줄과 핏줄처럼 품은 채로 하얀 녀석을 덮쳤다.
캬카캇!
반사적으로 위협적인 울음을 토하며 하얀 녀석이 앞발이기도 한 두 팔을 휘둘렀고, 날카로운 손가락 끝이 검은 얼룩을 살갗처럼 두른 마그마의 돌출된 가지를 할퀴고 긁었다.
끼익, 콰르르, 쾅!
단단한 질량이 맞닥뜨리는 거친 마찰음의 뒤를 이어 검은 파편이 갈라졌고, 불길을 뿜어내며 터졌다. 그 순간 손톱 없이 뾰족한 하얀 손가락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털가죽으로 덮이듯이 보였던 하얀 녀석의 두 팔로 균열은 순식간에 번져 갔다. 마치 불에 구워 만들었던 도자기가 충격을 받아 잔금이 생겨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얀 녀석은 두 팔에 가해져 온 충격에 확실하게 놀란 듯이 재빨리 크고 길쭉한 두 발을 굴렀다.
캬아앗? 캬앗!
하지만 경악하는 듯한 비명을 조금 전의 위협적인 울음과는 전혀 다르게 토해내야 했다. 두 발과 발목을 휘감고 있는 검은 돌로 이뤄진 사슬, 밧줄이라고 할 굵은 가닥이 어느 틈에 하얀 녀석의 허벅지까지 휘감고 있는 탓이었다.
하얀 녀석의 동그랗게 뜨인 두 눈알이 제멋대로 돌았고, 자신의 주변을 번개처럼 그 시야에 담았다. 카프리곤을 중심에 담고 있었던 용암 웅덩이가 어느새 하얀 자신의 몸을 중심에 놓은 채로 옮겨 와 있었다.
하얀 녀석의 입꼬리가 격노를 표현하듯이 치켜 올라갔다. 앞에서 뻗어왔던 용암의 줄기가 다시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그 격노를 한층 더 자극하는 듯했다.
금이 간 채로 하얀 두 팔이 휘둘러지며 보다 날카롭고 굵어진 듯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움켜쥘 듯이 덮쳐오는 용암 가지, 검은 파편을 둘러 단단해진 줄기에 맞서 갔다.
키익, 콰직!
검은 파편에 하얀 송곳 같은 손가락이 갈고리 모양으로 박혔다.
캬아아아― 캬앗!
처음에는 비명이, 그다음에는 성난 소리가 하얀 녀석의 입에서 터졌다.
분명히 목을 휘감고 조이려 하는 용암의 검은 파편 덮인 가지를 뚫었는데, 터져 나온 것은 붉은빛이 선명한 마그마였고, 그 마그마가 흐르며 덮친 자리에 다시 검은 암석의 파편이 조각조각 돋아나며 자신을 움켜쥐고 있잖은가!
하얀 녀석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더 빠르게 두 팔이 휘둘러졌고, 두 손가락이 용암의 검은 살갗, 바위의 파편을 긁고 꿰뚫었다. 마그마로 이뤄진 붉은 줄기가 가늘고 길게, 파인 상처에서 솟아나는 핏줄처럼 터져 나왔고 그 속에서 다시 검은 얼룩이 피어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데 이 결과는 하얀 녀석의 두 팔에도 지독한 흔적을 남겼다.
금이 간 채로 휘둘러진 두 팔이 서서히 조각나며 깨져 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반쯤 떨어져 나가 겨우 어깨에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로, 두 팔은 깨진 도자기 모양으로 으스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본다 해도 마그마 속에 형성된 검은 바위의 파편과 맞닥뜨려 압도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히려 용암줄기는 이를 이용해서 하얀 녀석의 팔을 잘근잘근 씹듯이 으깨버리는 듯했다.
하얀 녀석의 눈알이 좌우로 흔들렸고, 자신의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우친 듯한 경련이 하얀 녀석의 몸에서 저절로 피어올랐다. 이대로라면 용암 웅덩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검은 파편이 박힌 붉은 줄기에 휘감겨 그대로 잠겨버릴 듯한 상태일 뿐이었다.
카르륵!
목젖을 세게 울리는 소리가 하얀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분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두고 보자는 듯한 음색(音色)이었다.
그리고 바로 하얀 녀석의 꼬리가 허공을 향해 갈고리처럼 휘었고, 긁었다.
파아아아, 콰앙!
폭음과 함께 하얀 녀석의 몸이, 자신을 묶고 있던 아래편의 검은 암석의 밧줄을 산산조각내면서 공중으로 치솟아 지워지듯 사라졌다. 용암의 웅덩이가 출렁였고, 허공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하얀 녀석이 지워진 자리로 뭉쳐들었다.
곧 용암 웅덩이도 붉은 안개처럼 흩어지며 공중으로 휘말려가듯 사라졌다. 마치 깨진 그릇의 틈새로 물이 새 나가듯, 웅덩이에 채워져 있던 붉은 마그마가 허공의 틈새로 빨려들어 간 듯했다.
콰아앙!
키에에? 캬아악!
허공을 가르며 떨어져 내린 하얀 녀석은 곧이어 닥쳐온 불꽃의 맹렬함, 마그마의 끈적임, 검은 파편의 날카로움이 온몸을 덮치는 상황에 당황하며 고통을 그대로 토해내야 했다.
느닷없이 떨어져내린 물체에 반응해 땅이 파이며, 새로 생겨난 웅덩이로 하얀 녀석을 감싸며 흘러내린 용암이 채워져 갔다. 이 상황은 바로 하얀 녀석에게 자신의 도주가 실패라는 것을 알려주는 꼴이었다.
