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4)
‘아겔……페스?’
투란은 붉은 그랑츄의 눈으로 보고, 그 귀로 들은 이름을 되뇌며 다시 문장의 풍경으로 마음을 돌린다.
* * *
‘과연, 그렇게 된 거로군.’
투란은 침투해오는 회색의 무늬를 살피다가 알아차렸다.
그 회색은 처음에 보던 회색이 아니었다.
회색의 바탕에 금빛이 채워진 채였다. 단지 그 금빛이 아주 흐릿하고 여려서 회색이 도드라지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금빛의 끈이 입구 밖으로 이어진 광경은 곧바로 둥실거리는 네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저 마법사가 넷을 이용하고 있는 거네.’
황금의 마력을 지닌 자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법사의 마력은 회색이었고, 가슴에 황금매의 문장을 지닌 넷, 비록 불완전하고 몬스터 로드로서 문장의 공명(共鳴)을 일으키지 못하는 문장일지라도 황금의 마력을 분명히 갖춘 이는 제정신이 아닌 듯이 둥실대는 네 사람이었다.
망령이 동생들이라 부르는 넷…….
투란이 그들의 미래를 예상하며 깔끔하게 죽이겠다고 선언한 네 사람.
투란의 마음이 하얀 괴물과 망령의 영역으로 움직였다.
“내 동생들은……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괴물이 되지 않아! 괴물이 되어서는 안 돼! 그렇게 둘 수 없어!”
망령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전혀 앞뒤가 없는 어리광이었다.
저렇게 떠들어대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구할 수는 없잖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떠들기만 하는 자는 몬스터 앞에 서서는 안 된다. 그런 자는 그저 한 끼의 간식이거나, 몬스터의 장난감이 될 테니까.
게다가 망령은 저 마법사, 아겔페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다?
지금 저들을 지배하고 황금의 마력을 이용하려 드는 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까?
‘아니, 죽였다고 했잖아? 못 죽였나?’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사실은 살아 있다더라…… 몬스터 사냥에 나섰다가 흩어진 일행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기는 했다. 서로 다른 곳으로 귀환해서, 서로 갈 길 가버린 다음에는 정말 그냥 죽은 줄 알고 몇 년을 보내고 만나서 놀랄 수도 있었다. 혹은 아예 뒤에 만나지 못해 계속 죽었다고 여길 수도 있고!
‘이놈의 망령, 도대체 설명을 못 하네.’
투란은 잠시 망령이 다시 저들의 이름을 외쳐대면서 안 된다고 울부짖는 꼴을 보다가 툭 한마디 던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나마 이 망령이 제정신을 차려준다면 도움이 되겠거니 하며…….
―구할 방법이 있나? 괴물이 되지 않게, 저 마법사의 수작에서 구할 수 있어?
망령의 형체가 금빛 안개에서 금덩이가 된 듯했다.
한순간에 흩어진 채로 방황하던 모습이 또렷하게 금으로 조각한 듯한 형체로 변해버린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망령의 눈빛이 주변을 훑으면서, 보이지 않는 투란을 찾듯이 더듬으면서 말한다.
“황금매! 황금매가 완전한 몬스터 엠블럼이 된다면, 괴물이 되지 않아! 황금매가 완전한 문장이 된다면 저 마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 구해낼 수 있어! 완전한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라면, 저 애들을…… 내 동생들을 구해낼 수 있어!”
―흐음?
투란은 망령이 느닷없이 또렷하게 하는 말과 마법사가 미쳐 웃는 꼴로 하는 말이 공유하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한 황금매의 문장, 완성된 문장…….
* * *
꽈드득!
손끝과 발끝에 힘이 들어간 순간, 강철처럼 단단한 밧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 그랑츄의 팔다리가 웅크리듯이 반쯤 굽혀졌다.
그워어어―!
붉은 그랑츄의 괴성은 주변을 맴도는 황금빛 그물, 끈과 안개의 가닥들을 강렬하게 진동시키며 밀려나게 했다. 몬스터의 괴력이 마력에 저항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드러난 광경이었다.
이는 바로 둥실거리며 떠 있는 네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먼저 시알라의 입이 가는 소리를 낸다.
“오라버니…….”
그리고 어리둥절하다가 시알라의 소리에 자극받은 듯…….
“형…….”
“세란드 형.”
“흐어…….”
힘겨운 소리가 둥실거리는 나머지에게서 한마디씩 새 나왔다.
