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2)
‘소일 헛’이 흙먼지를 휘날리며 스러졌다.
갑작스럽게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싶은 순간, 몸이 이 추위에 저항하듯이 바로 반응을 하며 숨통을 크게 트이려 했던 모양이었다. 바로 투란의 입에서 험악하고 세찬 기침이 튀어나온다.
“엣취!”
투란은 기침을 하자마자 자기 입을 틀어막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그저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과 잡초만이 보일 뿐이었고, 연약한 사람을 얼른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녀석은 없었다.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던 투란의 몸이 바르르 떨리며 정상적이니 못한 것을 느끼자마자 바로 ‘힐링 팩터’가 상처를 찾듯이 누볐고 ‘서바이버’의 주문이 마력을 삼키며 움직였다.
‘뭐야, 이거…….’
몸이 순식간에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주문이 마력을 삼키는 과정을 선명하게 파악하면서 투란의 기분이 복잡해졌다. 마법을 통해 좋지 못한, 해롭기까지 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주문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발동한 다음이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적응해왔던 투란에게는 낯설었다. 그저 몬스터를 품고 유지하고만 있어도 되던 것과는 너무 다르잖은가!
‘소일 헛 안에서는 따로 몸에 해롭지 않아서? 아니면 이미 소일 헛이 생존 주문이 걸린 상태라서?’
‘소일 헛’의 해체와 동시에 몸이 느낀 한기, 주변의 혹독한 환경이 투란을 덮쳐왔고 황금매의 문장은 거기에 대항해서 준비된 주문을 끌어냈다. 이제는 따로 키워드를 외울 필요도 없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오러만 충실해도 괜찮았을 텐데.’
투란의 낯이 살짝 구겨졌다.
문장이 몬스터를 끌어내지 않더라도, 이제는 저절로 오러를 이용해 생명 본연의 힘으로 맞서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가.
한데 황금매의 문장은 마법 주문을 먼저 끌어낸다.
마치 투란에게 더 이상 오러가 필요 없다는 듯, 혹은 오러를 모른다는 듯!
돌연 투란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제는 오러를 쓸 수 없는 상태라면 어찌 되는 것일까?
키린이 그토록 열심히 새겨준 이야기가 문득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몬스터를 삼키고, 자신의 의지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길들인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과정이지. 그리고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기도 해. 그러니까 자신과 몬스터의 경계를 알고,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자가 되어 가는 거야. 그리고 그 때문에 몬스터의 본능에 휘둘리지 않게 된 상급 몬스터 로드는 문장에서 자신을 끌어낼 수 있어. 그게 오러가 되어 드러나는 거야.”
‘황금매는 비어 있지 않아. 하지만 달랑 한 마리…….’
서늘한 가슴이 텅 빈 듯한 아련함이 투란의 마음을 쿡쿡 쑤셨다.
투란이 아는 오러를 끌어내는 방법은 몬스터를 끌어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몬스터가 아닌 자기 자신을 끌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키린은 그것이 상급 몬스터 로드의 기초라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급 몬스터 로드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덜렁 끌어내는 정도로는 오러를 제대로 다루기 어려우니, 이것저것 따로 알아두고 몸에 익혀야 했다.
‘망할, 있는 놈이라도 꺼내본다면 느낌이 확실할 텐데…….’
오러를 아쉬워하면서 투란은 일단 걷기 시작했다.
몸에 걸린 주문을 통해 갑작스러운 추위, 숨쉬기 힘들어진 곳에서 벗어나 히엔나 무리가 울어대는 쪽을 향해서 투란은 조심스럽고 빠르게 나아갔다.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궁리하면서.
히엔나 무리는 아주 제멋대로 날뛰는 것처럼 보였다.
땅에 납작 붙듯이 네 발로 뛰는 놈, 높이 껑충거리며 두 발로 튀는 놈, 어기적거리며 두 발로 걷고 앞다리를 팔 삼아 휘두르는 것이 고작인 놈……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이 한 무리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인 모습으로 제멋대로 흥을 내며 초원의 한구석, 바위와 돌이 널린 채로 풀이 적은 곳에서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어디서 어떻게 잡아왔는가 의심스러운, 히엔나가 사냥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수상쩍어 보이는 거대한 물소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살아서 서 있다면 어깨높이가 넉넉히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놈이었고, 몸길이는 어림잡아도 4미터는 될 듯한 묘한 크기였고 두 갈래로 길게 돋아났을 뿔의 한쪽이 아주 우악스럽게 꺾인 모습이었다.
