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
Chapter 5. 악마와 함께 혼돈을 걷는 자
투란은 생각을 멈췄다.
짧게 스쳐 가는 생각, 기억 따위에 지나치게 힘을 쏟고 있었다.
지금 해결해야 할 일을 외면하려는 것 같잖은가?
기묘하게 냉정한 판단이었지만, 투란은 이 판단을 믿었다.
보통 배가 비어서, 뭔가 먹은 지 오래되어서 느끼는 배고픔과 다르지만 이는 분명히 채워야 할 배고픔, 허기였다. 이대로 굶주림이 지속되면 더 이상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아, 그렇구나!’
투란은 새삼 알아차렸다.
얼어붙고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버텨 낸 것, 몸을 겨우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악마의 심장을 쥐어짠 덕분이었다.
첫 번째 녀석을 삼킨 두 번째가 철저하게 그 기억을 옭아냈고, 그 속에서 투란이 새롭게 염원한 바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냈다. 두 번째는 투란의 분노와 증오를 바탕으로 그 본능을 사용했다!
‘그래도 아직 제대로 생각할 정도로 얼음이 풀리지는 않았어.’
어렴풋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투란은 알 수 있었다.
몸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호수의 서리 안개 속에서 벗어나야 했고, 그러기 위해 두 팔을 움직일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리 안개를 녹이는 빛, 몇 개나 떠 있는 황금색 ‘태양’의 빛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다음에는 다른 생각을 모두 접고 일단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음, 그러니까 그게 그런 식으로 생각을 옮기는구나.’
뭐라 또박또박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투란은 악마의 심장, 그것의 본능이 만들어 내는 의식이 어떤 식으로 심장을 먹어 치운 짐승의 머릿속을 장악하는지 깨달았다.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그 생각을 머릿속에 옮겨 놓으면 되는…….
‘아, 그만! 그만!’
투란은 자신을 향해 소리 없이 외쳤다.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잖나!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는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빛과 물, 빛은 넘쳐 나지만 물은 이슬과 같이 조금씩 모일 뿐이었다.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이슬을 모은다 해도, 투란에게 제대로 된 영양분이 되지 않는다. 빛과 물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악마의 심장이고, 얼음이 풀릴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악마의 심장뿐이었다.
사람인 투란이 할 수 있는 기다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투란은 깨어나야 했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주친 곤란한 문제가 양분이었다.
사람의 몸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악마의 심장은 양분을 필요로 했다.
‘알았으니까 멈춰!’
투란은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먹을 것에 대한 다양한 자극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은 모조리 끌어다 마음속에 퍼붓는 듯한 의식의 전이를 억지로 멈추게 해야 했다.
마치 몰래 일을 저지르다가 야단맞으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묻는 듯한 낌새가 은근히 섞여 있기도 했지만.
숨을 좀 더 깊이 들이쉬면서, 가슴과 배로 이어진 언저리가 얼었다가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두 손을 눈가로 올렸다.
왼손은 펼친 채로 눈앞에서조차 여전히 허우적대는 느낌이고, 오른손은 꽉 쥔 주먹을 들이대고 있었다. 손의 살갗 위로 투명한 실그물이 미묘하게 덮인 채였다. 실그물 위에서 녹은 서리 안개의 이슬은 조금이라도 맺히면 바로 실그물로 끌려 들어가고, 그 미묘한 감각이 눈으로 보고 있는 사이에 살살 전해져 왔다.
‘뭘 쥐고 있지?’
투란은 주먹을 펴 보려 했지만, 펴지지 않았다.
아직 오른쪽 팔뚝이 얼어 있는 탓이다.
왼손으로 손가락을 당겨 펴 보려 하니, 허우적대는 움직임 때문에 꽤 어려웠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당겨 펴는 동작이 너무 어렵다는 듯, 왼손은 자꾸 엉뚱하게 움직였다.
‘야, 똑바로 해! 아무리 새 팔이라도, 새 손이라도 내가 움직이는 법을 기억하잖아!’
뭔가 화가 나서 투란은 속으로 세차게 부르짖었다.
소리 없는 그 의지에 왼팔이 반응했다.
뼈와 살을 꿰고 있었지만 그냥 고요했던 악마의 심장 줄기가 즉각 팔 안을 누볐고, 잠깐 손끝에서 어깨까지 뜨겁고 화끈한 감각이 피어났다.
‘어?’
그리고 투란은 왼손이 아주 잘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너무 잘 움직여서 이 정도면 실뜨기 기술을, 보기만 하고 제대로 못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의식 깊은 곳에서 답이 금방 올라왔다.
덩굴줄기가 투란의 기억을 팔에 투사해 버린 것이다.
팔 스스로 기억하는 바가 없는 대신, 투란의 마음이 지닌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옮겨 놓은 셈이었다.
