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4)
기긱, 끼이이!
높이 솟은 바위기둥이 뒤틀리는 소리가 투란의 살갗을 파고들 듯이 울렸다.
꽈득, 순간적으로 몸이 긴장하는 것처럼 힘줄과 핏줄, 검은 암석의 살갗이 조여들며 반발하는 듯한 소리가 낮게 투란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젠장.’
그렇지 않아도 투란이 마그마 로드를 형성하면서, 허물어지며 주변 풍경을 훤히 보여 주던 흙집이 완전히 티끌이 되어 사라져갔다. 덕분에 붉은빛이 가득한 기둥의 눈알 떼가 투란을 더 잘 보게 된 듯했다.
용암의 호수 위에 덜렁 떨어져 내린 지반, 그 위에 있던 흙집이 벽을 허물고 바닥이 바람에 쓸려나가듯 먼지를 휘몰아 내며 사라져가는 광경은 투란에게 이 상황을 그저 어이없어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정도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생각하라 강요하는 듯했다.
그 위로 덮쳐오는 바위의 뒤틀린 음향, 거기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몸…….
여기서 대체 뭘 어쩌겠는가?
끼이―, 그그극.
바위기둥이 좀 더 휘어지면서, 거품이 일어나듯이 붉은빛의 눈알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 이제까지 얌전히 기둥 하나에 하나씩 두던 눈알로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더 많은 눈알로 더 잘 보겠다는 듯!
‘아르고누스도 아닌 것이!’
새삼 투란은 마음이 불편하고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마그마 로드의 몸이 이에 반응하듯, 투란의 살갗에서 검은 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주변의 기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날려오는 검은 바람결에 맞서나갔다.
화륵! 화아앗!
불길이 피어오르고, 부드럽게 번져가며 투란의 주변으로 구름처럼 다가왔다.
‘응?’
이는 투란에게 조금 뜻밖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납득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마그마 로드의 본능이 투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블랙 애시,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탐색 중이라고…….
‘어라? 이렇게도 되는 거였나?’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덤으로 투란도 자신의 살갗에서 피어오른 블랙 애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 용암 호수를 만들어낸 거대한 놈, 지금 투란이 형성하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크기보다 몇 백 배를 넘는, 거의 몇천 배로 큰 마그마 로드가 대체 뭘 궁금해하는가!
‘감각, 생김새, 크기…….’
투박하고 거친 호기심으로, 거대한 마그마 로드는 투란이라는 조그마한 마그마 로드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알고 싶어 했다.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이 거대한 녀석이 투란이 숨어 있던 작은 땅조각을 기꺼이 퍼올려서 어디 못 가게 이 호수의 한복판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몬스터 에센스에 몰입했던 탓에, 한편으로는 지반이 아주 부드럽게 뜯겨 흘러온 탓에 투란이 눈치채지 못한…… 이 거대한 녀석에게는 아주 소소한 짓이었다.
그리고 지금 투란을 강제로 뜯어보고 싶어 하는 중이다!
‘삼키기?’
투란은 주변을 맴돌며 짙어지는 검은 바람결, 열기에 의해 다스려지고 검은 재가 잔뜩 실린 채로 몰려오는 바람결과 맞서는 자신의 검은 재―블랙 애시가 불꽃조차 피워올리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을 보며 알아차렸다.
마그마 로드의 파편, 작은 티끌 같은 블랙 애시는 서로를 만나면 그저 엉기고 뭉치며 고인 검은 재일 뿐이었다. 거기에 다른 뭔가, 마그마 로드의 영향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것이 섞이면 그때 불티를 휘날리며 불길이 되어 사라진다. 그 작은 열기가 바로 마그마 로드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고…….
‘녹여서, 태워서 삼키기?’
그 열기를 버텨내는 것을 마그마 로드가 탐구한다!
효율이라든가, 뭔가 좋은 결과 따위는 애초에 얻을 수 없는 뜨거운 탐구였기에 마그마 로드가 주변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저런 눈알이라든가, 저런 그랑츄의 손을 닮았지만 은근히 불길을 피워내며 파이로-칸의 손인 것을 드러내는 형체 정도는 얻어낸 모양인데…….
“어, 엥?”
두리번거리던 투란은 느닷없이 솟구쳐 올라온 뭉툭한 기둥 몇 개가 파이로-칸의 손모양을 하고 꼼지락거리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태 눈알만 굴리던 기둥을 삐죽거리며 뿜어내더니, 저건 대체 뭔가?
검은 바위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광경은 저절로 투란에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주먹이 자신을 내리찍는 꼴을 보는 것보다는 그냥 계속 느낌만 불길한 채이고 싶은데!
끼이, 기기긱.
주먹의 크기는 딱 투란을 완전히 짓이겨서 뭉개기 좋았다.
사람 몸통 서너 배 굵기의 기둥이 굳이 주먹을 쥘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와우응!
주먹 쥔 기둥이 바람결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투란은 ‘어쩌지?’라고 되뇌며 멍청한 꼴로 쳐다보기만 했다.
