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6)
Chapter 42. 황금매를 쫓는 자들
‘용케 살아남기는 했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겠네.’
투란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인 것은 몬스터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지속시간이었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가를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느낀 바가 아닌 제대로 세상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미리 측정을 위해 마크를 심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마크를 찍어놓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사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때문에 투란은 아주 느슨하고 불확실한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마그마 로드의 호수 속에서 버텨내고 있었는가를 어림잡는 수밖에 없었다.
‘한 사흘? 아니, 그보다 하루나 이틀은 더 보냈을까?’
슬그머니 초조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그륵, 크르륵.
마그마가 유동(流動)하면서 몸을 이루고 있는, 검은 색채가 가득한 암석을 붉게 달아오르게 했다. 가장 특별하게 그 색채가 뭉친 곳은 투란의 복부,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복근의 형상대로 붉은 줄기가 돋는가 싶더니, 허리와 옆구리로 가지를 뻗어 올렸고 가슴의 젖꼭지가 붉은 눈동자처럼 두꺼워지고 커졌다. 검은 암석의 몸을 물들여가는 듯한 붉은 색조는 어느새 암석의 거인의 가슴과 배를 통해 삐죽하게 눈꼬리를 치켜올린 채로 크게 입을 벌린 듯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그 무늬로 된 입에서 숨을 몰아쉬고 들이쉬는 증거라는 듯, 붉은 안개와 불티가 검은 재를 이끌며 피어올랐고, 무늬 안팎을 들락이듯이 움직였다.
콰륵, 콰드드득!
거친 소리가 투란이 형성하고 있는 암석의 거인 몸통을 두들겨 패서 우그러뜨리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거인의 형상이 서서히 작아져 갔다. 몸의 한구석씩 오그라드는 것처럼!
‘아으! 이거 여전히 아프네.’
나름대로 익숙해진 상황이라 여겼지만 여전히 투덜거리는 생각이 먼저 투란의 마음속을 휘저었다.
이렇게 몸을 축소하는 방법이야말로 투란이 용암의 호수 속에서 거대한 마그마 로드의 힘에 맞서낸 길이었고, 그 뿌리는 오러 몽거의 ‘어비셜 볼텍스’였다. 끝없는 소용돌이, 무한한 집적(集積)을 통해 자신이 파괴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위험한 괴물의 오러 운영법!
때문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관두라 했던 그 오러의 흐름을 흉내 냈다.
그 정도 위력이라면, 호수를 이루고 이 호수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크기에 상관없이 투란 자신의 몸을 일단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
그 흉내를 내는 과정에서 투란은 깨달았다.
‘악마의 심장’이 몸에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투란의 기억 속에는 흐릿하고 희미하면서도 선명하게 그 경험이 새겨져 있었다. ‘악마의 심장’으로 어떻게 오러를 휘둘렀던가, 어떻게 오러 몽거의 ‘어비셜 볼텍스’를 흉내 냈던가.
기억만으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마그마 로드의 형태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용암, 그 덮개가 되고 껍질이 되며 뼈대가 되는 시커멓고 다채로운 암석이 뒤섞인 채로 ‘뭔가’를 구성(構成)해 내려 했으니…… 쉽게 생각한 대로 그 힘의 흐름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투란은 아르고누스의 형상을 기억 속에서 더듬었다.
어떻게 ‘패러블랙 잉크’가 흐르며 모양을 잡았는가, 어떤 식으로 ‘크리스털 애시’가 그 속에 침잠된 채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는가, 아르고누스가 어떻게 그런 몇 가지 요소를 통합하여 온전한 하나였던가!
이런 기억의 되새김은 투란이 형성한 마그마 로드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다.
마그마 로드의 본능, 그 성질이 구성하려던 ‘뭔가’를 명확하게 포착한 셈이었다.
그 ‘뭔가’에 곧 투란이 이제껏 겪어온 기억, 그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형성해냈던 몬스터가 스며들어 채워져 버린 것이다.
그리 정교하거나,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다.
거칠고 투박하며 제멋대로 도는 나사못들이 흉포하다 할 정도로 멋대로 몸 곳곳에서 뒤틀린 채로 맞물렸고…… 어찌 되었든 그럭저럭 형상을 갖췄을 때, 투란은 거대한 마그마 로드가 결코 삼킬 수 없는 작은 조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삼켜지지 않는 작은 조각의 마그마 로드가 호수를 이루며 이 일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마그마 로드를 삼켜나갔다.
그 와중에 혹시나 해서 날개의 모양을 만들고 용암 속을 가르며 날아오른다든가, 열심히 팔다리를 휘젓는 헤엄이라도 쳐본다든가 하는…… 해보고 나서 ‘하지 말걸.’이라고 후회한 짓도 많이 했다.
그 서두르기 위해 한 짓들은 투란에게 뭐가 안 되는가를 깊이 깨닫게 해줬다.
