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8)
턱, 턱.
내리쪼이는 햇살 아래에서 흙벽은 작은 먼지조차 흘리지 않고, 가벼운 두드림에 대해 둔탁한 소리를 내줬다. 속에 아무것도 없어서 빈 소리 따위는 절대로 낼 수 없다는 것처럼!
그 소리를 듣고, 손에 만져지는 흙벽을 느끼면서 투란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지만 이 흙집이 보고 듣는다는 듯한 태도로…….
“좋아, 만약 뭔 일 생기면 이쪽으로 돌아올 테니까, 잘 버티고 있어라.”
아예 말까지 건네는 투란이었다.
당연히 흙집은, 비록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투란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흙집은 왜 여기 자신이 지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와서 때려 부수지 않는 한 그냥 여기 있지, 뭐,’라고 투덜거릴 듯한 분위기였다.
투란은 그런 분위기를 향해서 계속 말한다.
“혼자서 심심하더라도, 잘 버티고 있어야 해. 원래 사냥꾼이 이런 곳에 지어놓는 쉼터가 다 그런 거라고. 너만 특별히 혼자 버티는 게 아니거든. 음, 그럼…… 일단 잘 있어. 나 간다.”
그러고 나서 바로 몸을 돌리면서 투란은 걸어 나갔다.
저쪽에 삐죽한 산이 보이고, 은근히 열기가 올라오면서 간혹 연기도 뿜어내는 곳을 향해서.
투란이 떠나고 난 빈자리, 흙집의 열린 문처럼 보이는 네모난 구멍을 향해 땅속에서 기어나온 것들이 꾸물거리며 기어들어 갔지만…… 이미 멀리 간 투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초원을 걸으면서 투란은 깨달았다.
그냥 곧장 똑바로 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가는 도중에 만들어 놓은 세 번째 쉼터 흙집을 세 번째 보면서, 투란은 자신이 어째서 이 초원을 빙빙 도는가 심각하게 고민부터 해봤다. 혹시 어떤 놈이 투란의 감각을 흐릿하게 해서 함정에 빠뜨린 것은 아닌가? 그 때문에 똑바로 못 가고 빙빙 도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같은 자리에 세 번 도달하는 동안의 여정을 되새기면서, 흙집 앞의 부드러운 흙 위에 히엔나의 손톱으로 주변을 그려보면서, 투란은 자신이 그냥 굽이치는 초원에서 기울어진 채로 빙빙 돌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초원은 굽이치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작은 언덕이 이어진 채였고, 올라가다 보면 방향이 비뚤어질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똑바로 가기는 하는데, 옆으로 방향이 뒤틀리고 그 길을 한 이틀 가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젠장.”
처음 한 바퀴째에는 그냥 웃었고, 두 바퀴째에는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세 바퀴째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지나는 길목, 지나온 여정을 단단히 기억했다. 주문까지 걸어가면서! 그랬는데 결론은 그저 방향 잘못 잡고 헤맨 것뿐이라니…….
물론 투란은 이렇게 길을 헤매게 된 원인이 순전히 자신의 착각 때문만이 아니란 것도 알아내기는 했다. 이 근처의 지형이 상당히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에 들리는, 몸으로 바로 느껴지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하루나 이틀, 묵묵히 걷다 보면 어제 저편으로 기울어졌던 것이 오늘은 저편으로 치솟은 형태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까 비슷한 풀, 바위가 보이더라도 기울어진 방향이 달라져 있거나, 향하는 방향이 달라서 지나치면서도 같은 자리를 지나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결코 빙빙 돈다고 여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세 번째로 지어놓은 쉼터, 흙집이라는 이정표가 있다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빙빙 돌고 있다고…….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얼핏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 들은 적이 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먼 곳의 풍경에 주의하고, 기왕이면 하늘도 자주 쳐다봤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하는 소소한 후회도 금방 투란의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주변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멀리 보지 않고 걸었던 것이 이런 결과가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것도 방심이겠지.’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일단 반성하고, 흙집 쉼터로 들어서는데…….
사사, 사사삭. 키익, 키이익.
“엥?”
세 번째로 지어놓고 세 번째로 방문하는 흙집 안에서 전에 없던 묘한 소리가 울려 나와 투란을 어이없게 했다. 어두운 흙집의 그늘, 지금 시간이 마침 노을이 내려앉을 저녁 무렵이라서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하룻밤을 쉬려 했는데 어떤 녀석들이 먼저 열린 구멍으로 들어와 안을 채우고 있다?
비비적거리는 소리 사이로 쇳소리가 섞여 있었고, 서로 긁는 소리가 귀에 익은 요란한 소리였기에 투란은 안을 밝히는 빛의 주문을 걸기도 전에 어떤 녀석들인가 대강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주문 ‘럭스’의 빛으로 밝혀진 안쪽에 자리 잡은, 시체지네 틈새로 상당히 큰 놈이 하나 보였을 때는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수로 분류된다는 놈이었고, 얼마나 자라는가 모르는 녀석이기는 했다.
