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5)
죽였다는 마법사가 멀쩡하게 살아서, 세란드의 동생들, 시알라와 나머지를 이끌고 투란 앞에 나타났다. 투란을 세란드라 여기면서!
투란이 들었던 모험담에서 아주 흔한 상황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마법사가 이상한 마법으로 살아남아서 복수를 하려 하고, 그 수단으로 원수의 형제자매 같은 피붙이를 인질로 삼는 것, 가끔 연인(戀人)을 인질로 삼기도 하지만 어쨌든 마찬가지!
하얀 괴물이 아겔이라 부르고, 투란 앞에서 자신을 아겔페스라 부르며 좋아서 미쳐버린 듯한 마법사였지만…… 적어도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억누르면서 몬스터 엠블럼에 깊이 간섭하는 역량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마법사, 그 앞에 도구로 부려지고 있는 시알라 남매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괴물 두 가지나 되는 세란드에게는 기댈 수가 없었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 세란드. 나중에 차분히 처리해주지, 쓸데없는 몬스터는 치우는 것이 몬스터 로드니까.
간단히 말해둔 뒤, 투란은 다시 문장의 풍경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잠깐! 기다려! 놈을 죽인다! 죽일 수 있다! 놈이 어떻게 그 죽음을 피했는가 알아냈어! 죽일 수 있다고!”
하얀 괴물 세란드는 이렇게 말했고…….
“문장을 전이하면 된다고! 황금매의 문장을, 완전한 몬스터 엠블럼을 전이시켜주면 불완전한 황금매를 삼켜버린다! 그러면 내 동생들을 구해낼 수 있어! 괴물이 되지 않게 한다고!”
금빛 망령 세란드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래서 투란도 아주 간단하게 대꾸한다.
―내가 왜?
하얀 괴물과 망령이 동시에 의아해했다.
투란은 차가운 웃음으로 메아리를 일으키며 가볍게 말을 잇는다.
―넌 나를 돕지 않아. 나도 널 돕고 싶지 않지. 넌 내게 황금매를 심어놓고 내 문장을 사라지게 했어. 내 문장이 그대로였다면…… 이런 꼴을 겪을 필요도 없다고. 저 마법사도, 네 동생들도 이 황금매 때문에 찾아온 거잖아. 모두 없애버릴 거야. 너도 없애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뭐, 마법사는 네 손에서 도망친 것처럼 내게서도 도망칠지 모르지만…….
돌연 하얀 괴물의 눈동자에서 백금의 섬광이 피어올랐다.
“도망치게 하지 않았다. 놈은 죽었다. 갈기갈기 찢었고, 그 심장을…… 그 뼈를 씹고 뇌수를 핥아먹었다. 그래, 놈을 죽였다. 내가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놈이 나를 자기가 하는 실험의 도구로 삼았으니까!”
―저게 죽은 놈이냐? 뭔가 이상한 마법에 걸려 착각한 모양이네…… 뭐, 내게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투란은 조금 더 차갑게 대꾸했다.
금빛 망령은 묘하게 침묵했고, 하얀 괴물이 다시 으르렁거리는 낮은 소리로 말한다.
“착각하지 않았다. 저건…… 그때의 아겔이 아니야. 아겔은 저런 얼굴이 아니야. 저런 젊은 모습이 아니야. 늙고 힘들어하는 자였다. 내가 찢고 씹은 놈이 아니다.”
―그게 대체 뭔 소리야? 정말 착각하지 않았다고?
투란에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눈속임이라든가, 진짜랑 똑같은 환영을 부린다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하얀 괴물인 세란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반뜩거리는 백금의 눈동자를 보니, 그 확신하는 까닭을 투란은 납득할 수 있었다.
저 백금의 눈동자는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능력과 연계되어 있었고, 동시에 아빈가의 성스러운 힘도 품고 있었다. 이 하얀 괴물인 세란드는 환영 따위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 눈을 지닌 것이다.
하얀 괴물의 머리에서 뒤로 젖혀진 채 뒷머리에 바싹 붙어 있던 뿔 같은 더듬이가 치켜 올라갔다. 투란에게는 여전히 저게 토끼 머리의 귀처럼도 보이는데, 그 뿔더듬이는 곧장 위로 향했고 둥글게 말린 금덩이를 찔렀다. 그리고 하얀 괴물 세란드가 낮고 분명한 소리로 말한다.
