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4)
썩히는 이빨, 썩게 하는 입.
히엔나라는 불리는 녀석이 짐승이든 몬스터이든 함께 지닌 특성이라고 했다.
히엔나에게 물린 상처가 너무 쉽게 썩어간다는 탓에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했다. 뭔가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적이 없었다. 히엔나가 워낙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인 탓에 그렇다고 했다.
물론 그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란, 몬스터나 다른 험악한 맹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맨몸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당연히 히엔나 같은 녀석들을 맨몸으로 상대하려는 골 빈 사람은 없다! 먹혀서 죽고 싶어 환장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 투란은 멋대로 흘러나가는 생각을 접었다.
뭔가 히엔나의 몬스터 로드가 된다는 것이 꽤 거슬리는 기분이라서 자꾸 딴생각을 하려는 듯하잖은가!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가슴을 더듬었다.
기묘하게도, 황금빛 얼룩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마치 거기 내가 있다고 과시하는 듯한 황금매의 묘한 마력이 손끝을 자극하는 듯했다.
‘너, 정말 몬스터 엠블럼이냐?’
불쑥 떠올린 의문이었지만, 당연히 대답은 없다.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제 더 머뭇거리지 않고, ‘메자이 캐빈’의 준비된 지하실로 내려갈 때였다.
흙바닥이부스스 갈라지고 아래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래로 흘러내린 흙바닥은 당연하다는 듯이 계단을 이뤘고, 투란에게 어서 오란 듯 보였다.
앉은 채로 엉덩이를 밀며 계단에 발을 디디면서 투란은 내려갔다.
계단 아래, 완전한 지하실의 풍경은 아주 캄캄했다.
“흠.”
혹시나 밖에서 흘러들어온 희미한 빛 따위가 있을까 했지만, 없었다.
계단을 통해 열린 곳만 살짝 색이 다른 컴컴함으로 느껴질 뿐이다.
“럭스.”
빛을 필요로 하는 투란의 마음이 그대로 황금매의 문장에 전해졌고, 곧장 투란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의 입이 주문을 외운 소리였지만, 그 결과였지만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횃불이 된 듯, 뜨겁지 않은 횃불이 된 듯이 주변을 밝히는 꼴이었다.
어두운 밤에 아주 컴컴한 곳에 이러고 서 있으면, 아주 멀리서도 저기 있는 녀석이 투란이야, 하고 외칠 듯한 모습 아닌가!
잠깐 빛의 샘처럼 돼 버린 자신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쉰 투란이 중얼거린다.
“안녕하세요, 마법사 투란입니다. 무슨 마법을 쓸 줄 아냐고요? 아하하, 반짝반짝 빛을 뿜어내지요, 보실래요? 짜잔, 지랄!”
뭔가 지껄이다 보니 엄청나게 창피한 기분이었고, 자기 입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나오는 욕설을 억눌러야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히엔나 한 무리를 상대로 골골하며 겁먹은 꼴로 마력이 얼마나 남았을까 조마조마한 기분을 느낀 채로 사냥을 했다. 생각보다 여유 있었고, 준비된 주문이 꽤 다양한 면이 있어서 함정과 덫을 아주 잘 써먹었지만,… 사실 잿빛바위 그랑츄만으로도 그딴 히엔나 한 무리는 가볍게 도살(屠殺)할 수 있었는데!
새삼 다시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투란은 밝아진 지하실을 둘러봤다.
지하실의 천장과 바닥을 잇는 얇은 돌기둥에 히엔나들이 꿰여 있는 것이 먼저 보였다. 피가 많이 마른 듯했지만, 여전히 한구석에서 방울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썩지 않았네.”
다행이란 것인지 불행이란 것인지 모를 말투로 중얼거리며 투란은 조금 움직이며 히엔나를 세었다. 함정에 빠뜨리고 덫으로 잡은 다섯 마리가 꿰어 있었고, 나중에 마법의 손으로 당겨온 한 마리는 그냥 바닥에 널브러진 채였다.
잠시 히엔나를 하나씩 둘러보면서 투란은 트리니티 히엔나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더듬었다.
‘세 가지 품종, 세 가지 형태…… 그리고 삼키는 순서.’
뭔가 굉장한 놈이 나왔다면 상당한 비전으로 거래되었을 내용이었지만, 그랑츄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반쯤 웃음거리로 옮겨 다니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과장되거나 조금씩 어긋난 내용이 섞인 부분도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투란의 경우에는 그 몬스터 로드 본인이 샤오콴 마을을 스쳐 가며 왜곡된 이야기를 바로잡는답시고 남긴 내용을 들어서 꽤나 상세히 아는 편이라 하겠지만…….
‘그 아저씨가 진짜인지 알 게 뭐야, 제대로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
몇 사람을 걸러 들은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진실일까?