뒷골이 후끈함을 느끼며 투란은 환호를 지를 뻔했다.
‘그렇다면 머리도…… 응? 안 되는구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도 온전하게 재생할 수 있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의 심장이 꽤 커야 했다. 사람의 생각, 의식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악마의 심장도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한계가 있었다.
‘꽤나 커야 하나.’
어렴풋이 멀리서 보듯,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 속에서 투란은 사람의 기억을 마음에서 퍼내 투영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란 사실도.
‘뭘 쥐고 있나부터 보자!’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투란은 고집스럽게 쥐어진 오른손을 왼손으로 더듬었다.
차가움이 가장 먼저 왼손을 움찔하게 했다.
어설프게 허우적대던 움직임이 사라진 왼손이 상당히 예민해진 덕분이 겨우 느끼게 된 차가움이었다.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여전히 얼어 있었다. 손목을 움직이고 팔뚝을 움직이는 데는 주먹을 쥐었든 아니든 상관이 없으니, 딱히 그 상태를 풀어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투란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쓰다듬으면서 손가락을 폈다.
왼손의 온기가 오른손에 전해져 아주 적극적으로 파고들며 오른손도 이내 주먹을 풀었다.
‘이것 봐라?’
투란에게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왼손에 뜨거운 물수건 같은 게 붙어 있다가 오른손의 차가운 물수건을 데워 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데워진 오른손의 물수건은 그저 따듯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빛을 당겨 뼛속까지 따스함을 삼키려 했다.
‘응?’
색다르고 신기한 느낌 속에 보인 손바닥, 샤벨투스의 이빨이 말랑하게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꼴로 붙어 있었다.
피를 머금으면 단도만큼 커지지만 물을 먹이고 피를 빼면 작아진다. 그렇다고 이렇게 작아지고 말랑해지지는 않을 텐데……?
슬쩍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밀어 보다가 투란은 알아차렸다.
샤벨투스의 이빨 속으로 악마의 심장이 정말 미세한 실 가닥을 밀어 넣은 채였다.
그렇게 해서 티끌보다 작은 피톨까지 모조리 빼돌린 것이다!
아마 그 이빨이 샤벨투스의 잇몸에 박혀 있을 때조차 겪지 못한 꼴일 터였다.
‘이렇게 되는 거였어?’
샤벨투스의 이빨을 사람이 쓸 수 있는 꼴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늘과 실로 정교하게 다뤄야 한다고 들었다. 그 세공이 쉽지 않아서 나름 귀한 것으로 쳐준다 하잖던가.
악마의 심장이 뻗은 미세한 덩굴줄기는 그런 한계를 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투란의 손바닥에 붙은 이빨은 말랑하니 바람만 삼킨 꼴이었다.
‘이 바람도 빼 버리면……?’
투란은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말랑한 이빨을 좀 더 누르며 가볍게 생각했고, 이빨 속의 넝쿨, 손끝의 줄기가 바로 그 생각을 실천했다.
작고 말랑하면서도 도톰하던 이빨이 납작해졌다. 완전히 마른 육포처럼, 그 육포를 아주 잘게 저며 놓은 것처럼 납작하게!
‘허?’
입안에서 숨결이 새 나오지는 않았지만, 투란은 놀란 기분을 품어야 했다.
이 정도 얇다면 살갗에 붙여 놓거나, 재주 있으면 살갗 속에 살짝 숨겨도 되잖나? 물론 사람의 살갗이 무슨 주머니쥐처럼 따로 열린 주머니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안 될 것 있나?’
투란은 투명하게 살갗을 덮은 악마의 심장에서 나온 덩굴줄기의 실그물을 느끼며, 보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따라, 덩굴줄기가 이빨에서 한 줌의 바람마저 빼낸 것처럼 호응할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틈새에 얇은 살갗의 층이 한 겹 더 생겨났다.
손등으로 이어진 얇은 주머니가 생긴 것처럼!
아주 얇아진 이빨이 그리로 가볍게 들어갔다.
여전히 손목에는 샤오콴 마을의 고목에서 뽑아낸 실 가닥이 엮여 있는데!
‘얼레? 이것도?’
투란은 고목의 실 틈새로 스며든 덩굴줄기를 알아차렸다.
고목의 실을 무슨 굵은 밧줄처럼 여기며, 그 틈새로 엮여 들어간 악마의 심장이 자아낸 실그물이었다. 원래 살갗과 맞닿은 고목의 실을 따라가서 결국 이빨 안까지 스며든 모양이었다. 방금은 굳이 그 경로를 따르지 않고 이빨 표면을 덮은 실그물에 직접 접촉한 것이고.
문득 투란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덮은 얇은 실그물이 생각보다 방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뿐 아니라 그가 몸에 두른 것까지 참으로 넓게 포용하고 있는 꼴이었다.
