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5)
붉은빛이 강렬하게 모이는 듯, 용암의 호수 중앙이 밝아졌고 부풀어 올랐다. 서서히 호수를 이루고 있던 마그마가 응축(凝縮)되어 가듯, 눈으로 보기만 해도 끈적해 보이는 용암은 간간이 솟아 있던 기둥을 으스러뜨리고 녹이며 뭉쳐가고 있었다.
그 과정은 빠르지 않았고, 낮과 밤을 거쳐서 아주 느리게 이어졌다.
하루, 이틀…… 몇 날이 지났는가를 아무도 세지 않는 시간 속에서 호수는 줄어들었고, 바닥에 구멍이 난 그릇처럼 붉은빛이 흐려져 가며 오그라들었다.
물이 빠진 호수가 오랫동안 물살에 시달린 탓에 부드러운 돌과 미끄럽게 보이는 바닥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게, 용암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날카로운 돌출부와 함께 아래쪽으로 까마득하게 이어지는 절벽의 틈새만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윽고 지표(地表)를 보기만 해서는 용암의 흔적조차 남지 않을 무렵이 되었다.
까마득하게 하늘이 휘두른 듯한 도끼가 대지(大地)를 쪼개고 남긴 듯한 틈새처럼 보이는 흑암(黑巖)의 지역, 그런 지형이 용암의 호수가 있던 자리를 채우듯이 드러날 뿐이었다.
하지만 깊이 파이고 갈라진 틈새에서는 여전히 모락모락 거리며 허연 연기가 화산(火山)이 아직 그 속에 있다는 증거처럼 흘러나왔다. 결코 끝날 리가 없다는 과시처럼, 그 깊은 틈새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에게는 아직 까마득한 아래쪽에 여전히 용암의 강이 흐르는 것이 불그스름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 아늑한 틈새 절벽의 깊은 곳, 흐르는 용암의 열기가 짙은 연기와 엮인 채로 치솟아 사람이든 짐승이든 숨결 두어 번 유지하는 것이 고작인 곳에 검은 바위가 울퉁불퉁하고 삐뚤거리는 알처럼 놓여 있었다.
절벽의 거친 형상 속에서 아래쪽은 튀어나오고 위쪽은 파여 들어간 탓에 이뤄진 마당…… 틈새 모양을 한 절벽을 흉내 내듯, 혹은 저 지표의 광대한 평지를 흉내 내듯이 이뤄진 작은 마당이었다.
검은 바위는 울퉁불퉁한 표피(表皮)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듯, 어떤 부분은 반짝거리는 검은 유리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회색의 윤기 없는 뼈처럼도 보이며…… 온갖 광물(鑛物)이 뒤섞인 채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간혹 검은 바위는 자신이 그저 뭉쳐진 바위가 아니라고 과시하듯, 기괴한 형상을 돌출시켜 주변을 향해 휘두르기도 했다. 마치 이 절벽 틈새의 마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 돌출되어 나온 형상은 절벽을 으깨고 바닥을 쪼갰다가 다시 메워 깁는 듯한 짓도 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붉은빛의 줄기처럼, 마그마를 분출시키며 으스러지고 박살난 곳을 채워 단단하게 굳히기도 했으니…….
절벽의 깊은 곳인 탓에 낮과 밤이 빠르게 스쳐 가는 듯했고, 때로는 밤만 이어지는 듯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도 세지 않아 몇 날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그렇게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쩌어억! 콰륵!
바위 표면이 으스러지고 안쪽으로 꺼져 내리듯이 부서졌다.
거칠게 돌이 마찰하는 소리, 강도 높은 물질이 파괴되는 음향이 얼마 동안 이어지면서 검은 바위가 알, 혹은 길쭉해진 공의 형태를 잃은 채로 무너져 내렸다.
그 속에서 사람의 형태가…… 그러나 그 크기는 결코 사람일 리가 없는 모습이 드러났다. 어림잡아도 6, 7미터는 될 듯한 키와 그 키에 어우러지는 체격이었으니!
키익, 까드득.
사람이라면 머리였어야 할 부분에서 갈라지고 갈리는 소리가 났다.
