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2)
“미쳤냐!”
꽥, 비명처럼 자신을 향해 고함을 지르면서 투란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른 감정이 투란의 생각을 막고 끊어버린 탓이었다.
왜 자신이 여기서 목숨을 걸고 쓸데없는 도박을 해야 하는가?
파이로-칸과 붉은 그랑츄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인가?
알면 좋고, 모른다고 해도 별 상관없잖나!
자신에게는 마그마 로드가 있는데!
한순간에 가슴에서 벅차오르고 뇌리를 파고들며 다시 이어진 생각이었다. 마치 결정을 내린 다음에 거기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처럼, 투란의 감정이 줄줄이 쏟아부은 판단이었고, 결론이었다.
투란은 이를 받아들여 행동했고, 결심하고 있었다.
검은 재가 불티를 흘리면서 투란의 주변을 맴돌았고, 투란의 손끝은 날카로운 흑요석의 단검처럼 손톱을 뿜어냈다. 튀어나가는 순간, 붉은 그랑츄의 발로 내리찍은 자리가 가볍게 패이면 투란은 이미 파이로-칸의 주먹 아래를 지나 가슴에 붙은 채였기에 흑요석의 손톱은 그 가슴에 그대로 찍혀 들어갔다.
순간, 파이로-칸의 몸에서 불꽃이 작열(灼熱)하듯이 피어올랐고, 회오리 같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 속에서 불티가 퍼져 나오고, 검은 재가 안개처럼 뭉클거리며 뿌려졌다.
파이로-칸에게 달려들던 붉은 그랑츄의 살갗이 더욱 붉어졌고, 거뭇하게 돋아 있는 털들이 모두 붉게 달아오른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바로 붉은 그랑츄 무리를 당혹해서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울타리 안, 파이로-칸이 들어와 차지한 자리 주변으로 고열(高熱)의 파동(波動)이 채워졌다.
그륵, 크르르.
돌과 돌이 마찰하면서도 부드럽게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워엇!
파이로-칸이 격노와 고통을 동시에 드러내는 듯한 괴성을 질렀다.
그워어―! 그워어어어어―!
터져 나오는 열기에 대해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뒤늦게 감상이라도 토하는 듯한 붉은 그랑츄의 함성이 합창처럼 울려 퍼졌다. 마치 누가 이기든 상관없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놈이든 갖고 있으면 괜찮다는 듯!
그 속에서 투란은 싸웠다.
아주 잠깐이라도 고작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건 자신을 내다 버리듯, 강력한 몬스터 로드라면 그런 호기심을 어떻게 충족하는가를 실험하듯…… 파이로-칸의 가슴을 가르고 열어젖히며 그 뼈와 살 속에 마그마의 주먹, 용암의 손길을 쏟아부으면서 날뛰었다.
그리고 파이로-칸은…….
‘엘레멘탈 볼텍스’, 세계의 근원을 형성하는 최초의 성질을 간직했다는 정령과 물질의 경계에 놓여 있다는 ‘엘레멘트’의 힘을 나선의 흐름 속에 압축해 간직한 힘은 파이로-칸의 근본이었고, 이를 불꽃의 근원을 휘몰아 움직이는 형태가 ‘엘레멘탈 볼텍스’였다.
파이로-칸은 그런 ‘엘레멘탈 볼텍스’로 몸 안을 구성하고 있었다.
내장이나, 뼈대 따위는 그저 그랑츄의 형상으로부터 이어받았을 뿐이라는 듯…… 용암이 쳐들어오고 마그마가 격돌하며 으스러지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은 채, ‘엘레멘탈 볼텍스’는 파이로-칸의 내부에서 침입자를 자신의 궤적 안으로 끌어당기며 그 뜨거움을 집어삼켜 버리려 했다.
그 와중에 곁들여진 단단하고 딱딱한 것은 집약된 불꽃의 힘이 그대로 녹여 흐름 안으로 삼키거나 그대로 증화(烝化)시켜 버린다!
그렇게 해서 빈자리로는 불꽃이 녹아 흐르듯이 채워지며 새롭게 내장과 뼈대를 형성시켜나가는 광경…….
‘아아,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었구나. 그 말이 이런 뜻이었어.’
투란은 깨닫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설명했던 괴상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지금 투란이 보고 느끼는 파이로-칸의 실체였다.
오러 몽거의 변종, 그러나 오러라는 생명의 힘을 불꽃의 엘레멘탈로 대체한 놈…… 그것이 바로 파이로-칸이었다. 그 몸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형태는 그랑츄에게서 확장되어 나온 듯하지만, 그 바탕은 완전하게 녹아흐르는 듯한 불꽃의 소용돌이인 괴물!
그리고 투란은 바로 느끼며 알 수 있었다.