그리고 한 번에 성공할 수 없다면…….
캬아아아핫!
괴성(怪聲)이 텅 빈 자리에 남았고, 하얀 녀석의 꼬리라 한꺼번에 허공을 갈고리처럼 긁어대면서 모습이 그 몸이 다시 사라졌다.
더불어 파인 웅덩이에 흘러내려던 용암은 다시 붉게 방울진 안개처럼 허공의 틈새로 빨려들어 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퍼펑, 콰앙!
넓고 넓은 들판에 폭음(爆音)과 함께 여기저기 파인 흔적이 생겨났다.
그 흔적으로는 검은 재가 불티를 잠시 휘날리는 흔적이 남는가 하면, 붉게 달아오른 마그마의 잔해가 잠시 남았다가 붉은 안개방울이 되어 사라져 갔다.
이곳저곳에서 폭음이 지워지고 남은 폭심지(爆心地)에는 뜨겁게 맴도는 열기와 푹 파인 구덩이가 잠시 일렁이는 불꽃을 남기며 바람에 씻겨 가는 광경이 이어졌다.
초원 위로 하얀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폭음을 흘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기이한 광경이 여기저기를 뒤흔들고, 초원이 조금 부산스럽고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초원의 무엇도 저 폭음이 자기랑 겹쳐지면서 폭심지 꼴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이 다가오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뭔가가 빠르게 이동하는 행적조차 없이 폭음은 느닷없이 허공을 가르며 내리꽂혔고, 폭심지를 파괴하며 뜨거운 바람결과 휘날리는 불티와 검은 재를 뿌리며 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질 뿐이었다.
때문에 난데없이 재앙을 뒤집어쓴 녀석들이 고통과 함께 분노를 토해내는 꼴도 몇 곳에서 당연히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폭음과 함께 파괴를 일으키고 있는 하얀 녀석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허공을 찢고 움직였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캬하아아아, 카아앗!
콰앙!
하얀 녀석은 금이 가고 가늘어진 앞발, 굵고 튼튼한 뒷발을 모두 몸을 버티는 데 쓰면서 짓눌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듯한 자세로 엎어진 꼴이었다. 간신히 짓눌려 몸이 땅바닥에 짓이기지 않는 꼴이지만, 네 발로 겨우 버틴 이 꼴은 그야말로 굵고 큰 과일에 깔린 벌레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얀 녀석을 짓누르고 있는 과일은 검고 붉은 바위로 된 거북껍질처럼 보였고, 거북껍질보다 더 깊이 하얀 녀석의 등과 몸통을 덮은 채로 버텨가는 사지(四肢)를 휘감으며 덮는 굵고 단단한 밧줄마저 흘리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허공을 찢던 열두 가닥의 꼬리마저도 검은 암석 파편이 가득 박힌 굵고 붉은 줄기에 휘감긴 채로 하얀 녀석의 등짝을 짓누르는 검고 붉은 바위 더미에 묶여 붙여진 것처럼 꼼짝 못 하는 상태였다.
때문에 하얀 녀석은 더 이상 뛰지도, 기지도 못하는 상태로 오직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에 대항해야 하는 듯한데,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꾸물거리며 흐르는 채로 하얀 녀석의 열두 가닥 꼬리와 사지를 더 깊이 조이며 감싸려 하는 마그마 줄기의 흐름은 그 전에 하얀 녀석을 익혀 버릴 듯했다.
캬르르르르.
하얀 녀석이 거센 입김을 토하면서 두 눈을 뜨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돌렸다. 이 지경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과정에서 한쪽 눈은 이미 검은 파편이 짓누르며 반쯤 감긴 채였고, 쉽게 뜨지도 못하는 꼴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뜰 수 있는 다른 한쪽으로도 가죽을 파면서 눈알에 닿기 위해 꿈틀거리는 붉은 마그마 줄기가 가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결국 하얀 녀석은 완전히 구워지거나, 눈알부터 짓이겨지고 찢기면서 가죽이 홀랑 벗겨질 듯한 상황을 피할 수가 없어 보였다. 하얀 녀석은 덤으로 등짝에 달라붙어 눌러대는 마그마를 품은 검은 바위에 의해 자신의 내장이 완전히 으스러지는 쪽이 먼저일 수 있다는 점도 깨달은 듯했다.
몸을 감싼 이 거북껍질처럼 보이는 검고 붉은 바윗덩어리가 거북껍질처럼 몸을 보호하는 대신에 짓누르고 파고들려 더 힘을 긁어모으는 낌새가 너무 역력한 탓이었다.
그래서 하얀 녀석은 거센 입김과 함께 가진 힘을 다 쓰는 발악을 하기로 한 듯, 깨져 나가는 두 팔―앞발―로 세차게 땅을 디뎠고 완전히 박살 나서 하얀 도자기 조각처럼 흩어지게 했다.
그 충격과 반발은 바로 하얀 녀석이 뒷다리 둘로만 선 듯한, 흡사 사람처럼 우뚝 선 듯한 자세가 될 수 있게 해줬다. 무거운 몸을 뒤로 젖힐 듯한 모습이 되게 해 준 것이다.
하지만 하얀 녀석의 등을 감싼 껍질은 곧 가슴으로 꿈틀거리며 굵은 줄기를 보낸 채, 더욱 강한 압력을 가했다.
돌연 하얀 녀석의 머리껍질이 수직으로 갈라졌다.
뇌수가 터져 나오는 대신, 왜 하얀 녀석의 머리가 둥글둥글하게 생겼는가를 증명하는 듯한 투명하고 큰 구슬이 작은 반짝임을 가득 담은 채로 드러났다.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