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99)
별을 보고, 달을 보고 멀리 붉게 흐르는 땅 위의 광채를 쫓으며 투란은 밤을 쉬지 않고 걸어 나갔다. 낮에 열기의 희미한 아지랑이를 쫓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편이 나을 듯했으니까.
이 선택은 옳았다.
투란은 거뭇한 언덕이 길게 이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에 도달했고, 붉은 그랑츄가 굽이치는 들판에서 우왁거리며 뛰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뭐냐…….’
숨을 고르며 투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언덕 너머로 높은 하늘을 향해 결코 닿지 않을 붉은빛을 여리게 뿜어내는 마그마의 호수가 보였고, 언덕 앞의 들판에서는 붉은 그랑츄 무리가 예전에 보던 것과 아주 닮은 모습으로 뭔가를 쫓으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카프리곤을 쫓던 모습 그대로, 붉은 그랑츄 무리가 쫓는 것은 대체 뭘까?
투란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저 덩어리는 대체 뭘까?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눈을 살짝 가늘게 하는 순간, 투란은 황금매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주문도, 몬스터의 힘도 아닌 기묘한 감각이 몸을 울렸고 곧 투란의 시야가 저편을 보다 섬세하게 파악했다. 시각능력의 향상이라든가, 강화된 눈의 역량이 발휘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응? 누구?’
기묘해진 시각에 막 빠져들려는 순간, 투란은 누군가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에 재빨리 사방을 둘러봤다.
들판이 굽이치며 저편으로 이어졌고,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는 이제 작게 깔린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암벽 지대가 있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조금 더 높이 치솟은 듯이 보이는 삐죽한 산, 그 주변에서 모락모락 안개를 피어올리는 습기 가득한 늪의 영역…….
‘없어졌어?’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관점이 이상해졌다고 여겨지는 순간, 누군가 자신을 엿보는 느낌이라니…… 아무래도 이쪽의 상황이나 풍경은 몇 가지 바뀌었어도 이전 그대로인 듯한데 자신만 변해버린 탓일까?
새삼 투란의 눈길이 자신의 지금 모습을 둘러봤다.
이전처럼 그림모스의 가죽으로 이뤄진 반바지를 아랫도리에 끼운 채였고, 바지가 덮지 않은 무릎 아래에는 옅은 갈색의 장화가 갈라진 땅의 무늬를 한 채로 신겨져 있었다. 같은 무늬, 같은 색을 지닌 가죽이 어깨와 등을 덮은 채였고, 팔과 손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완전히 노출한 가슴과 배를 향해 삐죽거리는 모서리를 드러낸 채로 물고 있는 듯한 차림새…… 어떻게 봐도 이전처럼 달랑 두꺼운 반바지만 꿰어 입은 몰골은 아니었다.
‘소일 아머’를 응용한 흙으로 이뤄진 옷차림새인 셈이었다.
결국 이 풍경의 미묘한 변화처럼, 투란의 모습도 분명하게 변한 듯하잖은가?
그웟, 그워어억! 쿠쿵, 쿵, 쿵, 쿵.
붉은 그랑츄 무리가 합창을 하며 발을 구르고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차게 들판을 울리며 퍼졌다. 심하게 귀를 찌르고 울리는 소리가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경고처럼 강렬하게 사방을 두들겨 패는 느낌이었다.
투란의 인상이 구겨지며 눈길은 다시 붉은 그랑츄 무리와…… 그 무리랑 어울리고 있는 낯선 괴물을 향했다. 황금매의 미묘한 반응과 함께 투란은 뭔가 이상하고 색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누군가 엿보는 느낌이 없었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저거, 마그마 로드의 변종인가?’
제멋대로의 추측도 살짝 곁들인 채로.
어느새 주저앉아 굽이쳐 내려가는 들판의 풍경을 바라보는 투란 앞에서 붉은 그랑츄 무리가 쫓던 괴물을 포위한 채로 마주치고 있었다.
그워, 크워으으아앙!
콰아아!
