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0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09)
‘아니지, 저런 눈빛이 아니야.’
다시 조심스럽게 파이로-칸의 눈길을 살피다가 투란은 고개를 저었다.
파이로-칸의 눈길은 ‘저건 먹을 것?’ 혹은 ‘너 맛있냐?’라는 쪽의 순수한 포식자로서의 관심을 듬뿍 담은 것이었다. 구워 먹을 놈인가, 녹여 먹을 놈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할 뿐이었지, 은밀하게 훔쳐보는 추잡한 느낌의 눈길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 그 은밀하고 추잡한 눈길보다 훨씬 위험한 눈길임에는 틀림없고!
“뭐, 덤빌래?”
투란이 허세를 부리듯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투란의 목이 잠긴 듯이 소리는 아주 작게 튀어나와서, 조금 민망했다.
원래 파이로-칸의 성질에 대해서 투란이 아는 바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랑츄에서 발생한 놈이니 그랑츄처럼 이런 도전적인 소리를 들으면 먹잇감에 대해 좀 더 주의하게 될 테니까, 아주 잠깐이라도 녀석의 돌진에 대해 준비할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낸 소리였다. 한데 나온 것은 먹잇감이 무섭다고 징징대는 듯한 꼴이니 참으로 민망하잖은가.
그런데 파이로-칸도 그런 투란을 향해 어울려주겠다는 듯한 으르렁거림을 토하고 있다……?
크워르르르!
파이로-칸의 으르렁거림에는 흘러가던 재가 흩어지고 늪이 마른 땅이 은근히 더 찢기는 듯이 보인다?
마치 투란의 작은 으르렁 따위에는 끄떡없고 자신이 강하다고 과시하는 꼴이었다. 자신이 더 강하니 얌전히 먹히라고!
‘에이. 씨―!’
웬지 목소리로 진 것 같은 상황이 명백했기에 투란은 울컥 짜증이 났다.
한데 곧 파이로-칸이 컥컥거리면서 자기 목소리를 조절하는 듯하더니, 훨씬 더 낮은 으르렁거림을 한 번 더 토해낸다!
그르르……!
‘응?’
투란의 눈이 껌벅거렸다.
도대체 저게 왜 저러는가?
당연히 투란을 찾아든 의아함이었는데, 피아로칸의 입가가 좌악 갈라지는 모습이 어딘가 투란이 놀라서 만족한다는 듯이 보였다. 마치 이제야 자신이 이겼다는 듯한, 뭔가 표정인 듯이 보이는 얼굴의 꿈틀거림과 함께 파이로-칸이 투란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고 있기도 했다.
이는 투란을 뭔가 애매하고 난처한 기분으로 물들였다.
‘아니, 더 낮게 소리 내는 게 이기는 거냐?’
대체 왜?
첫 으르렁대는 소리로 강한 진동을 퍼뜨려서 보였던 위력은 그럼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거기 짜증을 낸 투란이 더 바보 같잖은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냐고!’
소문으로 들은 적도 없고, 드라고니아에게서도 보다 자세한 습성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파이로-칸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보고 어이없어서 꽥꽥대던 추억만이 뒤늦게 투란의 가슴에 맴도는 듯할 뿐이었다.
후아아하아아…….
기억을 더듬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려는 듯한 생각을 멈추며 투란은 입을 열고 작은 숨결을 토해냈다. 숨결 사이로는 노골적으로 불티와 검은 재가 섞여 나오면서 투란의 입술과 볼을 타고 붉은 줄기가 번져가며 살갗을 검게 물들여갔다.
투란은 머나먼 기억이 아닌, 용암의 호수에서 꼬챙이에 꿰어 있던 파이로-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상태로도 단숨에 으깨지거나 용암에 불타 사라지지 않았던 파이로-칸의 몸…… 때문에 마그마 로드는 그 손의 구조를, 몸의 기본적인 구성을 ‘배우고 익혔다’.
그 손으로 투란에게 주먹질도 했고!
‘나는…… 내가 더 강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지독하고 분명한 확신이 폭발하는 화산처럼 스며나오며 투란의 정신을 채워갔다. 이 확신을 위해 투란은 위험한 용암의 호반을 걸었고, 용암의 호수 속에서 위기를 겪었으며, 싸워 이겼다.
고작 한 마리의 파이로-칸에게 지려고 그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잖은가!
그워, 크워어엇!
그와아아앙!
‘엥?’
파이로-칸을 향해 붉은빛으로 번뜩거리는 용암으로 채워진 눈길을 던지려다가 투란은 느닷없이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채우듯이 터져 나오는 함성부터 들어야 했다. 낯설지 않은, 어느덧 꽤나 익숙한 느낌으로 듣게 된 저 함성은 그랑츄의 외침이었다.
이쪽 숲의 저편에서, 저쪽 늪의 너머에서 그랑츄 무리가 와글거리며 다가오는 광경이 바로 느껴졌다. 그림자의 감각이 투란의 의지에 호응해서, 마그마 로드의 거친 감각을 순식간에 대신한 덕분이었다.