마그마 로드가 어떻게 이 녀석의 형상을 빌린 주먹을 지녔는가를!
어떻게 파이로-칸을 녹여 삼켰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쿠우웅, 콰앙!
느리고 무거운 소리가 울리는가 싶은 순간, 격렬하고 폭발적인 소리가 겹쳐졌다.
폭음의 중심에서는 붉고 검은 기둥이 뾰족하게 치솟았다.
검은 바탕에서 일렁거리며 흘러내리는 붉은빛은 녹아 흐르는 용암이었고, 검은 바위로 이뤄진 기둥은 그 열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축이었다.
붉은 그랑츄 무리가 멈춰진 채로 당황하는 듯한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자신들이 찾아 헤매던 뜨거운 것이 보금자리 한복판에 그 파괴적인 형상을 거침없이 드러냈으므로!
그러나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치솟았던 기둥은 잠시 그 위용을 뽐내듯이 서 있다가 땅을 꿰뚫듯이 내리찍혔다.
소리 없이 격렬하게 출렁인 땅의 파문이 울타리를 무너뜨렸고, 붉은 그랑츄 무리를 모조리 나뒹굴게 했다. 그 출렁임을 덮어버리는 듯한 용암의 노도가 곧이어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듯이 번져 나왔다.
붉은 그랑츄 무리는 용암에 휩쓸렸고, 용암의 격류를 채우듯이 생겨난 검은 암석의 조각과 섞이듯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용암이 일으킨 동심원은 새롭게 검은 울타리를 그리듯이 굳어져 갔다.
검은 울타리를 장식하는 붉은 넝쿨처럼 용암의 가닥, 마그마의 얇은 금이 그어지고 나서야 출렁거리던 파문이 멈춰졌다.
이 새로운 울타리의 중심, 기둥이 내리박힌 자리는 깊은 구덩이처럼 파여 들어간 채였고 삐죽한 기둥이 한복판을 채우듯이 꽂힌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의 중심에서는…….
‘아케인 포스로도 되는구나.’
황금빛의 소용돌이로 이뤄진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듯,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찰랑이는 황금빛으로 티끌조차 들락일 틈새도 남겨놓지 않고 뒤집어쓴 듯한 괴인(怪人)의 모습을 한 채로 투란은 파이로-칸의 가슴팍에 우뚝 서 있었다.
파이로-칸은 손발, 팔다리, 몸통의 곳곳에 가늘고 긴 검은 바늘을 잔뜩 꼽은 듯한 모습으로 바닥에 박힌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투란의 황금빛으로 채워진 듯한 눈알이 살짝 굴렀고, 사방을 둥글게 감은 채로 위로 좁혀들어가는 마그마 로드로 이뤄진 원뿔 구조의 안쪽을 둘러봤다. 아직은 분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티를 내듯, 마그마 로드는 충실하게 투란이 지정한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느껴지네.’
투란은 마그마 로드에게서 자신의 고유 마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그마 로드의 괴력을 타고 흐르며, 투란의 마음을 반영한 채 움직이는 고유 마력…… 이 광경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투란으로서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일단 투란에게서 분리된 고유 마력이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었고, 투란이라는 뿌리에게서 떨어진 채로 독립한 몬스터가 언제까지 투란의 의지를 따를지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으므로!
그나마 투란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위험성을 아는 것도 모두 ‘천칭’을 통해 익히고 터득한 방법이었으니…… 누가 곁에 있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빠르게!’
투란은 파이로-칸을 향해 황금빛으로 휘감긴 손을 내밀며 몸을 숙였다.
‘천칭’이었다면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한 채로 삼켰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투란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마그마 로드를 잠시 독립된 형상으로 둔 채,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몬스터 엠블럼으로 사로잡은 파이로-칸을 재빨리 삼키고 다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회수하는 것.
그러나 이런 마그마 로드로 휩싸인 환경에서 투란이 사람의 모습으로 버틸 수는 없었다. 당장 짙은 열기만으로도 사람의 맨살은 순식간에 찜 쪄진 고기 꼴이 될 판이다. 오러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오러의 힘을 끌어내려 하니 아케인 포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듯 바로 뿜어져 나왔다.
한데 그렇게 뿜어져 나온 아케인 포스는 바로 투란의 심상을 따르며, 투란이 오러로 하려던 일을 고스란히 해내고 있었다. 황금매의 문장이 선명하게 투란의 가슴에서 빛을 뿜어내는 상황에서!
투란에게는 어쩌면 이것이 이 황금매의 문장이 지닌 진짜 목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갔지만…… 지금 따질 때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필요했고, 그래서 투란은 주저 없이 파이로-칸을 향해 문장을 열고 마력을 금전처럼 굴려냈다. 황금빛의 두 손이 파이로-칸을 꽉 움켜쥐면서, 두 발로도 그 가슴을 단단히 딛고 굽힌 투란의 모습은 더욱 강렬한 황금의 마력을 뿜어냈다.