눈, 코, 귀 따위의 형상이 생략된 채로 그저 몸통 위에 얹힌 머리 부위에 불과했던 것이 껍질을 깨며 그럭저럭 사람의 얼굴처럼 변해갔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뜨인 눈은 눈꺼풀이 없는 붉은빛이 일렁이는 덩어리였고, 코는 구멍 없이 그저 모양만 잡힌 채였으며, 열린 입속에서는 입술을 이루고 있는 바위를 녹여내는 용암이 찰랑이며 침 흉내를 내듯이 흘러내렸다.
입가의 붉은 용암 줄기가 드러나자, 곧 몸통의 곳곳에서도 금이 가며 투박하고 울퉁불퉁하니 그저 사람의 형태, 머리가 있고 팔다리랑 구분되는 몸통이더라 할 지경이었던 모습을 바람결이 섬세하게 다듬어가는 것처럼 돌조각이 부서져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잡혀가는 형태는 사람의 힘줄과 핏줄, 살갗 속의 근육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가를 해석(解釋)해서 검은 암석, 붉은 용암의 핏줄로 다시 구성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늘어진 찰흙이나 물렁거리는 진흙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고, 거칠고 단단한…… 그 강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바위의 시커먼 형태를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때문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주변으로 흘러가며 여분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했다.
곧 그 파동을 겪는 절벽의 틈새, 높이 치솟은 무게를 견뎌내며 저 아래편에 흐르는 용암의 강이 뿜어내는 열기조차 버텨내는 마당을 이루는 암석질이 으깨지며 서서히 조각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장 격심하게 파동을 뒤집어쓴 부위는 역시 사람 형태를 섬세하게 가다듬어 발가락 모양까지 완전히 잡힌 발아래였고, 단숨에 발목까지 파묻힐 정도로 으스러져 모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까득, 콰드득.
검은 암석의 입이 다시 마찰했고, 악다무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발목과 허벅지가 갈라졌고 붉은 방울이 부풀어 올랐다.
방울은 곧 터지듯이 번지며 아래로 흘렀고, 티끌과 먼지 더미로 보이는 모래 속으로 스며가는 용암의 줄기를 만들어냈다.
쩌어엉! 쿠릉!
암석의 거인이 서 있는 마당, 지반이 울리면서 부서져 가는 것은 네 발목뿐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한 큰 울림이 터졌다. 더불어 굵고 큰 틈새를 보이는 금이 가며, 암석의 거인이 자기 몸매를 만든 탓에 무너지는 것이라고 버럭대는 듯한 광경이 드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금이 가 드러난 돌 틈으로 암석의 거인이 흘려낸 용암의 줄기가 금세 스며들며 끈적하고 걸쭉한 질감을 과시했으니…… 불만을 토해내던 마당 지반은 결국 봉합되고 말았다.
금 간 곳을 채운 용암의 줄기가 붉은빛을 현란하게 뿜어내며, 지반을 녹여 강압(强壓)하니 마당은 이제 암석의 거인이 뿜어내는 파동에 견뎌낼 정도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암석의 거인은 그렇게 바닥을 다진 후, 다시 자신의 형상을 깎아내고 녹여내며 보다 분명하게 사람의 형상을 갖춰나갔다.
짧은 머리카락 모양을 만들어낸 것은 붉은빛이 가득한 가시처럼 솟아난 찰랑이는 용암이었다. 그대로 계속 찰랑이며 흐르려 한 것은 곧 굳어졌고, 그저 붉게 달아오른 채일 뿐인 가늘고 섬세한 돌조각처럼 형태를 잡았다.
여전히 눈꺼풀이 없는 붉은빛의 눈에서는 눈꼬리를 타고 붉고 가는 줄기가 흘러내렸고, 얼굴의 형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다. 얼굴에서 시작된 변화는 암석의 몸을 타고 팔다리로 번졌고, 결국 마지막으로 얼굴의 형태와 머리카락의 섬세한 모습이 드러난 다음에야 끝났다.
시커먼 암석, 간혹 투명한 광택이 흐르며, 붉은 줄기가 문신처럼 몸의 곳곳을 누비는 거인(巨人)이 완성되었고…… 고개를 젖히며 높이 멀리 보이는 하늘을 향해 입을 열고 포효하는 시늉을 했다.
