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3)
동심원을 그려내고 있는 많은 검은 울타리가 점점 더 깊이 가라앉은 중심을 향해 고개 숙인 파도처럼 기울어진 광경이었다. 언덕은 그 결과로 주변보다 더 치솟은 채인 듯했고, 저 풍경을 보호하려는 듯이 자리 잡은 모양을 한 채였다.
때문에 그 언덕에 선 일행에게는 이 광경이 마치 둥글게 쌓인 성벽처럼 보였다.
성의 중심에 우뚝 선 이를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서, 대지가 그 검은 뼈를 뿜어내 세워놓은 성벽.
“오우거?”
중얼거림이 일행 중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그랑츄다.”
냉정한 목소리가 대꾸했다.
그리고 바로 반박하는 소리가 처음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3미터는 될 것 같은데요!”
한숨처럼 다시 냉정한 목소리가 대답을 한다.
“2미터 80이다. 엘리트 그랑츄라면 가능한 체격이야.”
“엘리트……!”
오우거란 말을 꺼냈던 이를 대신하듯, 다른 목소리가 신음처럼 냉정한 목소리가 강조하는 바를 되새기듯 읊었다.
“이제 어쩌죠?”
또 다른 목소리가 낮게 냉정한 목소리를 향해 묻는 듯한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울리기 전, 다급한 기색을 띤 채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울린다.
“어? 누나!”
“뭐 하는 거야!”
“시알라 누나! 멈춰!”
“누나!”
냉정한 목소리만이 이 급박한 소리 중에서 빠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급한 소리를 모두 외면한 채로, 맨 처음 언덕에 올랐던 시알라는 등을 보이고 선 엘리트 그랑츄, 붉은 살갗을 햇살 아래 익혀진 듯이 드러낸 채로 허리 아래를 검은 털가죽으로 반바지처럼 감고 있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시알라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한 채로, 검은 바위의 울타리 위로 뛰어올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세란드! 세란드 오라버니!”
투란은 기척이 등 쪽에서 난 것이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타나는 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예정이었는데, 기다리다가 심심해져서 잠깐 일어서 제자리에서 맴도는 사이에 뒤편에 저 일행이 나타난 것이다. 투란에게는 그저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젠장, 아직 감각이 익숙하지가 않네. 분명히 이쪽에서 오는가 싶었는데…….’
미묘한 땅울림, 이를 몸으로 감지하면서 나타나는 방향을 예측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바닥에 희미하게 깔려 있는 검은 재, 블랙 애시는 여전히 제멋대로인 감각을 과시하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했으니…… 아직은 블랙 애시의 감각에 의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투란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단 저쪽 일행이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낸 다음에는 제법 그럴듯하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붉은 그랑츄의 감각은 의외로 주변의 열원(熱源)에 아주 민감했고, 사람의 체온과 적당히 달아오른 돌의 온도가 비슷하다 해도 다른 것을 충분히 분별해낼 수가 있었다.
‘뭐, 이건 파이로-칸 쪽의 감각에 가까우려나.’
강인한 붉은 그랑츄를 잔뜩 삼키면서, 투란은 그 속에서 파이로-칸의 가능성을 더듬었고 이는 곧 붉은 그랑츄의 에센스를 들쑤셔서 한층 더 강력한 형상을 얻게 했다. 마치 저 늪 깊은 곳에서 늑대와 홀로 싸웠던 잿빛바위의 그랑츄처럼…….
이렇게 나타난 일행을 향해 돌아서기 전에 시치미를 떼고, 나름대로 저쪽이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가를 엿듣고 가늠해보려 하던 중인데 한 명이 앞으로 거침없이 내달려 오면서 외치고 있었다.
‘세란드? 그게 누구―!’
* * *
―시알라!
‘응?’
아련하게 황금의 반구 속을 울리는 외침이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너무 의아해서 느닷없이 이 풍경 속으로 마음이 당겨질 정도였다!
어렴풋이 저쪽에서 누군가 ‘시알라’란 이름을 부르며 뭐라 한 것이 기억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묘하게 황금의 마력이 꿈틀거리기는 한 것 같지만, 이렇게 풍경 속으로 당겨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저 일행이 투란을 얼마 동안 자극한 마력을 지녔다는 것만 확인한 수준이었다.
