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6)
Chapter 40. 다시
휘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이 귓가를 스쳐 가며 속삭이는 작은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초원을 바라봤다. 멀리 굽이치며 이어지는 초원 너머의 지평선은 ‘누가 감히 여길 지나가?’라고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평선을 따라 눈길을 돌리다 보면, 한구석에 살짝 삐죽 솟아 있는 꼬챙이 같은 산이 보였고 그 주변에 흐릿하게 맴도는 광경은 그 너머로 넓은 늪지대를 기억나게 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만 보이는 뾰족한 산과 투란 사이, 초원의 작은 언덕 너머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열기(熱氣)의 흔적…….
투란의 발걸음은 그쪽으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을 하는 채로 배틀 그림모어라는 망령의 기억, 기록을 더듬었다.
‘스펠본드, 키워드는 생략하지만 미리 준비된 상태를 만들려고 계속해서 마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는 건데.’
편리했다, 분명히.
하지만 투란에게는 뭔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주문을 몬스터처럼 사용하게 해준다, 꽤 좋은 방식이었다.
몬스터 로드에게 어울리기도 했고……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내기 위해서 미리 준비할 것은 푹 쉬고 잘 먹는 것뿐이었다. ‘스펠본드’처럼 마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괴상한 짓은 몬스터 엠블럼이 하지 않았다.
망령이 남긴 기록에서는 때문에 ‘스펠본드’를 활성화시킬 상황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위험한 곳에서, 말 한마디 내뱉을 숨결이 아까운 때라면 기꺼이 소소한 마력의 소모를 감수하고 쓸 만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투란 근처에 안전하다고 의기양양해할 만한 곳이 없잖은가?
즉, 투란은 ‘스펠본드’를 이 산맥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질 때까지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야금야금 새 나가는 마력이라 해도 지속적으로 하루나 이틀을 유지하게 되면 결국 급할 때, 제대로 된 주문 한 방을 날리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완전한 문장이었다면…… 몬스터의 힘을 사용하지 않을 때 소모되는 체력 이외에는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건데…….’
조금 짜증이 난 채로 투란은 발을 내려다봤다.
‘소일 헛’과 비슷한, 하지만 ‘메자이 아머’라고 하는 응용된 주문에서 생성된 ‘소일 커버(Soil Cover)’가 발을 감쌌고 투란이 떠올린 가죽장화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트리니티 히엔나의 발가죽이 두껍기는 하지만, 몬스터의 형상을 지속하는 시간에 제한이 있다면 한번 생성해서 마력의 공급 없이 유지될 수 있는 장화 쪽이 더 나았다.
‘이런 거는 편리한데.’
투란은 마력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소일 헛’과 다르게 ‘메자이 캐빈’의 흙집이 유지가 되는 꼴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길을 헤매다가 빙빙 돌아 다시 히엔나를 삼키기 위해 지었던 흙집 쪽으로 가게 돼서 알게 된 것인데…….
그래서 관련된 주문을 훑어보다 보니, 우습게도 ‘메자이 아머(Magi Amor)’가 바로 튀어나왔다. 마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옷과 신발, 기초적인 도구들…… 일단 완성된 다음에는 물질을 변화시켜 짜놓은 구조가 유지되는 탓에 마력 없이도 유지되는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메테르 포밍’을 보다 발전시켜놓은 주문이었다.
내구성(耐久性)에는 여전히 문제가 좀 있기는 했지만, 마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경우에는 강철 같은 강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급한 상황에서는 부드러운 갈색의 흙신발이 강철의 군화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배틀 그림모어에서는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좀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투란에게는 많이 애매한 문제였지만, 망령은 그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이유는 없이, 그저 ‘메자이 아머’는 일시적으로 유지하고 바로 해체하는 것이 좋다고 해놨다.
다시 그 부분에 생각이 이르렀을 때, 투란은 시원하게 넘겨 버렸다.
‘알 게 뭐냐.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쓸 거야!’
뭔가 배틀 그림모어의 기록대로 하는 것은 망령에게 그냥 넘어간 듯해서 짜증과 울화가 먼저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이모저모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황금매의 문장을 이용하려 하는데…….
크르르, 크릉!
“응?”
걷다 보니, 살짝 솟은 언덕에 올라섰다.
올라서고 나니 저 아래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뭔가 열심히 뜯어먹는 듯한 늑대 예닐곱 마리가 투란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네 발로 선 녀석의 키가 대강 투란의 가슴 언저리까지 올라올 정도로 체격이 큰 놈들이었고 슬슬 네 발로 움직이며 투란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몸짓을 보니, 얼핏 봐도 한 2미터는 될 듯한 장신(長身)의 늑대들이다.
투란은 그 늑대들을 잠시 갸웃하면서 바라봤다.
혹시 이놈들 두 발로 일어서려나 궁금했으므로.