검은 암석으로 된 날개로 퍼덕이면 용암도 갈라지고 짓눌릴 뿐이지, 결코 몸을 지탱해주면서 위로 올려주지 않는다! 팔다리를 휘젓는 헤엄도 마찬가지였다. 마그마 로드의 몸은 단단하고 튼튼했지만, 그만큼 지독한 중압(重壓)을 지니고 있었다. 날아오르기 위해서 몸을 받쳐 주는 바람결을, 물결처럼 용암을 끌어모아 누를 수가 없었다. 그저 짓이기고 갈라버릴 뿐이니, 그대로 허우적대는 꼴만 남았다.
다행이라면 투란은 드레이크의 기억 속에서, 그런 경우를 되새겨낼 수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높은 허공이지만 바람이 맴돈다, 하지만 그렇게 바람이 짙게 맴돌기는커녕 왜 허공인가를 알려주겠다는 듯이 바람조차 없이 텅 빈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드레이크는 빛을 이용해서, 마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지탱했어야 했다.
그 아늑한 기억을 바탕으로 투란은 작지만 무겁고 단단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용암의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히지 않고 어중간하게 띄운 채로 버틸 수가 있었다. 호수를 부여잡고, 몸에서 흘려낸 붉은 줄기를 밧줄처럼 걸어 버티는 힘…….
그러다가 문득 용암의 호수를 삼키면서 자신의 힘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그마 로드가 새로운 ‘뭔가’를 삼켜서 그 흉내를 내는 과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고, 왜 투란이라는 작은 조각에 흥미를 갖고 잡아먹으려 했는가도 알 수가 있었다.
팔다리,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 그저 뭉치고 흐르는 마그마의 형상과는 다르게 잘 짜인 ‘사람’의 형태…… 마그마 로드가 겨우 흉내 내던 눈알, 주먹 따위보다 훨씬 정교한 구성이었다.
투란이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에 당연히 본래 몸을 바탕으로 마그마 로드를 덧씌워가며 구성해낸 것을, 거대한 마그마 로드가 굉장히 신기하게 여기며 탐낸 셈이었다. 그리고 투란도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여겼던 그 부분을 마그마 로드로서 납득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쉴 새 없이 거쳐오면서 투란은 마침내 거대한 마그마 로드의 호수를 양분으로 잡아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투란이 잡아먹지 않는다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으므로!
‘잘 풀렸다 싶었는데.’
소용돌이가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로, 초점이 오락가락하는 시야를 다듬으면서 투란은 거친 입김을 뿜어냈다. 용암으로 이뤄진 혀끝에서 흘러나가는 입김에는 불티와 재가 섞여 있었고, 거슬러 올라오는 감각…… 맛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냄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이 모호한 감각의 원인은 단순했다.
투란이 형성한 마그마 로드가 호수의 마그마 로드를 삼키기는 했지만 그 광대한 힘을 완전히 자신에게 융화(融化)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용암의 호수가 너무 크고 거대하며, 작은 것이나 쉽게 부서지는 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고 느끼지도 못하던 영향이 남은 셈이었다.
그래서 이런 암석의 거인 꼴을 하고 있는 셈이고!
덕분에 사람 모습으로 이 절벽을 기어 올라가려던 첫 시도가 실패했다.
설마 몸이 이리 크고, 무거울 줄 몰랐으니까.
크고 무거우면 둔해 보인다, 라는 속설이 어째서 그럴듯한가를 투란은 잉크를 다루면서 알게 되었다. 몸을 꿰고 있는 신경망, 그 신경망을 타고 전달되는 의지의 흐름이 문제였다. 사람의 몸에 자리 잡은 신경망은 어느 정도 크기를 넘어서면 그 의지를 전달하는 속도에 지장이 생긴다. 잉크가 지닌 신경망은 아무리 넓고 크더라도 상관없지만…….
마그마 로드의 감각과 사람의 감각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섞이고, 무게를 상당부분 줄여야 투란은 자신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래서 사람의 형상을 깎아냈는데…… 키클롭스 정도로 커진 꼴이라니!
‘진짜 키클롭스라면 사람보다 민첩하고 빠르다던데 말이지…….’
마그마 로드의 거인형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까 투란은 다시 이 크기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처음 정한 3미터 이내로…….
콰득, 콰르르르―!
‘아파! 젠장!’
억지로 몸을 우그러뜨리고 형태를 작게 맞추는 과정은 ‘통증’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마그마 로드로서는 매우 진한 이 감각을 즐길 수 있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은 사람답게 이게 ‘아픔’이란 것을 동시에 느끼고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슴과 배에 생겨난 무늬는 붉은 광채(光彩)를 명멸(明滅)시키면서 자기 몸을 삼키는 입처럼 투란의 몸을 계속 짓누르며 축소하는 압력(壓力)을 일으켰다.
‘아오으아! 이 오러 볼텍스로 방어를 했는데…….’
아르고누스의 동굴에서 ‘악마의 심장’으로 형성한 오러의 소용돌이로 눈알의 공격을 막아내던 때에는 이런 아픔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며, 투란은 괜히 억울했다. 자기 몸을 자기가 이렇게 학대하다니!
