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3)
히엔나 몇 마리, 무리에서 숨을 쉬며 살아남은 몇 마리가 물소의 시체 옆으로 모여들었다. 어지간히 둔한 녀석들이기는 했지만, 겨우 몇 마리가 남게 되자 상황이 이상한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멀리서 이를 보는 투란은 마법의 시야를 움직여 히엔나의 수를 세야 했다.
죽어 있을지라도 덩치가 큰 물소인 탓에 그보다 작은 히엔나가 그 앞뒤로 오락가락하는 꼴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남았나 싶었다. 하지만 노리고 있던 녀석들이 반복해서 보였기 때문에 투란은 이제 제대로 녀석들의 수를 셀 필요를 느낀 셈이었다.
‘뭐야, 일곱 마리잖아?’
한 열 대여섯 마리는 될까 싶었는데 막상 마법의 시야를 통해 물소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을 통해 세니, 고작 일곱 마리가 물소를 중심으로 몸을 낮춘 채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냥 도는 것도 아니고 돌 때마다 몸을 낮추거나 높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물소에 가려진 채로 보게 되면 히엔나 무리의 수를 두 배나 세 배 정도 가볍게//정도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정말 마법의 시야였기 때문에, 노리고 있던 녀석의 털 빛깔을 제대로 기억했기 때문에 투란은 히엔나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은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 털 빛깔이랑 미묘한 무늬로 제대로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녀석들이네.’
히엔나를 사냥하려 한다면, 히엔나는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아는 척하는 누가 한 말이었다. 히엔나는 털 빛깔이 다르고, 짙은 털 빛깔이 얼룩처럼 만들어내는 무늬가 얼굴처럼 다른 녀석들이라고…… 짐승인 히엔나도 몬스터인 히엔나도 마찬가지라고.
투란에게는 그냥 개나 고양이, 토끼 같은 짐승 구분 못 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되는, 반쯤 허풍이 섞인 이야기였었다. 하지만 지금 먹어치우던 물소를 엄폐물로 삼고 저러는 히엔나 무리의 꼴을 보니 완전히 헛소리는 아닌 듯하잖나?
‘꽤 쓸 만한 이야기를 많이 했나?’
워낙 잘난 척, 아는 척하며 떠드는 말이 많아서 다들 어디서 주운 이야기로 허풍 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차라리 그가 비웃던 그랑츄의 몬스터 로드 쪽이 품종은 단순하지만 더 많이 알 거라고.
‘오버시어.’
사라져가는 주문의 힘을 느끼고 투란은 다시 키워드를 외웠다.
바로 머리가 깨끗해졌고, 이웃집의 로잭이 따라갔던 이들의 얼굴이 스쳐 가듯 떠올랐다. 과연 로잭은 몬스터 헌터가 되었을까? 혹은…… 일이 꼬여서 몬스터 로드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 헌터 파티가 망가져서 어딘가로 팔려갔을까?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잖아.’
흘러가는 생각을 접으면서 투란은 마법의 시야에 집중했다.
‘메자이 사이트’는 일단 자신의 눈에 비쳐 보이는 곳에 마력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는 주문이었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거나 작아서 보기 힘든 것도 ‘메자이 사이트’를 통해 걸러내면 가까이에 둔 것처럼, 확대된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망령이 남긴 배틀 그림모어의 기교는 눈길 닿는 곳에 새로 이뤄진 시각의 방향을 전환하는 재간을 더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시야가 닿는 곳인 물소의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고, 히엔나 무리의 기묘한 속임수를 간파하도록 해줬다.
만약 망령에게서 배틀 그림모어의 기억을 이식받지 않았다면 투란은 그저 멀리 보거나 자세히 보는 일에만 ‘메자이 사이트’를 이용했을 터, 이렇게 멀리서 새로 엄폐물을 내려다보는 마법의 시각 따위를 써먹는 짓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이란 마력을 지닌 자의 상상에 의해 형태를 갖추지. 그러니까 생각 없고 상상력이 부족한 녀석들은 마법에 대한 소질이 아예 없는 거야. 그냥 방패 들고 칼 들고 뛰어가는 쪽이 훨씬 어울린다고나 할까?”
