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허기…… 갈망…… ‘저것을 삼키자!’라고 포효하는 강렬하며 지독한 충동!
‘그런데…… 어떻게?’
몸에 성한 곳이 없잖은가?
간신히 꿰인 채로 대롱거리는 몰골이었고, 허리 아래는 너덜거린다는 막연한 느낌뿐으로 붙어 있기만 한 듯했다. 왼팔은 어깨가 꿰여 늘어진 것이 나뭇가지랑 엇갈리며 움직일 여지가 없었고, 오른팔은…… 손목이 조금 움직였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한 팔, 한 손으로 저 넝쿨을 잡아채 우걱우걱 씹어 삼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두 발로 늪을 걷어차고 뛰어올라 절벽으로 날아간다는 쪽이 더 그럴듯하다 싶을 정도로!
투란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가 뇌리를 태우고, 눈을 좀 더 크게 뜨게 했다.
‘저걸 잡아먹고 싶어! 저걸!’
그러면 몬스터 엠블럼이 휘둘러 대는 이 끔찍한 공허, 허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잖은가! 한데 그는 자살도 못 하고 그걸 잡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겨우 손목만 움직이는 팔은…… 신나게 움직여 뻗어도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젠장, 이리 와! 얼른 와! 널 삼켜 주겠어!’
투란은 볼이 시큰하고, 입술에서 신음이 새 나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이 어렴풋이 깨쳐지는 중이기도 했다.
제정신이라면 지금 자신의 처지와 터무니없는, 소리도 없는 이 외침을 스스로 비웃어 마땅할 텐데…….
그렇게 조그맣게 돌아오던 분별력도 꾸물거리는 넝쿨의 형상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온다! 오고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공허의 바닥에서 차올랐다.
내가 안 가는데, 저것이 와 주다니!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넝쿨은 나무를 타고 제 뿌리를 늪 아래에서 끌어당기고, 꾸준히 꾸물거리며 투란을 향해 기었다. 축 늘어진 작은 덩어리, 구근이 흐물대는 듯한 넝쿨의 본체가 늪에서 느릿하게 솟아나 나무에 걸쳐졌고 촉수처럼 내뻗은, 가시 돋은 넝쿨을 계속 투란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구근 덩어리는 처음 도착한 놈이었다.
투란이 놓인 주변 늪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출렁이는 늪의 파문을 타고 넝쿨이 뱀처럼 흐느적거리고, 축 늘어진 둥근 덩어리가 잠깐씩 늪의 표면으로 솟구쳤다가 가라앉으며 나무에 꿰인 투란을 향해 다가왔다.
늪의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진흙을 파고 먹잇감을 찾던 식물형 괴물 떼였다.
그 움직임은 모두 저 위에서 보기 드물게 맛있는, 싱싱한 살점이 떨어지며 핏방울을 늪에 골고루 뿌려 준 덕분이었다.
먼저 가는 놈이 먼저 먹는 것!
‘악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구근 덩어리 모양의 괴물 무리가 먹이를 향한 집념과 투철한 의지를 과격하게 드러내는 셈이었다.
이 식물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에게, 투란의 사정은 알 바 아니었다.
‘악마의 심장?’
차가운 이성이 투란의 들뜬 기분과 공허한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을 푹 찌르고 으깰 듯이 두들겨 팼다.
어깨가 망가졌어도 손가락이 움직이는 오른팔은 아직 제대로 당겨 올려지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꾸준히 꼬물거리고 애쓴 보람이 있는지, 투란은 팔을 ‘의지’로 당겨 올릴 수 있다고…… 뭔가 근거를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확신하는 중이었다.
광기가 가득한 확신 속에서 냉정한 생각을 하게 되자,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그 자신이 원하는 만큼 ‘천칭의 문장’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하필 악마의 심장이야…….’
느릿한 세상 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뻗어 내는 넝쿨의 움직임만은 유달리 선명하고 빠르게 느껴졌다. 세상이 정지한 속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차가워진 이성은 투란이 바라보는 악마의 심장, 그 주변에서 잔잔하게 물결치는 늪의 형상을 기억하게 했다. 덕분에 투란은 유달리 악마의 심장이 보이는 움직임에 자신이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새길 수 있었다.
그 되새김 속에서 오른손에 힘을 잔뜩 밀어 넣었고, 손끝에 묶여 있던 실이 늪의 흐름에 따라 팽팽해진 것을 뒤늦게 느꼈다.
‘아, 설마…… 끊어지지 않았어!’
샤벨투스의 이빨은 아직 실에 꿰인 채로 그의 손목에 매달려 있었다.
늪의 흐름에 따라 당겨졌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투란은 좀 더 손에 힘을 주고 손가락을 빙빙 돌려 실을 감았다.
넝쿨이 꾸물거리며 다가오고, 투란의 손가락은 거기 질 수 없다는 듯이 샤벨투스의 이빨을 당긴다.
