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5)
문장은 몬스터 로드의 정신에 반응한다.
투란으로서는 그 오래된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엠블럼은 몬스터 로드의 마음에 품은 소망에 따라 움직여주고, 때로는 기적을 일으켜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말일지 몰라도 투란에게는 이미 겪어본 진실이었다.
지금 황금매의 문장도 투란이 마음에 품은 소망에 반응해주고 있었다.
히엔나의 단단해 보이던 금덩이 모형이 벽감과 함께 출렁이며, 투란이 생각한 순서대로 뭉쳐들고 있었다. 세 구멍의 벽감조차도 그 순서에 따라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당연히 서로 다른 몬스터처럼 나눠놨던 것을 투란의 의지에 호응해서 하나로 엮어, 한 가지 형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꽤나 빠르게, 그리고 정교하게!
‘모형 다루는 건 영 서툴렀는데.’
다듬어져 가는 히엔나, 세 가지 품종이 하나로 엮이고 자아내는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추억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불과 몇 년 전에 일을 돕는답시고 망가뜨렸던 대장간 일감들…….
부드러운 나무, 질척한 찰흙 따위로 미리 틀을 잡거나 모양을 다듬어 보는 샤오덴 할배의 대장장이 기술…… 나무는 기름을 먹이고 말려서 단단해졌고, 찰흙은 쇠도 녹이는 화로 속에서 쇠만큼 단단해지고는 했다. 그러니까 부드럽고 질척할 때에 모양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비뚤거리고 망가진 꼴로 딱딱해지고 말았다.
서툰 투란의 손질에 꽤 이상한 모양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표면이 아주 거친 놈도 많이 나왔었다. 거친 가죽이나 대패로, 혹은 끌과 망치로 어떻게 다듬을 수 없을 지경인 모형들이 나무는 불쏘시개로, 도자기는 잘게 빻은 가루가 되어 다시 찰흙 속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손발을 움직이거나 눈과 귀를 기울이면서 살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음을 굳게 다지면서 강하게 집중해서 염원하면, 문장이 호응해서 마력이 소망을 이뤄준다.
‘잘 좀 해달라고.’
그래도 기억 깊이 새겨진 미묘한 불안감이 투란으로 하여금 보다 간절하게 트리니티 히엔나의 금제 모형이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형이 완성되었다.
뚜득, 우드득!
* * *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투란으로 하여금 주변을 돌아보게 했다.
다른 곳에서 난 소리가 아닌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투란 자신의 입이 이를 갈고 있었다.
계속해서 빠득거리며 이를 가는, 히엔나의 미묘한 버릇이 자기 입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내는 입을 꽉 닫고 잠깐 오물거리는 시늉을 하자, 삐죽하게 개나 늑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불쑥 튀어나가 있던 입과 코의 형상이 얌전하게 보다 사람처럼 변했다. 그렇다 해도 콧등과 볼에 돋은 잔털과 가죽은 여전히 히엔나의 것이기는 했다. 이런 변화는 머리 부분에만 나타나 있지 않았다.
손과 발, 몸이 모두 히엔나의 형상과 특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감각이 주변을 느끼는 방식이 바뀌어 있었다.
‘주문이 아니다. 이건 그냥 히엔나의 감각이야.’
투란은 분명하게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확실하게 히엔나,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뒤집어쓴 채!
황금매의 문장이 몬스터의 형상을 이루는 순간, 몸을 지키던 다양한 주문이 문장 속으로 마력을 되돌리며 숨어 버렸다. 이렇게 몬스터의 힘을 사용할 때는 오롯하게 몬스터의 힘만 쓰라는 것처럼! 마법과 몬스터의 힘이 서로에게 간섭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처럼!
커컥, 커허엉!
투란은 입을 열었고, 목젖을 울리며 큰 소리를 냈다.
가슴이 뭉클거리면서 토해져 나온 소리가 딱 히엔나가 터뜨리는 괴성 그대로였다.
지하실을 울리고, 흙으로 빚어낸 마법의 집을 흔들어대는 히엔나의 울음…….
옮겨진 마법의 빛이 채워진 지하실을 빠르게 울리는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망했다! 젠장!’
황금매의 문장이 제대로 몬스터 엠블럼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 의미란…….
