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
“나도 키운 자식이잖……아요.”
“넌 내 자식이 아냐! 십육 년을 키웠다! 이제 진짜 내 자식을 위해 뒈지라고!”
‘그렇게는 안 돼!’
몽롱한 기분이 사라져 갔다.
차가운 의식이 보다 선명하게 투란을 감쌌다.
엄마, 샤벨투스의 이빨, 알킨, 보석, 아버지…….
이어지며 떠오른 생각을 깔끔하게 털어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투란은 지금 오랫동안 품어 온 자신의 확신, 전혀 근거 없던 것이 진실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면, 키워 준 공을 자랑하던 아버지란 작자가 그에게 텅 빈 몬스터 엠블럼—보이드 엠블럼—을 심고 죽이려 했을 리가 없으니까!
알킨, 엄마와 아버지가 낳은 진짜 자식에게 걸어 준 그 보석은 투란의 것이었다.
투란이 알 수 없는, 자신이 진짜 누구이며 어디서 태어났는가를 쥐고 있는 열쇠가 바로 그 보석이었다.
‘대체 무슨 마법이 걸린 보석이었지?’
투란이 보석을 바라볼 때마다 느낀 강한 충동, ‘내 것이다!’라는 확신은 조금만 떨어져 생각해도 정상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확신이고 충동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투란을 보석의 저주에 걸린 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슬그머니 투란이 없다 여기는 곳에서, 뒷말로.
‘반드시 알아내겠다! 그래, 반드시 여기서 빠져나…… 응?’
각오를 다지는 순간, 새로운 의아함이 찾아왔다.
여기는 대체 어디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느리게, 투란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겨우 얼어붙은 속박에서 벗어난 듯이.
‘얼어 있었구나!’
투란에게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 주면서!
‘아직도 언 채고!’
겨우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지만, 몸이 완전히 얼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부분은 풀렸고, 어느 부분은 여전히 얼어 있다.
‘여긴……?’
마지막으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얼어붙기 전의 상황은 얼음의 거센 바람에 휘날려 가는 중이었다. 감각이 흐려지면서 몽롱해지기 직전의 일이다.
지금은 그렇게 날고 있지 않다.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뿐!
코와 입이 모두 뭔가에 막혔는데, 숨을 쉬지 않는 상태에서도 숨이 가쁘지 않고 그저 계속 뭔가 시원하게 코와 입을 두들긴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늦게, 투란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두 팔에 힘을 줬다.
몸이 후들거리면서 위로 조금 일으켜졌다.
머리가 겨우 차가운 것에서 떨어졌고, 코와 입으로 찬 바람이 밀려들었다.
이제야 투란은 자신이 엎어진 채로 얕은 물가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팔꿈치로 버티면서 몸을 조금 일으킨 것만으로 머리가 물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얕은 곳. 하지만 그 얕게 고인 물은 사람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계속 머물면 결국은 심장이 다시 얼어 버릴 듯.
‘……다시?’
투란은 자신이 여기 잠깐 처박힌 것이 아니란 점도 깨달았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처박혀 있었나는 알 수 없었다.
몽롱한 꿈처럼, 지나간 일의 파편을 떠올리면서 결국 마음에 분노를 채웠다.
‘아!’
그 분노가 몸을 달궈서 겨우 깨어난 것이다!
화가 난 사람이 혈압이 오르고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뜨거워지는 꼴이 되는 것을 그대로 이용한 셈이었다.
절대로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걸 따지기 전에 투란은 팔꿈치로 기어서 이 얕고 차가운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두 팔을 움직이는 것도 겨우였고, 아직 하반신은 꽝꽝 얼어붙은 채였다. 더 있다가는 팔도 다 얼어서 다시 꼼짝 못할 꼴이 될 수 있었다.
간단한 움직임이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뭔가가 온몸에 남은 힘을 다 짜내는 것처럼 힘겨웠다.
때문에 간신히 물가에서 기어 나와 얕은안개와 서리의 틈새에서 몸을 뒤집은 다음에야 투란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팔이…… 둘?’
황색의 질풍이 슬그머니 보낸 무색의 돌풍에 휘말려 왼쪽 팔이 끊어져 버리지 않았던가? 그 끊어진 팔이 어디선가 돌아와 달라붙었을 리는 없었다. 황색의 질풍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니까.
숨을 두어 번 거칠게 몰아쉬고, 그 숨결을 통해 차가움을 조금이나마 밀어내 보면서 투란은 두 팔로 몸을 버티고 일어나 앉았다.
