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0)
쿠르릉, 쿠릉!
격진의 규모는 파이로-칸이나 암석 괴물이 일으키는 것과 질적으로 큰 차이가 났다.
아프게 귀를 울리는 괴성이 들려오거나, 땅을 아련하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땅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패대기칠 듯한 압도적인 위력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꽤나 화난 모양이네? 아니면 궁금한 건가?’
투란은 일어나는 대신에 엎드리면서 생각했다.
저쪽에 높이 치솟은 마그마의 줄기, 흡사 무슨 바늘처럼 치솟은 붉은 용암 속에서 검은 조각이 나타나고 있었다. 검은 조각이 붉은 용암의 이글거리는 바늘 모양 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는 곧바로 그 중심이 갈라지며 붉고 둥근 용암 덩어리가 눈알처럼 튀어나왔다.
‘궁금증인가.’
데굴거리며 굴리고 있는 붉은빛의 눈알, 멀리 솟은 바늘 줄기 속의 상태를 바라보며 투란은 생각을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었다.
마그마 로드는 자기 영역 주변에서 툭탁대는 녀석들에 대해 지금 아주 궁금해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던지는 것이다. 뭔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듯…… 그리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움직인다?
휘우워어!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저 너머 용암줄기에서부터 싸우는 녀석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헐?’
시커먼 바위가 가늘고 긴 바늘…… 일단 보이는 것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파이로-칸도 단숨에 꿰어 늘어뜨릴 정도의 거대한 창처럼 생긴 가닥이었다. 언덕 너머에서 느닷없이 치솟은 용암 줄기가 가지 쳤고 떨어져 나와 날아든 것이다. 그 우악스럽고 겁나는 창에 대응해서, 파이로-칸과 암석 괴물이 동시에 움직였다.
피하고 또 피하고…….
‘피할 줄 아네?’
지켜보던 투란은 저것들도 저럴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어이없는 기분을 마음껏 품을 수가 있었다. 잠깐 네가 패봐야 별일 있겠냐는 듯이 피할 줄 모르면서 서로를 마구 잡으며 두들기던 녀석들이 막상 시커먼 바위가 거대한 바늘처럼 날아들자 피하고 있다!
콰아앙!
투란에게서 한 사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시커먼 바늘 바위가 내리꽂혔다.
갑작스럽데, 엉뚱하게 날아든 화살 한 발처럼!
땅이 꺼지며 파여 들어갔고, 투란은 엎드린 채 손발로 땅을 움켜쥐면서 버텼다.
구덩이는 지름이 몇십 미터는 될 듯했고 불과 몇 미터 앞까지 땅이 기울어지며 파여 들어갔다.
‘피, 피하긴 피해야 하네.’
파이로-칸이나 암석 괴물이 피하는 것을 어이없어하거나 탓하던 기분이 투란의 마음에서 싹 빠져나갔다.
거리가 있어서 바늘처럼 삐죽하다고 보이던 것이 제법 가까운 곳에서 내리꽂히는 꼴을 보니, 그냥 절벽이나 산 한 조각을 떼어온 듯한 기둥이잖은가! 이쯤 되고 보니 마그마 로드가 저 녀석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낀다기보다는 시끄럽다고 그냥 뒈지라고 투덜거리는 거란 생각이 더 짙게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이 상황의 결말은 금방 찾아왔다.
두 마리 파이로-칸도, 녹황색의 암석 괴물도 연이어 날아드는 기둥 같은 바위 바늘을 놓고서는 더 싸우지도 못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없다는 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인 것처럼 흩어져 달아난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싹 잊은 것처럼!
투란은 땅에 달라붙은 얼룩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뭔가 시끄럽던 것들이 사라지고 조용하게 된 들판, 남은 것이라고는 그냥 죽어나간 채로 피할 겨를도 없던 것들이라든가 달아나던 파이로-칸이나 암석 괴물에게 밟히고 채여 죽은 붉은 그랑츄의 잔해였다. 그리고 그을리고 뭉개진 잡초, 돌 조각…….
기둥처럼 내리꽂힌 바위 바늘은 상당히 깊이 땅속으로 스며들은 채였고, 얼핏 보면 5, 60센티미터의 뾰족한 바위가 묘하게 흩어진 채로 땅에서 삐죽거리고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넓고 깊게 구덩이를 파면서 심어놓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거뭇한 언덕 너머에서 높이 치솟았던 용암줄기, 검은 바위 속에서 데굴거리던 붉은빛 덩어리가 사라졌다. 마치 저 건너의 마그마 로드가 이쪽에 흥미를 잃고 눈을 감은 듯했고, 곧 용암줄기도 아래로 가라앉듯이 사라졌다.
고요한 풍경이 잠시 이어졌고, 투란은 그 고요한 풍경을 잠시 엎어진 채로 구경하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흠칫했다.
‘이거…… 설마 날 노린 것은 아니겠지?’
가만 보니 이쪽으로 날아든 바늘 기둥은 달랑 하나뿐이었고, 저쪽에 떨어진 것들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굳이 이쪽으로 날아들 이유가 없는 하나가 이리로 날아왔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것이다. 괜한 망상일지는 몰라도, 뭔가 좀 더 몸조심하고 싶어지고, 그래야 한다는 기분이 세게 투란의 가슴으로 스며왔다.