“놈을 죽이려면, 눈앞의 몸 하나를 없애는 걸로는 안 된다. 놈은 아바타리안(Avatarian)의 마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주문, 아케인 버스터 체인(Arcain Burster Chain)이 필요하다.”
―아, 그래? 그럼…… 일단 한번 죽여보고, 나중에 다시 만나면 생각해볼게.
투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봐―!”
그리고 울려 나오는 으르렁거림을 뒤로한 채, 투란의 마음은 일단 문장 밖의 풍경을 향했다. 문장 속의 대화는 가속화한 것이었고, 실제 대화가 오간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러나 시간은 정지된 것이 아니었고 결국은 느리더라도 저쪽의 마법사가 뭔가 저지를 정도는 되었다.
이제 투란이 그 마법을 맞받아칠 때가 된 셈인데…….
* * *
“도미너스(Dominus)! 도미니온(Dominion)!”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둘렀고, 강한 마력이 깃든 외침을 터뜨렸다.
잿빛이 지팡이 끝에 가득 채워져 이제는 달이 아닌 해라고 해도 믿을 만할 정도로 짙은 광원(光源)이 되었다. 때문에 사방의 풍경도 잿빛으로 물들어갔고, 다른 색채는 모조리 쫓겨난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시알라 남매 넷조차도 그 잿빛에 물든 채로 이제껏 흘려내던 황금빛을 잃어버린 채로 둥실거렸고, 황금빛 그물에 휘감긴 붉은 그랑츄의 거구 또한 잿빛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어?’
그 순간부터 투란은 전혀 다른 감각이 몸을 짓누르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는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힘이었다면, 저 기묘한 주문이 외워진 다음부터는 투란의 몸 안에서 마법사에게 호응하는 힘이 치솟고 있었다. 이 힘은 투란을 억누르려 했고, 마법사의 의지에 복종하려 했다.
거기에 뒤섞여 들며 힘을 보태는 것이 바로 시알라 남매들에게서 흘러나온 황금의 마력…….
그워엇!
거센 포효와 함께 투란이 다시 한 번 몬스터를 일깨우고, 고유 마력으로 이를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런 투란의 시도는 순식간에 억눌리고 말았다. 황금의 마력, 투란이 축적해온 힘이 투란이 지닌 고유 마력을 감싸고 짓눌러 온 것이다. 이대로라면 몬스터의 형상조차 해체될 듯했다. 저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
몸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투란은 이 상황을 극복할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감각이 저며지고 조각나는 듯했고, 황금의 마력은 투란을 감금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란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게 어떤 상황이지?’
의혹이 투란을 심상 속으로 이끌고…….
* * *
금빛 격자가 모두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회색은 범람(氾濫)해서 넓은 광장(廣場)이 된 황금의 반구 내부를 모두 채울 것처럼 맹렬하게 번져 나오고 있었다.
투란은 그 범람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지켜봤고, 알아차렸다.
황금의 마력, 문을 넘어 들어온 시알라 일행의 마력이 투란이 지닌 황금의 마력과 뒤엉기면서 회색이 그 위를 덮어 누르는 꼴이었다. 그렇게 해서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가는 광경이었다.
‘왜?’
의혹이 새삼 짙어졌다.
처음에는 투란의 금빛 격자가 막아내던 것이 어째서 지금은 돌파당하는가?
어째서 갑자기 시알라 일행의 마력에 투란이 지닌 황금의 마력이 동조(同調)하는가? 여전히 투란만의 마력,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은 전혀 저 현상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데…….
‘응? 아, 그런 건가.’
되짚어가며 상황을 더듬던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마법사, 아겔페스가 외웠던 주문이 무엇이었는가 알아차린 것이다.
이 심상 속에서 그 주문이 스며든 순간까지 더듬다 보니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저 주문이 외워진 다음부터 이 꼴이었으니까.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를 가르는 주문. 애초에 이 마력을 구성해낸 자에게 주도권을 되돌려 주는 주문! 그렇군, 저 마법사는 처음부터 황금매를 그렇게 꾸며놨어.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아닌 마력, 황금의 마력을 축적시키고 자기가 그걸 강탈하기 쉽게! 그러면서 몬스터 로드의 정신까지 빼앗고 지배하는 길을 열어놨지. 여기서 피하지 못한다면…….’
