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
투란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 느낀 감정은…….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일이었다.
정신이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도, 몽롱하다고 느낀 순간도 모두 이상하게 꼬여 있었다. 몸의 절반가량이 안팎으로 얼어붙은 상태였고, 그 때문에 겨우 두 팔만 움직였던 것이다. 심지어 머릿속도 반은 언 채였다.
머리를 적당히 맞으면 기절하고, 세게 맞으면 며칠 동안을 기억 못하거나 아예 몇 년간을 기억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잖던가?
한데 투란은 머리가 반이 언 채로 여태 자신이 똑바로 생각하고, 선명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다 여긴 것이었다!
‘미쳤나?’
미친놈은 자신이 멀쩡하다 여긴다는 말을 떠올린 투란은 잠시 동안 자신이 자기 상태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멀쩡한 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결국 얼어붙은 몸과 머리가 풀리면서 하는 것이다.
몸을 묶은 얼음의 속박이 풀리며 맺힌 이슬은 여전히 살갗을 통해 투란의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악마의 심장이 만들어 낸 줄기를 따르면서 미약하나마 양분이 되어 주었다.
그제야 투란은 자신이 진짜 뭔가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어붙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수의 중심에 웅크리고 도사린 채로 황금의 햇살에 대항하는 저 안개 녀석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체력을 너무 소모했던 것이다.
하지만 드러누워서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닥 못하는 꼴로 이 돌투성이의 차가운 호숫가에서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 것인가?
몸에 지닌 것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아, 품에 든 것!’
돌연 투란은 생각해 냈다.
상체를 감싼 가죽옷의 틈새에 만약을 대비한 ‘밀포’를 채워 넣는 것, 그건 몬스터 헌터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었다. 샤오콴 마을을 지나는 몬스터 헌터가 가장 먼저 마을에서 찾는 것이 밀포, 말 그대로 밀로 만든 포였다.
투란도 그 흉내를 내서, 배를 감싼 가죽 복대에 주머니를 만들어 밀포를 넣어 뒀다. 혹여 홀로 길을 잃거나 해도 며칠은 버틸 수 있도록.
겨우 떠오른 밀포를 찾기 위해 왼손이 배 언저리를 더듬었다.
두어 번 손이 엉뚱한 곳을 허우적거리다가 맨살에 닿았다.
옷자락이 상당 부분 뜯겨 나간 것이 뒤늦게 기억났다.
절벽에서 구르면서 여기저기 찢길 때, 밀포를 채워 넣은 주머니도 같이 뜯겨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주머니의 바탕이 된 복대의 너덜거리는 가죽 조각뿐이었다.
허탈함에 투란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왼손은 멋대로 또 허우적대다가 옆으로 툭 놓였다.
기분이 언짢은 탓인지, 손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가 해서 어이없어하며 투란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따스함을 쏘아 내는 황금빛, 눈이 부셔 눈길을 돌릴 필요는 없었다. 뭔가 눈동자에 덧씌워져 시각을 지켜 주고 있었다.
‘어, 이게 이렇게 햇빛 가리기도 하네.’
서리가 눈가를 덮었을 때랑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눈동자가 지나친 빛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이 투란에게 금세 인식되었다. 거기에 넝쿨 실 가닥이 끼어들면서 사람의 눈으로는 할 수 없는 일, 투명해서 감았다 떴다 할 필요가 없는 눈꺼풀까지 덧씌워졌다. 이 새로운 눈꺼풀이 눈동자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걸러 준 것이다.
그 덕분에 투란은 하늘에 해가 여러 개 떠서 겹쳐진 꼴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한 곳이야, 해가 여러…… 엉?’
눈이 저절로 부릅떠졌다.
어째서 여태 저 광경이 황당한 것임을 몰랐을까!
하늘에 해가 크고 작은 몇 개의 공처럼 둥실거리며 떠 있다니!
황금의 공들이 빛을 뿜어내며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저것이 이상한 줄 모르고, 여태 눈 말똥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니!
‘도대체 왜…… 어? 필요하다……?’
투란은 돌연 마음속에 떠오른 기이한 지식을 알아차렸다.
빛과 물, 적당한 양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투란을 지켜 줄 요소들이었다.
특히나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움 속에서, 저 황금 공들—설마 태양이 여럿일까?—이 뿌리는 햇살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몸속에는 빛이 닿지 않잖아? 아! 그래, 몸속의 줄기는 몸속의 요소에 맞는 성질로 키웠지. 그러니까 눈동자랑 머리로 뻗은 줄기처럼 빛을 많이 받아들이지는 못해. 아니, 그러면 일단 모두 눈동자의 줄기로 하면 되잖아? 안 해 봤던 것도 아니고…… 어, 잠깐!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떠오르는 생각 속을 헤매다가 투란은 흠칫 놀랐다.