투란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삐딱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사냥 가기 전에는 큰소리 엄청 질러대지만, 가서 돌아오지 않은 경우라든가 아니면 겁에 질린 채 돌아오는 경우를 꽤 많이 본 덕분이다.
‘거짓말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나? 아, 한심하잖아!’
다시 새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투란의 입술이 움직였다.
“럭스, 그라프트.”
투란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기둥과 천장, 바닥의 몇 곳으로 분산되며 옮겨붙었다. 이제는 투란이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투란의 정신은 문장에 집중되었고…….
황금매의 작은 머리 형상이 투란의 가슴에서 선명한 금빛을 반짝였다.
시커먼 매가 투구를 쓴 듯한 무늬가 이전보다 분명하게 투란의 마음속에 그 형상을 전해오는 듯했다. 마치 지금이야말로 몬스터 엠블럼으로서의 진짜 자신을 드러낸다는 듯…….
투란은 투구를 쓴 매의 머리보다, 날개가 교차하며 그 아래를 받치는 형태에 조금 놀랐다. 몬스터 엠블럼, 매의 문장은 발톱이 나란히 늘어선 채로 머리와 함께 아주 작은 세모꼴을 이루는 검은 무늬였다. 황금매는 금빛의 투구, 날개를 따라 새겨진 듯한 금빛의 깃을 과시하는 무늬로 자신이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온 몬스터 엠블럼과는 그 생김새부터 다르다고 주장하는 듯하잖은가!
이렇게 몬스터 히엔나의 핏방울을 살짝 갖다 바르자마자 드러난 황금매의 감각은 투란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되는 건가…….’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한편으로는 깊은 아련함과 서글픔이 투란의 가슴을 두들겼다. 만약 이것이 진짜 몬스터 엠블럼이라면…… 투란이 원래 지닌 ‘천칭의 문장’은 대체 어찌 되었을까?
“오버시어.”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투란은 눈길을 히엔나에게 고정했다.
그냥 히엔나를 삼키려는 것이 아니고 다른 형태의 히엔나 셋을 삼켜서 그 특성을 완전하게 하나로 융합하려는 것이다. 잡념 속에서 어긋나거나 실수를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트리니티 히엔나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진짜라면!
‘우선 몸통…….’
골라놓은 히엔나를 살피며 투란은 순서를 되새겼다.
트리니티 히엔나, 히엔나의 세 품종을 하나로 융합하려면 먼저 네 발로 뛰는 녀석부터 삼켜둬야 한다고 했다. 머리와 등뼈, 그 체격을 갖춘 다음에 어깨가 넓은 놈, 다리가 굵고 강한 놈 순서로 가는 것이 트리니티 히엔나로서 몬스터의 정수를 융합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순서가 잘못되면, 뒤엉겨서 한 품종의 히엔나로 몬스터 에센스가 정리돼 버리는 탓에 몸집이나 다리, 팔 한 가지만 몬스터다운 꼴이 되어서 트리니티는 실패.
가슴에서 핏방울을 머금어 되새기고, 몬스터 엠블럼이라면 당연히 뱉어내는 ‘그릇’이 작은 금전처럼 투란의 손에 그려졌다.
‘어…… 엥?’
천칭의 문장에 익숙했지만, 매의 문장을 지닌 이들도 봤다.
매의 문장은 고기조각 같은 살점처럼 보였는데, 황금매의 문장은 뭔가 둥글고 부드러운 금전 모양이라니! 아주 황금에 환장하게 만들 작정인가?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의 손은 조용히 얇은 기둥에 꽂힌 꼴인 히엔나의 갈라진 가죽, 핏방울이 맺힌 쪽으로 작은 금전을 갖다 붙였다. 금빛의 실그물이 어두운 풍경을 밝혀나가듯 금방 히엔나의 핏방울, 살점 속으로 스며가며 어느 틈엔가 뼛속까지 금빛이 맴도는 광경이 투란에게 보였다.
금빛은 그렇게 히엔나를 밝히면서, 물결 속에서 흩날리는 햇살의 잔광(殘光)처럼 맴돌았고 히엔나의 형체가 금빛 모래알처럼 으스러지며 사라져 갔다.
멍하니 투란이 내밀고 있던 손으로 빙글거리는 금전이 되돌아왔고, 자연스럽게 구르듯이 투란의 손목과 팔을 타고 가슴으로 굴러온다. 그 구르는 금전 속에서 가볍게 울려 나오는 마력, 아케인 포스의 흐름을 투란은 금방 알아차렸다.
그 의미도 금세 투란에게 명확해졌다.
‘일단 에센스를 끌어모으기만 하면, 알아서 회수된다는 건가.’
이건 마치 멀리 있던 히엔나를 집어 오려고 투란이 썼던 그 주문, 그랩이 저절로 발동하는 듯하잖은가?