용암 호수로 옮겨진 지반에서 마법의 집 한 채는 이미 날아갔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 치솟아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 열기가 어지간하지 않아, 열에 대한 강한 내성을 지닌 붉은 그랑츄라도 홀랑 익혀버릴 정도였다. 그러니 히엔나는 털끝만 내밀어도 그냥 구워질 참이고…… 이렇게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버텨야 했다.
그런 탓에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하고 멀뚱대는 꼴인 투란을 이 용암의 호수를 만들어낸 거대한 마그마 로드가 아주 조그마한 주먹으로 내리찍고 있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주먹 쥐지 않아도 될 듯한 기둥이 주먹까지 쥐고 으스러뜨리려는 태도가 기가 막히잖은가!
한데 지금 투란의 기분은 뭔가 묘했다.
‘무섭지가 않아?’
주먹 쥐는 꼴을 봤을 때는 ‘아니,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으로 불길하다 여겼는데, 막상 쳐내려오는 바위기둥을 보고 있자니 왠지 무덤덤하잖은가? 어째서 저 우람하고 듬직하며 큰 바위가 그냥 그러려니 보일까?
투란이 자신을 다시 살펴봐도 검은 암석으로 섬세하게 빗은 머리카락이 그저 조금 쭈뼛거리듯이 서는 느낌만 있었다. 저 거대한 마그마 로드의 규모, 녀석의 강력함에 대해서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도 이 주먹질하는 바위기둥에 대해서는 어딘가 멍청한 채로 보기만 해도 별일 없을 듯한 느낌이라니…….
으쩍! 콰아앗!
투란이 묘하고 이상한 기분으로 자신의 멍청함에 대해, 이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하는 와중에 결국 주먹 쥔 바위기둥이 내리 찍혔다.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부서지며, 그 파편을 흘리며 주변으로 튕겼다!
‘다, 단단하네?’
투란은 봤고, 느꼈고, 생각했다.
거대한 마그마 로드의 규모랑 자신은 비교할 바가 아닌지 몰라도, 지금 투란이 형성하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저런 바위기둥 따위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튼튼하다!
저 바위기둥이 무슨 먼지 덩어리처럼 닿자마자 으스러져 나갈 지경으로!
파편이 튀는 꼴을 보면 저것도 꽤나 강도 높은 바윗덩이겠지만, 지금 투란의 마그마 로드 앞에서는 그저 푸석거리는 흙더미에 불과할 뿐이었다.
‘왜, 왜…… 왜 이렇게 단단하냐?’
투란은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용암 호수가 끓어올랐다.
마치 투란을 찍은 바위 주먹이 아팠다는 듯…….
‘야, 그건 아니잖아!’
스산하게 끓어오르며 치솟는 용암의 호수가 커다란 절벽처럼 펼쳐지는 꼴을 보면서, 투란은 대체 왜 자신에게 화를 내느냐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건 완전히 때린 놈이 반성하지 않고 성질내는 모습이잖나!
그리고 그 성질부리는 모습 속에서 유난히 번뜩거리는 붉은빛의 눈알 하나가 검은 동공(瞳孔)을 만들며, 그 중심에서 길고 삐죽한 흑요석(黑曜石)의 가시를 드러냈다. 자글자글 끓는 용암의 절벽, 그 틈에 끼어버린 듯한 삐죽한 기둥 한쪽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투란은 확실하게 그 변화를 느꼈다.
검은 암석의 살갗에서 소름 돋듯이 흘러나간 검은 재, 투란의 몸 주변을 맴돌며 기묘한 감각으로 탐지하는 블랙 애시 덕분이었다.
‘뭔……?’
반사적으로 투란의 몸이 반쯤 돌아섰고, 자연스럽게 왼손을 내밀며 날아드는 흑요석의 가시를 막으려 했다.
“허얼?”
눈알에서 튀어나온 가시, 분명히 블랙 애시는 그렇게 느낀 모양인데 막상 그 눈알이 투란보다 크고 둥글었고…… 거기서 나온 가시는 길이가 대강 잡아도 5, 6미터는 될 듯한 데다가 어지간한 덩치의 곰은 뚫는 것만으로 몸통을 쪼갤 정도로 굵다! 하지만 그 끝은 사람의 손바닥에 닿는 부분은 사람이 쓸 작은 비수처럼 섬세하기도 했다.
투란이 블랙 애시의 감각을 마냥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인데…….
끼이이― 까득!
투란의 손바닥에 금이 가며 중량감이 한 점으로부터 밀려와 손목까지 바로 스며들어 갔다. 주먹 쥔 바위와 다르게, 이 가시 시늉을 하는 돌창의 강도는 투란이 힘을 준 손바닥도 거침없이 꿰뚫고 들어온다!
하아아…….
손목으로 스며와서 팔뚝으로 파고드는 중량감에도 투란은 아주 침착하게 입김을 뿜어내며 팔꿈치를 접어갔다.
