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9)
“안 돼! 한번 쓰면 며칠 박혀 있는 것 따윈 필요 없다고!”
투란은 자기 볼을 당기면서, 뭔가 더 쾌적하고 편안한 거처를 만들려는 주문을 마음속에 깊이 억눌렀다. 하마터면 주문 한 번 쓰고 며칠 끙끙거릴 뻔했으니!
하지만 그렇게 자제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뒹굴던 투란에게 ‘소일 헛’은 아주 평온한 방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런 ‘소일 헛’보다도 잘 꾸며진, 제대로 된 집이라는 것은 어쩐지 아주 편안해서 그 안에서 쉬며 느긋해지고 싶다는 충동을 당연히 느끼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거처를 꾸밀 수 있는 주문, ‘매너 하우스(Manor House)’가 거주 계통 주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일 헛’처럼 그저 땅바닥을 다듬고 벽을 올려서 은신하고 엄폐하는 수준을 넘어선 주문.
“나중에! 침착! 오버시어.”
투란은 자꾸 기울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잡으면서 보다 집중해서 미리 준비된 주문체계를 더듬었다. 집이라는 안전지역을 꾸미는 것에 먼저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거기 의존하다가는 이 자리에 처박혀서 꼼짝 못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살아남고 벗어나도록 움직일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전투를 위한 주문 체계였다.
“아케인 포스, 스펠 체크.”
입에서 다시 한 번,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주문의 키워드가 새 나왔다.
순간적으로 투란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마력이 어느 정도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를 위한 주문들…….
‘어딘가 오러의 기술과 닮기는 닮았네.’
가장 먼저 투란이 느낀 부분은 키린에게서 배운 오러의 무투술과 준비된 전투 계통의 주문 사이에 비슷한 점이었다. 공격과 방어라는 전투의 성질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듯도 했다.
‘그러나 오러가 아니야, 이 아케인 포스.’
명확하게 다른 느낌의 힘, 자신의 근원과 본질에서 자기 자신을 꺼내놓는 듯한 오러의 힘과 아케인 포스는 전혀 다른 성향이었다. 오러가 자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길처럼 느껴지는 것과 달리, 아케인 포스는 주변에서 끌어들여 채우는 물결 같은 느낌이었다.
그 차이는 그 뒤로 이어지는 과정을 꽤나 다르게 만들기도 했다.
오러는 자신을 드러내고 확장해가는 듯한 힘이었다.
하지만 마력, 아케인 포스는 자신 위로 다른 흐름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가능한 한 절제한 상태에서 그 흐름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힘이었다.
닮은 점이라면 일단 힘이 형성된 다음에 그걸 어떻게 휘두르는가 하는 부분은 오롯하게 투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
“메테르 포밍(Mether Forming), 롱소드.”
한 손을 내밀면서 투란은 새로운 주문을 외웠다.
순간 손바닥 위로 칼자루가 형성되었고, 칼날이 허공에 맺혀지며 완전한 장검의 형상이 나타났다. 딱 한 손으로 쥐고 휘두르기 좋은 한손잡이 장검, 투란이 마음속에 투영해놓은 형상 그대로였다.
‘날카롭기는 하지만 약해. 오래 유지하기도 어렵네. 완전한 물질생성이 아니야, 이건…… 그저 잠깐 이뤄지는 형체일 뿐…… 마력이 소실당하면 눈 깜박할 새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지.’
한 바퀴 허공에서 돌려보며 손가락 사이로 또렷하게 느껴지는 촉감과 다르게 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장검이 영구(永久)한 성질은 전혀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영속(永續)되는 물질의 생성에는 보다 깊고 강한 마력, 지금 투란이 주문을 사용하게 해주는 아케인 포스랑은 성질과 근원이 완전히 다른 마력이 필요했다.
‘아니, 이건 메테르의 한계일 수도 있겠네.’
오비시어를 통해서 ‘메테르’라고 일컬어지는 마법사가 일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도구를 위해 세상에서 끌어당기는 재료의 속성과 한계를 파악하며 투란의 낯이 조금 구겨졌다.
