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8)
후으으으으.
숨이 편안해졌고, 배 속이 멀쩡해졌다.
덩달아 투란은 자신을 관조하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이는 투란을 심하게 당황시킬 뿐이었다.
‘이, 이게 뭐야!’
답은 저절로 투란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오버시어’, 이는 자기 자신을 관조하며 현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그 감각으로 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파악하듯, 마력의 공명을 통해서 몸의 이전 상황과 현 상황, 몸이 멀쩡하고 건강할 때의 상태와 현재 상태의 격차를 파악하고 그에 대해 대비책도 즉각 꺼낼 수 있도록, 정신을 명정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덕분에 맑아진 정신 상태라서 투란은 한결 더 황당하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토해내던 피를 멈추게 하고, 숨을 쉴 때마다 속에서 깊어지는 상처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한 것은 ‘패시브 서바이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며 몸을 지키는 생존 주문이었다.
그리고 상처 입은 몸 상태를 파악한 다음,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액티브 서바이버(Active Survivor). 아케인 포스(Arcane Force), 리커버리(Recovery).”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면서, 마력을 보다 강하게 활성화시키며 원상으로 복구시키는 것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뭐야, 이게 도대체!’
물론 그 주문이, 준비된 주문이 키워드를 통해 바로 발휘되는 순간 투란은 얼떨떨하다 못해 기막혀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투란 자신은 원래부터 마법사였고, 몬스터 로드의 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것 같잖은가?
‘그럴 리가!’
투란은 이제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둘러봐야 했다.
오버시어에 의해 활성화된 관조 능력과 별개로, 팔다리가 제대로 붙었나 뱃가죽이 어디 찢어진 곳은 없나, 살갗이 갈라져서 벌건 속살에서 핏방울이 맺히고 있지는 않나……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봤지만, 오버시어의 주문으로 살핀 것과 다른 부분이 없었다.
곧 투란의 귀가 쫑긋거렸고, 주변을 향해 눈길이 마구 치달렸다.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면 주변에 뭐가 있을 수도 있잖은가?
‘없어?’
있는 거라고는 푹 파인 자리 주변에 무릎 높이로 살랑거리며 자라난 풀잎 한가득한 풍경뿐이었다. 이 풍경 속의 자신이란, 말하자면 무릎 높이 풀밭 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떨어진 채로 엉거주춤 서 있는 꼴이었다.
‘독초! 저게 문제로군!’
그렇게 둘러본 주변에 대한 첫 감상은 이렇게 투란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풀잎이 그냥 풀잎이 아니었고, 독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뭐든 그 독에 쓰러지면 바로 썩어 들어가며 저 풀잎의 양분이 되도록 만드는 듯했다. 굴러다니는 뼈다귀로 봐서는 히엔나 몇 마리가 이 풀밭에서 중독돼 쓰러진 것 같았다.
투란의 발이 일단 바쁘게 움직였다.
당장 주문으로 풀잎의 독에 대항하고 버틸 수는 있지만, 아무 대책 없이 주문만 몸에 건 채로 거기서 뒹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왜 몬스터 로드인 자신이 주문을 써서 이 상황에 대처하고 있단 말인가?
‘젠장, 드라고니아!’
다시 한 번 투란은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드라고니아를 불렀다.
기척 없는 놈답게 대답은 당연하다는 듯이 없었다.
독을 뿜는 풀잎 가득한 곳을 벗어나서, 투란은 숨을 몰아내쉬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또 다른 풀이 길게 자란 초원이 굽이치는 모습으로 가득 펼쳐져 있었다. 거의 지평선 가까운 곳으로 보이는 자리에 삐죽한 산이 솟구친 것이 겨우 투란의 눈에 비쳤다. 그 사이는 계속 굽이치며 가벼운 구릉(丘陵)이 이어지는 초원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초원 한복판이 여기라는 듯이 불쑥 솟아 있는 묘한 암벽…… 너무 불쑥 튀어나와서 산이라고 하기도 참 애매한 모습을 한 암벽이 진짜 벽처럼 보였다. 그 옆으로 기울어진 채 흐르는 듯한 파인 골짜기라든가, 듬성듬성한 숲이 새겨진 듯한 풍경이 좀 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투란은 마력이 주문의 형태를 따라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면서 가슴을 더듬었다. 어째서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했는데, 몬스터가 아닌 주문이 입에서 튀어나오는가? 대체 문장이 왜 이러는가?
“응?”
가슴을 더듬는 손끝에 묘한 감각이 있었다.
투란의 고개가 숙여졌다.