한데 지금 그냥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는 이 상황은 뭔가?
―시알라! 시알라!
게다가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투란은 이게 누구의 외침인가, 점점 커져 가는 반향을 느끼면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망령? 저게 왜 갑자기?’
* * *
“오라버니! 세란드!”
격렬하게 외치면서 다가오는 이를 향해 붉은 그랑츄―엘리트 그랑츄라 일컬어지는 몬스터의 형상이 돌아섰다.
마치 누굴 부르며 찾는가 궁금해하듯, 혹은 부르는 소리에 호응하듯…….
그랑츄 얼굴의 붉은 살갗이 살짝 일그러졌고, 그 입에서 깊고 낮은 소리가 뒤틀린 채로 흘러나온다.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다가오는 시알라가 꺼내지 않은 이름들, 그리고 저편에서 속삭여지지 않은 이름들이 붉은 그랑츄의 입에서 뒤틀린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에?’
투란에게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 * *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
‘닥쳐!’
투란은 미쳐 날뛰는 낌새를 보이는 망령을 향해 강렬한 의지로 외쳤다.
아늑하고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온 소리에 이렇게 투란이 대항하는 순간, 투란은 문장 깊은 곳에 가라앉은 영역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황금매의 문장과 함께 얻은 괴물, 하얀 녀석의 영역 안에 투란의 마음이 깃들어 버린 듯했다.
그런 투란을 향해 망령이 하얀 괴물을 억누르는 금제(金製) 우리에서 튀어나와 허리 아래가 없이, 허리 위만 사람인 듯이 뒤엉긴 금빛 안개인 꼴을 한 채로 떠들고 있었다.
그 망령의 느닷없는 활동이 바로 몬스터의 형상 속으로 투영되면서 붉은 그랑츄의 입이 멋대로 말을 토해낸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폭동…….
몬스터 로드의 의지를 벗어난 몬스터의 형상이 날뛰는 꼴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
이렇게 문장의 풍경 속에서, 깊이 가라앉은 채인 하얀 녀석의 영역으로 억지로 마음이 끌려 들어온 것조차 투란에게는 좋은 현상이라 할 수가 없었다. 이는 몬스터가 몬스터 로드의 의지를 억누르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하지만 투란이 하얀 녀석과 망령을 향해 의지를 발하는 순간, 문장의 풍경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바로 투란의 마음이 그 변화를 향해 움직였고…….
문장의 입구를 가로막으며 채우고 있던, 별빛 같던 금색 격자가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투란은 바로 마음을 가다듬었고, 새로운 금색 격자를 한 겹 더 둘러치면서 곧장 문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야 했다.
‘젠장, 안팎으로 난장판이잖아!’
* * *
시알라의 모습이 조금 전과 달랐다.
돌 울타리를 밟으며 뛰어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는 공중을 부유하며 둥실거리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하던 외침도 멈춘 채였다.
그리고 그런 시알라의 곁에는 조금 전까지 언덕 위에서 누나라고 소리치던 셋이 함께 둥실거리는 중이었다.
오직 한 사람, 냉정한 목소리를 대던 이가 마법의 빛이 서린 지팡이를 높이 치켜올린 채로 여전히 언덕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냉정함이 아니라 들뜬 목소리로 외치면서…….
“으하핫, 세란드! 세란드여, 성공했더냐! 내 몸 하나를 부셔버리더니, 완전한 몬스터 엠블럼을 각성시켰나! 으하핫! 기쁘구나, 세란드여! 진심으로 기쁘다! 으하핫.”
도무지 투란에게는 저게 뭔 말인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혼자 좋아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일은 시알라와 나머지 녀석들의 꼴이었다.
무슨 괴담(怪談)에나 나오는 떠도는 유령처럼, 투란 앞쪽 허공에서 떠돌고 있는데 그 가슴팍에서 선명하게 흘러나오는 황금빛의 끈이 바람결을 타듯이 살랑거리며 투란의 주변을 감싸는 꼴을 만들고 있잖은가.