이 경쟁에서는 결국 넝쿨이 이겼다.
자잘한 가시가 나무에 꿰여 늘어진 왼팔에 닿았고, 굵어지며 가속하듯이 살갗을 긁고 조였다. 그로 인해 살짝 흘러나온 몇 방울의 피는 덩굴줄기에 붉은 금을 그으면서 구근 덩어리를 향해 이어졌다.
늘어진 구근 덩어리가 부풀고, 붉은빛을 흘리는 맥동을 보였다.
‘저래서 심장이라 한다고 했지.’
투란은 그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봤고, 알아차렸다.
피를 마시면 심장처럼 맥동하는 몬스터.
그리 위험한 괴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투란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몬스터 로드가 아무리 하찮은 짓을 한다고 해도 삼킬 리가 없을 만큼!
시체를 파고들어 그 시체의 심장 자리를 차지한 채로 움직이지만, 그다지 위협적인 것은 아니고 그냥 묶어서 불 질러 버리면 끝장난다는 하찮은 것이 악마의 심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을 잡아먹겠다고 오는 것이 그 하찮은 괴물이었고, 그 괴물을 삼키려 하는 몬스터 로드는 투란이었다. 웬만하면 죽는 게 낫잖나 싶었는데, 죽더라도 저걸 잡아먹고 죽겠다는 충동이 더 강한, 기괴한 상태인.
‘아, 잡았다!’
어딘가 지루하게 관찰하고 손끝을 움직이던 끝에 투란은 손가락에 닿은 이빨을 느꼈다. 피를 잔뜩 먹었는지, 평소 손바닥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았던 놈이 꽤나 듬직한 무게감을 줬다. 어쩌면 손에 힘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투란은 ‘의지’를 어깨 너머로 보냈고, 손이 이빨을 꽉 쥐게 했다.
이빨이 파고드는 듯, 손바닥이 패는 느낌이 났다.
악마의 심장이 보내는 넝쿨은 본격적으로 왼팔을 휘감은 꼴이 되었고, 좀 더 힘차게 맥동하는 구근 덩어리는 보다 빠르게 나뭇가지를 타고 움직였다. 늪에서는 아직도 출렁이며 다가오는 덩굴줄기가 보였다.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놈도 있나?’
좀 더 차가워진 이성으로 투란은 생각했다.
허리 아래는 감각이 없었다.
제대로 느껴 보려 하니, 거의 가슴 아래로 아무 감각도 없었다.
그쪽에서 어떤 놈이 올라온다 해도 모를 듯했다.
확실한 것은, 어깨와 가슴 언저리에 닿은 놈이 없다는 점.
투란이 확인하려 하는 순간 손가락을 움직이는 ‘의지’가 문장을 두드리며 이상한 파문을 흘렸고, 그 파문의 반향이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 되어 상황을 깨닫게 한 결과였다.
이 깨우침은 투란에게 분명하게 알게 해 줬다.
오른팔도 정상적으로는 움직일 리가 없는 상태로 뼈가 깨지고 힘줄이 뒤틀렸다고!
‘하지만 움직이는데……?’
작은 혼란이 찾아왔지만, 투란은 알 수 있었다.
팔의 상태가 어떻든 문장이 일으키는 미묘한 파문이 손을 움직이게 해 줄 것임을, 비록 너무 상태가 나빠서 딱 한 번 정도겠지만!
꽈드득.
왼팔이 뒤틀려 꼬이는 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출렁이는 늪의 소음도 그 뒤를 이었다.
마치 막혀 있던 귀가 이제야 열린 듯…….
순간, 투란은 깨달았다.
‘아, 이것도!’
파문이 닿은 결과였다.
몬스터 엠블럼이 일으킨 이상한 파문, 정말로 물결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가 느끼기에 물결치듯 전해지는 메아리 같은 그 이상한 ‘의지’가 유일하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정말 미약해서, 팔을 한 번 휘두르는 순간에 모두 사라질 터였다.
그러면 그의 생명도 끝난다.
‘뭐야, 이거 무슨…… 오러 같은 건가?’
오러를 다루는, 제대로 된 오러 사인은 아니고 오러 마크를 사용하는 몬스터 헌터들이 주고받던 이야기가 투란의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솟아났다.
“팔다리의 힘을 전부 빼고 오러만으로 움직이는 거야. 꼭 무슨 요술쟁이가 하는 최면술이란 거에 걸린 것 같지. 한데 다른 게 뭔지 알아? 오러만으로 움직이는 팔다리가 힘을 잔뜩 주고 움직일 때보다 더 세다는 거야!”
오러를 다루고 휘두르는 자, 오러 윌더(Aura Wielder)에게 팔다리의 근육은 보조일 뿐이네 어쩌네 하면서 떠들던 이야기였다.