“어? 문장을 몇 개씩 몸에 박는다고? 몬스터 엠블럼을? 될 리가 있냐. 문장은 문장을 지닌 자끼리 삼키지 못해. 그리고 한 가지 몬스터 엠블럼이 새겨졌다면 다른 걸 또 새기지 못하지. 덧씌워진다거나 그런 거 없어. 그저 튕겨내. 뭐, 마법사들이 몬스터 엠블럼을 새기지 못하는 거랑 같은 경우겠지? 마법사처럼 마력을 지닌 자는 문장이 각인되려 하는 것을 거부한다니까 말이야. 이미 몬스터 엠블럼을 새겼다면 몬스터 로드의 마력을 갖춘 셈이고, 그러니까 그 마력이 새로운 문장이 박히는 걸 거부하는 거라고 하던데? 음? 에헤헷, 당연히 마법사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지.”
아는 척 잘하던 뜨내기 몬스터 로드에게 로잭이 묻고 듣는 것을 투란이 옆에서 귀동냥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투란처럼 샤오콴 마을에서 자랐던 로잭이 그걸 궁금하게 여긴 이유는 문장의 종류에 따라서 몬스터 로드에게 조금씩 다른 감각과 능력이 깃든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그게 뭔가에 대해 투란은 못 들었지만…… 로잭은 그렇다면 몇 개의 문장을 몸에 새기고, 무슨 마법의 문신처럼 필요할 때마다 바꿔가며 쓸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게 여기고 물었다.
아는 척하던 뜨내기 몬스터 로드의 그 말은 키린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다듬어진 채로 투란에게 되풀이되어 전해졌었다. 그래서 투란은 몬스터 로드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라든가, 삼켜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확신을 품었던 것인데…….
‘대체 왜 불완전한 놈이 완전한 내 걸 누르고 자리 잡았냐고!’
망령의 말에서 얻은 유일한 단서는 그뿐이었다.
황금매는 불완전했고, 그 때문에 각인을 품은 자를 망령을 품은 괴물로 바꾸고 말았다. 그런 괴물이었기에 투란의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은 거침없이 삼킨 셈인데…….
그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일렁거리는 마법의 빛 사이로, 굵은 손목과 발목을 내려다보다가 투란은 숨이 막히고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히엔나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투란 스스로 답답해할 뿐이었다.
좋지 못한 상황을 확인한 이곳에서 어서 나가고 싶어졌다!
생각은 곧장 투란을 움직였다.
계단을 뛰어올라 텅 빈 채로 희미한 빛을 거둬들이는 마법의 벽을 들이박은 투란이 구멍을 뚫고 메자이 캐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투란은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갔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 주변을 스쳐 가는 바람을 따르듯이.
두 발로 뛰다가 네 발로 뛰는 시늉도 하면서 투란은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려나갔다. 히엔나 무리가 물소를 뜯어먹던 곳을 순식간에 지나쳐서 햇볕이 따갑게 내리쪼이는 초원을 가로지르듯이 가야 할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느 순간, 투란은 몸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갑작스럽게 몸이 움칠거리면서 손끝에서 발끝, 머리끝을 덮은 온몸의 살점이 뭔가에 당겨지고 움츠리려 하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트리니티 히엔나가 잘못된 것이라는 듯, 몬스터의 정수가 웅크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각에 투란은 몸을 웅크렸고…… 손발이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전히 팽팽하고 탄력이 넘쳐나는 그림모스의 가죽을 반바지처럼 입은 채로 투란은 초원의 한편, 누울 정도 크기는 되는 바위에 올라앉았다. 그 전에 변해가던 손톱으로 살짝 바위를 긁어서, 이것이 몬스터라든가 다른 괴상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한 채로…….
잠시 투란은 바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의 주변에는 자갈과 돌무더기가 꽤 있었고, 길고 가는 잡초가 뒤엉기며 작은 넝쿨처럼, 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중에 움직이거나 혀를 날름거리거나 독을 뿜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숨쉬기에 곤란한 점도 없는, 어쨌든 나름대로 안전한 곳이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투란은 다시 손발을 살피면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갑자기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잃은 까닭이 대체 뭔가?
답은 금방 튀어나왔다.
황금매의 문장이 마력을 뿜어내면서, 저절로 ‘오버시어’의 주문이 각성하면서 투란에게 알려준 것이다.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고!
‘지속시간……?’
새삼 투란은 몬스터 로드의 힘을 제약하는 조건 하나를 되새겼다.
몬스터의 형상을 무한정 유지할 수 없다, 때문에 폭동을 일으키며 미쳐 날뛰는 몬스터 로드라도 결국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몬스터 로드는 결국 그냥 몬스터의 형상인 채로 제정신을 찾을 때까지 무한히 날뛸 수도 있는, 그저 위험하기만 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
“하, 하, 하! 하하핫.”