‘서툴기는…….’
투란은 자신이 두가지 감각을 오가는 것을 깨달으며 씁쓸한 기분을 품어야 했다.
몬스터 로드이면서, 어느 정도의 마법을 쓴다…… 마냥 이롭기만 하고 대단할 듯하지만 원래 황금매의 문장은 한 가지에 몰입하게 되어 있었고, 덕분에 이렇게 오가는 감각이란 것을 다루는 것은 오롯하게 투란의 몫이었다.
앞에 파이로-칸이 있다 하더라도, 주변의 보이지 않은 곳에서 뭐가 튀어나올 경우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지금 투란에게 바람직했다. 한쪽에만 주의를 기울이다가 갑작스러운 녀석에게 뒤통수 맞고 쓰러질 수는 없으니까.
“투란, 무투술의 기본은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거야. 하지만 현실에서 네 적은 눈앞에만 있질 않아. 그래서 무투술의 기본에는 어느 간격에 다가선 모든 것을 네 적으로 가정하고 상대하는 기교가 늘 포함되지!”
키린이 살짝 오락가락하면서 설명하던 것이 투란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멋쩍어하던 키린의 표정도!
‘키린도 서툴다고 했지!’
애초에 왕가의 비전무투술은 왕이 전장을 지휘하면서 자신의 몸을 자기 손으로 지킨다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라 했다. 고대의 왕은 스스로가 병사이면서 동시에 군단을 지휘하는 장군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고 했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상되고 창안된 것이 바로 왕가의 비전으로 전해오고, 왕성의 병사들에게 전해지게 된 무투술…… 바로 키린이 투란에게 동작부터 익히게 해놓고 나중에 강제학습법으로 새겨 넣어준 것이다.
“먼저 동작을 익히고, 다음에 전장(戰場)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그럭저럭 이, 삼십 명을 지휘하는 전투가 가능하다고 했어.”
키린은 그런 전투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투란에게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다.
괴물 왕자인 키린이라면 혼자서 군단을 능가하니까!
괴물 왕자에게는 힘들게 무투술을 연마해서 전장의 노래까지 부를 수준까지 오를 필요가 없으니까!
투란 자신도 전장의 노래까지 부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어쨌든 키린처럼 홀로 싸우는 몬스터 로드니까!
투란이 누굴 옆에 데리고 다닌 적도 없고, 그런 경우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은 자신이 전장의 노래를 부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전장의 노래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손에 든 무기를 바꾸는 거야. 상황에 맞춰서 여러 가지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거지. 그 도구가 한 명의 병사가 되고, 한 명의 병사가 열 명으로, 열 명이 백 명으로 늘어나게 되면…… 왕이 군단을 지휘하며 싸우는 모습이 되는 거지. 전장의 노래를 부르면서 무투술을 연마하면, 결국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맞아, 투란. 이 노래는 그런 능력을 키워주는 비전이야.”
‘마법은 도구. 그러니까, 이 감각도 내가 다뤄야 할 도구. 키린보다 내가 먼저 전장의 노래에 익숙해지겠네!’
사아아― 화앗!
미묘한 투란의 웃음은 입가에서, 몸 곳곳의 검게 물들 살갗에서 불티와 검은 재를 거칠게 휘날렸다. 작고 느리지만 촘촘하게 투란의 주변으로 흩어져가는 검은 재의 감각, 멀리서 느슨하게 전해오는 그림자의 감각…… 이 모든 것이 마치 제멋대로 구는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투란은 무투술의 비전, 전장의 노래를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투란이 마음을 굳히는 사이, 파이로-칸은 낮은 울음을 쉴 새 없이 흘려내면서 주변에 좀 더 짙은 파문을 쌓아가며 그랑츄 무리를 기다렸다.
‘왔다!’
투란이 느끼는 순간, 늪의 우거진 수풀을 가르고 숲의 나무를 몸통으로 꺾으며 붉은 그랑츄의 무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어라?’
분명히 붉은 그랑츄였지만 투란에게는 조금 의아한 꼴이었다.
붉은빛, 붉은 털이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머리와 허리, 팔뚝, 다리에 쑥쑥 자라난 털이 검었고 붉은빛은 힘줄과 엮여서 세게 꿈틀거리는 살갗 쪽이 도드라진 채로 나머지 부분은 그 색채가 번져간 듯, 파릇한 바탕인 살갗이 억지로 붉게 채색된 모습이라니…….
‘아하!’
자신도 붉은 그랑츄를 품고 있었기에, 금방 투란은 붉은 그랑츄가 온통 붉은빛을 잃은 채로 거뭇하고 퍼릇한 부분을 몸에 두른 채인가 납득했다.