노란 바탕에 녹색의 광택, 투명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이상한 연두색 불꽃에 휩싸인 괴물은 바위라든가 돌덩이 같았다. 하지만 그 바위나 돌덩이가 형체를 제멋대로 변화하며, 때로는 꼬리로 때로는 주먹으로 자신을 노리고 덮쳐오는 붉은 그랑츄를 후려패고 내지르는 광경은 저게 바위처럼 보이기만 할 뿐이고,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증명이었다.
하지만 그랑츄에게는, 붉은 그랑츄 무리에게는 저 괴물이 뭐 하는 놈인가는 별로 관심을 둘 일이 아닌 듯했다. 붉은 그랑츄는 그 녹황색을 옅게, 짙게 변화시켜가며 투명한 연두색의 불꽃을 휘감은 줄기, 주먹, 꼬리, 곁가지로 자신들을 후려칠 줄 아는 센 놈이라는 것만 중요한 듯했다.
그래서 붉은 그랑츄는 카프리곤에게 했던 것처럼 그 앞으로 달려들며 몸을 들이댔고, 녹황색의 암석 괴물이 피하려고 하면 괴성을 지르며 먼저 두들겨 패고 걷어찼다. 어서 자신들에게 덤벼보라는 듯, 특히나 같은 무리의 다른 붉은 그랑츄보다 먼저 자신을 패라는 것처럼 과격하게 들이대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녹황색의 암석 괴물은 지칠 줄 모른다는 듯, 하지만 너무 지겹다는 듯이 옆으로 구르며 붉은 그랑츄 무리와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달아날 길목이 막혔고, 결국 남은 것은 붉은 그랑츄 무리가 강요하는 짓뿐이었으니…….
퍼엉, 퍽, 퍽.
모처럼 시원한 타격이 굵고 큰 녹황색의 바위주먹을 통해 펼쳐졌다.
붉은 그랑츄 몇이 주먹질에 튕겨나가는데, 어떤 놈은 그대로 공중에서 몸이 으깨지는 꼴이 되었고 어떤 놈은 팔다리가 구겨진 채로 바닥에 꽂히면서 땅을 파고 밀려나갔다. 그 와중에 정통으로 배와 가슴 언저리를 맞은 둘 정도가 꿋꿋하게 발가락으로 땅을 파먹듯이 움켜쥐면서 버티는데…….
콰아아!
“또냐…….”
뭔가 한숨을 쉬지 않으면 안 될 듯한, 전에 봤던 광경과 너무 닮은 꼬락서니에 투란은 한마디 웅얼대야 했다.
붉은 그랑츄 두 마리가 확실하게 파이로-칸으로 변했다.
불길로 그 몸을 감싸고, 허공을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과 진동을 거칠게 뿜어내면서!
이 광경은 투란에게 보다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저 붉은 그랑츄는 자신들이 파이로-칸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가도…… 좀 사납고 거친 방법이지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강한 놈들을 끌고 온다. 대체 어떻게 끌고 오는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마그마 호수의 주변으로 끌고 와서 이용하는 것이다.
당하는 놈, 카프리곤이나 저 녹황색의 암석 괴물에게는 굉장히 짜증 나고 지겨운 상황이 되는 것이기는 한데…….
크워어어!
파이로-칸 두 마리가 울부짖었다.
붉은 그랑츄 무리가 그에 호응하는 듯, 시원하게 합창하는 소리를 뿜어냈다.
그워어어어!
한쪽이 조금 굵으면서도 보다 날카롭게 치솟는 소리라면, 한쪽은 그에 비해 어딘가 가늘고 여린 느낌이 선명했다. 파이로-칸과 붉은 그랑츄의 차이가 이런 것이라는 듯한 포효의 격차였다.
보고 듣던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펼쳐지는 다음 광경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카프리곤의 때에는 저렇게 변해놓고 붉게 빛나는 용암 속으로 다 빠져들었다가 꿰어버렸다. 애써 변해놓고 그냥 마그마 로드의 영역에서 끝장난 몰골이 되고 말았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리 변하고 나면 일단 녹황색 암석 괴물은…….
“어? 어이쿠.”