‘밀포 주머니까지 지켜 줬으면…….’
아쉬움이 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주머니가 찢겨 나갔을 때는 투란이 아직 악마의 심장을 갖기 전이었다.
그 뒤로 버텨 준 것만으로도 벌거숭이 꼴은 면했으니 다행이잖은가?
‘풋!’
투란은 마음속에 웃음을 품었다.
지금 벌거숭이 꼴을 걱정할 때는 아니잖나?
뭔가 여유가 생긴 듯한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만지작대던 이빨도 겹을 이룬 살갗 속에 담았으니 이젠 정말 뭔가 먹을 것을 찾아하는데, 허리 아래는 아직 녹지 않았고 가슴 깊이 묻힌 심장도 여전히 반은 언 채였다.
‘정말 가죽이라도 뜯어 먹…… 엥?’
배고픈 몬스터 헌터가 가죽 장비를 잘라 먹었다는 이야기는 투란이 흔히 듣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별 쓸모가 없다 여겼는데…….
오른쪽 손목에서 팔뚝까지를 감쌌던 보호대가 반 정도는 긁히고 찢겨 나갔지만 반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바보구나, 나.’
가만히 살피니, 가죽 보호대 또한 넝쿨의 줄기가 스며들어 묶어 놓은 듯했다.
투란은 왼손을 날렵하게 움직여 오른팔의 가죽 보호대를 풀어냈다. 언 부분은 손으로 녹이며, 살짝 엮인 넝쿨과 호응해 더 빠르게 녹이고 생겨난 이슬을 삼키며 풀어냈다. 그리고 돌돌 말았다.
이제 제대로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목을 주무르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얼어서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곳을 샅샅이 더듬으면서 천천히 머리를 뒤로 젖혔다. 살짝 뒷목의 차가운 부분이 뽀드득거린다는 느낌을 받고, 목구멍을 똑바로 뚫은 것처럼 가슴속으로 통하게 입을 열었다.
왼손이 말아 놓은 가죽 보호대가 통처럼 목구멍으로 곧장 넣어졌다.
투란은 뱀이 먹이를 삼킬 때를 떠올리며 그대로 따라 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입에서 목구멍까지 곧장 닿았지만 뭔가를 삼킬 힘이 없는 무기력한 입이 제대로 반응을 못했으니, 깨물고 씹으려 했다면 먼저 지쳐 버렸을지도 몰랐다!
투란은 결국 두 손으로 목을 문지르며 혀를 당기고 턱까지 비비적대 움직이고서야 겨우 가죽 보호대를 넘길 수 있었다. 뱀이라면 그냥 꿀렁꿀렁 몸을 움직이고 말 것을, 두 손을 다 써서 따라 한 셈이었다.
‘삼켰다! 그러니 움직여!’
자신을 향해, 악마의 심장을 향해 투란은 외쳤다.
그 외침을 따라 위장이 경련을 일으키며 몸속의 물을 끌어모았다. 큰 주머니가 바싹 조여지듯 위장이 조여졌고, 투란은 자신이 뭔가 삼킨 다음의 소화 과정을 제대로 구경했다!
투란이 구경한 것은 단순히 사람의 위장이 보이는 활동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엮인 악마의 심장, 몬스터의 능력까지 포함되었다.
고삐가 풀린 맹수처럼,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내장에 간섭했고 본래라면 있을 리가 없는 강한 소화력을 발휘해서 가죽 보호대를 순식간에 죽으로 만들어 양분으로 흡수했다.
투란은 이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봤고, 기억했다.
그 마지막 단계인 양분을 몸으로 퍼뜨린 다음 멈추는 것까지.
‘아, 여기서부터는 얼음이 된 심장이 풀려야 하나?’
살짝 의문이 들었고, 투란은 이를 몬스터 로드로서 해결했다.
위장의 껍질 속에 적당한 크기의 구근을 형성하고 맹렬하게 맥동시켜 닿는 곳까지 모두 양분을 퍼뜨린 것이다!
얼어붙은 심장, 겨우 그 냉기에서 풀려난 반쪽이 여기에 바로 반응했다.
눈동자로 이어진 투명한 줄기 가닥이 굵어지고 커지며 눈가에 맺히는 빛을 모두 심장 쪽에 직접 쏟아붓는 통로가 되었고, 위장에서 생겨난 양분은 심장이 보다 사납게 얼음 상태를 공략하게 했다.
쿠웅, 콰앙.
심장은 두근거림을 무슨 거대한 북을 치는 듯한 반향으로 들려줬다. 몸속에서 들려온 그 소리와 함께 투란은 보다 선명하게 정신이 드는 것을 느끼며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몸을 제대로 녹일 때였고, 가죽 복대와 발에 붙은 장화를 먹어 치워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