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1)
Chapter 41. 용암의 왕
“에어 넷(Air Net).”
짧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고, 내뱉어진 키워드에 따라 마법의 바람이 살랑거리며 검은 재의 웅덩이를 덮고 감싸며 부드럽게 흘렀다. 바람의 장막이 흔들거리며 빗자루처럼 검은 재를 모아 웅덩이에 담고 가두는 것처럼 보였다.
투란이 느릿하게 바람의 그물이 장막처럼 일렁이는 경계에 발을 디뎠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용암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열기가 가득 담긴 바람이 숨결과 함께 붉은 그랑츄의 속으로 스며오는 듯했고, 붉은빛이 털끝마다 반짝거리면서 힘이 되어 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불에서 힘을 얻는다.’
붉은 그랑츄가 지닌 성질을 신기해하면서도, 투란은 검은 재를 주시하며 관찰했다. 검은 재는 느리고 부드러운 바람의 그물 속에서 아직 불티를 튕기면서 불꽃이 될 듯한 낌새가 없었다.
‘에어 넷’의 주문이 투란의 기대 이상으로 적절하게 조절이 되며 제어된 결과였다.
‘좋아, 다음.’
투란은 좀 더 정신을 가다듬었고, 바람의 그물을 마음으로 당기며 다스렸다.
원래 ‘에어 넷’의 주문은 아케인 포스, 마력을 기반으로 ‘에어 도메인(Air Domain)’이라고 마법사들이 일컫는 바람의 영역에 간섭하는 목적을 지녔다. 주문이 그 기본적인 형태를 드러내면 그물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때문에 ‘에어 넷’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배틀 그림모어에 담긴 주문의 응용, 활용법은…….
‘몸을 감싸고, 차단한다.’
주변 환경이 해로울 경우, 이곳처럼 용암의 열기가 어지간한 사람의 살갗을 금세 익혀버릴 듯한 곳에서는 몸을 보호하는 목적으로도 쓸 수 있었다.
바람결이 몸을 차곡차곡 감싸며 용암 호수에서 잔뜩 흘러나오는 열기에 붉은 그랑츄의 몸통이 반응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투란은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해체했다. 그리고 집중한 채, 새로운 주문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불러낸다.
‘소일, 월(Wall).’
아케인 포스가 주문의 형태, 속성에 따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번져 나갔다.
뜨거운 열기, 검은 재가 아니면 바위이거나 달아오른 흙먼지만으로 가득한 주변을 휘젓고 헤집어댄 결과 ‘에어 넷’을 틀 삼아 옅은 흙빛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흙빛은 조금씩 짙어지다가 결국 바람의 그물을 채우는 벽을 이뤄냈다.
나무에 매달린 벌집이 내리꽂혀 반쯤 뭉개진 것처럼, 흙벽은 절반이 깨진 알의 모양으로 웅덩이를 덮었다. 그 한쪽에서 잔뜩 그늘진 구석 자리를 차지한 채로 투란은 검은 재의 변화를 살폈다.
바람이 불고, 흙이 벽을 만들어냈지만 검은 재는 불티를 일으키지 않았다.
가늘게 흘러내린 흙이 티끌처럼 검은 재의 틈새를 헤집고 들어가 바닥을 차지하는 와중에도 불티는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재는 느릿한 바람의 그물 속에서, 벽이 세워지고 바닥에 새로운 흙 융단이 깔리는 상황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프로텍터의 주문이 나직한 읊조림 속에 실행되었다.
여전히 검은 재는 반응하지 않았다.
투란은 살짝 안도하면서도, 두 손을 가슴으로 당겨 올리며 긴장했다.
가슴에서 황금빛 무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매의 머리와 교차된 날개의 형태를 드러냈고, 등 쪽에서는 날개뼈가 왜 날개뼈인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황금빛 깃의 무늬가 번져가며 날개의 윤곽을 갖췄다. 덩달아 투란이 가슴 가까이 들어 올린 두 손바닥에는 매의 발톱 형상이 황금빛 무늬로 드러났다.
‘폭, 넓이…….’
4미터의 폭과 5미터는 될 듯한 흙벽 안쪽의 길이, 그 넓이를 한 번 더 확인하며 투란은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보호하는 바람의 그물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황금빛 발톱의 무늬가 손바닥에서 일렁거리는 그대로!
전설에 이르기를 드래곤 로드 그림 투아란은 강대한 드래곤의 힘으로 몬스터를 위압(威壓)해서 산 채로 그 심장을 뜯어내 삼켰다고 했다.
배틀 그림모어에는 황금매의 문장을 먼 옛날 드래곤 로드 그림 투아란의 전설을 재현하는 것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황금매의 문장에는 드래곤의 힘을 대신하는 마법의 힘이 있고, 이 힘이 확장되고 증폭되는 수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몬스터는 활동하는 상태에서도 그 에센스를 갈취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림 투아란의 전설처럼!
