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0)
하늘은 높았고, 고리 너머로 보이는 탓인지 아주 깊어 보였다.
그 심연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투란을 진정시켰다.
저 높은…… 깊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단지 이 황금이 가득한 풍경에 놀라고 있는 자신이 우습고 한심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생각 없이 놀라고 있어 봐야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은가?
그래서 투란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다시 금빛 가득한 채로 둥글게 생겨먹은 방의 윤곽을 둘러보니…… 금빛과 저편의 작은 회색 얼룩만 선명한 채로 텅 빈 듯한 풍경은 여전히 속을 울컥하게 하면서 참을 수 없는 짜증과 분노를 불러온다!
바로 투란의 마음은 다시 머리 위, 이 반구형의 정점(頂點)이라 할 수 있는 고리를 향했다.
고리 너머로 보이는 너무 높고, 깊은 하늘이 투란의 마음을 채웠다.
이 하찮은 둥글둥글한 곳에서 벗어나 저 하늘로 가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샘솟는 듯한데…….
‘어? 아…….’
순식간에 투란은 저 아래편에 고리를 두고, 있고 싶다 여긴 하늘에 자신이 머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바람이 흐르고 따듯하면서도 시원한 감각이 쉴 새 없이 스쳐 가는 가득 채워진 느낌이 곧 투란을 채우면서 저 고리 아래에 놓인 황금빛 반구의 방 따위는 하찮게 여기졌다.
그저 이렇게 계속 이 하늘에 머물 수 있다면…….
“젠장.”
투란은 정신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반발을 자각했다.
모든 것이 전부 채워진 듯한 이 하늘, 그 바탕이 되는 깊은 근원 속에서 ‘허무의 심연’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미 투란이 떠나온 곳이라는 깨침이었다.
바로 투란의 지각(知覺)이 이 하늘로 들어오는 입구가 된 고리를 더듬었다.
톱니 따위는 흔적도 없는, 그러나 그 고리의 표면에는 흐르는 바람과 구름이 아주 잘 짜인 채 맞물린 듯한 무늬가 빙글거리며 채워져 있었다. 하늘 쪽에 있다 보니, 고리 안에는 넓은 방이 황금빛 반짝임 속에 작은 무늬를 바닥 한 곳에 새긴 꼴이 보이기도 했다.
‘응?’
투란은 텅 빈 방이 텅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을 겨우 느꼈다.
저 바닥 한 곳, 거의 이 반구형 방의 중심에 자리 잡은 듯한 무늬에 뭔가 있었다.
평평한 듯하지만 사실은 살짝 파여 들어간 듯이 새겨진 무늬 아래에 뭔가 분명히 있었다.
바로 투란의 마음은 그 무늬로 옮겨 갔다.
다시금 큰 원을 그리는 방의 사방, 둥글게 정점에 자리 잡은 고리를 향해 기울어져 올라가는 방의 형태를 느끼면서 투란은 무늬에 좀 더 집중했다. 뭔가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거기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좋아, 뭔지 보자고!’
보다 강하게 염원하니, 곧 투란 앞에서 무늬 한쪽이 살짝 내려앉으며 더 깊은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경사(傾斜)를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아래를 향한 기울어진 구멍처럼 보였는데, 그 안을 향해 투란의 정신이 기울어지자 계단 같은 굴곡이 바로 느껴졌다.
마치 이 작은 경사진 구멍 아래로 은밀한 지하실 같은 곳이 있다는 듯한 굴곡이었고, 투란이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그 굴곡을 따라 더듬어 내려가니 점차 분명하게 계단의 형태가 드러났다.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고 큰 아래층이 지하실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면서 위에서 바라보던 작은 무늬가 아주 큰 천장처럼, 지붕이 되어 이 아래층을 덮고 있는 광경이 선명해졌다.
사방에는 위와는 다르게 꼿꼿하게 치솟은 기둥이 단단히 맞물린 것처럼 나란히 늘어선 벽이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그 늘어선 모양은 여전히 위와 같은 원을 그리는 듯했다.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넓어?’
투란은 위에서 봤던 무늬, 내려오면서 확대된 이 아래의 영역이 전혀 가늠과 어울리지 않는 제멋대로인 것을 깨달았다. 이 영역의 규모에 맞춰서 위를 상상하면, 저 황금의 방은 아주 광대한 평원일 수도 있었다.
과연 이는 투란이 규모를 완전히 잘못 가늠한 탓인가, 아니면…….
크르르!
갑작스럽게 울려온 소리가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그 방향을 바라보니 나란히 앞을 꽉 채우며 서 있던 기둥 사이에 뭔가 빈틈이 보였다. 비뚤거리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 보자마자 투란은 그 길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벽 너머에서 소리 내는 것을 보고 싶다면, 그 통로를 따라가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확신이 투란의 정신 속에 피어올랐다.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그 통로를 거치는, 기둥 틈새로 유일하게 열린 틈새를 지나쳤다. 그 틈새의 통로를 차츰 채워가는 찰랑거리는 검고 걸쭉한, 어떤 면에서는 익숙한 잉크 같은 액체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잉크는 아닌데, 잉크를 닮기는 했네.’