황금매의 문장이 살짝 뜨끔하는 순간, 투란은 잡념을 버렸다.
몬스터 로드로서 지금은 몬스터의 에센스를 품고 정리할 때였으니…….
‘다음은 어깨!’
투란은 옆으로 가서 꿰어 있는 어깨가 넓고 팔이 굵은 히엔나의 핏방울을 손끝으로 긁었다. 다시금 황금매의 금전이 몬스터의 에센스를 끌어모았다.
* * *
금빛의 벽이 둥글게 기울어진 풍경을 이번에는 조금 더 자세히 바라봤다.
맞은편에 회색의 얼룩무늬가 맴도는 입구, 그래도 문의 형태를 하고의 그 내부를 그려내며 치솟는 모양.
여전히 투란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낯선 금빛의 벽, 한구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애써 삼켜놓은 몬스터의 정수, 히엔나의 에센스가 거기 있었다.
벽을 살짝 파낸 듯, 안으로 두들겨 넣은 듯한 꼴의 선반 모양…… 벽감(壁龕)이라고 할 수도 있는 구멍 같은 것이 셋이었고, 그 하나하나에 세 가지 품종의 히엔나 모형(模型)이 놓여 있었다.
“엥?”
잠시 멍하니 장난감처럼 작은 금제(金製) 모형으로 놓인 히엔나를 보다가 투란은 뚱하니 자신을 향해 소리내고 말았다.
‘천칭의 문장’과 분명히 다르다. 이건 황금매의 문장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얌전히 몬스터 모형을 놔둔 꼴은 대체 뭔가?
금으로 된 우리 속에, 새장의 새처럼 갇힌 녀석은 망령이 자물쇠가 되면서 걸려 잠긴 채이기는 했어도, 활발하게 으르렁거리는 괴물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데 지금 삼킨 히엔나는 그냥 박제(剝製)를 흉내 내서 만든 금색 인형처럼, 꼼짝도 않는 모형품이 되다니!
이건 마치 몬스터 체크의 보드판에서나 있을 법한 체크 모형도 아니고!
‘나 그 게임 더럽게 못 하는데…….’
새삼 떠오른 안 좋은 기억이 투란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그러나 그 심란함 속으로 다시 ‘오버시어’의 주문이 스며오면서 투란은 바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있는 주문이 자기라고 과시하는 듯한 위력은 새삼 투란의 기분도 묘하게 했다.
마치 지금 보드를 펼쳐놓고 몬스터 체크 게임을 한다면 완벽하게 모든 수를 읽고 승리할 듯하잖은가?
이렇게 어딘가 설레는 듯도 한 묘한 기분 속에서 투란은 히엔나의 모형 셋을 보다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로서의 본능, 원초적인 감각이 그렇게 시키고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황금매가 몬스터 엠블럼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증명처럼!
‘좋아, 보자고!’
의지는 곧바로 투란에게 금빛 벽 앞에 선 듯한 풍경을 보고 느끼게 해줬다.
조금 전까지는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 이 금빛의 반구 속에 놓인 문을 아주 작게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 문가에 작은 구멍 같은 벽감 셋이 생겨나며 함께 나타난 히엔나의 모형을 보는 처지였다면, 이제는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운 자리에서, 곁에는 멀리서 볼 때랑은 다른 높이가 어림잡아도 7, 8미터는 될 듯한 큰 문을 놓고 히엔나의 모형 셋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이 풍경…… 엉망진창이로군.’
투란은 이 반구형 안쪽의 어디든 바로 볼 수 있고,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으며 천장의 고리 모양으로 열린 하늘 속에서 부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히엔나의 작은 모형, 하나하나 크기가 고작해야 2, 30센티미터인 녀석들을 앞에 놓고 보자니 이 금덩이로 꾸며놓은 듯한 풍경이 생각보다 아주 넓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기분은 한층 더 묘해졌고 혼란스러운데, 다시 ‘오버시어’의 주문을 느끼면서 투란의 마음은 착 가라앉고 말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두고 보면 알겠지.’
자신을 다독이고 나서, 투란은 히엔나의 모형 셋에 정신을 모았다.
네 발로 뛰는 놈, 두 다리가 굵은 놈, 어깨가 넓고 굵은 팔을 지닌 놈…….
기껏 순서를 고려하면서 삼켰더니, 얌전하게 모두 따로 놓인 모형이 되어서 대체 뭘 했나를 의심하게 하는 상황!
황금매의 문장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투란은 이를 이제 하나로 엮어 넣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놈의 몸통에다가 어깨를 얹어놓고, 그다음에 다리를 붙인다는 건데.’
과연 손발이 없는 이 풍경 속에서 금덩이를 조몰락거리고 하나로 뭉쳐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삼 투란이 모형 셋을 바라보며 고민할 때, 금빛 벽이 출렁거리는 파문을 일으키며 세 모형이 놓인 벽감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