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7)
―투란! 위험하다! 스펠 오브다, 저거!
열심히 마그마 로드의 힘에 집중해 있던 투란은 느닷없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 주문을 담는다는?’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느닷없이 머리 가죽을 반으로 쪼개면서, 무슨 눈꺼풀처럼 열어젖힌 다음에 속이 온통 반짝거리는 빛이 온갖 무늬를 그리며 춤을 추는 유리구슬 같은 것을 꺼내는 광경이 하얀 녀석에게서 훤히 보였다.
투란이 보아하니, 투명한 유리구슬을 하얀 가죽으로 싸맨 것이 딱 이놈의 머리 모양인 듯, 거기에 눈도 달리고 입도 달리고 뿔인지 귀인지 모를 더듬이도 달린 놈이었다.
한데 갑자기 그걸 왜 꺼내는가?
‘주문?’
투명한 구슬에서 제멋대로 춤을 추던 빛의 무늬 하나가 빙글거리는 고리를 만들면서 툭 튀어나왔다. 구슬 밖으로 튀어나온 빛의 고리는 그대로 확대되면서 하얀 녀석의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한꺼번에 덮어씌우는 푸르스름한 안개를 만들어 냈다.
치이이이, 치익!
뜨거움과 차가움이 맞닥뜨리며 일어나는 음향은 크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폭풍서리 주문인가!
드라고니아가 급하게 외치면서, 그래도 좀 더 자세히 파악하려는 듯이 여운을 남기는 소리를 냈다. 투란은 그 주문을 칭하는 바가 그 내용과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마그마가 굳어지잖아! 얼어붙어? 뭐, 이런…….’
몬스터 주제에 드라고니아가 알고 있는 혹한(酷寒)의 주문을 걸고 있다니!
투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차가운 숨결이라든가, 얼어붙게 하는 눈빛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주문이라니!
시이잉!
폭풍이 빛의 고리 안에서 맴돌았고, 서리가 마그마의 흐름 사이로 끼어들면서 얼어붙었다. 용암의 뜨거움조차 단숨에 식혀 버리고 굳은 돌처럼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얼음이 순식간에 투란의 마그마를 집어삼킨 셈이었다.
‘얼빠진 바보가 다 있지!’
기막혀하는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잠잠해졌다.
몬스터가 고위마법의 주문을 쓴다는 사실에 잠시 흥분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투란의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기척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하얀 녀석은 자신을 덮친 마그마 로드의 검은 바위, 불타는 용암의 핏줄과 힘줄에 대항하기 위해 불러낸 폭풍서리로 자기 몸까지 함께 얼어붙게 했으므로!
‘설마?’
이게 보이는 것과 다르게 하얀 녀석을 묶지는 않는 마법의 속박(束縛)일까?
잠깐 투란은 의심했다.
키이에에?
하지미만 훌렁 까진 머리 아래에 겨우 흔적만 남은 듯한 얼어붙은 입에서 새는 소리를 내는 하얀 녀석이 겨우 움직여지는 몸을 꼼지락대는 꼴을 보니, 그 의심은 그냥 휭하니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한심하고 바보스럽기는 해도, 투란 역시 한창 뿜어내고 발휘하던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얼어붙은 채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뒀더라면 파고들고 태우며 이 하얀 녀석의 가죽 깊이 좀 더 스며들었을 것이다.
키이, 캬아아악!
하얀 녀석이 거친 소리를 냈다.
뽀득거리며 얼어붙은 가죽이 다시 율동하는 기척이 있었다.
머리 위에 솟은 두 가닥이 굵은 뿔 더듬이도 다시 움직이며…… 하얀 녀석은 다시 동그란 머리통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머릿속의 광경을 다시 감추려는 듯한데, 꽤나 서두르는 낌새였다.
이를 느낀 투란도 느긋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빠르게 다음 할 일을 해 나갔다.
빠득, 콰지직.
하얀 녀석의 더듬이 뿔이 마침내 얼음 조각을 뿌리치며 움직였다.
그와 함께 어깨가 몸부림 속에서…… 부서졌다.
도자기 그릇의 깨진 조각처럼 하얀 녀석의 어깨는 으스러지며, 이제까지 버텨온 것이 얼마나 힘겨웠는가를 보여주듯이 부서져 나갔다. 하얀 녀석의 입에서 힘겨운 비명이 흘러나왔고, 머리 위에 드러난 구슬이 여기에 반응했다.
새로운 빛의 고리가 튀어나왔고, 하얀 녀석의 목과 어깨를 감으며 조였다.
으스러진 그릇의 파편만 남은 듯했던 하얀 어깨가 감싸고 드는 빛과 엉기며 부풀어 올랐다. 곧 새로운 두 팔이 하얀 어깨에서 가지를 치며 솟아났다.
캬아앗!