혼잣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향해 이런저런 제안과 지식을 내놓고 그에 대해 스스로 검토하고 답한다?
물론 뭔가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은 자신이 거의 하나이면서 둘로 갈라진, 완전한 대립 영역을 건너다니며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혼잣말처럼 나불거리지만 사실은 자신이 남처럼 듣고 대답할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대화를 하는 셈이었다.
뭐가 이런 기묘한 상태를 만드는가?
‘악마의 심장!’
새로 만들어진 악마의 심장이 절반 정도 얼어붙은 채로 가슴속에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의 정신을 일깨우고, 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알려 주면서!
그것은 이전처럼 둘로 나뉜 의식이 아니었다.
투란의 본래 의식 속에 겹쳐지면서,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감각을 대신해 상황 파악을 돕고 생각의 결론을 맺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목표, 목적은 너무나도 선명한 투란의 생존!
‘몸을 녹여야 해, 제대로 정신 차리려면!’
투란은 분명하게 깨달았다.
꿈을 꾸고 있을 때가 아니고 지난 일을 더듬으며 궁금해할 때도 아니었다.
정신 못 차리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실마리를 꺼내기 위해 꿈을 꾸어도 되고, 지난 일을 더듬기도 해서 어떻게든 제대로 된 의지를 발휘할 정도까지는 정신 상태를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현재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정신이 깨어났다면, 파악한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답을 꺼내야 했다.
‘그렇군, 알겠어. 이건 몬스터인 악마의 심장이라면 하지 않을 짓이라 이거네.’
몬스터의 본능에 충실한 악마의 심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무리해서 투란의 의식을 일깨우고, 정신 차리게 자극할 리가 없었다. 저 얼어붙은 상태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일단 투란의 몸을 먹어 치우고, 구근 덩어리 형태만을 완벽하게 보존해서 이 얼음이 뭔가에 의해 풀릴 때까지 버티며 기다렸을 것이다.
몇 년 혹은 몇십 년이든!
사람의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 형성해 낸 악마의 심장, 눈동자에서 태어나 가슴으로 스며들어 두 번째로 투란의 심장을 차지한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이 녀석은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버텼으며, 나름대로 답을 찾아 열심히 움직였다. 얼음 속에 갇힌 채 누가 구해 주길 기다리거나 그저 상황이 풀리길 기대하는 답답한 놈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 결과, 절반이 얼어붙은 채로도 투란은 정신을 차리는 중이었고!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로서는 가능하지만 그냥 악마의 심장이 지닌 본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군.’
투란은 깨달았다.
악마의 심장, 새것이나 헌것이나 몬스터의 본능에 속박되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눈동자에서 키운 투명한 줄기, 이것은 몬스터 로드인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본능에 따라 심장을 먹고, 몸에 덩굴줄기를 퍼뜨려 그 씨앗을 찾아 획득하려 하는 악마의 심장은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심장은 투란의 의식을 보다 투란답게 활용해서 몬스터 로드로서의 결론을 내놓은 셈이다. 이 난관을 풀어낼 빛과 물을 투란이 더 적극적으로 획득하기를 바라면서.
‘응, 그러지.’
투란은 하늘에 뜬 여러 개의 태양—이제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따질 필요가 없는 따스함을 뿌리는 광원—에 눈길을 고정했다. 사람의 맨눈이었다면 그대로 멀어 버렸을 것이 분명한 과격한 빛을 쏟아 내지만, 투명한 덩굴줄기가 자아내는 섬세한 실그물에는 아주 좋은 열원(熱源)이었다.
눈동자를 덮고, 눈꺼풀 안쪽을 넘어 얼굴의 살갗까지 밀어 올리는 힘줄처럼 또렷하게 넝쿨이 뻗어 나갔다. 이렇게 뻗은 투명한 넝쿨은 빛을 담아 옮기는 대롱이 되었다.
얼마 뒤, 투란은 머리를 억누르던 차가움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와 함께 생각이 좀 더 선명해졌고, 보다 분명하게 몸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잘도 살아 있었네.’
사람이 얼어붙어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를 확실히 넘었다.
몸속은 꽁꽁 얼어 거의 산산조각 난 것처럼 망가진 곳도 있었다.