꽈득거리며 꼬이는 팔의 힘줄, 붉은 광채를 흘리며 검은 암석 살갗 위로 치솟는 핏줄의 형상이 또렷해지더니 그대로 흑요석의 돌창을 휘감듯이 번져갔다. 누군가 얼핏 본다면 투란이 날아든 흑요석의 창을 손으로 붙잡아 위로 세워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누구든 그렇게 본 것이 제대로 본 것이라 증명이라도 해주듯, 흑요석의 돌창이 휘감은 붉은 줄기 속으로 오그라들 듯이 뭉개져 갔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대로 붉은 줄기 가닥이 흑요석의 광채를 집어삼키며 다시 투란의 핏줄 속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손과 팔뚝이 불끈거리는 붉은 줄기를 서서히 암석의 검은 살갗 속으로 잠재우며 언제 갈라지고 꿰뚫렸냐는 듯이 멀쩡한 꼴이 되었다.
‘이런 짓도 되네?’
자신이 저지른 짓이기는 했지만 투란에게도 매우 신기한 상황이었다.
가시 돌창, 흑요석의 광채를 선명하게 보였지만 실상은 흑요석보다 압도적으로 단단하고 튼튼한 뭔가의 재질이었다. 그런데 몸 안에서 뿜어져 나간 용암의 붉은 줄기는 이를 단숨에 녹여 삼켰다.
투란이 형성한 마그마 로드의 권능(權能)을 보이듯!
이에 대해 가시를 날린 마그마 로드가 거대한 용암의 노도(怒濤)를 퍼부으며, 용암의 호수를 만들어낸 권능을 과시한다!
콰르―!
“으와?”
투란에게는 용암의 절벽이 느닷없이 무너져 내리며 홍수(洪水)처럼 몰려드는 광경이었다. 사방을 모조리 막은 채로, 피할 곳도 없이! 저것에 파묻히게 된다면 숨을 쉴 수 있을까?
‘숨 쉬어야 하나?’
뭔가 이 상황과 어긋난, 아주 한가한 것처럼 문득 투란의 마음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굳이 답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곧 용암 더미 속에서 투란은 그 답을 몸으로 깨닫고 있었으니…….
워어어어―!
마그마의 붉은빛이 짙어졌고, 뜨거운 호수는 그 중심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소용돌이는 곧 호수 한복판에 넓고 깊은 구멍을 만들어냈고, 소용돌이를 타고 높이 치솟은 용암의 격렬한 파도가 그 속을 채우듯이 무너져 들어갔다.
출렁거리는 용암의 격렬한 파문(波紋)이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갔다.
위아래가 뒤집어진 용암의 호수 속에 담겨 있던, 마그마의 고열(高熱)에 녹아 섞여 있던 지각(地殼)의 온갖 냄새가 함께 퍼졌다. 가장 먼저 흘러나간 유황의 냄새만으로도 어지간한 짐승을 죽일 듯했으니…….
수 킬로미터에 걸친 소동이 용암의 호수 주변을 채우겠다는 듯이 일어났다.
땅속에 숨어 있던 것들도, 열풍(熱風) 속을 날던 것들도…… 모두 용암의 격노에서 일단 피하고 보자는 듯이 바빠진 셈이었다.
정작 그 중심에 파묻힌 이의 사정 따위는 알 리도 없고, 알 바도 아니라는 듯!
‘썩을!’
투란은 이 상황을 아주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뭔지 모를 상황은 아니었다.
마그마 로드,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그 호숫가에 파인 작은 구덩이에 친절하게 검은 재를 부어놓고 지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던 녀석이 투란을 놓고 본격적으로 잔재주를 걷어치운 실력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블랙 애시를 통해 얌전히 투란이 투항(投降)해서 자신의 일부로 스며오기를 기대했지만…… 거절하는 의지를 느낀 다음에는 그냥 잘게 부셔서 삼키기를 시도했고, 꿰뚫어서 꼬치처럼 삼킬 궁리도 했지만 모두 거부당하자 그냥 단순하게, 거대하게 마그마 로드라고 불리는 까닭을 드러낼 뿐이었다!
용암의 홍수로 쓸어 담고, 어디 못 가게 짓누른 채로, 그냥 오랫동안 배 속에서 굴리면 언젠가 소화되겠지, 라고 여기는 듯!
어설픈 재주로는 이 상상을 초월한 고열의 액체(液體), 괴물이 된 마그마의 열기 속에서 그 형체조차 유지할 수가 없다. 황금매의 마법 따위는 이 속에서 재도 남길 수 없는 반짝임에 불과했다.
여기서 투란이 할 수 있는 짓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 따위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저 한 가지 길만이 투란에게 남겨져 있었다. 이 용암을 지배하는 마그마 로드, 투란이 마그마 로드로서 녀석을 삼키는 반역의 길뿐이었다.
이 용암의 왕국을 다스리는 자, 왕이 되는 길만이 유일하게 투란을 용암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