샤오덴 할배의 비웃음처럼 아케인 포스를 기반으로 한 칼날과 방패를 꾸며내서 저 무리 속에서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전에 화살비를 쏟아부어 수를 줄이기는 했겠지만!
‘뭐, 그것도 딱히 나쁘지 않잖아.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한 적도 없는데…….’
뭔가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메자이 볼트’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선명하고 분명한 번개와 불꽃의 속성을 띤 강력한 것이었고…… 겨냥하는 순간, 목표물에 빛이 닿으면서 살짝 마킹까지 되는 마법의 화살이었다. 일단 겨냥하면 이 화살은 반드시 목표에 가 닿는다!
커엉? 커커컹!
히엔나 무리가 바로 투란 쪽을 보며 짖어댔다.
빛의 가느다란 줄기가 자기 무리 한 녀석에게 꽂힌 것을 바로 발견해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경계심을 꽤 높이고 있던 탓에 마킹되자마자 알아차린 듯했다. 그리고 히엔나 무리가 물소를 놔두고 투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준비된 화살을 날렸다.
퍼억! 화륵!
겨냥된 히엔나의 머리가 불꽃과 번개에 물들며 흩어졌고, 몸통은 달리던 방향 그대로 뒤집어지며 굴렀다.
‘자, 겁먹었냐?’
히엔나 무리가 상대를 자신보다 강하다고 여기게 된다면…….
커컹! 크르릉!
맹렬한 울부짖음과 함께 남은 여섯 마리가 더 빠르게, 제멋대로인 모습으로 치달리며 아직 얇은 흙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투란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아무래도 머리통 하나 날린 정도로는 겁먹지 않는 모습이잖나!
“그렇지, 그래야 몬스터답지.”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은 거리를 가늠하며 두 손을 벌렸다.
가림막이 되어 주던 흙벽이 틈을 열었고, 투란의 등 뒤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이제는 등 쪽에 흙벽이 반구형 덮개처럼 자리 잡고, 달려오는 히엔나 무리를 완전히 마주 볼 수 있게 된 투란이었다. 당연히 히엔나 무리 역시 투란을 똑바로 봤고, 더 세차게 컹컹대는 소리를 냈다.
크릉, 컹, 커컹!
한낱 먹잇감이 무슨 짓을 했냐고 따지는 듯!
투란은 태연하게, 두껍고 강한 두 다리로 가장 빠르게 달려오는 히엔나 한 마리, 네 발로 부지런히 뛰어서 그 뒤를 잇는 세 마리, 가장 처져 있지만 어깨가 굵은 채로 억센 두 팔을 휘두르며 빈약한 두 다리인 탓을 과시하는 듯한 두 마리를 살폈다.
애초에 녀석들이 물소를 뜯어먹던 곳과 투란이 은신한 이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이백여 미터, 그리고 짐승이 아닌 몬스터를 과시하는 듯이 질주하는 녀석들이 지금 도달한 곳은…… 가장 빠른 놈이 이미 백 미터 안쪽이 된 거리를 팍팍 줄이고 있었다. 제일 느린 놈도 그 뒤로 고작 이십여 미터 처졌을 뿐이다.
“아케인…… 스피어.”
투란은 활짝 벌린 두 손에 마력, 아케인 포스를 끌어내고 형상을 부여했다.
배틀 그림모어에 기재된 형성하는 기술의 숙련된 요령을 이용했지만, 배틀 그림모어에서는 다루는 법이 없는 투창(投槍)이었다. 굵고 빠르고 강한 볼트가 있는데, 굳이 찌르고 던지는 창 따위는 다룰 이유가 없다고 여긴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투창을 형성했고, 오십여 미터까지 다가온 선두의 히엔나를 향해 던졌다. 두 팔을 동시에 휘둘러, 순수한 마력만으로 이뤄진 바람결로만 느껴지는 투창이었다.