그 결과 입속에서 튀어 오른 용암의 방울이 살짝 튕겨나갔을 뿐이었고,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암석의 거인은 천천히 발을 옮겼고, 마당에서 보이는 저 아래쪽의 용암 빛을 잠시 내려다봤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서 위편으로 길게 뻗어 올라가는 절벽과 그 끝에 보이는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고개를 젖혔다.
크륵!
포효를 대신하듯, 거칠게 바윗돌이 목젖 속에서 긁히는 소리가 났다.
곧 암석의 커다란 손가락이 절벽을 파고들었고, 긁어냈다. 그 손짓과 함께 한쪽 다리를 드는 거인의 모습은 아무래도 절벽을 파내려는 목적보다는 손으로 짚고 발로 디뎌 올라가려는 듯했는데…… 절벽이 거인을 형성하고 있는 암석보다 너무 물러터진 바람에 그냥 패인 꼴이었다.
이 상황이 거인의 분노를 이끌어냈을까?
크르륵, 키이익!
거인의 두 손이 절벽을 눌렀고, 깊이 파고들면서 팔뚝과 어깨를 맴돌고 있던 붉은 줄기가 부풀면서 절벽을 향해 뿜어지고 번져갔다. 동시에 거인의 어깨, 허리, 다리 쪽에서도 붉은 줄기가 굵게 부풀면서 곧바로 주변을 붉은빛 가득한 마그마로 물들여갔다.
거인이 선 자리, 손을 댄 절벽이 온통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붉은빛이 사라지며 마그마의 흔적조차 희미한 열기만을 남긴 채 지워지니…… 검은 유리 혹은 검은 수정처럼 보이는 흑요석의 광채가 절벽과 거인이 선 자리를 가득 채우듯이 나타났다.
다시 거인의 암석 손가락이 절벽을 움켜쥐었고, 이번에는 암벽이 거인의 손을 버텨 내 줬다. 돌로 된 입술이 꼬였고, 뭔가 만족한 듯한 웃음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인은 절벽을 기어 올라가지만…….
불과 10여 미터, 거인의 체격으로 보자면 겨우 가슴 높이 정도까지 올라간 다음에 단단해진 흑요석의 절벽 주변이 금이 가며 부스러지는 광경이 드러날 뿐이었다. 이는 곧 거인을 움찔하게 했고, 올라가기보다는 도로 내려오게 했다.
아무래도 거인의 힘으로 단단해진 영역이 너무 좁았던 모양이었다.
혹은 거인의 질량이 그 강도처럼 너무 컸던가!
암석의 거인은 잠시 멍하니 서서 암벽을 노려봤고, 저 높은 곳의 하늘도 노려보듯이 올려다봤다. 곧 뭔가 분한 듯, 울화가 치미는 듯이 다시 포효하듯이 입이 열렸는데…… 열린 그 입속에서는 찰랑이며 자글거리는 용암이 거품을 일으킬 뿐이었다.
쿵, 쿵.
거인은 답답함을 풀려는 듯이 자기 가슴을 두드렸고, 머리를 두드렸다.
바위가 울리는 소리는 곧 주변으로 퍼지면서 어딘가에 부딪혀 돌아오는 거친 메아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메아리에 거인은 손을 멈췄고…… 팔짱을 낀 채로 우뚝 선 모습이 되었다.
단단히 각오하고, 작정한 듯한 기척이 암석의 거인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나왔다.
그리고 그 결의의 변화는 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붉게 달아오른 돌구슬처럼 보이던 눈알 속에 찰랑이는 파문이 일어났다. 파문은 원을 그리는 듯하다가 나선의 형태로 변해갔고, 눈동자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소용돌이의 무늬를 만들어냈다.
거인의 살짝 열린 입속을 채운 용암에도 이러한 변화가 이어졌다. 용암은 소용돌이에 휘감기며 뭉쳐졌고, 더 이상 입속에 담긴 한 모금의 물이 아니라 목에 뿌리를 둔 혀처럼 변했다. 혀의 중심에는 소용돌이가 담긴 채 형태를 유지한 것이다. 그렇게 형태가 잡힌 혀가 검은 돌의 입술과 함께 움직이니…….