하지만 늑대 무리는 그대로 펼쳐지면서 투란을 향해 반원의 포위망을 만들며 열심히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뚝뚝 떨굴 뿐이었다.
‘웨어울프는 아니네…… 그저 조금 큰 놈들인가?’
보통 늑대라 불리는 녀석들보다 조금 컸다.
여기 사는 놈들이니 그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어쩌면 마수일 수도 있었고, 늑대처럼 생긴 몬스터 일 수도 있잖은가?
그리고 그런 놈들이 한창 사슴을 뜯어먹고 있는 자리에 투란이 나타났으니, 늑대 무리는 투란을 새로운 간식거리로 여기는 듯이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오는 것이다. 투란이 빨리 뒤돌아 뛰거나 움직이면 그대로 등짝을 찍어 누르고 물어뜯을 낌새로!
“하아, 야, 내가 이래 봬도…… 응?”
감히 몬스터 로드에게 덤빌 참이냐고, 늑대지만 한마디 던지려 하다가 투란은 움찔했다. 갑자기 등골을 쭈뼛하게 만드는 느낌, 그리고 기억 저 너머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한 토막의 늑대 이야기!
“이 산맥의 늑대 무리는 특별하지. 먹이를 사냥한 다음, 먹는 놈들이 있고 주변에 흩어져서 망 보는 놈들이 있거든. 그렇게 협동해서 마수와 몬스터가 날뛰는 곳에서 버티는 거야. 뭐랄까, 기본적으로 다른 곳보다 뛰어난 몸집과 이빨을 지닌 놈들이 숙달된 기초전술까지 지녔다고 할까?”
“크엣!”
옆으로 기울인 얼굴을 스치며 어깨 위에 떨어져 내리는 짙고 탁한 숨결을 느끼는 순간 투란은 자신이 눈앞에 보이는 늑대 무리의 한패이지만, 여태 어딘가 숨어 있던 녀석에게 습격당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했다.
한데 그렇게 덮쳐 오는 이빨을 드러낸 입은 하나가 아니었다.
옆구리도, 다리도 뒤에서 덮쳐오는 입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습격당하는 투란의 빈틈을 노리듯, 앞에서 어슬렁대던 놈들도 일제히 덮쳐든다!
새로운 간식이 먹던 것보다 더 좋다는 듯!
“아케…… 으압!”
키워드를 외우려다가 투란은 그대로 숨을 닫아걸면서 문장에 집중했다.
순간적으로 ‘스펠본드’가 맺혀졌고, 아케인 포스를 바탕으로 한 주문 ‘스틸 스킨’이 발휘됐다.
‘늦었네!’
하지만 이미 어깨와 옆구리, 허리에는 이빨이 날카롭게 찌르는 감각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문은 효과를 발휘해서 그나마 물린 곳이 더 갈라지거나 하는 것은 막아내는 듯했고, 그 뒤를 이어 투란이 웅크리고 휘두르는 몸짓을 하자 허리와 다리에 붙은 놈들은 그럭저럭 강철같은 살갗을 긁으면서 입을 뗐다.
하지만 어깨를 문 놈은 꽤 크게 한입 깨문 탓인지 상처가 더 파이거나 벌어지지 않았어도 단단히 매달리면서 떨어질 낌새가 없었다. 오히려 앞발과 뒷발로 투란을 누르고 긁으며 깔아뭉개려 했다. 떨어져 나간 녀석들은 자세가 낮고, 매달릴 구석이 없지만 자신은 다르다는 듯!
그렇게 먼저 뒤에서 덮친 놈과 작게 실랑이를 할 때, 앞에서 몰려온 놈들이 그대로 투란에게 충돌해왔고, 투란을 바닥에 굴리면서 제각각 물어뜯으려 했다.
커컹!
와드득! 와작!
한순간에 늑대 무리가 뭉친 곳에서 몬스터의 포효와 함께, 거칠고 사납게 뼈를 깨물고 으스러뜨리며 씹는 소리가 났다.
크릇, 크릉?
놀란 소리를 내면서 늑대 무리가 흩어졌다.
하지만 한 마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투란의 어깨를 물었던 늑대, 그 녀석은 목 줄기를 히엔나의 입에 깊이 물린 채로 늘어져 있었다. 뼈가 부서지고 씹히는 소리가 히엔나의 입과 늑대의 목 사이에서 이어져 나왔다.
히엔나의 두 손이 씹히고 있는 늑대의 목 줄기를 움켜쥐었고,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이 일어섰다. 그 어깨와 옆구리, 굵은 허벅지의 바깥쪽에는 살짝 깨물려 찢긴 흔적이 역력한 채였다.
삐죽한 히엔나의 주둥이가 살짝 꺼지듯이 사람의 입으로 오그라들면서 선명한 사람의 말이 튀어나온다.
“꺼질래, 덤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늑대 무리는 달려들었다.