그래도 몸길이가 얼핏 봐도 3미터가 넘는 경우는 심하잖은가!
‘저건 몬스터가 된 놈일까?’
대뜸 이런 의혹부터 피어났다.
이런 투란의 의혹에 호응하듯, 흙벽 저쪽에 바싹 붙어서 몸을 잔뜩 꼬고 있던 놈이 대뜸 잔가시 발을 꼿꼿하게 펼치며 날아왔다. 저쪽에서, 나선철이 풀리는 것처럼 단숨에 튀어 오는 꼴이 무슨 굵은 통나무가 단도를 촘촘하게 꽂힌 채로 요동치며 날아오는 느낌이라니!
퉤에엣!
잔뜩 부풀린 볼에서 털이 돋았고, 모여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나는 와중에 세찬 침이 한가득 뱉어졌다. 침은 뭔가에 이끌린 것처럼 길쭉하면서도 한쪽이 삐죽한 형태로 날아가서 단도가 가득한 통나무 거죽을 파내듯이 꽂혔다.
카칵, 키잇!
쇠가 쇠를 만나 억지로 긁어대는 소리는 투란이 들어 올린 두 팔뚝과 통나무에 꽂힌 단도가 맞닥뜨리면서 울려 나왔다. 그 순간 투란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프잖아!’
몬스터의 형상 위로 ‘스틸 스킨’을 덧씌우기까지 했다.
덕분에 털이 돋아난 살가죽이 베여나가는 대신에 쇠뭉치처럼 눌린 고랑이 파인 듯한 자국만 남고 말았다. 하지만 그 자국을 남기면서 전해진 충격이 뼛속까지 울리면서 신경을 벅벅 긁으며 고통도 함께 남겼다.
“으랏차!”
소리를 지르면 아픈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말을 따르듯, 투란은 괴성을 질렀고 동시에 발톱으로 찌르듯이 통나무처럼 굵은 시체지네의 몸통을 걷어차 올렸다.
빠각, 콰직.
발톱 부러지는 소리와 시체지네의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괴상하게 어우러졌다.
달그락, 찰그락.
2, 30센티미터의 동족의 열 배 이상 크고 굵은 3, 4미터는 될 듯한 시체지네가 꿈틀거리며 단도 같은 발을 팔랑거렸고 그 아래 깔린 시체지네 무리가 으스러지며 쇳조각 소리를 울렸다.
투란에게는 이런 광경을 감상할 틈이 없었다.
그보다는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케인 포스를 정신으로 부여잡고, 꽉 쥔 털투성이 손으로 시체지네의 껍질을 후려치며 쏟아붓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 덕분에 발톱이 부러진 발을 다시 바닥에 디딜 무렵에는 엇갈려 내지른 손바닥이 확실하게 시체지네를 두들겼다.
터덕!
아주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시체지네에게 아무런 충격이 없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투란은 자신이 뿜어낸 아케인 포스가 시체지네의 껍질을 넘어 그 내부로 확실하게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투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고…….
“스피어, 임팩트!”
‘메테오 포밍’이 응용되며, 거대한 시체지네의 단단한 껍질과 부드러운 안쪽 속살이 뒤엉키면서 창의 형상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비어 있는 허공이 아닌, 마수의 한계를 넘어선 몬스터의 내부에 가득 찬 힘과 마력이 충돌하며 창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고 이뤄지지 않은 창의 형상을 따르는 것처럼 으스러진 구멍이 나타났다. 그 으스러진 구멍 속에서 ‘임팩트’의 주문이 일으킨 충격파가 번져 나갔고, 시체지네는 갑작스럽게 몸을 찢어발기는 충격파에 휘말아가던 몸을 다시 펼치며 경련을 보였다.
이 순간 또한 투란은 놓치지 않았다.
“블레이드, 센싱(Sensing)!”
아케인 포스가 칼날의 형태를 취하면서 뚫린 구멍을 들쑤시고 톱질하듯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는 시체지네를 베고 자르기보다는 그 몸을 구성하는 물질의 형태, 구성에 대해서 파악하는 주문의 매개(媒介)가 되었을 뿐이었다.
투란은 정신을 바싹 곤두세웠고, 스며오는 정보를 감각적으로 걸러내며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구조, 그 안에 담긴 고유공간의 형태…….
“블래스터!”
아케인 포스가 순수한 파괴의 마력으로 전환되어 시체지네를 덮쳤다.
퍼어억!
몬스터가 된 거대한 시체지네를 중심으로 연쇄적인 폭발이 단숨에 퍼져 나갔다.
자욱한 안개, 짙은 연기처럼 살점과 껍질의 증발된 잔해가 흙집의 안을 가득 채웠다. 바닥은 안개가 바로 눌어붙어 쌓인 듯한 축축한 잔해로 덮였다. 그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중독시켜 죽일 듯한 분위기였지만, 투란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투란은 한 손으로 흙벽을 짚었고, 곧 손을 긁어당기듯이 움직였다.