부서지고 새로 돋아 자유로워진 팔로 하얀 녀석은 자신의 일그러진 한쪽 눈을 긁어냈다. 검은 돌 조각과 기름진 가죽이 한꺼번에 뜯겨 나와 하얀 녀석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둘러싼 서리 탓에 뿜어져 나오는 허연 입김 속에서 하얀 녀석이 아주 잠깐 갸웃거리는 모습이 되었지만…… 곧 목덜미에서 치솟아 눈알을 할퀴고 지나가는 검은 가지 탓에 더 궁금해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뭔가 눈을 찔러온 탓에 하얀 녀석은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 속에서 온몸에서 자글거리며 서리가 녹아내리는 것도 깨달은 듯 경악한 소리를 더했다. 서리를 녹이는 것은 그 속에 잠긴 검은 바위 조각이었고, 녹아내린 서리의 틈새로 검은 광택이 번뜩하면 자잘한 불꽃이 풀풀 휘날렸다. 너무 약한 불꽃이라 금방 사라졌으니, 이 서리가 모두 녹게 되면 다시 마그마의 열기가 뿜어질 것은 너무 당연했다.
하얀 녀석이 두 팔을 급하게 휘둘러댔다.
자신의 몸을 감고 조이고 달라붙은 얼음 조각, 그 속에 파묻힌 검은 바위와 용암의 붉은 줄기를 모조리 긁어내려는 손짓이었다. 어설프게 긁어서는 살갗과 털, 가죽 깊이 달라붙은 것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금방 뜨겁게 달아오른 채로 하얀 녀석에게 들이닥쳤다.
캬륵!
하얀 녀석의 입매가 일그러졌고, 각오한 듯한 일그러진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손가락이 좀 더 굽었고, 뾰족한 손끝은 더 날카로운 느낌으로 세워졌다.
파팟, 카카칵!
날카로운 손끝이 얼어붙은 채로 꼬리를 누른 용암줄기와 검은 조각을 긁어냈다. 배와 가슴, 허벅지까지 달라붙어 휘감은 꼴이 된 것을 가차 없이 아주 깊이 파내듯이 긁어냈고…… 덕분에 하얀 녀석의 가죽조차도 깊이 파여 나갔다.
오래잖아 핏방울이 하얀 녀석의 몸에서 연이어 튀어올랐다.
마그마의 붉은 줄기, 검은 파편에 조여지면서도 달아오르고 익혀질지언정 쉽게 보이지 않던 핏방울이 하얀 녀석의 몸 곳곳에서 피어나며 꽃이나 잎새 무늬처럼 번져 갔다. 그러면서 녀석은 열심히 꼬리를 움직이려 했다.
열두 가닥의 꼬리가 자유롭게 되면, 언뜻 좀 더 길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등에 달라붙은 두껍고 단단한 것을 떼어내면 하얀 녀석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하얀 녀석의 동작이 어느새 주춤하며 멈춰졌다.
그 가슴을 관통하는 묘한 빛줄기 탓이었다.
빛의 끝에는 핏방울이 맺힌 듯한데, 핏방울은 아무렇게나 튀어올라 떨궈지는 것이 아니었다. 톱니를 지닌 작은 고리라는 선명한 형상을 자랑하며 돌고 있었다. 가슴을 감고 채운 붉은 줄기와 검은 파편의 교차점에 닿은 채였다.
하얀 녀석이 입매를 떨었다.
그 몸은 점점 더 움직이지 못하는 듯, 움찔거리고 주춤거리는 몸짓은 이제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못하는 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하얀 녀석은 그 가슴을 관통당하면서 석상처럼 변한 듯했다.
그리고 그 석상이 형상을 벗어던지며, 흐트러져 녹아내렸다.
꼬리가 오그라들었고, 뿔과 토끼 귀를 닮았던 더듬이도 작아지며 끝내 사라져 갔다. 갈라져 있던 머리의 가죽이 엉겨 붙으며 투명하게 보였던 구슬은 주름이 잡히면서 닫히는 하얀 가죽 속으로 사라져 갔다. 두툼하고 넓적했던 허벅지, 길쭉했던 발 또한 차츰 오그라들며 두 발로 걷는 게 당연해 보이는 형상으로 다리가 변해갔다.
이런 변화의 끝에 이르러 원래 하얀 녀석의 형상 중에 남은 것은 가슴 양쪽 끝에 작게 묻어 있던 거뭇한 얼룩뿐인 듯했지만, 일렁이는 윤곽과 함께 하얀 녀석은 뭔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인 채로 투명해진 채 산산이 흩어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서리가 눌러붙은 채인 듯했던 검은 파편 사이로 붉은 줄기가 강렬하게 맥동했고, 길쭉하게 뻗어 있던 핏빛 톱니의 막대가 나선의 흐름을 드러내며 줄어들어 사라졌다.
서리가 한순간에 증발하며 하얀 안개가 되어 날아갔다.
그 안개 속에서 투란은 비틀거리며 사람의 모습으로 걸어 나오려 하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멋대로 흔들렸고, 투란의 정신은 문장 속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야 했다.