‘소일 헛’이 주변의 흙, 땅을 이용하는 것과 다르게 그저 마력만 공급된다면 세상 어디에서든 재료로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메테르’였지만 마력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이런 ‘메테르 포밍’에 의해 잠시 유지될 수 있는 칼과 방패라도 살아남는 데는 기꺼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투란의 눈이 칼자루를 쥔 손,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에는 여전히 샤벨투스의 이빨이 감춰져 있는 채였다. 살갗 깊이, 힘줄과 핏줄을 교묘하게 피해서 뼈에 실을 건 채로 감춰진 것을 꺼낼 방법이 없었다. ‘악마의 심장’은 지금 전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투란의 손에 아주 분명한 자취를 남긴 셈이었다.
그리고 배꼽 아래에서 무릎 위까지 조금 두껍게 덮고 있는 그림모스의 탄탄하고 검은 가죽…… 독을 뿜어내는 기능을 지운 채로 여전히 벌거숭이 신세를 면하게 해주는 바지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빠득.
투란은 살짝 이를 악물었다.
지금 자신이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지금 지니고 있는 것, 느닷없이 사용할 수 있는 주문에 대해 점검하고 보다 분명하게 살아남을 수단을 확보한 다음에 살펴봐야 했다. 자신이 몬스터 엠블럼이 어째서 이런 금빛 얼룩으로 바뀐 것인지!
‘천칭의 문장’이 대체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침착! 오버시어!”
다시 헝클어지려는 마음을 주문으로 다스리면서 투란은 손을 휘저었다.
장검이 반짝이는 빛의 티끌이 되며 사라졌다.
마력의 공급이 끊어지는 순간, 메테르에 의해 형성된 일시적인 물질이 소실되는 광경…… 마치 몬스터 로드에게 정수를 빼앗긴 몬스터의 마지막과 닮아 있잖은가?
씁쓸한 한숨을 삼키면서 투란은 다시 생각하는 데 집중했다.
‘메테르 포밍으로 만들어진 도구는 10분 정도가 넘어가면 새로 마력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딱 10분 동안 버틸 수 있는…… 한 방에 부서져도 상관없이 쓸모 있는 것만 만드는 게 좋겠네. 그렇다면 에지 앤 베일은…….’
“에지(Edge), 베일(Veil). 그거야말로 사람이 싸우기 위해 만드는 모든 도구의 근본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대장장이 일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운다면,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도 알아야 하지.”
샤오덴 할배가 한 이야기가 저절로 투란의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에지’는 칼날, 망치머리, 톱날 따위의 공격성 가득한 무기를 다 에두르는 말이었고, 두건이나 수건처럼 뭘 가리는 것을 의미하는 ‘베일’은 방패, 갑옷, 투구 따위의 방어적인 무구를 전부 일컫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샤오덴 할배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도구…… 싸우기 위한 도구를 딱 그 두 가지 방향에서만 바라봤다. 중간은 없고, 둘을 한꺼번에 묶은 것처럼 만드는 경우는 있는 분류였다.
“방패 모서리로 패는 게 망치로 패는 거랑 같은 줄 아냐? 방패로 아무리 잘 패봐야 망치로 한 방 갈기는 것만 못해. 어중간하게 방패 모서리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드느니, 방패 중심에 더 무게를 싣는 게 좋아. 차라리 칼자루 끝에 망치 머리를 달아놓는 게 더 낫지!”
‘결국…… 오러의 어설트, 가드랑 비슷한 걸까? 결국은?’
투란은 키린에게서 배운 바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이어진 지식을 맞물려봤다.
전투, 싸움이라는 상황에 있어서는 어찌 되었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터이니.
크킁, 커컹!
‘응?’
좀 더 생각에 몰입하려던 투란은 문득 흙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콧소리를 들었다. 뭔가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주변을 헤매는 소리였고, 그 뭔가의 머리통이 곧바로 긴 풀잎 위로 불쑥 치솟는 것이 보였다.
‘히엔나!’
입가에 반 토막 난 도마뱀을 문 채로 히엔나 한 마리가 ‘소일 헛’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은 저절로 찾아오는 긴장감을 느끼면서, 아케인 포스를 바탕으로 한 싸우는 법을 조금 더 서둘러 되새겨야 했다.
‘블레이드, 실드가 기본! 형상이 없어도 순수한 마력만으로 막고 베고 찌른다. 어설픈 메테오 포밍보다는 이쪽이 더 위력적이라고 했지…… 게다가 일단 뿜어낸 마력은 다른 주문의 토대가 될 수도 있고…… 불꽃, 얼음, 번개의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고.’