“정신 차려, 투란. 너는 몬스터 로드! 어비셜 볼텍스로 마그마 로드를 제압한 몬스터 로드, 투란이다! 천칭의 경험과 기억으로, 황금매의 문장을 다스려서 용암의 진정한 왕이 된 몬스터 로드, 투란이다! 그러니, 마그마 로드처럼 생각하지 마!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사람처럼…… 몬스터 로드답게 생각해라!”
돌이 쪼개지고 울리며 억지로 사람 흉내를 낸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거친 말은 곧 거인의 뇌리를 쩌렁쩌렁 울렸고, 투란의 정신을 조금 더 맑게 했다. 맑은 정신으로 투란은 곧바로 집중해서 생각하며, 절벽을 바라봤다.
눈앞의 암벽은 검은 크리스털처럼 광택을 띤 채로 투란에게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거칠고 흉포해 보이는 바위 괴물인가를 고스란히 비쳐 줬다. 물론 투란은 이 모습에서 그런 거칠고 흉포한 낌새보다는 어렴풋이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의아해할 뿐이었다.
‘이상해. 이렇게 모습을 갖췄으면, 그럭저럭 사람이 지닌 몸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텐데…… 어째서 계속 바위처럼 묵직하고 둔하지? 일단 크기를 사람 정도에 맞춰놓으면…… 그럭저럭 사람의 수준에 맞게 생각을 하고 움직일 줄 알았는데……. 뭐가 잘못된 거야? 왜 아직도 큰 바위처럼 둔한 느낌이야?’
갸웃하던 투란은 결국 입과 코를 통해 세차고 뜨거운 바람결을 뿜어내면서, 주문을 외웠다.
“디텍션, 메자이.”
마법사가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점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자기감정(自己鑑定)의 마법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바로 투란의 입에서 보다 흉악하고 섬뜩한 돌이 깨지고 갈리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켁? 6미터 80센티! 중량 120미터톤이라니! 12만 킬로그램이란 말이냐!”
그냥 쇳덩이로 된 몸이라 해도 7미터가 안 되는 크기에 120미터톤…… 이건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는 부피와 질량의 격차였다. 어이없어서 투란은 다시 한 번 계산을 해봤지만, 1미터톤이 1천 킬로그램이었으니 진짜 12만 킬로그램이 맞았다.
6미터 80센티의 키와 몸집의 규모를 생각해도, 이건 지나치게 작은 몸에 너무 과한 중량이다!
이 지경이면 그저 몸이 둔하지만 힘이 되니까 움직인다 하고, 여유 부릴 상태가 아니었다. 당연히 암석의 머릿속을 채운, 용암으로 이뤄진 신경망의 반응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잖은가!
‘어우! 줄이고 줄여서 3미터 이내로 줄였더니!’
예상보다 두 배나 크고 세 배는 더 부푼 몸집이었다.
그런데 몸의 반응을 주관하는 내부구성은 2, 3미터 체격의 사람으로 맞춰놨으니 머릿속이 흐릿하고 몸이 둔한 느낌일 수밖에 없잖은가!
투란은 암석으로 된 거인의 몸을 일단 앉혔다.
바닥을 미리 단단하게 해놓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튀어나오는 것을 저편으로 날려버리면서, 투란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을 관조하며 집중했다.
다시 한 번, 호수를 품고 있던 마그마 로드에게 휩쓸렸을 때처럼 투란은 ‘천칭’을 통해 얻었던 몬스터를 형성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을 통해 황금매의 문장을 단련하고, 자신이 형성한 마그마 로드의 힘을 움직였던 순간들이 단숨에 투란의 정신 속에 되새김질되었다.
‘어비셜 볼텍스’의 블랙 오러 몽거, 자유자재로 흐르고 변화하던 아르고누스의 잉크와 크리스털, 몸의 구석구석을 채우며 깊고 넓은 지각(知覺)을 자랑하던 ‘악마의 심장’, 사람의 몇 십 배를 살아온 드레이크의 추억, 달빛과 함께 스며오는 은빛 불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날뛰고 싶어 했던 붉은 늑대!
투란은 그 다채로운 경험으로, 호수가 되어 처박혀 있던 마그마 로드를 삼키는 마그마 로드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러니 이제는 몬스터 로드로서, 이 틈새를 벗어나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