투란은 이 문장의 풍경이 어째서 이렇게 황금으로 도배(塗褙)된 꼴인가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만의 고유한 심상에서 태어나야 할 풍경이지만, 황금매는 자신을 창조했다는 자의 심상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황금의 마력을 받아들이도록, 그렇게 해서 몬스터 로드에게 마법을 활용하도록!
칼날이 두 방향을 향한 검과 함께 전해지는 말, ‘양날의 검은 적과 자신을 동시에 향한다’라는 말처럼 황금의 마력은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에게 마법을 부여하면서 저 마법사의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구성된 채인 것이다.
황금매를 품은 자는 이 풍경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연, 이러니 불완전한 문장이지!’
투란은 문득 깨달았고, 망령인 세란드가 배틀 그림모어와 함께 웅얼댔던 소리를 기억해냈다. 투란의 황금매는 완전한 문장이라 했던 말…… 그리고 마법사도 말하고 있었잖던가, 완성된 황금매라고…….
새삼 둘이 하는 말의 의미가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전혀 다른 말이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 아겔페스는 이 황금매가 자신의 의도대로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망령 세란드는 그런 마법사의 의도에 농락당하는 불완전한 황금매가 아니라고, 진짜 몬스터 엠블럼이라고 말했다!
즉, 투란에게는 세란드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투란은 천장으로, 고리 안의 하늘로 마음을 옮겼고…….
* * *
그르르…….
그랑츄의 몸은 빛을 잃은 황금색과 옅게 저며든 회색으로 물든 채였다.
어떻게 봐도 원래 붉은 그랑츄였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낮은 울음, 솟구치며 맥동하는 핏줄과 힘줄의 불끈거림은 그랑츄라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겁 없이 싸우려는 몬스터의 본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마법사 아겔페스는 인상을 구겼다.
주문이 완성되었고, 완벽하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도 몬스터 형상이 해제되지 않는 데다가 강한 괴력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는 몬스터 엠블럼이 드러내는 고유하고 특이한 항마력과는 다른,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힘을 끌어내 마법에 저항하는 꼴이었다.
다른 자라면 몰라도 아겔페스는 그 차이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렇게 완성된 건가……! 이렇게 몬스터 엠블럼으로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단 말이지!’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구겨졌던 인상 사이로,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황금매를 창조한 자의 즐거움 속에 아겔페스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시알라 남매가 자신의 좌우로 흩어지게 했다. 지팡이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회색 광채를 뿌리고 시알라 남매에게서 더 강한 마력을 갈취해냈으니…….
회색으로 물든 황금의 그물, 밧줄이 엘리트 그랑츄의 형체를 감싸며 보다 강력하게 구속해 들어갔다.
“자, 세란드. 이제 끝이야. 그만하고 복종해라. 복종하는 것이 너의 운명이다! 네 운명으로부터 널 벗어나게 해줄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마력이 깃든 외침은 곧 강한 파동을 일으키며 그랑츄의 형체를 세차게 덮쳐들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아겔페스는 확신했다.
이제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몬스터가 된 세란드는 기댈 곳을 잃은 채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마법사에게 기대올 것이라고…… 아겔페스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지팡이에서 방출해내는 강대한 마력이 황금매를 완전히 길들이는 다음 상황을 예상하며 아겔페스가 한층 더 짙은 미소를 띠려 할 때였다.
콰르륵, 화아악!
온 세상을 붉게 물들며 몰아쳐오는 불길의 범람이었다.
불길 속에는 지독하고 난폭하며, 마법사가 이해할 수 없는 괴이(怪異)를 담은 마력이 날뛰는 채였다.
순식간에 시알라 남매가 불길이 가득한 격렬한 바람결에 휘말리듯, 회색의 광채로부터 뜯겨 날아갔다.
“으? 크으!”
아겔페스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당황했다.
그랑츄와 이어주는 매개체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팡이의 회색 광채는 그랑츄와 엮여 있었다.
지배와 복종의 주문이 이미 펼쳐진 덕분이었다.
매개체가 되는 시알라 남매가 없더라도, 아겔페스는 여전히 세란드의 황금매를 제압할 수 있다! 단지 쉬운 일이 어려워진 것뿐이다.
아겔페스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줬고, 정신을 더욱 가다듬으려 했다.
“오버시어!”
자신을 향한 주문이 키워드와 함께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보다 침착하고 명정(明淨)한 눈빛을 띤 채로 아겔페스는 그랑츄의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명정한 마음을 통해 환희와 흥분까지 걷어낸 아겔페스는 깨달았다.
세란드는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다!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