붉은 그랑츄의 눈알 위로 퍼릇한 빛의 고리처럼 보이는 눈동자가 움직였다.
둥실거리는 넷을 스쳐 간 눈길은 바로 마법사를 향했고…….
“크흣, 과연 몬스터의 항마력이로군! 하지만 소용없다! 그 몬스터를 이루는 것은 황금매의 문장이며, 내가 바로 황금매의 창조자! 내가 바로 황금매의 진정한 주인이다! 아하핫, 세란드여…… 너는 나를 죽일 수 없고, 나를 거역할 수도 없다! 그만 굴복해라, 나의 종이여!”
지팡이 끝에서 타오르는 듯이 선명한 회색의 광채가 뿜어졌다.
회색은 곧 시알라를 비롯한 네 사람을 스쳤고, 황금빛 끈과 엉겼다.
회색과 황금빛의 뒤엉긴 색채로 물들여진 끈과 안개, 그물의 혼합된 그림이 붉은 그랑츄 주변에 채워진 듯했고…… 곧 붉은 그랑츄의 2미터 80센티에 달하는 거체를 덮어씌웠다.
이번에는 주변을 맴도는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붉은 살갗을 물들이려는 듯이 달라붙고 있었다. 그 힘에 억눌리는 듯 붉은 그랑츄는 서서히 굳어져 가는데…….
그 와중에 투란은 마법사의 몇 마디를 되풀이하며 되뇐다.
‘창조자? 주인? 종이라고?’
* * *
―뭐라는 거야, 저 마법사?
하얀 괴물의 영역 위로 되뇜과 함께 의아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하얀 괴물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죽여! 죽였다! 죽었어! 왜 살아 있는 거냐! 죽여버리겠다!”
아주 단순한 살의(殺意)가 괴물의 포효 속에서 선명한 낱말로 드러났다.
망령의 금빛 형상, 그 앞에 자물쇠처럼 어슬렁대던 사람의 모습이 그 포효와 함께 흐릿해졌다. 그러나 그 흐릿한 형상 속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층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구해야 해! 구할 수 있어! 내 동생들…… 구해낼 수 있어!”
투란은 잠시 뒤죽박죽이면서도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망령과 하얀 괴물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했다. 마법사의 수작이 바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입구의 풍경을 봐야 했으니…….
‘점점 짙어지네.’
회색의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마법사의 기척도 한층 더 뚜렷해지는 것이 투란에게는 아주 거슬리는 광경이었다. 이 풍경, 이 문장의 풍경 속에 몬스터 로드가 아닌 자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 삼킨 몬스터와 몬스터 로드만의 풍경이어야 할 곳이 이렇게 침범당하는 것이 투란은 불쾌함과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이래서 괴물이 된 건가.’
문득 투란은 저 하얀 괴물 녀석과 망령도 이런 일을 겪었을까 생각했고, 그렇다면 차라리 괴물이 되어 마법사에게 맞서는 쪽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어쩌면 정말 이런 까닭으로 저렇게 된 것일 수도 있잖은가?
이 생각은 곧장 투란을 하얀 괴물 앞으로 이끌었고, 금빛으로 찰랑이며 엉긴 꼴인 망령을 지켜보게 했다.
둘은 여전했다.
살의(殺意)를 뿜어내는 하얀 괴물.
자신의 피붙이를 구해야 한다는 망령.
문제는 둘이 떠들고는 있는데, 어느 쪽도 답이 없다는 점이었다.
투란에게는 이 또한 거슬리는 일이었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군…… 그냥 엎어져 있어라. 내가 알아서 하지.
망령과 하얀 괴물이 고요해졌다.
마치 투란에게 대체 뭘 하겠냐고 되묻는 듯한 고요함이었다.
어떻게 마법사를 죽일 것이며, 어떻게 저 넷을 구해낼 것이냐는 듯 따지는 듯한 침묵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간단히 현 상황의 해결책을 꺼내놓았다.
―저 시알라란 여자 일행을 죽이고 마법사의 곁에서 도망친다.
순간, 하얀 괴물의 으르렁거림과 망령의 절규가 무섭게 투란을 덮쳤다.
“죽여! 죽여! 죽여! 저놈을 죽여!”
“시알라를, 내 아우들을 죽이면 안 돼! 구해야 해!”
―어떻게?
투란은 간단히 반문했다.