물소는 갈기갈기 찢긴 몸에서 속살과 내장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였다. 그 곁으로 바위와 돌이 널린 땅에 물소가 피와 살로 이뤄진 흔적을 남기며 끌려온 자취도 보였다.
히엔나 무리는 이 큰 물소를 뜯어먹으면서, 뼈까지 씹어 먹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계속 흥청거릴 것 같았다.
‘잡은 건가? 어떤 놈이 물소를 죽인 다음 그냥 가서 끌고 온 건가?’
투란은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히엔나 무리의 상황도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불쑥거리며 튀어나오는 주문 역시 투란에게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꽤 먼 거리에서 저쪽을 보게 해주는 멀리 보기의 주문이 활용되는 중인데, 이 또한 아주 느닷없이 키워드와 함께 튀어나온 마법이었다.
메자이 사이트(Magi Sight).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마력을 이용해 시야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주문이었다. 단순한 만큼 주문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하다고, 배틀 그림모어에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히엔나의 정황을 명확하게 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키워드를 사용했고, 그 순간에 배틀 그림모어의 기록이 오래전부터 아는 것처럼 불쑥 뇌리에 떠올랐다. 이는 투란에게 상당히 성가시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황금매의 주문은 철저하게 키워드를 통해 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급한 상황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말로 몇 마디 토하는 순간에 목이 잘려 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 때문에 배틀 그림모어에서는 키워드를 생략한 방식, 이른바 ‘스펠본드(Spellbond)’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한번 그 키워드를 외워서 황금매의 마력을 입은 주문은 더 이상 키워드조차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숨을 쉬듯, 손발을 움직이듯 바로 반응시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부리듯 말이다.
‘어떤 미친 마법사가 몬스터 로드가 되고 싶었나?’
투란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주문을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삼켜 사용하듯 하는 방식을 만들어낸 마법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마법사는 대체 왜 이런 황금매란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려 했을까?
마법의 주문을 그렇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몬스터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을 듯한데!
황금매의 문장은 ‘스펠본드’를 품은 채였고, 배틀 그림모어는 이를 바로 활성화시켰다. 이 편리한 ‘스펠본드’의 문제점은…….
콱.
투란은 자기 볼을 꼬집었다.
‘잡념 버리고! 지금은 사냥이다, 사냥!’
연이어 뇌리를 뛰어다니려 하는 마법 주문에 대한 생각을 손가락으로 억누르면서 투란은 히엔나 무리에게 집중했다. 사냥을 위해서는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다시 검토해야 했다.
트리니티 히엔나를 이뤄야 하므로!
‘세 종류가 필요하고…… 삼키는 순서도 주의해야 하고…… 음,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어? 아!’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다가 투란은 머리 한구석이 돌연 확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거의 잊었던 히엔나 사냥법에 대한 것을 명확하게 기억해냈다.
몬스터 헌터든, 몬스터 로드든 히엔나를 사냥할 때는 주의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전멸을 위해서라면, 일단 걸리는 놈부터 잡아가면 되는 것이 히엔나라는 몬스터 무리였다. 하지만 만약 그 히엔나 무리 중에 원하는 형태, 특이하게 변화된 품종이라든가 따로 얻어내야 할 것을 지닌 히엔나가 있다면 그놈은 절대로 먼저 잡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히엔나는 죽은 동족을 그 자리에서 포식하는 녀석들이니까!
짐승인 히엔나에게도 그런 비슷한 성질이 있다고 했다.
들개나 늑대 부류에도 역시 죽은 동족을 먹어치우는 놈들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른 먹잇감이 싱싱한 채로 곁에 있다면 동족에게 바로 입을 대지는 않는 것이 짐승이라고도 했다. 정말로 그런가는 투란도 본 적이 없으니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데 몬스터 히엔나의 경우에는 다른 먹잇감보다 먼저 동족을 먹어치운다고 했다. 그것도 다른 일을 다 제쳐놓듯이 얼른 달려들어서 뜯어먹는 것이 몬스터 히엔나의 특성이라고 했다. 마치 죽은 놈의 힘을 빼앗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습성인데, 때문에 먼저 죽은 히엔나는 다른 놈의 먹이가 된다.
그러니까 뭔가 얻어낼 놈은 맨 마지막까지 남겨둬야 한다!
‘배틀 그림모어를 새긴 방식으로 옛날이야기도 생각나게 하는 건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투란은 자신이 지금 흐릿한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는 것이 메모리엄이라는 주문과 연계된 것을 깨달았다. ‘메모리움’은 사람의 기억, 경험을 다루는 주문이었고, ‘오버시어’와도 이어진 흐름을 지녔다.
‘악마의 심장보다 흐릿하네.’