투란이 마음속에 새겨 넣는 사이, 히엔나는 입을 우물거리고 으적대는 태도로 어슬렁거리면서 두 발로 걸어 나와 ‘소일 헛’의 주변을 몇 번 더 킁킁거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갸웃하면서 저편으로 걸어간다. 마치 ‘소일 헛’이 그저 그런 흙무더기로 보이는 듯,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별다른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커어헝! 컹!
저쪽 너머에서 또 다른 히엔나의 울음이 울렸다.
어슬렁대던 놈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쪽으로 내달렸다.
긴장했던 투란은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앉다가 바로 몸을 눕혔다.
‘젠장, 히엔나에게 겁먹는 꼴이 되다니!’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 누운 투란을 들쑤셨다.
그저 칼과 방패로 무장한 채로 히엔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당연히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기는 했다. 2미터가 안 되는 키와 체격에 사람처럼 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히엔나는 몬스터였고 사람의 팔다리는 잡아당겨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끊어낼 정도의 힘은 갖춘 놈이니까.
일격에 히엔나의 숨통을 끊지 못한다면 칼과 방패가 날려진 채로 머리를 산 채로 깨물릴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소일 헛’은 바깥쪽에서 보면 완전히 흙 더미인 채라 저 히엔나가 투란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고, 무리의 다른 히엔나가 저편에서 울어댄 탓에 투란은 자신이 새로 써야 하는 주문과 전투법이 얼마나 먹힐지 실전을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피할 수는 없었다.
후으으, 후읏.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팔다리를 한껏 펼친 채로 ‘소일 헛’의 평평한 바닥에 몸을 딱 붙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문장의 풍경, 키린이 말했지. 문장 속 풍경을 보는 몬스터 로드가 진짜라고. 문장 속 풍경을 보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상급 몬스터 로드로서의 능력이 발휘되는 거라고.’
거기에 여러 가지 이런저런 말이 끼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투란은 다른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일단 자신의 가슴에 나타나 있는 금빛 얼룩, 이것이 몬스터 엠블럼을 바탕으로 형성된 몬스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문장의 풍경을 다시 보는 데 집중하려 했다.
몬스터 로드가 자신의 문장 속 풍경을 보게 될 때,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별개로 몬스터를 관찰할 수 있고 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라 했으니까.
지금 투란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괴상망측한 상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몬스터 로드답게 자신의 문장을 향해 답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 심호흡을 하며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면서, 투란은 문장을 향해 염원을 했다. 다시 한 번 그 풍경을 보여달라고, 어떤 충격적인 꼴일지라도 버텨낼 각오를 하면서!
‘자, 나와라!’
강하고 세차게 투란은 마음 깊이 외쳤고, 염원했다.
금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온몸을 맴도는 것이 느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 엉?’
* * *
“엉? 엥? 어?”
어디서 난지 모를 소리가 투란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채 울려 퍼졌다.
낯설고, 도대체 뭔지 모를 풍경을 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투란의 기분이 고스란히 담긴 소리는 아무 답도 얻어내지 못했다.
몸이 없이 오롯하게 의지만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고 느껴야 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분명히 이 풍경이 문장 속이라고 확인해주는 듯했지만― 투란은 다시 당황한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헐! 으아!”
비명도 섞어봤지만, 그래도 역시 풍경은 고스란히 버티고 있었다.
금빛 찬란한 단단한 바닥, 사방의 굽은 황금벽―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는 크고 넓은― 말로만 듣던 어딘가의 성안이라고 여기면 딱 어울리는 듯한 반구형의 큰 방이었다.
마주 보는 저편에 뚫린 윗부분만 둥글게 그어진 네모의 윤곽은 회색의 얼룩이 번져가는 듯한 형태였고, ‘밖’을 향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줬다. 이 풍경을 더 보고 싶지 않다면, 의지를 저 문 너머로 보내면 된다.
“이게 뭐야! 뭐냐고!”
하지만 투란은 울컥해서 누군가 대답해주기를 강요하듯 다시 큰 외침을 터뜨리기부터 해야 했다. 이는 메아리처럼 울렸고, 그 흐름은 투란에게 알려줬다.
이 둥근 반구형의 천장 중심이 뻥 뚫린 채로, 아주 아늑하고 먼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고리처럼 생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