미묘하게 가슴팍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금빛 무늬가 가슴 한복판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투란의 눈에 보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검은 무늬처럼 맺힌 몬스터 엠블럼이 있어야 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턱을 목 줄기에 파묻을 것처럼 숙여 봤지만, 여전히 금빛 무늬만 가슴팍에 있을 뿐이었다.
서늘함이 투란을 찾아와 가슴을 물들였고 팔다리를 떨게 했다.
머릿속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속은 차갑게 굳어진 느낌이었고 모든 생각이 뇌리에서 새 나간 듯했다.
투란은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잠시 손끝 하나 까닥할 기분이 아니었다.
세찬 바람이 초원을 가로지르며 투란을 타고 넘어갔다.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길지 않아도 찰랑거릴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흔들거렸다. 몸은 바람이 세차기는 해도 흔들거리지 않고 버텼다. 다만 가슴속에 있는 서늘함이 바람결에 휩쓸려 나와 살갗을 타고 흘러나오는 듯한 기분이 온몸에 번져가는 듯했다.
투란의 입이 열렸고 주문 따위가 아닌 자신을 향한 다짐이 또박또박, 힘겨워도 분명하게 흘러나온다.
“침, 착. 침착…… 침착! 오버시어.”
다시 한 번, 자신을 관조하고 점검하는 주문이 투란에게서 토해져 나왔다.
한번 펼쳐진 주문이 마력을 흐트러뜨리다가 다시 토해진 키워드에 의해 못 박힌 듯, 선명하게 투란을 감싸며 고정되었다.
‘이런 썩어 문드러질!’
주문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면서 냉정하고 침착한 기분이 샘솟는 느낌에 투란은 우선 뭔지 모를 상황에 대한 욕부터 흘려내야 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지 영문을 알 수 없으니, 그나마 조금 자제하며 침착하게 자신을 돌아보려 하는데 거기에 바로 반응하는 주문 외우기라니!
이건 마치 몬스터를 꺼낼 생각 없이 움직이다가 몬스터가 툭 튀어나와 난감해하는 몬스터 로드의 꼬락서니가 아닌가?
‘응?’
투란의 낯이 일그러졌다.
‘설마……?’
스쳐 간 생각이 투란의 가슴을 조금 세차게 두근거리게 했다.
만약 지금 입에서 나오는 주문의 형태가 아니라, 몬스터의 힘이 발휘되는 중이었다면 투란이 이토록 곤혹스러울까? 몬스터 로드로서 몬스터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절제하고 다스리는 문제에 더 몰입할 것이 아니던가?
바스락.
투란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 빳빳한 풀잎을 밟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듯한 소리였다.
생각을 멈춘 채, 투란은 살짝 몸을 숙이며 소리 난 곳을 노려봤다.
걸음으로 따지면 대략 열 몇 걸음 정도의 가까운 곳이었다.
뭔가 뛰쳐나온다면 정말 한순간에 투란을 덮칠 수 있었다.
소리 내는 방식으로 봐서는 그리 빠르지 않은 듯했다.
“후읏!”
어기적거리며 느릿하게 나타나는 도마뱀을 보면서 투란은 긴장했던 숨을 자신도 모르게 다 내쉴 뻔했다.
도마뱀은 사람 다리 한 짝 정도의 크기를 한 녀석이었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고개를 쳐들며 갑자기 누가 훅훅대냐고 쳐다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투란과 마주치자 황급히 네 발을 제각각 디디면서 풀밭 너머로 도망치듯이 사라져 갔다.
잠깐 투란은 저걸 쫓아가 잡아먹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몬스터 로드이면서 주문을 써대는 꼴이 된 지금 이 괴상한 상태에서 도마뱀을 잡는다고 먹어치울 수 있을까? 굽지도 않은 채 삼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바로 떠올랐고, 그보다 먼저 해결할 일이 뭔가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왜 이런 상태가 된 것이고 어째서 드라고니아의 기척마저, 삼켜놓은 다른 몬스터의 기척마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꼴이 된 것인가, 투란은 생각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안전한 장소도, 주변 신경을 쓸 필요 없이 잠시 몸을 감추고 처박혀 생각할 만한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방으로 펑펑 뚫린 채, 도마뱀도 독을 뿜어내는 풀잎을 피해 뛰어다녀야 하는 이 초원에 숨을 곳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젠장,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 흙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있으려나?’
투덜거리는 불만이 바로 투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정말 주변에 얼쩡거리는 녀석들의 눈길을 피해, 숨어 있을 수 있다면 땅 파고 들어가 웅크리고라도 있어야 할 듯했다.
“메자이(Magi)…… 소일 헛(Soil Hut).”