문짝 없이 열린 구멍 같았던 문턱이 옆에서 미끄러지듯이 채워지는 벽돌로 막혔다. 마치 벽 속에 벽돌로 된 문이 있다가 흘러나와 봉쇄된 듯했다.
거센 숨결이 투란의 입과 코로, 히엔나의 주둥이를 메우려는 듯이 깊이 들이쉬어졌다가 내쉬어지며 또 다른 키워드가 튀어나온다.
“퍼지, 위키드.”
실내에 가득했던 시체지네의 잔해, 바닥을 푸석하게 할 정도로 쌓였던 물컹거리는 잔해까지 사라져 갔다. 흙벽과 바닥이 이를 삼키는 것처럼, 흙집의 안에서 시체지네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투란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이 오그라들며 사라졌고, 투란의 입에서 작고 거친 소리가 튀어나온다.
“젠장…….”
숨소리가 가라앉으면서 투란은 곧 깊이 잠들며 꼼짝도 하지 않는 꼴이 되어야 했다. 폭발적인 마력의 소모, 체력의 소모가 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꽉 막힌 흙집, 초원의 넓은 구역에서 보면 꽤나 크고 넓적한 벽돌이 땅에 반쯤 파묻힌 듯한 꼴의 흙집 위로 밤이 찾아왔고 별이 흘러가며 다시 아침햇살이 쏟아질 때까지도 투란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거의 햇살이 하늘의 정점에서부터 흘러내린다 싶을 무렵에야 투란은 천천히 손가락을 꿈틀거렸고, 널브러졌던 몸을 조금씩 추스르며 살짝 편안한 자세가 되었지만 계속 잤다.
그리고 다시 석양(夕陽)의 붉은 노을이 흙집의 외벽을 물들일 무렵…….
“으아으흣!”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투란은 화들짝 놀라면서 깨었다.
편안했던 자세가 놀란 탓에 비틀렸고, 하루를 꼬박 넘긴 탓인지 몸이 뿌득대는 느낌이 바로 투란을 찾아왔다.
“아크크…… 젠장.”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고, 투란은 천천히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어둠이 가득한 흙집의 내부를 잠시 눈에 힘을 주며 보다가 투란의 입에서 한숨이 새 나왔다.
“금방 깼네?”
노을이 보일 무렵에 시체지네를 처리하고 잠든 것 같은데, 다시 밖에 노을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오래 잔 듯하지만 사실은 금방 깨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은가? 설마 하루를 다 자고 일어난 것일까!
투란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접어버리면서 벽의 한구석을 손으로 긁었다.
흙집의 한편에 작은 창이 열렸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면서, 나름대로 두꺼운 벽 속에서도 노을을 제대로 느낀 것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잠시 멍한 낯빛을 띄웠다.
‘또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하는 꿈이었나?’
꿈의 기억은 희미했다.
하지만 느낌은 딱 그랬다.
꿈을 꾸는 동안, 투란은 다시 가슴에 ‘천칭의 문장’을 지닌 몬스터 로드였다.
깨어난 지금 현실은 황금매가 반짝대는 중이지만…….
씁쓸하고 작은 한숨이 투란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너무 약해.”
시체지네를 상대한 자신의 싸움을 검토하면서 나온 결론이었다.
애초에 키워드를 이용한 주문을 쓰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키워드 없이 싸우려 했다.
시체지네가 그 몸을 휘두르기에 이 흙집 안쪽은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었으니까, 구석으로 피하면서 문턱을 넘나들면서 버티면서 트리니티 히엔나로 껍질을 부수고 야금야금 파내서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첫 격돌인 발길질에 발톱이 부러지는 꼴을 보고 바로 그 생각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투란은 배틀 그림모어의 전투법, 그중에서도 상당한 필살(必殺)의 기교(技巧)로 꼽히는 마력의 충격파를 이용했다.
그것도 완전히 통하지는 않았다.
그 충격파를 통해 단숨에 시체지네를 제압했으면 좋았겠는데…… 쏟아부은 아케인 포스의 절반 이상이 시체지네의 마성(魔性)과 마주치며 그냥 사라졌다. 흔히 말하는 몬스터의 항마력(抗魔力)에 걸러진 셈이었다.
그 과정에서 쥐어짜낸 생각은 드레이크의 기억으로 이어졌고…… ‘메테르 포밍’을 통한 물질의 간섭, 공명을 이용하는 ‘블래스터’ 주문을 연계시킨다는 결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체지네는 이쯤에서 괴멸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또한 통하지 않았다면…….
“강해지자고, 얼른.”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면서 마그마의 호수를 떠올렸다.
그 언저리를 흘러다니는 블랙 애시가 고인 곳까지 어서 가야 했다.
다시 한 번 마그마 로드를 품어야 했다.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