두 다리는 강건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허리 위는 아주 얄팍하고 좁았던, 그저 빨리 뛰면서 이빨 사이로 침을 흘려 입술을 적시던 놈의 머리와 가슴에서 둔탁하고 흉악한 바람 소리가 울렸다.
바로 히엔나의 머리가 관통되었고, 가슴도 크게 뚫린 구멍이 생겨났다.
그래도 녀석은 워낙 빠르게 달린 탓에 앞으로 굴렀다.
한 이십여 미터를 앞으로 굴렀고, 투란에게서 삼십여 미터 정도에서 겨우 멈췄을 때…… 쓰러진 녀석을 뛰어넘으며 네 발을 부지런히 놀린 히엔나 세 마리가 큰 체격과 강한 주둥이를 내밀며 투란을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이제 이 거리면 곧 투란이 자신들의 먹이라고 외치는 모습이었다.
“베일, 블레이드.”
투란은 다시 배틀 그림모어에서 추천하지도, 다루지도 않는 두 가지 형상을 마력으로 끌어냈다. 펄럭거리는 담요, 망토가 투란의 왼편에서 흙빛을 일렁거리며 나타났고 오른편에는 넓고 굵은 판자처럼 생긴 검의 형태가 나타났다.
앉은 채로 몸에 감거나 들고 있기에는 너무 큰 도구들이 흙을 소재로 삼아 나타난 꼴에 투란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던 세 마리 히엔나가 잠깐 앞다리 무릎을 접으며 주춤거리는 꼴이 보였다.
마치 저게 뭐지, 어이없어하는 듯했다.
투란도 자신에게 좀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에이, 서서 만들었어야지!’
앉아서 한 손에는 크고 넓은 칼, 한 손에는 두꺼운 담요 같은 보자기를 쥔 꼴이 상당히 우스꽝스럽잖은가!
몬스터인 히엔나가 이상히 여길 만한 꼴에 대해 반성하면서도, 나름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투란은 일어섰다. 이런 투란의 모습에 주춤거렸던 히엔나 녀석들, 뒤늦게 따라붙은 큰 어깨를 들썩대는 녀석들이 가속하며 뛰어온다.
배꼽 아래에 반바지처럼 꽉 달라붙은 그림모스의 가죽을 느끼면서, 투란은 긴장했다.
그리고 한층 더 선명하게 정신을 가다듬으며 십여 미터 안쪽으로 뛰어오는 히엔나 다섯 마리에게 마법의 표식을 붙였다.
“오버시어, 마킹.”
커컹! 크어엉!
다시 자신들에게 불길한 뭔가가 달라붙은 것을 느낀 듯, 히엔나 무리가 보다 흉포한 괴성을 지르면서 투란을 향해 제각각 방향을 잡으면서 덮쳐들었다.
“트랩, 캐빈.”
투란은 열심히 생각해낸 형상을 불러냈다.
입을 움직임과 동시에 베일을 앞으로 휘둘렀고, 거기에 히엔나들이 머리를 박고 코를 들이밀며 네 발로, 혹은 두 팔로 후려치고 긁는 순간에 투란의 크고 넓은 칼날이 땅을 향해 꽂혔다.
케에엥! 케켕!
격돌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히엔나의 비명, 느닷없이 땅에서 치솟은 두꺼운 흙벽과 함께 함몰되는 바닥이 드러나며 바로 끝났다.
초원에 난데없이 네모난 흙벽으로 사방을 막아버린 듯한 집이 나타났다.
그 벽 속에서, 뻥 뚫린 위편으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잠시 한숨을 내쉬면서 투란은 자기 주변에 푹 꺼진 구멍을 바라봤다. 구멍에서 높이 치솟은 기둥인 듯한 유일한 발판에는 투란만이 올라선 채였다.