그 방법이란…….
거창한 이야기였지만, 투란에게는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인 기록이었다.
어차피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삼키려면 덫으로 잡든가, 무기를 동원하든가 몬스터를 제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황금매의 문장은 그런 덫이나 무기를 마법으로 대체하는 것뿐이었고, 마구 날뛰는 몬스터를 속박하는 수단이 조금 더 세련된 마법일 뿐이었다.
물론 마법과 담을 쌓은 채인 몬스터 로드라면 이런 이야기가 정말 달콤하고 굉장한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망가뜨린다는 몬스터 로드가 마법으로 몬스터를 제압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투란으로서는 이런 황금매의 문장이 아닌, 원래 자신이 지녔던 천칭의 문장 쪽이 훨씬 더 나을 뿐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그리워질 정도로!
‘정신 차리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투란은 황금매의 문장, 지금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하며 손짓했다.
손바닥에서 황금빛 무늬, 발톱의 형상이 꿈틀거리다가 툭 튀어나왔다.
황금빛 발톱은 검은 재 사이로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투란의 가슴에서 황금매의 머리가 눈을 뜨고 부리를 열었다.
투란은 가슴에서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아케인 포스의 흐름을 타고 저편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렇게 흘러가서 블랙 애시, 검은 재의 정수에 닿았다!
‘된다!’
몬스터의 피를 이용해 문장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이용해 깨우고 몬스터의 에센스에 접촉하게 하는 것, 바로 황금매의 문장이 지닌 특성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몬스터를 파괴, 혹은 완벽하게 제압해서 정지시켜놓은 채가 아닌 활동 중인 상태에서 마력을 직접 사용하는 방법!
당연히 위험한 수단이었고, 삼키는 과정에서 몬스터가 마법을 느끼고 날뛰기 시작한다면, 무서운 상황을 겪게 되고 아주 끔찍한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몬스터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꼼짝 못 하게 제압한 다음에 쓰는 것이 그럭저럭 안전한 길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에게는 황금매의 문장이 지닌 매력(魅力)이 상당히 뚱하니 다가온 것이고!
히엔나라든가 그랑츄를 상대할 때는 굳이 그런 특성을 활용할 필요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안전한 메자이 캐빈을 짓고 그 안에서 히엔나든 그랑츄든 그 잔해를 만지작거리며 삼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삼키려 하는 블랙 애시, 이 녀석은 히엔나라든가 그랑츄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놈이었다.
뭔가 건드리는가 싶으면 불티를 휘날리며 폭발, 자멸하는 몬스터.
때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삼키는가가 문제인 녀석이었다.
그러므로 투란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뭔가 뚱하게 느껴지고 위험한 냄새가 짙게 피어난다 해도 써봐야 했다.
블랙 애시를 통해 마그마 로드를 얻으려 한다면!
화아아아.
금빛의 바람이 흙벽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속에 실타래처럼 풀리며 흘러나간 몬스터 엠블럼의 힘,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서서히 검은 재와 반응하기 시작했다.
금전(金錢)의 동그란 형태가 서서히 피어났고…… 어딘가 투란에게 핏빛 톱니를 떠올리게 하며 블랙 애시의 정수를 삼켜갔다. 조심스럽게, 마법의 바람이 살랑이고 주문이 걸린 흙벽이 지켜주는 상황 속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블랙 애시가 불덩이가 될 터였기에, 마법으로 몸을 지킨다 해도 심각한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 투란은 아주 조심스럽고 소심한 태도와 느려터진 속도로 몬스터 에센스를 끌어모으는 과정을 다스렸다.
이윽고 흙벽 속의 검은 재는 모두 금빛으로 물들었고, 한 조각의 검은 티끌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오롯하게 금빛 가득한 바람결 속에 잔뜩 둥실거리는 금전을 세심하게 확인한 다음, 투란은 손을 느릿하게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금전이 금빛 물결을 타고 흘러오듯 투란의 가슴으로 몰려들었다.
* * *
‘누가 봐?’
문장의 풍경 속에서 투란은 흠칫 놀랐다.
누군가 엿보는 느낌, 주문을 걸어놓은 흙벽 속에서 느껴지지 않던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다른 곳도 아닌 문장의 풍경 안에서!
이번에는 주변을 둘러볼 것도 없이 투란은 바로 그 엿보기를 거슬러 올라가 엿보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문장의 입구, 한창 금전이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을 보여주는 문턱 주변에 자욱하게 배어 있는 것처럼 박힌 회색의 무늬가 엿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눈이라는 듯, 누군가의 귀라는 듯이 투란의 문장을 엿보면서 투란을 가늠하려는 낌새가 무럭무럭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를 알자마자 투란은 떠올렸다.