투란은 바윗덩이가 이글거리며 보다 짙은 연두색 불꽃을 맑고 밝게 피워 올리며 변화하는 광경에 쓴웃음과 함께 공감(共感)할 수 있었다.
녹황색이 보다 짙어진 암석 괴물이 본격적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이제껏 자신을 귀찮게 군 까닭이 이거냐, 하고 따지는 것처럼 암석 괴물의 형상은 파이로-칸처럼 변화했고, 파이로-칸 두 마리와 붉은 그랑츄 무리를 향해 아주 짙고 선명하게 이글거리는 녹황색의 눈매와 연두색 불꽃이 일렁거리는 시원하고 투명한 눈동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카프리곤은 귀찮은 일을 잽싸게 피해 뛰었지만, 암석 괴물은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이 화풀이를 하려는 낌새가 아주 역력했다.
투란의 입가에 걸렸던 쓴웃음이 호기심과 흥미를 띤 웃음으로 변해 갔다.
크릉, 크르르!
두 마리 파이로-칸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한편에서 쿵쿵거리는 발 구름 소리를 내는 암석 괴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여태 안 가고 뭐 하냐고 따지는 듯한 파이로-칸의 눈길이 흐릿한 윤곽의 눈동자를 통해 거침없이 뿜어져 나왔다.
암석 괴물을 휘감은 연두색 불꽃이 두 주먹을 휘감았고, 파이로-칸을 향해 바로 날아들었다. 형체를 변화시키는 암석 괴물이 파이로-칸의 모습이 된 채로, 파이로-칸이나 붉은 그랑츄 무리가 할 듯한 주먹질을 하는 광경이었다.
퍼억, 퍼엉!
돌과 살이 맞닿는 소리치고는 너무 커서 괴상하게 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암석 괴물이 나름대로 힘껏 친 듯한데, 두 마리 파이로-칸은 제각각 볼을 얻어맞고 고개를 살짝 돌린 정도일 뿐이었다. 붉은 그랑츄를 변화시켰던 바위 주먹보다 몇 배는 더 센 듯했는데도!
그렇게 별 타격은 없는 듯했지만, 쳐맞고 가만히 있을 파이로-칸은 아니었다.
두 마리가 동시에 암석 괴물의 일렁거리는 녹황색을 향해 제각각 손발을 휘둘렀다.
파이로-칸의 모습을 흉내 낸 암석 괴물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고, 넓고 큰 복부 한쪽도 완전히 사라져 파여 나간 꼴이 돼 버렸다. 마치 거대한 뭔가가 암석 괴물의 몸통 한쪽을 아삭 깨물어 사라지며 덤으로 머리통도 따간 듯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그런 파이로-칸의 아랫도리, 다리와 가랑이 사이로는 연두색 불꽃이 투명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크릉? 크뤄어어!
난데없이 공중으로 날려지듯, 파이로-칸 두 마리는 거꾸로 뒤집힌 채로 허공으로 치솟으며 뭔가에 매달린 꼴이 되었다. 그 꼴로 파이로-칸 두 마리가 서로의 몰골을 확인하며 잠시 허우적댈 때, 두 마리의 아랫도리를 휘감은 연두색 불꽃이 짙어지면서 녹황색의 조각들이 피어났다. 녹황색의 조각들은 계속 불꽃 속에서 부풀고 늘어나면서 아래쪽에 머리통과 몸통 한구석을 날려버린 암석 괴물 쪽으로 흐르듯이 형체를 이었다.
콰앙, 콰쾅!
어느새 거대한 두 손으로 파이로-칸 두 마리를 나눠진 암석 괴물이 바닥에 둘을 마구잡이로 패대기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암석 괴물은 이제 머리가 없이, 허리 위가 어깨로 되어 아주 굵고 긴 뱀처럼 보이는 두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 휘둘러지는 팔의 끝에는 시뻘겋게 불길을 휘감아가는 파이로-칸 두 마리가 매달린 채, 아직 살아남아 주변을 맴도는 붉은 그랑츄 무리를 찍어누르는 철퇴가 되고 말았다.