그 조심스러운 기분으로 투란은 먼저 구덩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의 대부분 파묻힌 채로 끄트머리만 살짝 나온 검은 바위…… 기둥 같은 바늘은 몬스터의 본체에서 갈려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몬스터의 정수가 깃들여져 있을까, 없을까.
생각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다가간 뒤, 투란은 살짝 손을 대며 감정(鑑定)했다.
“오버시어, 디텍션.”
돌이었다.
품종 분류는 화산암(火山巖), 그중에서도 비정상적인 강도(剛度)를 지닌 블랙스톤, 흑암(黑巖)이라고 했다. 세공(細工)이나 형태를 잡기 힘들기는 하지만, 가공할 방법을 지닌 장인들에게는 꽤나 좋은 대접을 받는 소재라고.
감정 주문 속에 담긴 암석류의 지식은 투란을 실망시켰다.
보통 이런 감정 주문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이것이 보석이거나 아직 발견된 적이 없는 미지(未知)의 원소를 포함한 무엇이기를 바랐다가 실망했겠지만, 투란은 이 흑암 속에 몬스터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에 실망했다!
‘하여간 묘한 놈이네. 블랙 애시의 흔적도 없다니…….’
소리 없이 투덜거리는 했지만 투란은 아직 자신에게 얻을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바로 저 난투극의 결말에서 얻을 것이!
“그랩, 드랙.”
붙잡고 당긴다…… 아케인 포스를 사용하는 기초적인 방법이고 키워드라든가 복잡하게 주문을 노래하듯 오래 외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스펠본드를 이용한 방식은 마력이 조금 더 소모되기 때문에 투란은 붉은 그랑츄의 잔해를 끌어모으며, 주변이 안전한 지금은 키워드를 사용했다.
‘알뜰해야지.’
파이로-칸이 되기 위해서 모여들었다가 박살나 버린 붉은 그랑츄……. 나중에 쏟아져 내린 바위바늘 기둥에 흔적도 없이 날려가고 으스러지기도 했지만, 흩어진 잔해를 모아놓고 보니 그래도 몇 마리는 될 듯했다.
투란은 그 몇 마리 분의 잔해를 부위별로 분류했고 완전한 한 마리의 형상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땅을 울리는 충격파의 위력 탓인지, 혹은 투란이 꽤 서둘러 온 탓이든가 붉은 그랑츄가 제법 격이 있는 몬스터이든가 시체지네의 꿈틀거림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메자이, 캐빈.”
그래도 투란은 바닥을 다지고 벽을 세우며, 튼튼한 벽돌을 짜넣은 듯한 흙집을 끌어 올렸다. 붉은 그랑츄의 잔해가 지하실을 채웠고, 마법의 빛이 벽의 모서리와 꼭지에 매달렸다. 올린 흙집의 주변이 꽤 고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투란은 주문 하나를 더했다.
“프로텍터.”
벽의 단단함, 견고함이 더 심해졌다.
원래는 몸에 걸친 것, 갑옷이라든가 방패를 중심으로 하는 주문이라고 했지만, 망령은 배틀 그림모어를 통해 이런 흙집 쉼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혀놨다. 이럴 경우에는 외부에서 쉼터 안쪽을 감지할 수 없게 방어하는 효과도 발휘된다고 했으니, 투란이 이 주문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투란이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자, 작은 금빛얼룩처럼 황금매의 문장이 가슴에서 선명해졌다. 이제 붉은 그랑츄의 정수를 삼키면 되었다.
‘엄청 요란 떨었군.’
마법의 쉼터, 방어주문, 그래도 혹시 벽을 뚫고 들어올 놈이 바로 눈치채지 못할 지하실, 몬스터 에센스를 삼키기 위해서 이런 준비를 했던 적이 없던 투란에게는 뭔가 새삼스럽게 기분이 묘하기는 했다.
‘처음도 아닌데…….’
히엔나의 경우에는 엉겁결에 상황에 따라 지하실을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붉은 그랑츄 무리라든가 파이로-칸이 되돌아올 때, 혹은 저 녹황색의 암석 괴물까지 고려해서 안전책을 다 갖춘 것이다.
하고 나니 뭔가 괜히 유난 떨면서 소동 피운 듯한 기분이 된 것뿐이고.
‘익숙해져야지.’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고, 붉은 그랑츄의 살점을 떼어 가슴에 댔다.
“음.”
가능한 한 빠르게, 가능한 한 많이!
그렇게 애쓴 투란의 몬스터 삼키기의 결과, 붉은 그랑츄의 잔해는 이제 투명한 티끌이 되어 바닥에 부서져 내리듯이 흩어지고 있었다. 잘 모아놓고 정리한 덕분인지, 한 번에 지하실을 가득 메운 황금빛의 흐름이 깔끔하게 그랑츄의 에센스를 휘어잡아 삼킨 결과였다.
뽀드득.