정말 마법사라면 이럴 때 사용하는 은폐형 흙집이 있다던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투란의 입에서 다시 주문의 키워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투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발을 들었다 내리찍으며, 주문이 요구하는 몸짓을 해보였다!
콱.
땅을 찧는 발을 중심으로 얕은 파문이 둥글게 번져 갔다.
흙이 찰랑거렸고, 투란을 중심으로 지름 3미터 정도의 파문이 선명하게 원을 그리며 흙을 뒤집으며 평평하게 만들어냈다. 그다음 바로 원주를 따라 흙먼지가 피어오르면서, 둥글게 맺히며 반구(半球)의 형태로 투란을 덮었다.
“헐?”
꽉꽉 채워진 흙벽이 아니었기에 그 너머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나 제멋대로 불어오던 바람, 열린 풍경은 어느새 닫힌 벽 너머에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투란은 흙으로 지어진, 반구형의 작은 오두막에 덩그러니 선 꼴이 되었다.
투란의 눈길이 멍하니 실내가 된 공간을 둘러봤다.
“하아…….”
이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이뤄진 작은 반구형 오두막이 바로 마법사가 여행하며 사용한다는 작은 흙집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밖에 없잖은가!
‘이건 꼭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치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몬스터의 형상이, 몬스터 로드의 생각과 감정에 호응해서 바로 튀어나오는 듯,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은 일종의 폭동과도 같이 주문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보통 그런 식의 폭동을 일으킬 경우 몬스터의 형상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제 풀에 지쳐 쓰러지기가 더 쉽다. 쓰러진 몬스터 로드는…… 그냥 지나가던 짐승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털썩 앉으면서 투란은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은 주문을 쓸 수 있고, 얼마나 그 주문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주문을 몬스터라 여기면서, 몬스터 로드처럼 집중한 것인데, 이는 바로 투란이 원하던 반응을 끌어냈다.
“오버시어, 스펠 체크. 아케인 포스, 볼륨 체크.”
투란은 순식간에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주문의 목록, 그 주문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마력의 수준을 알아차렸다. 뭔가 아주 상세하게 머릿속을 헤집으면서 새겨지는 느낌이 새삼 키린의 강제 학습법을 떠올리게 하는데, 아프지가 않다!
‘음, 이건 좋구나.’
자신의 생각에 곧 기묘한 좌절감을 느낀 채로 투란은 한숨을 쉬면서, 뇌리에 새겨져 들어온 주문에 대한 지식을 더듬어갔다. 몬스터를 대신해서 사용되는 주문이라면, 몬스터처럼 본능과 필요에 따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몬스터처럼 가능한 한 많이 알아둬야 했다.
그래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새겨진 지식이 속삭여 오는 이야기들, 주문에 대한 지식과 주문을 완전하게 다루기 위한 방법이 바로 ‘오버시어’였다. 저절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처럼, 오버시어는 몸을 살피기도 하지만 주문과 마력에 대해서도 함께 관조하며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방편(方便) 주문이었다.
길잡이이면서, 동시에 손잡이 같은 것.
거기에 ‘아케인 포스’가 주문에 힘과 형태를 부여하는 마력의 원천이었다.
‘아케인 포스’는 순수한 마력으로 형성된 힘이며, 주문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그 효과를 드러낸다. 하지만 의지를 가다듬는다면 ‘아케인 포스’는 그 순수한 마력만으로 위력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방편과 마력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주문이 ‘미리’ 갖춰져 있었다.
그중 이미 써먹은 것은 생존을 위한 주문 계통으로 패시브와 액티브의 차이를 둔 ‘서바이버’, 몸이 찢기거나 뼈가 부러져 뒤엉킨 꼴이라면 바로 잡아 맞물리게 주는 ‘리커버리’가 있고, 투란이 쓰지 않은 ‘힐링 팩터’라는 것도 있었다. 마력을 이용해 몸의 이상상태를 회복시켜주는 치유에 고속(高速)과 강화(强化)라는 두 가지 요소를 부여해주는 회복능력이 바로 ‘힐링 팩터’였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중화(中和)의 추(錘)―뉴트럴 펜들럼(Neutral Pendulum)’은 몸에 스며든 이상한 효과에 즉각적으로 반대되는 요소를 강제로 부여해서 일단 버티게 해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흙으로 된 작은 오두막을 만들어낸 것은 거주를 위한, 인적이 없는 곳에서 임시로 머물고 거처를 꾸미기 위한 계통의 주문이었다.
급하고 간단하게는 이런 ‘소일 헛’ 정도겠지만 조금 오래 머물 것이라면 좀 더 큰 마력을 이용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