용암의 호수가 사라지면서, 저 깊은 땅속 틈새에 언뜻 보이는 용암의 강만이 남은 이 지역에는 붉은 그랑츄를 데워주고 달아오르게 할 열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굳이 생각하고 더듬지 않아도, 파이로-칸에게 달려들면서 그 불길을 뒤집어쓴 다음에 곧바로 투란이 봤던 붉은 그랑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꼴까지 보게 되면 알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크와아―!
파이로-칸은 낮은 으르렁거림에서 짜증으로 치솟은 높은 포효를 흘리면서 달려드는 붉은 그랑츄를 밀쳐내려 했다. 굉장히 귀찮아하면서, 주먹질하는 것도 싫다는 태도였다.
‘와, 나쁜 놈!’
그 태도에 투란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랬다.
파이로-칸도 한때 붉은 그랑츄였고, 저리 열심히 달려들던 놈 아니던가!
한데 자신이 파이로-칸이 되었다고 붉은 그랑츄 시절은 홀랑 잊은 저 태도는 대체 뭔가! 처음 파이로-칸이 되었을 때는 열심히 때리고 차고 밟아 죽이고…….
‘어, 죽이지 않으니까 나쁜 놈이기만 한 건 아닌가.’
화르릇, 생각이 좀 엉뚱한 곳으로 튀는 자신을 향해 한숨이 새는 순간 입가에서 불꽃이 세차게 튀어올랐다. 검은 재가 엉긴 호흡 때문에 가볍게 불길을 일으키며 불티로 흩어지는 꼴이었다.
이런 투란의 입김은 곧장 가까운 곳에서 파이로-칸을 향해 뛰어가던 붉은 그랑츄의 주의를 끈 모양이었다.
그워어어―!
힘찬 외침을 터뜨리면서, 붉은 그랑츄 몇 마리가 투란을 향해 달려오며 그대로 격돌하려 했다. 그 광경에 투란은 아주 잠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붉은 그랑츄를 잘못 때리면…… 바로 파이로-칸이 늘어난다!
‘진짜 귀찮네?’
저편의 파이로-칸을 나쁜 놈이라 비난하던 생각이 순식간에 투란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파이로-칸이 왜 저런 상태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바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붉은 그랑츄 무리가 하루 이틀 달려들었을 리가 없으니, 아무리 파이로-칸이 의욕이 넘쳐난다 해도 귀찮아질 만하잖은가?
게다가 열심히 때려서 파이로-칸이 된다면…… 그놈이랑 사이좋게 부둥켜안은 채로 ‘우리 성공했어!’라고 기뻐할까? 서로 죽이겠다고 싸울까!
문득 투란은 자신이 저 파이로-칸을 낯익어하는 까닭을 깨달았다.
저놈은 그때 본 두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그러고 보니…… 또 한 녀석은 그 풀잎 돌덩이한테 당한 건가, 아니면 서로 싸우다 끝장났나?’
그워억!
생각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
붉은 그랑츄가 몸통으로 투란을 찍어패려 하고 있었으니까.
이 짧은 시간에 한 것 치고는 생각이 지나치게 많기도 했다.
‘역시 서툴러, 그렇다면!’
자신의 상태를 한 방에 정리하고, 투란은 행동했다.
빠악, 빠박!
그워어―?
그 결과는 달려든 붉은 그랑츄 두 마리가 서로의 어깨를 충돌하며 물러서게 했고, 한 박자 늦은 한 마리는 멈추면서 의문을 표현하는 외침을 흘리게 했다. 좀 더 늦은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멈춘 채로, 왜 여기 있던 뜨끈하고 단단해 보이는 놈이 없어졌는가 의아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편에서 파이로-칸도 당황한 듯한 큰 소리를 냈다.
크워어어? 크엉!
파이로-칸이 낸 소리는 금방 붉은 그랑츄 무리의 관심을 끌었다.
그워어억!
바로 앞에 있다가 없어진 투란을 벌써 잊은 듯, 붉은 그랑츄 무리는 다시 잘 보이는 채로 불길을 몸에 두른 파이로-칸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투란은 그림자의 감각을 통해서, 땅속 깊이 파고든 채로 이 상황을 감지했다.
‘흠, 역시 저리 되는군.’
두 발목에서 흘러내린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아래로 뾰족한 알의 껍질을 만들고, 압도적인 중량을 끌어내면서 투란은 제자리에서 땅속으로 바로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아래로 뚫린 채로 나타났을 구멍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취한 채로 잔뜩 커진 두 손으로 흙을 떠받들 듯이 밀어 올림으로써 바로 막아버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카락 몇 올을 삐죽하고 길게,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검은 돌가시로 땅 위에 살짝 남겨뒀다.
붉은 그랑츄가 예민한 녀석들이라면 아무리 투란의 행동이 빠르다고 해도 땅거죽의 색이 뒤집힌 꼴을 보고 땅을 파보기라도 하겠지만, 그런 놈들 아니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투란이기에 저지른 짓이었다.
마그마 로드의 힘으로, 땅벌레의 행동을 따라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