한 손에 엄지가 크게 둘 달린 듯한 손의 형상, 발가락도 엄지가 둘 달린 듯한 모양을 꼼지락거리면서 투란은 그랑츄의 감각을 더듬었다. 단단하고 억센 힘이 팔다리에 가득한 느낌이 히엔나와는 꽤 다르다. 마치 불꽃이 이글이글하는 것처럼, 팔다리에서 어디론가 뿜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힘은 갇혀 있는 상태처럼 느껴졌고 폭발하고 싶어 하는 충동을 지닌 듯했다.
‘과연…… 터지고 싶어서 그리 달려들고 있었나.’
투란은 이 충동이 붉은 그랑츄가 카프리곤이나 녹황색 암석 괴물, 혹은 자신들 중에 나타난 파이로-칸을 향해서조차 겁 없이 달려드는 원인이 아닌가 잠깐 추측해봤다. 이 정도 충동이라면 정말 앞에 뭐가 있든지 일단 덤벼들고 보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곧 투란의 뇌리에는 열심히 도망가던 파이로-칸, 암석 괴물…… 그 앞에서 먼저 암석 괴물의 이상한 메아리 같던 포효에 달아났던 붉은 그랑츄의 모습이 떠오르고도 있었다.
이런 충동이 강하더라도, 역시 피해야 할 상황은 있다는 것!
붉은 그랑츄가 목숨을 걸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이 명백하게 있으며, 붉은 그랑츄는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다. 결코 이 충동에 완전히 자신을 떠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투란도 분별해야 했다.
“그러면, 뜨거운 놈 만나러 가 볼까.”
용암의 호수를 떠올리는 순간, 붉은 그랑츄의 몸 안을 맴도는 충동이 헐떡거리며 재촉하는 듯한 느낌이 선명해졌다. 등이라도 떠미는 듯한 그 충동에 투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판단이 먼저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저기 좋은 것이 있나 봐, 하고 충동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니까.
문득 지하실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을 확인하며, 머리 위로 살짝 지하실의 천장이 닿을락 말락 한 것을 느끼며 투란은…… 프로텍터의 마법부터 해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끙.”
요란스럽게 대비를 했기 때문에 나가는 것도 좀 거쳐야 할 단계가 생긴 셈이었다.
어쨌든 투란은 지하실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만들고, 지하실 입구를 뚫은 다음…… 꽉 막힌 상자 같은 흙집 한쪽 벽에 둥글게 문을 뚫었다.
어느덧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던 듯한 시원한 바람이 흙집 안에 궁금하다는 듯이 밀려들었고, 투란은 이 새로운 쉼터를 나서서 거뭇한 언덕을 향해…… 씩씩하게 붉은 그랑츄의 발을 내디뎠다.
검은 돌바닥으로 용암의 열기가 스며온 탓인가, 혹은 붉은 그랑츄의 살갗이 게걸스럽게 주변의 열기를 삼키며 달아올랐던가…… 어느 쪽이든 투란은 발바닥이 후끈거리는 감각 속으로 열기가 스며오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가 있었다.
붉은 그랑츄, 그 이름에 걸맞은 붉은 살갗에서 거뭇하게 돋아 있던 잔털조차 달아오른 것처럼 붉은빛을 띠어 가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새 투란의 머리카락도 붉어졌고, 맨살이 드러난 손등과 발등으로도 붉은 잔털이 가죽을 태우듯이 살랑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두텁고 질기게, ‘소일 아머’를 없앤 상태에서도 그랑츄의 굵어진 하체를 감고 버티고 있는 그림모스의 가죽이 꽤나 이질적인 듯 보이기도 했다.
‘점점 몸이 강해지는 건가? 뜨거울수록 힘이 늘어나는 것 같잖아.’
열기에 저항하기 위해 주문을 쓰기보다는, 열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낸 것은 그럭저럭 정답인 모양이었다. 붉은 그랑츄의 형상은 주변의 열기에 땀을 흘리기보다는 몸을 부풀리면서 팔다리의 힘이 더욱 팽팽하고 단단해지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잿빛바위 그랑츄라도 후려쳐서 짓이겨놓을 듯한 기분이었다. 그 살갗은 찢어놓지 못해도, 그냥 뼈와 살을 반죽처럼 뭉갤 수 있을 듯한 느낌이라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겁게 다가오는 열기가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검은 재가 짙게 휘날리는 곳을 찾아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투란은 주변을 돌아보며, 뭔가 자신을 쫓거나 엿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거참, 이상하네. 신경이 왜 이리 예민해졌지?’
아무래도 누군가, 절대로 마그마 로드는 아닌 뭔가가 어디에 숨어서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화아아!
검은 재가 얼굴에 와닿았고, 붉게 물들며 작은 불길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투란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붉은 그랑츄의 살갗이 화끈하면서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 얼굴에 화상(火傷)으로 물집이 돋을 판이었다!
‘아, 뭐야 갑자기…….’
잠깐 딴생각하는 사이에 투란은 발가락을 덮고, 발목까지 살랑거리는 검은 재의 구덩이에 도달해 있었다.
몬스터 블랙 애시의 웅덩이에 마침내 다다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