기억해야 할 것은 모두 기억해냈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머릿속을 들쑤시며 강화시켜준 기억이나 생각의 속도에 비교하면, 이 주문들은 꽤 느리고 효과가 약하다. 그래도 마냥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우선 고르고…….’
주문의 효과가 무한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도 떠올리면서, 투란은 일단 자신이 사냥해서 삼킬 히엔나를 고르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셋을 남겨둬야 하고, 셋은 반드시 한꺼번에 해치워야 했다. 세 녀석이 서로를 먹지 못하게!
휘이잉!
바람이 세차게 물소의 잔해를 스쳐 갔다.
게걸스럽게 가죽과 살점을 물어뜯고 있던 히엔나의 머리가 위로 치켜 올려졌고, 귀가 쫑긋거렸다. 뭔가 바람과 함께 스쳐 간 것이 히엔나를 자극한 듯했다.
컹?
작은 소리를 내며 히엔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자극한 것이 한 무리 동료에게는 어떻게 느껴졌나 궁금해하는 듯이.
그래서 물소를 먹던 히엔나는 저편에 어느새 뭉쳐든 무리의 동료가 뭔가 새로운 것을 열심히 뜯어먹는 광경에 입을 떠억 벌렸다. 물소 가죽과 살이 벌린 입에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걸 다시 물고 핥아먹는 대신, 물소를 뜯던 히엔나는 동료들이 열심히 뜯어먹는 것을 향해 뛰었다. 네 발로, 제법 큰 덩치를 과시하며 한 무리의 동료들을 밀치면서 얼른 죽은 히엔나를 향해 입을 여는데…….
피잇, 휘이잉!
아까처럼 뭔가가 바람결처럼 히엔나 무리를 자극했다.
물소를 먹다가 뛰어온 덩치가 큰 히엔나는 그 순간, 얼른 먹어치워야 하는 동족이 한 마리 더 늘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다른 녀석이 입을 대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했다.
커엉! 커컹!
히엔나 무리 사이에서 괴상한 짓는 소리가 났고, 뭐가 자신들의 무리에서 동족을 죽이는가를 따지기 전에 동족의 머리, 가슴, 배를 물어뜯고 후벼내는 것에 열중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다시 한 번 바람결이 히엔나 무리를 스쳐 갔다.
휘잉!
‘은밀하게,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었다.
죽은 동족을 향해 서슴없이 입을 들이대고 그 피와 살을 삼키는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무리 짓고 자신들에 대한 해코지에 민감하기도 한 놈들이라 했다.
들키지 않게 죽인다면 동족의 시체에 입을 들이대는 것이 먼저겠지만, 누가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몰려들며 적을 먼저 공격하는 몬스터가 히엔나라고.
물론 그 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물(巨物)이라든가 할 경우에는 보자마자 있나 없나 헷갈리는 짧은 꼬리를 똥꼬 속에 숨겨가면서 도망가는 놈들이라고도 했다.
뭔가 괴상한 놈들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녀석들의 습성이자 본능이라니 따질 겨를이 없을 수밖에!
흩어지는 생각을 정리하고 접으면서 투란은 조금 더 집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메자이 볼트(Magi Bolt)라 일컬어지는 마법의 화살―을 좀 더 정밀하게 가다듬었다.
‘바람, 빛에 섞여서…… 유리보다 투명하게, 바람의 궤적을 따라서…….’
사앗.
투란이 두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는 틈새, 텅 빈 곳을 투명하게 채우며 뭉클거리던 작은 방울이 한쪽으로 끌려가듯이 뾰족해지다가 사라졌다.
저편에서 히엔나 한 마리가 바람에 코를 킁킁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풀썩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 뇌수로 이어지는 목 줄기를 관통해 들어간 마법의 화살이 베푼 죽음이었다.
‘진짜 마법의 암살자네, 내가…….’
반쯤 지어진 ‘소일 헛’ 안에서, 앞쪽으로 흙벽을 세우고 뒤편은 열어서 바람을 끌어당기고 앞의 벽 너머로 손목만 내민 자신의 몰골을 다시 확인하며 투란은 기분이 묘했다.
망령이 남긴 배틀 그림모어에는 이 메자이 볼트를 불꽃, 얼음과 섞는 법부터 시작해서 바람과 빛을 이용해 이런 식으로 흔적도 없이 사용하는 기술도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힘을 빌려 쉽게 사냥을 하고 있으니 좋아해야 할 듯싶은데…….
애초에 트리니티 히엔나를 압도하는 잿빛바위 그랑츄를 지녔던 몬스터 로드가 대체 이 무슨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