황금매의 문장을 지녔던 자, 그 망령은 하얀 몬스터가 되고 말았다!
‘저것 때문인가?’
다른 이유를 찾을 수도 없잖은가?
저 괴상한 것이 몬스터 엠블럼, 황금매 속에서 저렇게 따로 놀면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할지 알 게 뭔가!
게다가 엿보기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몹시 기분 나쁘다!
‘막는다…… 없애는 게 좋은데…….’
회색의 너울거리는 얼룩무늬가 박힌 문턱을 넘어 금전 더미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블랙 애시의 조각난 에센스, 저마다 다른 몬스터의 정수인 것처럼 멋대로 구는 성질 탓에 에센스를 담는 금전이 잔뜩 생겨난 탓이다.
문장의 본능을 통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입구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블랙 애시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일단 저 회색의 얼룩은 그냥 둬야 하는데…….
계속 이 기분 나쁜 엿보기를 당하는 것도 아주 싫다!
‘막아.’
강한 의지로 투란은 문장의 풍경을 향해 염원했다. 몬스터 엠블럼이라면 당연히 그 염원에 호응할 것이므로.
투란의 염원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고 그의 확고한 신뢰를 담은 채 황금매의 문장을 두드렸다.
바로 금빛이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찰랑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문턱 언저리에서 가늘게 솟구치는 금빛 가닥이 잔뜩 나타났다.
바닥에서 천장을 향해 가늘게 솟구친 금빛의 가닥은 곧 수평으로 그어지는 새로운 금빛을 만나 교차했고, 그대로 허공을 채우는 조각이 되었다. 곧 수평과 수직의 작은 금빛 가닥이 엮여 별처럼 가득한 풍경으로 문장의 입구를 채워나갔다.
투란에게 그 광경은 바로 드라고니아가 꾸며놓았던 별빛 무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연상 탓인가, 곧바로 어딘가 꽤 비슷하게도 느껴졌다. 드라고니아가 별빛 무리를 장막처럼 두른 채로 자신을 숨긴 것처럼, 투란도 금빛의 가닥이 교차하는 조각들이 맴돌며 뒤죽박죽으로 흩어지고 헝클어진 격자의 장막을 만들어 자신을 엿보지 못하게 막은 느낌이었다.
결국 투란은 엿보기 당하는 느낌이 사라진 것을 알았고, 본격적으로 블랙 애시의 정수에 집중하려 했다.
‘아, 이게 뭐야!’
그런데 저절로 울컥하는 기분이 새롭게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격자의 틈새로 스며온 금전 더미, 그것들이 이 황금빛 풍경의 벽과 바닥에 멋대로 흩어진 채 박히면서 모두 다른 몬스터의 정수인 것처럼 따로 놀고 있는 탓이었다. 그 꼴은 딱 저쪽 벽에 나란히 박힌 트리니티 히엔나와 붉은 그랑츄가 각자의 육각형 선반 속에 자리 잡은 것과 똑같았다. 단지 아주 작은 놈, 조금 큰 놈, 심하게 큰 놈이 제멋대로 자기 상태에 맞는 육각형 구멍을 파고 들어가 버티는 탓에 심하게 엉망진창이란 것이 다를 뿐이다.
‘블랙 애시가 될 마음은 없다고!’
투란은 자신을 향해 다짐하고 으르렁거렸다.
아차 실수로라도 블랙 애시를 형성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불티를 휘날리며 빵 터져버릴 테니까! 바로 그 순간이 뜬금없이 자폭해서 뒈지는 때가 될 터!
절대로 그럴 수는 없잖은가?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투란은 이 새로 삼킨 블랙 애시의 조각들을 모두 끌어모으려 했고, 결국 커다란 울타리 속에 흩어진 구멍들을 끌어모으는 꼴을 만들어냈다.
‘하아…… 이게 뭐냐고.’
다시 둘러보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독립된 채로 저마다 다른 크기, 저마다 다른 모양의 작은 형태이지만 그저 둥글게 박혀 있는 꼴이란 것만 닮은 블랙 애시 한 무더기, 검은 잿더미가 낱낱이 흩어진 채로 날려 들어와 박힌 꼴이었다.
이 작은 조각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맞물린 채로 정교하게 짜여야 마그마 로드가 되는 것인데, 그럴 낌새가 전혀 없었다. 블랙 애시는 마그마 로드 따위는 결코 알지 못한다는 듯, 자신은 완전히 독립된 티끌이라는 듯!
하지만 투란은 알고 있었다.
그 작은 조각들이 맞물리고, 엮여서 자아내는 그 아름답고 정교한 것을!
그리하여 투란의 염원이 다시 한 번 세차게 문장을 두드렸다.
‘뭉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