무리의 한 마리가 단숨에 죽어버렸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듯!
히엔나 한 마리 정도는 두 발로 서든 네 발로 뛰든 상관없다는 듯한 맹렬한 늑대 무리의 공격이었다.
투란은 하던 말 대신에 한마디 울컥한 소리를 내야 했다.
“죽었어!”
허어, 허억.
숨결이 거칠어진 채로 험악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주저앉은 투란은 자신의 그런 숨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몸에 입은 상처를 살피느라 바빴다.
어깨, 허리, 허벅지…… 처음 당한 습격에서 상처를 입었던 부위는 크게 벌어져 있었다. ‘스틸 스킨’이 몬스터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순간에 해제되었고, 피가 튀어 오르는 곳을 늑대 무리가 놓치지 않고 계속 후벼파려 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상처가 없던 배와 가슴, 목덜미도 늑대의 발톱 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깊은 상처가 남은 곳은 덜렁거리는 발목, 한쪽은 깨물리고 찢긴 정도지만 한쪽은 뼈까지 부러진 채였다.
‘이렇게 굵은 발목인데 말이지…….’
투란은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되짚어보며 이곳에 사는 늑대의 집요함과 강력한 주둥이를 한 번 더 생각했다. 굵은 허벅지, 팔죽지에서 무릎, 팔꿈치로는 좁혀들어 가지만 발목, 손목으로 가면서 점차 더 굵어지는 것이 트리니티 히엔나였다.
늑대 무리는 허벅지만큼, 혹은 그보다 굵은 발목을 번갈아가며 물고 뜯어 기어코 너덜거리게 했고 한쪽은 발목뼈까지 부러뜨렸다.
‘마지막에 너무 방심했나?’
투란은 문득 마지막에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가 발목을 물고 몸을 내던진 늑대를 바라봤다. 마지막 한 마리였고 머리통을 두들겨서 으스러뜨려 죽였지만, 이 마지막 녀석을 놓고 나름대로 여유가 생겼다. 그 때문에 발목이 물렸어도 바로 두들겨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발목이 부러졌다.
다시 세어보니, 열 마리가량 되는 늑대 무리였다.
트리니티 히엔나로 싸우기보다 황금매에 갖춰진 주문으로 대적하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지 않았을까?
‘아니, 난 몬스터 로드다.’
쉽고 편한 쪽의 생각을 떨쳐버리면서 투란은 몸의 상태를 살폈다.
몬스터 히엔나는 죽지만 않는다면, 거의 모든 중상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잘 먹고 오래 푹 쉬는 것이 가능할 때, 트리니티 히엔나는 정말 반쯤 불사신처럼 회복한다고 했다. 그것이 그랑츄보다 약하지만 그나마 쓸모 있는 두 가지 중의 하나라고.
또 하나는 그랑츄보다 빨리 뛴다는 것이니 어쩌면 유일하게 쓸모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즉사하지 않고 도망쳐서 푹 쉬고 먹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이 던져지면 바로 별 쓸모없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도로 기울어지지만.
‘일단, 먹고 쉰다.’
투란은 히엔나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침이 질질 흐르는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마지막에 두개골을 뭉갠 늑대를 당겨 물었다.
으적, 와작와작.
늑대의 목 줄기, 가슴, 어깨를 차례대로 뜯어먹다가 투란의 얼굴이 기묘하게 구겨졌다. 히엔나의 형상 탓에 털과 조금 튀어나온 입, 이빨 때문이 아니었다. 히엔나의 습성에 따라서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배가 불러?’
문제는 가득 차오르는 배 속이었다.
포만감이 아니라, 더 먹을 수 없다는 신호가 배 속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늘어져 있는 늑대가 열 마리인데, 한 마리를 조금 뜯어먹고 벌써 더 먹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배 속이라니!
이건 ‘악마의 심장’을 품고 다닐 때는 결코 있을 리가 없던 일이 아닌가!
새삼스러운 느낌이 투란을 조금 당황하게 한다!
꺼어…… 끄윽.
‘악마의 심장’이 몰래 감추던 트림도 나오잖는가.
‘이게 정상인가?’
투란은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먹었으면 싸는 것이 당연하잖은가.
내장 가득히 ‘악마의 심장’을 두른 채로, 흘리는 것 없이 꼬박꼬박 챙겨서 만약을 대비한 양분으로 축적하는 것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가는 줄기 하나에 축적된 양분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는 쪽이 오히려 괴물인 것 아닌가?
‘젠장, 몬스터 로드가 정상 찾고 있냐!’
강한 반발, 짜증이 새삼 투란의 마음속에 치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득 차버린 배 속에 더 늑대 살점을 우겨넣을 수는 없을 듯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더 쑤셔넣으려 하다가는 토할 듯하니까.
투란은 자신이 아직 황금매의 문장과 새로 삼킨 몬스터에 더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저 마그마 로드를 찾아가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