어떻게 봐도 이 황금빛의 끈은 투란을 감금하려는 듯이 느껴졌고, 아이들이 장난삼아 그려놓는 땅바닥의 그림처럼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이 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애들 장난처럼 외치듯이…….
‘이거 장난 아닌데?’
투란은 황금빛의 끈이 저 넷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인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정말로 자신을 이 끈의 안쪽에 가두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끈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빛줄기가 새삼 투란의 가슴, 붉은 그랑츄의 형상 위로 드리워지며 투란이 지닌 황금매의 문장을 자극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 자극은 금세 투란을 다시 문장 안의 풍경으로 이끌었고…….
* * *
―이봐, 망령. 저 마법사는 대체 뭐지?
투란의 물음이 하얀 괴물 녀석과 망령의 영역 안으로 울려 퍼졌다.
대답은 거칠게, 망령이 그 형상을 울려대는 혼란스러운 소리로 튀어나온다.
“아겔……? 어째서? 죽였어! 저놈을 죽였다고!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 왜 너희가 저 아겔과 함께 있지? 안 돼! 그러면 안 돼!”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투란으로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이라면…….
―저게…… 저 사람들이 널 날뛰게 하는 거란 이거지? 알았어, 다 없애줄게.
이렇게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확고한 의지로서, 몬스터 로드가 품은 몬스터를 자극하려는 대상을 적으로 여기며 분명하게 없애겠다고 투란이 작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망령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뭐? 없애다니, 내 동생들이야! 없애다니!”
―누가? 저기 마법사가?
투란은 지체 없이 파고드는 물음을 던졌고…….
“아겔! 저 마법사 따위가 내 동생일 리가 없잖아!”
여전히 두서없지만 망령은 대답하고 있었다.
―아, 그래…… 그러니까 네가 그 꼴로 악착같이 미련 떠는 이유란 말이지? 저기 이제 괴물이 되려는 둥실거리는 사람들이 말이야? 알았어, 깨끗하게 모두 사람인 채로 죽여줄게.
투란의 말은 나긋했고, 분명했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강렬한 마음이 새겨진 이야기는 확실하게 망령을 파고든 모양이었다.
“괴, 괴물이 된다고? 내 동생들이……?”
―너처럼, 황금매를 새겼잖아. 불완전하다고 했잖아, 바로 너가! 내게! 저들에게서 황금매와 호응하는 마력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거기 몬스터 로드로서 보여줘야 할 것은 없다. 저들은…… 네가 괴물이 된 것처럼 괴물이 될 거야. 그러니까, 사람인 채로 죽여줘야지. 그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
침착하고 분명하게 투란은 샤오콴 마을에서 보고 들은 바를 옮겼다.
몬스터와의 격렬한 투쟁,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죽음보다도 몬스터에게 홀리는 일이었다. 몬스터에게 홀려 그 지배를 받은 채로 미쳐서 보이는 꼴, 그건 정말 죽는 것보다도 싫다고 했다.
때문에 몬스터에게 당해서 그런 몰골이 될 듯하면, 아직 사람인 채로 사람의 마음을 한 그대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고…… 함께하는 동료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
그러므로, 지금 투란은 진지하고 신중하게 제안한 것이다.
망령의 미련이 되고 있는 이들, 언젠가는 괴물이 될 사람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인 채로 죽여주겠다고.
당연한 사람의 도리로서!
“아, 안 돼! 그러지 마!”
망령이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외쳤다.
투란은 잠시 이를 바라보다가, 문장의 풍경 밖으로, 그랑츄의 시야로 마음을 옮겼다.
* * *
“수확할 때가 왔다!”
마법사, 망령이 아겔이라 부른 자가 떠들고 있었다.
시알라를 비롯한 넷은 이제 투란 앞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묘한 간격을 만든 채로 투란을 향해 황금빛 그물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마치 거미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황금의 거미줄이라도 뿜어내는 광경이 아주 선명했다.
마법사 아겔이 기묘한 열기를 담아 더 큰 소리를 낸다.
“황금매가 이제 진정한 문장으로 완성될 것이야! 아하핫, 내가 해낸 거야! 이 아겔페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