* * *
‘황금?’
빛의 덩어리는 밝고 맑게, 언젠가 투란 앞에서 열심히 광을 내기 위해 쉴 새 없이 누군가 닦아대던 금붙이 쪼가리가 수십 배, 수백 배 확대되어 번쩍거리는 색채로 보였다.
그런 것이 정상의 겹쳐진 톱니바퀴 중심을 관통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톱니바퀴의 고리조차도 황금빛에 물들어 가는 광경이었고, 투란은 ‘천칭’과 이 텅 빈 허공이 모조리 저 빛이 먹힐 수도 있다는 예감을 선명하게 느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맑고, 밝은 황금빛이 자신의 몬스터를 모두 위협하며 지워 없앨 수도 있다는 예감이기도 했다.
잔소리 많은 드라고니아의 별빛 무리조차 이 황금빛으로 인해 색을 잃어버린 듯했고 때문에 드라고니아가 침묵에 휩싸인 것인지 아니면 그 소리가 투란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분명하게, 빠르게 결정했다.
‘버리자.’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여러 가닥의 꼬리를 이용해 공간을 조작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숨에 관통하듯이 뛰어나간다든가 마그마 로드의 검은 암석까지 긁고 깰 수 있는, 그러다 같이 부서지기는 했지만, 그런 강인한 하얀 팔을 지녔다든가 단지 발 구름만으로 거의 카프리곤의 도약을 쫓을 듯한 능력이라든가…… 조이고 파내도 피 한 방울 안 내고 버티는 하얀 가죽 따위가 신기하기는 했다.
이 여러 가지 능력을 한 몸에 모두 갖췄다는 점은 더욱 신기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신기하기는 하나, 결국 투란이 지금 품은 몬스터의 역량 안에서 잡을 수 있었고, 이겨낼 수 있을 뿐이었다. 바로 잡은 채 모양만 활용했던 카프리곤의 능력만 발휘해도 밀리지 않고 맞설 수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비교해도 현재 투란이 품은 몬스터를 통해 극복해낼 수 있는 녀석, 그런 녀석에게 휘둘려서 이미 갖춘 것을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몬스터의 정수는 때로 서로를 방해하는 요소가 뒤엉킬 수 있었고, 이는 몬스터 로드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데 좋지 않다잖던가.
그러므로, 투란은 이 이상한 황금빛으로 보이는 하얀 녀석의 정수를 깔끔하게 저 아래 깊은 곳…… 심연 너머에 담가 버리기로 결정했다.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은 이런 투란의 결정에 바로 호응했다.
* * *
우엑!
갑작스럽게 배 속이 아파 왔고, 속이 뒤집어졌다.
투란은 웩웩거리며 빈속에서 넘어오는 신물을 뱉어내야 했다.
‘뭐야, 이거?’
정신이 어디로 가 버린 듯한 몽롱함이 지독하게 뇌리를 찔렀다.
선명하게 몸 상태를 살피던 감각이 사라졌다.
흐릿한 주변의 풍경이 아주 기묘하게 보였다.
귀속에 멍하니 뭔가 소리가 울리는 듯한데, 제대로 뭘 듣는 것 같지가 않았다.
팔다리에서도 잔뜩 조여 있던 힘줄이 풀린 것처럼 느슨함과 함께 나른함이 찾아오며 힘이 쭉쭉 빠져버린 듯했다.
‘이거 뭐야?’
투란은 마음 깊이 물어갔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드라고니아에게 아는 바가 없느냐고 던지는 물음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야, 이봐!’
투란은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드라고니아는 단지 대답이 없는 것뿐이 아니었다.
드라고니아가 거기 있다는, 그 느낌이 아예 없었다.
마치 투란의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가 사라져 버린 듯했다.
쿨럭.
당황하는 상태에서 투란의 입이 기침을 토했다.
너무 세찬 기침에 놀란 투란은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
후끈하면서 걸쭉한 뭔가가 손바닥을 채우듯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
투란이 입을 막았던 손을 펼치며 내려보니, 핏물이 한 움큼 손바닥에 얹혀 흐르려는 참이었다. 동시에 여전히 뭔가에 날카롭게 쑤셔지는 느낌이 투란의 속을 뒤집었다.
엉겁결에 숨을 잠시 멈추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바를 느끼면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주변은 사람이 숨쉬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 뭔가의 독소로 채워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미 이전에 겪은 적이 있잖던가?
‘설마 이곳이 그럴 줄은 몰랐지만…….’
투란은 가슴에 박힌 문장에 정신을 모으며, 이 상황에 대처하려 했다.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로 대처하든가, 이도 저도 아닌 곤란한 상황이라면 오러라도 끌어낼 생각이었다.
“오버시어(Overseer), 패시브 서바이버(Passive Survivor).”
그런데 느닷없이 입에서 주문을 활성화시키는 키워드가 튀어나왔다.
‘에? 키워드? 활성화?’
그리고 뇌리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의미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