‘역시 둘이야!’
어떻게 된 것인지, 차갑고 둔한 머리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잠에서 막 깬 것처럼 멍하고 아리는, 아프지는 않지만 둔한 느낌이 머리에 가득했다. 이를 바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도.
그러는 와중에 서서히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 따스함에 잠시 조급함을 내려놓으며, 투란은 살짝 긴장한 채로 왼팔을 들어 봤다.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살짝 얇고 투명한 껍질에 싸인 듯한 손이 보였다. 손가락을 세어 보고 손목을 뒤집어 팔뚝을 돌려 보고 어깨까지 움찔거리면서, 투란은 정말 이게 자기 팔인가 확인했다.
꼬물거리며 움직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낯설고 이상했다.
흉터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난다.
그러나 팔은 분명히 투란의 어깨와 이어져 몸에 붙어 있었다.
둔한 생각이 천천히 한마디를 투란의 마음으로 구겨 넣었다.
‘……재생.’
이 차가운 물가에 그저 엎어져 있기만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가 멍해져 숨도 못 쉬고 엎어져 있는 사이에 잘려 나간 팔을 키워 놓은 것이다.
‘어떻게 키웠을까?’
문득 궁금함이 떠올랐고, 호기심이 새로운 왼팔과 겹쳐지며 선명한 감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응? 단숨에?’
투란은 자신이 생각을 잘못한 것을 깨달았다.
팔은 화분에 씨앗을 뿌리고 싹이 틀 때까지 기다려서 열매가 맺는 식으로 ‘재생’되지 않았다. 두 팔을 모두 허우적거려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있는 힘껏 심장으로부터 뻗어 나온 힘으로 단숨에 내지르는 동작과 함께 툭 생겨났다.
그렇게 두 팔을 열심히 휘둘러야 했단 까닭은 물의 중심부, 거기서 힘차게 발을 굴러 도약으로 벗어나려다가 차가운 안개에 몸이 확 얼면서 끌려 들어갈 뻔했기 때문이고.
‘뭐야, 이거…….’
투란은 새로운 왼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어이가 없어졌다.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 물웅덩이, 꽤 큰 연못이 아니라 호수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어? 호수?’
뽀득, 뽀드득.
눈가를 좀 더 세게 문지르면서 투란은 훤히 보인다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뿌옇게 낀 서리 너머를 보고 있던 꼴임을 알았다. 서둘러 얼굴을 손으로 쥐듯이 쓸며 문질러 보니 바로 눈가에, 얼굴에 가득 덮인 서리가 묻어나잖은가!
번쩍, 누가 머리통을 때리면 보인다는 별이라도 본 것처럼 투란은 새롭게 정신을 차렸다.
‘몬스터 안개?’
이미 피를 보면 신나게 고여 들던 하얀 안개의 슬러시를 만났다.
샤오콴 마을에서 들었던 그 많은 몬스터의 이야기 속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슬러시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칼날 풀잎은 비슷한 녀석의 이야기라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안개가 되었다 말았다 하는 신기한 슬러시는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만났다.
그렇다면 저 호수 위로 얕게 깔린 이 안개도 몬스터일까?
아니면 이 호수가 그냥 통째로 맑은 물처럼 보이는 괴물 늪일까?
‘아니겠지.’
거기 엎어져 있다가 깨어난 참이었다.
뭔가 위험은 하더라도, 저 호수가 괴물일 가능성은 낮았다.
여태 투란이 살아 있으니까.
하지만 안개의 차가움은 범상치 않았다.
‘기어 나오지 않았으면 계속 얼어 있게 했겠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깨어났지?’
하나씩 기억이 날 때마다 투란은 새로운 의아함을 만나고 있었다.
그 의아함은 곧장 답을 찾을 수 있기도 했다.
뽀득거리는 소리가 목에서 나는 걸 들으면서 투란은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따스함을 전하던 것이 저 위에서 황금색 광채를 환하게 뿌리고 있었다.
태양이었다.
호수에 깔린 차가운 안개는 태양이 높이 오를수록, 그 빛이 보다 선명해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군. 물가로 나온 덕분에…… 몸이 반만 잠겨 있어서 어떻게든 뒤통수라도 녹았구나.’
그렇게 해서 몽롱하게 기억 속을 헤매던 투란은 깨어날 수 있었다.
단순히 마음의 분노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몸에 누적된 햇살, 그 온기도 함께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투란에게는 햇살이 좀 더 필요했다.