아쉬움이 살짝 떠오를 때, 투란은 기둥 틈새 통로를 완전히 지나쳤다.
반구형의 우리, 짐승을 가두는 금으로 된 우리가 보였다.
저 우리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할 것이란 느낌이 세차게 투란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짐승, 몬스터가 있었으니까!
놈이 투란을 느낀 듯, 포효했다.
크웍, 캬아아아아!
‘이놈……!’
열두 가닥의 꼬리는 반구형의 우리 테두리에 파묻힌 듯했다.
반구의 형태 위로는 잉크를 쏟아부어 생긴 듯한 얼룩 모양의 틈새가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채로 반구 속에 담긴 짐승, 몬스터의 형상을 보였다 말았다 하는 중이었다. 고정된 틀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틈새는 투명하지만, 금빛의 안개 같은 것이 맴도는 듯했고 그 안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 안에서 손톱 끄트머리도, 털 한 오라기도 새 나오지 못하게 완전히 차단하는 황금의 우리, 움직이는 얼룩이 틈새가 되는 새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투란은 그 틈새를 통해 잠시 지켜보고 나서야 이 짐승, 몬스터가 뭔지 알아차렸다.
바로 투란이 잡았던 동글 머리, 뿔인지 귀인지 모를 더듬이를 지닌 그놈이다!
여전히 하얀 털가죽, 도자기 같은 팔에 뾰족한 손톱이었고 다리도 마찬가지 꼴을 한 채로, 꼬리가 박히고 묶여 버둥대는 모습이었다.
‘머리가 덜 둥글둥글하네? 저건 꼭 여우 머리를 조금 둥글게 한 모양인데.’
그 형태를 조금 더 살피다가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빈가의 여우, 그 여우 머리를 가져다가 좀 둥글게 눌러 만든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동그랗던 그 머리가 아니었다. 그 대신이라는 듯 새장―우리―의 정점, 안쪽으로 금빛 공이 하나 대롱거리며 매달린 꼴이 보였다.
만약 저 금빛 공을 저 머리에 쑤셔넣는다면 다시 그렇게 둥글둥글한 머리가 될 듯도 하잖은가?
‘어? 설마 그랬나?’
엉뚱한 생각이 저절로 투란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러나 곧 투란은 ‘그게 맞다.’라는 확신을 느꼈다.
근거라고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짐승, 몬스터가 그냥 그래 보인다는 것뿐인데.
―누구냐! 누가 감히 내 문장 속으로 침입했느냐!
갑작스럽고 아련한 외침이 들려왔다.
저절로 투란의 관심이 그 외침을 터뜨린 자를 향했다.
“헐?”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금빛 우리, 공을 반 토막 내서 박아놓은 듯한 틈새가 얼룩처럼 생긴 새장처럼 보이는 앞쪽에 희끄무레한 안개 같은 형상이 검고 축축하게 찰랑이는 바닥 위에서 너울거리며 소리치고 있잖은가?
―감히…… 몬스터 엠블럼 안으로까지 침투해 오다니!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계속 지껄인다.
―보이지 않아도 난 느낄 수 있다!
갑작스러워서 멍한 상태가 된 투란을 향해 계속 소리를 내뱉고도 있었다.
너울거리면서 그저 허연 빛깔 안개처럼 해롱거리는 꼴로!
허리 아래에는 제대로 된 사람의 형상조차 아닌 채로, 길게 늘어져 검은 늪의 표면처럼 보이는 바닥으로 흐르는 안개에 불과한 꼴로 그는 계속 투란을 찾아 헤매는 표정만큼은 또렷하게 보이면서 외치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에게 그딴 주문이 통할 줄 아느냐! 넌 결코 나를 지배하지 못해! 나는 몬스터 로드니까! 너 따위에게 마음을 허락한 적이 없는 몬스터 로드다! 어서 꺼져라, 하찮은 주문의 망령(亡靈)!
이어져 나오는 소리가 결국 투란에게도 대꾸하게 한다.
“망령이라…… 딱 그런 꼴이네, 당신…… 누구야?”
‘엥?’
진지하게 대꾸해놓고 나서, 저 허연 빛깔 안개가 뭔 반응을 하기도 전에 투란 스스로가 먼저 놀랐다. 어째서 대꾸가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메아리처럼, 도무지 어디서 난 소리인지 모를 지경으로 퍼져 나갔다가 돌아오는 듯한가?
이건 마치 드라고니아를 처음 품었을 때, 드라고니아가 그를 향해 내던 소리랑 비슷한 느낌이잖은가?