투란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조건은 투란에게 잊힌 것이 아니던가.
키린이 누구에게도 떠들지 말라고 거듭 주의를 주던 것이 아닌가!
한데 그 제약이 돌아왔다?
황금매와 함께!
이제 다른 몬스터 로드처럼 되었으니, 기뻐해야 하는가?
그러면 이제 다시 몬스터의 형상을 강제로 벗겨진 이런 순간이 되면, 벌벌 떨면서 겁을 먹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몬스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면밀하게 계산하면서 계획을 잘 짜야 하는가?
연이어 튀어나오는, 몬스터 로드라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터득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되새기던 투란은 문득 의아해졌다.
황금매는 주문을 쓰게 해준다, 그런데 몬스터의 형상일 때는 주문을 쓸 수 없다. 그럼, 몬스터를 더 유지할 수 없는 지금은……?
“메자이…… 소일 헛.”
둥글게 투란 주변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르다가 뭉클거리며 뭉쳐서 반구형의 벽을 만들어냈다. 앉아 있던 바위조차도 덮으며 투란이 앉은 자리는 부드러운 흙의 융단이 파고들며 채워졌다.
효과를 발휘하는 주문을 보고 느끼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고유 마력으로 주문을 쓴다더니…… 몬스터를 유지하는 마력이랑 주문을 거는 마력이 별개로 유지되는 거야?’
뭔가 어긋난,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몬스터를 사용하는 마력과 황금매의 특성이라는 주문을 거는 마력이 나눠진 채로,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할 수 없는 지금 발휘되고 있잖은가?
‘이게 무슨…… 어?’
투란의 눈살이 찌푸려질 때, 뇌리 한구석에서 배틀 그림모어가 과거를 되새기듯이 답을 전해왔다.
이원화(二元化)된 마력의 그릇, 황금매의 문장이 지닌 중요한 특성이라고!
이어진 내용은 투란을 생각하게 몰아세웠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랑 별개로 마력을 축적해? 고유 마력의 크기에 따라 주문을 위한 마력의 그릇이 커지고 축적량이 증가한다고? 그러니까 몬스터를 삼키면 삼킬수록, 삼킨 몬스터의 역량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더 강하고 센 주문을 쓸 수 있다고? 대체 왜 이런…….’
차라리 마법의 문신, 몬스터 헌터들이 새기고 다니는 그런 형태의 문신으로 꾸며진 것이라면 더 낫지 않을까? 강력한 주문을 새긴 채로, 마력을 축적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편이 깔끔하지 않을까?
뭣 때문에 굳이 몬스터 엠블럼이어야 했을까?
배틀 그림모어가 다시 투란의 뇌리에서 뒤척거리면서 답을 내놓는다.
‘엥? 마력의 관리?’
보통 마법의 문신은 마력을 끌어모으고 사용하는 데 체력과 생명력을 갉아먹는 점이 문제였다. 마법사라면 자신의 마력을 통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마법의 문신은 언제라도 반발로 인해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라면, 애초에 마력에 대해서 강한 내성(耐性)을 지닌 몬스터 로드라면 그런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덤으로 몬스터를 삼킴으로써 더 크고 강한 마력을 얻을 수도 있고…….
“아, 몰라!”
흘러나오는 지식을 되새기던 투란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배틀 그림모어는 황금매의 문장에 담긴 주문을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적용하거나, 새로운 형식으로 주문의 운용방식을 바꾸는 경험을 잔뜩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필요해 쌓아 올린 지식을 투란이 의아할 때마다 쏟아낸다.
하지만 투란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대체 어떤 마도사가 이런 황금매를 만들어냈으며…… 왜 이것이 불완전한 문장인가, 이 불완전한 문장으로 인해 투란도 결국 몬스터를 삼키다가 망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오로지 황금매를 몸에 심은 채로 주문을 사용하고, 몬스터를 삼키고…… 두 가지 성향의 마력을 축적하며 한쪽을 사용할 때는 다른 쪽을 봉쇄하고 쌓아두는 방식으로 늘 주문을 쓰거나 몬스터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는, 얼핏 듣고 생각하면 꽤나 좋은 이야기만 줄줄 흘러낼 뿐이다!
‘이거 사기꾼 같잖아!’
거기에 대해 투란이 솔직하게 느끼는 바는 이 모양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소일 헛’의 흐릿한 벽 너머로 보이는 초원을 보면서, 이 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천칭의 문장’을 되찾을 수 없다면 앞으로 이 황금매를 품은 몬스터 로드일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