그냥 좌악 용암을 풀어놓고, 해롱거리면서 흐르고 싶다는 충동이 저절로 생겨날 듯했다. 호수가 되어, 마그마 로드로서 느긋하게 초원을 흘러가다 보면…… 힘이 바닥나서 사람의 모습이 될 수도 있잖은가?
‘바보 같은 생각 집어치워라, 투란! 그건 폭동이고 광란이라고!’
한숨을 거센 불티와 검은 재로 뿜어내면서 투란은 다시 자신을 다잡았다.
이 축소의 고통은 오래 갈 리가 없었고…… 결국 끝맺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지속되고 있던 디텍션의 주문이 투란에게 원하던 크기와 중량에 도달한 것을 알려주는 순간, 투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바로 절벽에 달라붙었다.
‘3미터 10센티…… 280킬로그램!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름 가볍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투란은 절벽을 손끝으로 움켜쥐어 파내고 쑤시면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가끔 무르거나 약한 암벽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을 용암에 단련된 덕분인지 그럭저럭 기어오를 수가 있었다.
휘아아아아!
바람이 이빨을 드러내고 깨물려고 하는데, 거기 바로 깨물린 기분이 투란의 마음을 채웠다. 물론 그런 기분이랑 별개로, 마그마 로드의 몸은 그냥 바람은 바람일 뿐이라고 끄떡도 없기는 했다. 주변에 놓여 있던 머리통만 한 돌덩이는 바람에 휭 날려가고, 암벽 정상에 달라붙듯이 파묻힌 바위는 썩둑거리며 베어나가기는 했지만…….
‘그래, 춤추는 산맥이잖아! 그러니까 변할 수도 있지!’
잘려나가는 바위나 바람에 떠내려가는 돌덩이보다 투란의 관심을 뺏는 광경이 있었다. 어차피 마그마 로드의 몸이라 기분만 나쁠 뿐이었고, 멀쩡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어째서 용암의 호수 주변 풍경이 싹 변해버린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깊이 투란의 마음을 흔드는 셈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용암의 호수가 주변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시커먼 암석과 흙투성이로 이뤄진 언덕 같은 경계를 이루던 지형…… 투란이 기억하는 그 지형은 싹 사라졌다.
한쪽에는 늪이 제법 널찍하게 자리 잡은 꼴이 보였고, 한쪽에는 살랑거리는 긴 풀밭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나무가 자라 채워진 숲이 있었다. 거기에 흙과 돌로 이어진 들판, 아직은 용암의 호숫가를 기억하는 듯이 검게 물든 바위 지형도 섞인 광경…….
춤추는 산맥의 지형이 변화한다는 것을 이미 샤오콴 마을에서 자라면서 바라봤던 투란이었다. 딱히 지형이 변했다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체 며칠이 지난 거지?’
샤오콴 마을 주변의 지형도 변화하는 데 보통 2,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변화랑 무관하게 홍수(洪水)라든가 느닷없는 산사태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춤추는 산맥의 지형이 빠르게 변한다고 해도 몇 년의 시간은 분명히 필요했다. 그 시간은 세상이 저항하는 힘 때문이라고 했다.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변하지 않게 묶어두려고 버티는 세상의 힘 때문이라고!
이 주변의 풍경이 이리 빠르게 변한 것은 투란에게도 낯설고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낯설고 이상할 때는 가장 먼저 자기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은 투란이 배운 상식이기도 했는데…….
‘지금 몸은 2미터 13센티, 170킬로그램.’
스러져가는 주문의 마지막 측정은 투란이 암벽을 기어오르면서 더욱 노력했다는 것과 그 와중에도 별꼴을 다 겪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數値)를 감정판별의 결과로 남겨줬다.
2미터 13센티, 170킬로그램의 마그마 로드의 형상.
가슴의 젖꼭지는 여전히 눈동자처럼 보였고, 거기서 흘러내린 눈꼬리 혹은 눈물처럼 자리 잡은 붉은 줄기는 복근의 윤곽을 그려내면서 배꼽으로 흘러드는 무늬를 그려냈다. 배꼽의 좌우로 웃는 듯이 그어진 붉은 무늬의 가닥은 투란의 가슴과 배를 차지한 형상이 입을 다물고 싱긋 웃으며 세상을 보려는 듯한 얼굴에서 제대로 입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입매가 유난히 더 밝고 선명한 붉은 광채를 띤 까닭이라는 듯, 날카로운 바람결은 그 근처에 오는 것만으로도 불티를 품으며 사그라들기도 했다. 붉게 파인 작은 심연 같은 배꼽 근처에 짙은 중압이 존재하는 증거처럼!
하지만 그렇게 더 높은 수준으로 완성된 몸이라도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하는 지속시간의 한계가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었으니, 칼바람이 휘날리는 암벽의 정상에서 투란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쉬어야 하는데, 더 유지할 수가 없어. 여기서 쉴 수 있나? 어쩌지?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