순간, 투란의 마음이 비워졌다.
누군가 자신을 엿본다는 생각도, 자신이 ‘천칭’으로 하던 짓을 황금매로 시도한다는 것도, 삼키려는 것이 이미 품고 있는 마그마 로드보다 약하다는 것도…… 모든 생각이 지금 당장 이놈을 삼킨다라는 한 가지로 집결되는 듯했다.
이는 황금매의 문장을 보다 강렬하게 울게 했다.
문장이 담고 있는 황금의 마력이 곧바로 몬스터 엠블럼의 본성을 깨우듯이 강하게 투란의 고유 마력을 자극했고, 분리된 마그마 로드가 이에 호응하듯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마력을 공명시켜줬다.
파이로-칸은 이렇게 공명된 마력의 폭풍에 순식간에 으스러지듯, 투명하고 맑은 금빛으로 흩어져 갔다.
남은 것은 투란의 두 손이 고이 받쳐 들 듯이 담고 있는 한 닢의 금전(金錢).
빛으로 이뤄진 금전이 곧바로 투란의 가슴으로 옮겨졌고, 돌출되어 나온 황금매가 이를 냉큼 발톱으로 낚아채며 입으로 삼켜갔다.
‘엥?’
투란은 자신의 집중된 생각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고…….
콰아아아―!
마그마 로드는 볼일 다 봤다는 듯이 투란을 향해 붉은 줄기에 휘감긴 둔탁한 검은 암석의 가지를 뻗었다. 그 속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 고유 마력이 투란의 정신을 맑게 했고, 손을 내밀게 했다.
검은 암석과 투란의 손이 만나는 순간, 암석은 녹아 흐르며 바로 투란의 황금빛 껍질 속으로 스며왔다.
‘아―! 다 잡았었지.’
닿는 순간, 투란은 마그마 로드가 붉은 그랑츄의 부락을 완전 제압한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깨달았다. 이는 바로 황금빛으로 휩싸인 투란의 입매를 뒤틀게 했고, 누가 보면 무섭다 할 웃음을 머금게 했다.
원뿔의 형체가 사라졌고, 투란의 황금빛 형상이 다시 하늘 아래에 섰다.
잠시 투란은 하늘을 올려다봤고, 느낄 수 있었다.
‘온다…… 하지만 좀 머네.’
자신을 엿보려 한 자, 황금의 마력에 미묘하게 공명하는 자들…….
이전에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 다르게 아케인 포스로 온몸을 감싼 채인 지금, 투란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혹은 황금매를 쫓는 자들이 이전보다 더 가까워진 탓에 아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투란은 상관없었다.
이곳에서 그들을 마주할 것이므로!
투란은 한 걸음 디뎠고, 아직 회수하지 않은 채인 마그마 로드와 자신을 이어주는 고유 마력을 보다 세차게 공명시켰다.
그웍? 그워어어― 그르륵!
마그마 로드에게 붙들려, 용암과 검은 암석에 휘감긴 채로 파묻힌 꼴임에도 아직 살아 있는 강인한 붉은 그랑츄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좋아, 그 정도는 돼야지!’
황금빛 얼굴에 섬뜩한 웃음이 흘렀고, 투란은 자신과 공명하는 마그마 로드를 밟으며 움직였다. 그 걸음에 따라서 맑고 투명한 금빛의 바람결이 곳곳에서 피어올랐고, 붉은 그랑츄의 형체가 사라져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좋아, 다 왔어! 저기야!”
“그래, 언덕만 넘으면…….”
등 뒤에서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듯, 앞장선 사람이 가늘고 호리호리하면서 굴곡이 있는 몸을 내던지듯이 언덕을 뛰어 올라섰다.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는 걸음으로 먼저 언덕을 점령한 듯한데, 올라서자마자 멈추고 말았다.
그 광경을 향해 뒤에서 따로 오며 떠들던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연다.
“보여?”
“누나, 뭐가 있어?”
하지만 누나라 불린 사람, 선두에 섰던 여자가 뭐라 답하기 전에 둘은 이미 그 곁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리고 곧장 누나가 멈춰서 조용해진 까닭을 알아차린 듯, 둘도 고요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셋이 언덕에 멈췄을 때, 두 사람이 더 그들 곁으로 올라섰다.
“뭔가? 응?”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새로 올라선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나온다.
“아, 이게…….”
앞선 침묵을 이해한 듯, 놀라던 소리가 잦아들었고 흐려졌다.
그들이 바라보는 언덕 아래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