좀 더 물가에서, 얕게 깔린 차가운 안개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아직 허리 아래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두 다리는 움직일 낌새도 없었다.
아주 단단히 얼어 있었다.
결국 투란은 다시 팔꿈치로 기는 꼴이 되었다.
파삭거리며 몸의 여기저기가 긁히는 소리는 얼음 조각이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뭔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으로서는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얼어붙은 부분의 감각이 모두 마비된 듯, 알기도 어려웠다.
‘젠장.’
어찌 되든 투란은 차가운 호숫가에서 좀 더 멀어져야 했고,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몸을 두고 햇살을 받아야 했다.
잠시 끙끙거리던 투란은 결국 조금 더 높은 곳을 찾아냈다.
하얀 자갈과 돌이 가득하고 이끼조차 보이지 않는 호숫가에서 제법 크고 살짝 높은 바위였다. 앉아 있다가 다리를 늘어뜨린 채로 윗몸을 잠시 뉠 수도 있는 크기였다. 겨우 50센티 높이인 그 바위에 힘겹게 올라앉은 투란은 얼마간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절벽 몇 미터를 기어오를 때보다 더 힘들었다.
게다가 체력의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힘들어! 젠장, 배고파!’
이미 바닥난 항아리 속의 바닥을 더 긁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허기는 투란에게 눈을 비비고 좀 더 주변을 둘러보게 했다.
뭐든 걸리면 먹겠다는 충동이기도 했고, 그래야 했다.
여전히 눈가에 매달린 서리가 한 겹 더 부스러지며 파삭거리는 이명(耳鳴)을 남겼다. 그 때문에 투란은 여전히 자신의 시각을 비롯한 감각이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심하게 얼어붙었는데 용케 살아 있네?’
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누이며, 태양을 바라봤다.
배가 고프고 뭐든 먹어야 했지만, 이 상태로는 먹을 것이 있어도 찾지 못할 터였다. 어떻게든 힘을 축적하고 몸을 좀 더 녹여야 했다.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나…….’
씁쓸하게도 투란은 그대로 누워서 몸이 녹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몬스터 로드가 되었지만 그는 너무 무기력하고, 너무 약했다.
바람에 으스러지고 사라진 팔 하나를 재생시킬 수도 있었건만…….
‘어떻게 단숨에 팔이 돋았지?’
의아함과 함께 몽롱함이 다시 투란을 찾아왔다.
멍해져서 하늘을 보니, 황금빛의 덩어리 몇 개가 둥실거리는 듯했다.
하얀 바위가 벽처럼 둘러쳐진 호수의 중심에는 서리와 안개가 뭉쳐 있었다. 호수 표면에 낮게 깔린 안개는 뭉클거리며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하늘에서 크고 작은 몇 개의 원이 겹쳐진 듯이 빛을 뿜어내는 ‘태양’에 반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햇살은 무한하다는 듯이 쏟아졌고, 안개와 서리의 덩어리는 계속 깎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호수의 표면에 깔려 있던 안개의 층이 조금씩 더 엷어지고 중심을 향해 더 열심히 모여들게 되었다.
그 호숫가, 안개가 엷어져 점차 또렷하게 드러나는 물가, 저편의 벽과 같은 하얀 바위가 깨져 펼쳐진 듯한 자갈밭에는 간간이 큰 바위 조각이 있고 그 하나에 청년이 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온몸을 덮은 서리를 햇살에 녹이려는 듯…….
그 시도가 제대로 통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팔다리와 몸통을 가득 덮고 얇지만 몇 개의 층을 이루던 서리가 소년의 몸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엣취!”
아랫배 깊은 곳에서 뿜어진 듯한 기침과 함께 정신이 번쩍하며 되돌아왔다.
콧물과 침이 범벅이 되어 입가와 코끝에 매달린 것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 파삭거리던 느낌은 싹 사라졌고, 이제는 오히려 눈물이나 땀처럼 몸에 맺힌 이슬을 느낄 수 있었다.
‘마셔야잖아?’
생각이 드는 순간, 입이나 혀가 아닌 살갗이 투란의 몸에 맺힌 이슬을 들이마셨다. 그 감각의 끝에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과 이어진 미세한 넝쿨의 줄기를 느꼈다.
‘어? 심장이 언 채야?’
그제야 자신의 상태가, 자신의 내부가 절반가량 얼음덩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깨달았다.
겨우 몽롱함과 아련함을 떨쳐 버린 채,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