간단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하게 상황을 짚는 의미가 함께 했다.
하얀 괴물이 죽였다던 마법사, 죽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법사를 죽일 수 있을까?
망령이 구해낼 수 있다는 시알라 일행, 하지만 대체 황금매의 문장으로 뭘 어쩌란 것인가? 저들이 지닌 불완전한 문장을 어떻게 완전하게 만든단 말인가?
색다른 침묵이 찾아왔고, 투란은 다시 입구 쪽으로 마음을 옮겼다.
짙은 회색이 새로 세운 금빛 격자를 더듬고 있었다.
거기에 새로 한 겹의 벽을 덧씌우듯이 금빛 격자를 일으키면서도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언젠가 이 풍경 전체가 회색으로 물들 수밖에 없다. 저 회색을 뿌리는 매개가 되어 주는 황금의 마력, 시알라 일행을 처리해야 했다.
‘괴물이 되기 전에, 정리해야지.’
투란은 마음을 굳혔다.
* * *
붉은 그랑츄는 더 이상 붉지 않았다.
금빛 그랑츄라 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상황에서 손가락이, 발가락이 꿈지럭거렸고 팔다리의 힘줄이 불끈불끈했다.
마법사는 이를 보며 감탄하는 소리를 토해낸다.
“대단해! 완성된 문장의 항마력이 그 정도라니! 하하핫, 세란드여…… 기억하는가? 지금 내가 쏟아붓는 마력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정도에도 넌 내게 완전히 복종했다! 이렇게 혈통(血統)을 통한 마력의 공명(共鳴)조차 필요 없었지! 이것이 바로 완성된 황금매의 힘이지! 아하핫, 느껴보니 어떤가 세란드! 이제, 내가 문장을 수확할 것이니…… 마지막으로 실컷 느껴보라! 으하핫.”
마법사의 지팡이가 더욱 짙고 세게 회색의 빛을 뿜어냈다.
회색의 태양은 아니더라도, 회색의 만월은 될 듯한 광채였다.
그 광채에 닿으면서 금빛으로 물든 그랑츄의 몸이 회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투란은 계속해서 꿈틀대는 몸짓 속에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자꾸 날 저리 부르지? 세란드라니.’
별 의미 없는 말인가 해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마법사가 저리 열심히 부르는 한마디에는 기묘한 마력도 함께 하고 있었다. 마치 그걸 기억하라고 강요하는 듯한데, 투란에게는 겨우 ‘왜?’라는 궁금함을 부르는 정도였다.
* * *
―세란드라니.
나지막한 호기심이 부른 생각은 곧바로 하얀 괴물과 망령의 영역을 거세게 울렸다. 천둥처럼, 온 세상을 누비는 메아리처럼!
이에 하얀 괴물과 망령이 동시에 반응했다.
“세란드! 그건…….”
“나다!”
―엥?
망령이 투란의 놀란 소리에 호응하듯, 선명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다시 한 번 형성하면서 외친다.
“내가 세란드다! 시알라의 오빠이고, 저 아이들의 맏형! 내가 바로 세란드다!”
바로 이 외침을 비웃는 듯, 하얀 괴물의 나직한 울음소리가 이어진다.
“인간이었을 때는 말이지. 하지만 저 마법사의 수작에 넘어가 함정에 빠진 다음에 인간이란 껍질을 버리고 거듭났다. 이렇게 진정한 자신을 찾아 마법사 아겔을 죽였지…… 그래, 이 몸이야말로 진정한 지금의 세란드지.”
―헐?
투란은 어이없는 소리를 던져야 했다.
여태 뭔 수작들을 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듣고 나니 뭔가 어렴풋하던 상황이 앞뒤가 맞춰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투란에게는 꽤나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로그 메이지의 수작에 걸려 허우적대는 꼴로 모험을 하는 몬스터 헌터, 결국은 로그 메이지의 흉계를 깨뜨리고 살아남는다는 이야기.
다만 투란과 만난 세란드는 이야기 속의 몬스터 헌터처럼 나중에 유쾌하게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할 처지가 못 된 것뿐이다.
괴물이 되어, 마법사를 죽이고, 동생들에 대한 미련으로 망령을 품은 채로 이 춤추는 산맥에서 헤매는 처지였으니까!
그리고 투란에게 삼켜진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칭얼대고만 있는 꼴이다!
‘이런 대책 없는 작자를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