거기에 악마의 심장, 두 번째 녀석이 뻗어 놓은 줄기가 그물질하듯이 번져서 간신히 원래 형태로 맞추고, 지켰다. 본래의 기억을 간직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투란에게 소중한 형상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억?’
새로운 생각이 투란을 자극했다.
왼팔처럼 몸을 재생시키는 경우 사라지는 것, 기억이 없는 새 몸…….
‘어? 무슨…… 뜻이지?’
잠깐 왼손을 꼬물거려 상태를 살피고서 투란은 바로 답을 얻었다.
새로운 왼팔은 실뜨기를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 헌터들이 기본적으로 칼잡이 기술과 함께 익힌다는 실뜨기 기술, 샤오콴 마을에서 애들이 심심할 때 종종 놀이로 몸에 익히는 손재주, 실뜨기의 동작을 아주 낯설어하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듯!
‘아, 그렇구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새 손이야!’
새로운 지식과 함께 오싹한 느낌이 찾아왔다.
첫 번째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머리에서도 본래 형상을 키울 수 있는 씨앗을 채취했다. 만약의 경우, 투란의 머리조차도 시간과 양분만 충분하다면 재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한데 그렇게 새로 생긴 머리가 과연 제대로 된 머리일까?
머리를 세게 맞은 사람, 머리에 구멍이 났지만 어떻게 살아남았던 사람 등등…… 투란은 이른바 대가리가 어찌 된 탓에 제정신이 아닌 작자들을 여럿 봤다.
실뜨기 기술도 손에서 사라질 지경이라면, 새로 튀어나온 머리는 대체 얼마나 빈 상태일 것인가?
‘젠장, 완전 재생이라고 하더니 골 빈 놈을 만들 작정이었나!’
투란은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묘하게 반발하는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뭔지 어설펐고, 뭔지 언짢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설픔은 곧 다듬어지고, 언짢음은 냉정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주 간단한 물음이 그 결과로 튀어나왔다.
‘내 탓?’
순간 격한 분노가 투란의 마음을 채웠다.
어째서 그게 자신의 탓이란 말인가!
악마의 심장은 몬스터로서의 자기만을 유지하려고 몬스터 로드인 투란, 사람인 투란을 내팽개치려고 하잖았던가!
투란의 피와 살로 이뤄진 녀석이 투란을 배신한 셈이었다!
온몸에 퍼져 있던 제 줄기마저 끊어 버리고, 투란을 아예 방벽 삼으려 했던 배신이 아닌가?
‘그게 내 탓이야?’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느꼈지만, 투란은 자신을 향해 보다 냉정하게 물음을 던질 수가 있었다. 이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아주 괴상한 느낌이었다. 이것도 악마의 심장이 본능으로 저지르는 수작일까?
‘아니다.’
투란은 스스로가 내리는 냉정한 결과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에서 뻗어 나온 투명한 줄기를 통해 얻은 빛으로, 얼어붙은 심장이 서서히 녹아 겨우 다시 심장답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시원(始原)을 둔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염원에 착실하게 호응했던 것이다.
‘처음 녀석도 내 염원에 호응하긴 했지.’
뭔가 마음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떠올렸다. 자신을 배신한 녀석, 자신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녀석, 증오를 통해 새로운 악마의 심장으로 삼킨 녀석이 무엇을 품고 왜 그랬는가에 대해 투란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악마의 심장이 첫 번째를 삼키면서 그 기억을, 거기 담긴 의식을 고스란히 삼킨 덕분이었다.
‘나는…… 빈 문장을 채우고, 살아남기만을 바랐어.’
처음 그의 몸에서 태어난, ‘천칭의 문장’의 힘으로 만들어진 악마의 심장은 거기에 호응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를 제물로 바치려 들면서까지!
‘텅 빈 꼴로라도 살려고 했다는 건가?’
몬스터 로드가 생성해 낸 몬스터는 로드의 염원에 호응한다.
결국 투란이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고 첫 번째 악마의 심장은 오롯하게 거기에 응했을 뿐이다.
‘자격이 없는 건…… 나였나.’
자신이 생성시켜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딴 녀석을 시켜서 삼켰다.
두 번째 악마의 심장은 첫 번째를 삼키며 명확하게 그 상태를 파악하고 투란의 의식에 남겨 뒀다. 투란이 분노를 억누르고 증오를 접으면서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듯, 그 냉정함이 투란 자신을 위한다는 듯!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를 품은 왕이 되어야 한다…… 누가 그랬더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투란은 아주 냉정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배고픔, 몸이 양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