콰직, 콰쾅!
짓이겨지는 붉은 그랑츄 무리의 피와 살이 튀어 오르고 드러난 뼈가 그대로 부러진 채로 땅속으로 박혀버렸다. 그나마 두 팔을 올리고, 두 발을 굳건히 버틴 채로 뭔가 떨어져 내리는 파이로-칸을 온몸으로 버티려 하던 붉은 그랑츄가 핏덩이와 살점의 반죽이 되어 으스러졌다.
워어어!
암석 괴물의 두 팔 사이, 굵은 어깨 틈새가 동굴처럼 열리며 깊은 메아리를 토해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이제 네깟 놈들 다 죽여버린다는 듯한 몬스터의 위협이 가득 담긴 포효로만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붙들린 채로 휘둘리던 파이로-칸 두 마리를 자극했고, 상황이 엄청나게 위험해진 것을 붉은 그랑츄의 살아남은 무리에게 확실하게 전했다.
파이로-칸의 몸통이 보다 붉어졌고, 불길이 또렷해졌다.
살아남은 붉은 그랑츄 무리가 암석 괴물에게 등을 보이며 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투란에게는 너무나도 황당한 꼴이었다.
“도망도 칠 줄 알았어?”
죽어도 도망가지 않는 것, 그것이 그랑츄의 본성 아니던가!
죽어가면서도 상대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것, 그거야말로 품종과 관계없는 그랑츄의 기본적인 성질머리 아니던가!
한데 저 녹황색 암석 괴물이 연두색 불꽃을 뿜어내며 웅웅거리고 울어대니, 그랑츄도 도망을 친다!
투란으로서는 이게 뭔 상황인지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저 투명한 연두색 불꽃을 두른 녹황색의 암석 괴물이 몬스터의 본성조차도 갈아엎어 버리는 몬스터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워어억!
길고 굵은 채로 암석 괴물의 팔이 허공에 연두색 불꽃의 투명한 자취를 길게 흘리며 파이로-칸 한 마리를 내던졌다. 달아나는 붉은 그랑츄 무리를 향해 허공에서 뒤집어지며 구르다가, 결국 땅을 파내며 튕기고 구르는 꼴이 된 파이로-칸이 날아가 격돌했다.
바로 바위와 밀가루 반죽이 부딪친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콰쾅!
여전히 붙잡혀 있던 파이로-칸 한 마리는 다시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크워어!
시뻘건 불길이 연두색 불꽃을 잡아먹으면서 피어올랐다.
붙잡혀 있던 파이로-칸이 자신을 붙잡은 녹황색의 길고 굵은 손아귀를 두 팔로 끌어안으면서, 패대기쳐지는 상황에서 두 발로 땅을 찍고 버텨낸 모습이었다.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로 암석 괴물의 불꽃을 잡아먹고, 녹황색의 조각들을 녹여 없애겠다는 듯했다.
워어어!
메아리쳐지는 괴성과 함께, 버틸 듯이 보였던 파이로-칸이 높이 치솟아서…… 저편 거뭇한 언덕으로 날려졌다. 파이로-칸이 두 발을 박고 서 있던 자리가 통째로 파여 나가면서 날아가는 꼴이었다. 발판째로 엎어버리니, 파이로-칸도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듯이 보였다.
쿵, 쿵!
붉은 그랑츄를 뭉개면서 굴러간 파이로-칸이 몸을 추스른 듯, 발 구름 소리를 내며 다시 암석 괴물을 향해 뛰려 했다.
투란이 격진(激震)을 느낀 것은 거의 이 무렵이었다.
들판을, 이 초원과 굽이치는 언덕을 통째로 울리는 격렬한 땅울림은 결코 파이로-칸이나 저 암석 괴물이 원인이 아니었다. 아예 규모가 다른 거대한 땅 울림이었다.
‘마그마 로드!’
바로 투란의 눈길이 거뭇한 언덕 너머를 향했다.
거기서 치솟는 붉은 마그마의 줄기가 선명하게, 아련하게 투란의 눈동자에 비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