그 말을 한 작자도 제대로 된 오러 윌더는 아니었지만…….
‘몬스터의 문장이라는 게 급하면 오러도 쓰게 해 주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투란으로서는 그냥 그렇다고 믿어야 할 때였다.
단 한 번이라고 느껴지는 힘의 크기, 이는 자신이 죽어 가는 때문이라고!
투둑.
악마의 심장, 그 뻗어 낸 넝쿨의 본체라 할 것이 투란의 왼팔에 달라붙었다. 꾸준히 넝쿨을 뻗어 팔을 휘감으며 얼마 남지 않은 피를 쭉쭉 빨더니, 아주 기운차게 맥동하며 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어서 와.’
투란은 힘껏 눈을 뜨려 하면서, 오른손에 좀 더 힘을 밀어 넣으며 기다렸다.
악마의 심장은 꿰뚫은 나뭇가지를 무슨 울타리처럼 넘었고, 어깨에 도달해서 더 힘찬 붉은빛의 맥동을 보였다. 이제 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려고 힘을 비축하는 듯한 기세였다.
그래서 투란도 좀 더 힘을 비축하며, 더욱 차가워진 이성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먼저 자기 피를 몬스터에게 뿌린다고 했지.’
샤오콴 마을에는 몬스터의 잔해, 에센스가 남은 조각을 거래하는 사냥꾼들이 있었고 그들에게서 사들인 조각을 삼키는 몬스터 로드가 있었다.
일상을 통해 알게 된 지식, 몬스터 로드가 문장을 이용해 몬스터를 삼키는 과정이 투란의 마음속에서 냉철하게 검토되었다.
몬스터의 정수(精髓)에 먹이는 피는 손가락을 터서 내는 것이 아니었다.
문장이 토해 내는 핏방울이어야 했다.
그것을 몬스터의 정수에 뿌리고, 잠시 기다린다.
그러면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을 담은 피가 몬스터 에센스를 머금게 되고 뭉쳐진다. 그 뭉쳐진 조각을 다시 엠블럼에 갖다 대면 엠블럼이 좀 더 큰 핏덩이 같은 것을 토해 낸다. 그것을 몬스터의 정수에 붙여 놓으면 몬스터의 잔해가 투명해지면서 정수의 한 방울까지 모두 들이마신다. 마침내 그 단단해진 핏조각(?) 같은 것을 문장에 대면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삼키는 과정이 마무리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했지.’
몬스터를 완벽하게 제압했을 때나 쓸 수 있는 방법인데, 이미 잔해가 된 몬스터를 거래하는 투란에게는 익숙한, 자주 보던 방법이었다.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방법은 몬스터를 토막 내고, 그 에센스가 담긴 잔해를 먼저 엠블럼에 댄다고 했다. 그러면 바로 몬스터를 삼킬 수 있는 핏빛 조각이 나오고, 그것을 몬스터 코어에 들이대 에센스를 섭취하게 해서 삼킨다.
이 또한 짧든 길든 시간이 소모되는 방식이라, 나름대로 몬스터를 완전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완전히 완벽하게 제압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엠블럼이 에센스를 삼키는 과정,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몬스터 로드는 ‘변신’하지 못하니까. 그동안에는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역량만으로 버텨야 하는 때문이라고 했다.
엠블럼이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탓이라고, 삼킨 몬스터의 힘을 ‘사용’하거나 새로운 몬스터를 ‘섭취’하거나, 둘 중 한 가지만 해야 하는 탓이라고 했다.
투란은 있는 힘껏, 더 크게 눈을 뜨며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악마의 심장을 느끼려 애썼다. 지금 그가 하려는 방법은 대부분의 몬스터 로드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가장 위험한 짓거리였다.
몬스터 로드의 힘인 몬스터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 순수한 사람의 모습으로 날뛰는 몬스터의 코어, 에센스가 간직된 부분에 달라붙어 핏방울을 바르고 기다렸다 떼어 내 문장에 갖다 대다니…… 죽으려고 환장해서 저지르다가 죽을 짓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투란에게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악마의 심장처럼 하찮은 놈이기에 통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고, 저질러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조금만, 조금만 더…….’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넝쿨의 가시로 가슴의 살갗을 찢고 위쪽 갈비뼈를 건드리며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 기다렸다. 가슴 한복판, 양쪽 젖꼭지를 잇는 선보다 더 위이고, 목 줄기에서 바로 내려오는 선을 따라 갈비뼈의 최상단이라 할 부분에 자리 잡은 문장이 여리게 일으키는 파문, 투란의 ‘의지’가 가득 담긴 힘이 오른손에 집약되었다.
쥐어진 샤벨투스의 이빨은 좀 더 무거워지는 듯했다.
악마의 심장이 뻗은 덩굴줄기, 그 가닥이 투란의 심장을 만졌다.
그 순간, 투란은 손을 휘둘러 이빨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