푹 꺼져버린 아래쪽에는 단단한 흙이 돌창처럼 솟아나 꿰어버린 히엔나들이 바둥거리다가 축 늘어지는 중이었다. 마법의 표식에 따라 제대로 급소에 꽂힌 마법의 돌창이었기에 피할 수 없이 관통된 모습이었다.
투란은 잠시 축 늘어진 다섯 마리를 내려다보다가, 저쪽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키워드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드랙.”
두 자루 투창에 꿰여 저쪽에 쓰러졌던 히엔나가 벽을 넘어 떨어져 내렸다.
모두 여섯 마리, 벽 안쪽에 늘어진 히엔나의 수를 세고 그 형태를 살핀 뒤에 투란은 자신이 선 발판을 내려다봤다. 눕기에는 곤란하지만 앉아 있기에는 넉넉한 넓이, 그래도 좁았다.
“메자이, 캐빈.”
투란은 다시 주문을 불러냈다.
발판이 넓게 펼쳐지면서, 아래의 꺼진 곳을 지하실로 만들 듯이 덮었다.
뻥 뚫린 채였던 천장도 사방 벽에서 흘러나오는 흙빛의 안개로 덮이며 곧 색이 짙어졌다.
‘소일 헛’의 확장된 강화형태라는 ‘메자이 캐빈’을 한 바퀴 둘러보고 투란은 그대로 몸을 누이며 쭉 뻗은 몰골이 되었다.
마법의 벽은 희미한 빛을 드리워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두웠고 투란에게는 그대로 쉬기에 딱 좋은 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줬다.
그 분위기 속에서 투란은 잠들었다.
마력의 소모, 긴장된 사냥의 끝에 찾아온 피로를 더 참을 수가 없었으므로!
깊은 숨소리, 살짝 코를 고는 소리와 함께 ‘메자이 캐빈’은 어두운 방의 풍경을 머금은 채로 초원의 풍경 속에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채로 우뚝 섰다.
“으아아아흐읏!”
발딱 몸을 일으켜 앉으면서 투란은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부터 냈다.
몸에서 살짝 돋는 소름과 식은땀의 흔적을 찾듯이 두 손으로 팔을 문지르고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는 투란이었다.
“아오, 뭔 꿈이었지? 망할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하는 것 같았는데…….”
중얼거리면서 더듬어봤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꿈은 사라지고 없었다.
얼핏 꿈속에서 드라고니아를 본 듯도 했지만, 별빛 무리 속의 기묘한 형체가 보일락 말락 한, 사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꿈속에서나마 보는가 싶었나 했던 그 순간만이 기억날 뿐이었다.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꿈도 꾸나…….”
몬스터 로드가 된 이후로, ‘악마의 심장’을 품은 이후로 꿈을 꾸거나 한 적은 전혀 없는 듯했다. 한데 이 황금매의 문장을 끼고 자니, 당연하다는 듯이 꿈을 꾼다. 기억에 제대로 남는 것은 없기는 하지만…… 꿈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정신 차리고!”
짜악.
두 볼을 두 손으로 살짝 치듯이 덮으면서, 얼굴을 벅벅 문질러 세수하는 시늉을 한 다음에 투란은 다시 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는 바깥의 풍경도 밤이라는 듯이 희미하게 벽 너머 스며오는 빛의 잔영조차 없어 보였다. 그저 컴컴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을 느끼고 있는 까닭은 여전히 투란의 눈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메자이 사이트’의 영향일 터였다.
‘효율 좋다는 게 이런 뜻인가.’
주문의 제대로 된 기능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각의 일부를 활성화시키고 이런 어둠 속에서도 완전히 시야가 사라지지 않게 해준다. 밝았다면 좀 더 강화된 시각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듯했다.
숨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이쉬며, 투란은 앉아 있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 바닥 아래에, 이제 다시 투란이 몬스터 로드인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잡혀 있었다.
‘설마 벌써 썩어 뭉개지지는 않았겠지.’
살짝 걱정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