―누, 누구냐? 누가 망령이야!
허연 빛깔 안개의 형상이 얼굴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당황해하는 표정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되묻고 있었다.
뭔가 기묘한 이 상황에서, 투란은 보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었고 바싹 정신을 차리려 하며 대꾸한다.
“나는 몬스터 로드, 투란. 저 녀석을 사냥했고, 삼켰다. 넌 대체 뭐지? 어째서 저런 괴물과…… 여기에 함께 있나?”
문득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이 허연 빛깔의 안개 형상이 흐느적거리며 흐트러뜨린 아래편의 긴 흐름이 저 우리 안의 괴물과 이어진 것!
그러니까, 이 망령은 저 하얀 괴물 녀석이랑 함께 투란에게 삼켜진 것이다.
드라고니아가 슬쩍 말했던 대로, 망령조차 어느 선에서는 삼킬 수 있는 것이 몬스터 엠블럼이라 했던 말이 실현된 셈이었다. 문제는…….
‘대체 왜 내 문장의 풍경에 이런 것들이 있냐고!’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상황, 허연 빛깔 안개의 얼굴이 빙그르르 돌면서 우리 안의 괴물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아늑한 비명,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투란에게는 딱 이 이상한 상황에 어울리는 망령의 포효처럼 느껴지는 소리였다. 이는 잠시 이어졌다가 멈춰졌고, 허연 빛깔 형상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자기 머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내가…… 내가 괴물이 되었어. 내 문장이…… 내 문장이 버티질 못했어. 몬스터 로드여야 하는 내가…… 몬스터가 되다니!”
웅얼거리며 나오는 소리,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투란에게 거슬렸다.
“몬스터 로드라고? 아니야. 넌 몬스터 로드가 아니야. 저 녀석에게서는 아무런 공명도 느낄 수 없었다고. 몬스터 로드라면, 몬스터 엠블럼을 지녔다면 당연히 그 기본이 되는 심연의 각인을 통해 공명했을 텐데 그런 거 없었어. 넌 몬스터 로드가 아니야. 아, 혹시 몬스터 로드인데 죽어서 망령이 되어 저 녀석에게 들러붙어 있었나? 몬스터 엠블럼은 망령이든 뭐든, 언데드도 삼킨다던데.”
―나는 몬스터 로드다! 나는…… 심연의 각인은 없어도 몬스터 로드라고!
아득하게,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허연 빛깔 안개를 향해, 가슴 위만큼은 선명하게 사람의 모습을 갖춘 망령을 향해, 투란은 명확하게 말해줘야 했다. 키린에게서 배운 소중한 지식이자 지혜의 단편을.
“심연의 각인 없는 몬스터 엠블럼은 없어. 그거야말로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낳는 근원이라고. 그 각인이 있기 때문에 마력을 품을 수 있고, 그 덕분에 몬스터 로드는 서로를 삼키지 못해.”
웅웅거리는 그의 말은 천장의 무늬까지 울릴 정도로 크게 퍼졌다.
그 소리가 고통스럽다는 듯, 귀를 막듯이 손을 올린 허연 빛깔의 안개가 절규하듯이 이에 대꾸한다.
―황금의 매는 그런 각인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어! 새로 창조된 황금매의 문장은 몬스터 로드의 마력으로 주문을 쓰게 해주니까! 그 마법의 힘으로 몬스터를 품고 길들이게 해주니까! 그렇게 감당 못 할 몬스터를 삼켜 지우는 심연 따위는 필요 없다고!
“뭐?
잠시 투란은 자신의 정신 속에서 깊이 피어나는 차가움을 느끼고 떨었다.
차가움은 놀라거나 당황한 때문에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
이 차가움은 격노였고, 한탄이었다.
”세상의 섭리를 뒤틀고 왜곡하며, 파괴하는 존재를 잡아 지운다. 고대의 혼란 속에서 몬스터 로드에게 부여된 유일한 사명이고, 그 사명을 위해 탄생한 심연의 각인을 품는 것이 몬스터 로드의 시작이다. 너는…… 그 유일한 사명을 부정했나? 그런 타락의 결과가 지금 그 모습인가? 망령이 되어…… 몬스터에게 들러붙어 있는 몰골이 된 거야?“
투란으로서는 나직하게 읊어 보려 한 소리였지만, 쩌렁거리며 사방을 천둥처럼 울리면서 이 아래층의 기둥 모두가 한꺼번에 공명하며 강렬한 메아리를 일으키며 무시무시하게 퍼지고 말았다.
키린에게서 오러의 비술과 함께 강제로 물려받은, 몬스터 로드의 사명을 투란은 스스로 내뱉은 말에서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사명은 원래 문장과 함께 전해져 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투란이 깨울 때까지 잠든 채,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타락한 자를 만나서, 차가운 격노와 한탄으로 깨어난 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