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6)
Chapter 44. 심연의 군주
―그, 그만해! 그러지 마!
투란은 아득한 저 아래편에서 들려오는 망령의 소리를 느꼈다.
망령이 마음에 가득 찬 고통을 토해내는 것처럼, 시알라 남매가 휘날려가는 광경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곧바로 하얀 괴물의 포효도 더해진다.
―뭐 하는 거야! 아겔, 저 빌어먹을 마법사 놈이 도망치게 둘 참이냐! 저런 불길에 죽을 놈이 아니야! 놈을 죽이려면 마법부터 봉쇄해야 한다고!
투란은 고리 너머, 저 아래에 가지런하고 단정한 동그라미의 무늬를 바라봤다.
소용돌이 혹은 회오리 같은 온갖 궤적의 나선(螺線)이 채워진 듯한 하얀 괴물을 가둔 금우리가 담긴 자리의 뚜껑 노릇을 하는 듯한 무늬는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으로 얽힌 마그마 로드의 벌집무늬랑은 아주 다르게, 잘 정리된 모양이었다.
그 무늬에서 흘러나온 비명과 포효는 꽤나 강력해서 투란을 바로 그 앞으로 끌어놓는 듯하고…… 투란은 선명해진 하얀 괴물과 망령의 소리를 듣고, 바로 앞에 놓인 둘의 형상과 금으로 이뤄진 반구형의 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리 깔아둔 몬스터를 이용한 불길, 대단해! 하지만 그 마그마 로드의 힘이라도 나를 이길 수는 있어도 아겔을 죽이지는 못해! 나도 이미 녀석의 잔해를 흐르는 용암 속에 던져넣어 봤다! 놈은 죽지 않았어!”
하얀 괴물은 뭔가 조리 있게 투란을 설득하려 했다.
“왜, 어째서 시알라를…… 내 동생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잖아! 그러지 마, 제발! 계속 그런다면 그냥 두지 않겠어! 제발 그러지 마!”
망령은 협박하는 말투로 애원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투란에게는 그리 반가운 반응이 아니었다.
죽이는 데 몰두하고 있는 괴물, 핏줄을 살리고 싶어 하는 망령…….
어느 쪽도 투란과는 상관없었다.
굳이 저 마법사를 이 자리에서 완벽하게 죽일 필요도, 저 남매를 살리는 데 힘쓸 필요도 투란에게는 없다. 무엇보다 하얀 괴물과 망령, 세란드란 한 사람에게서 생겨난 두 가지 형상은 자기네 할 말만 떠드느라고 투란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알아차리거나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소리가 아닌 강렬한 울림, 마음이 고스란히 힘의 파동으로 전해지는 듯이 투란의 말이 울렸다. 저 고리 너머 하늘에서 투란이 하얀 괴물과 망령에게서 듣던 것처럼,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데…….
투란이 품은 생각, 감정이 먼저 하얀 괴물과 망령을 덮친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다니! 아겔, 저놈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니!”
“어, 어째서! 시알라가…… 내 동생들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니!”
이렇게 둘이 갈팡질팡하며 꺼낸 소리는 투란의 마음에 숨어 있던 분노를 끌어내고 말았다.
―왜 몰라?
간단한, 그러면서 투란이 보다 깊이 정신을 집중해 던진 말이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통해 이미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로 엮인 채였다.
지능이라 할 것이 없다면, 지성이 없는 존재라면 그 본능과 몬스터 로드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혼란을 부르겠지만…… 하얀 괴물과 망령은 분명하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고, 지성도 갖췄다.
그렇기 때문에 황금의 마력을 쫓고, 투란의 황금매를 찾아온 마법사와 남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다. 한데 어째서 투란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가에 대해서 저리 모르는 척을 한단 말인가?
저건 마치 투란의 의지를, 투란의 정신을 완전히 자신들과 격리시켜 놓은 듯한 꼴이 아닌가!
‘어? 그럴 수도 있네?’
짜증을 터뜨리던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드라고니아가 저런 식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었잖던가.
이 하얀 괴물이나 망령은 드라고니아처럼 삐딱하게 힘을 보탤 생각 없이 잔소리를 토해내거나 지닌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아예 침묵하고 없는 시늉을 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잖은가!
―느껴라, 그리고 아는 게 좋을 거야.
투란은 보다 강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 하늘 너머의 고리로, 마음을 옮기려 하는데…….
“투란! 놈은 포기하지 않는다! 벌써 백 년 이상, 아겔은 황금매의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한 놈이다! 죽지 않는다면, 죽여도 저렇게 모습을 바꾼 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절대로 널 그냥 놔두지 않아! 네가 죽든가, 저놈이 죽든가! 하지만 네가 죽을 거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몬스터 로드인 네가 놈을 죽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야! 피할 수 없다! 놈은 여기까지 찾아왔다! 네가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설혹 이 세상 밖에 있더라도 아겔은 널 놓치지 않아! 황금매는 놈이 세상과 맞바꿔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니까!”
길고 빠르게, 그러나 한순간에 투란의 뇌리에 뜨겁게 하얀 괴물의 이야기가 꽂혀들었다. 조금 어이없어 자세히 보려 하니…….
투란은 하얀 괴물의 뒷머리에 서서히 화려한 빛을 뿌리며 맴돌 듯이 나타난 구슬이면서 그릇인, 텅 빈 듯한 안쪽에 온갖 무늬를 잔뜩 담고 있는 공을 볼 수 있었다.
‘스펠 오브……! 스택이 얼마인가 알 수가 없어?’
희미하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잔소리 속에 떠들었던 이야기의 파편을 떠올렸다. 주문을 새겨 넣은 마법의 구슬, 가끔 공처럼 큰 놈도 있을 수 있다는 마도구! 하지만 그 마도구는 새겨진 주문의 개수,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제각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개수와 횟수의 제한이 전혀 없는 듯한 스펠 오브가 하얀 괴물의 뒷머리 위로 달랑거리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제까지 저것이 뭔가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하얀 괴물이 느닷없이 쏟아낸 웅변 속에서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기 어떤 주문이 새겨진 채일까?
얼마나 많이!
‘과연, 이래저래 괴물인가.’
투란이 어설픈 마도구에 대한 지식으로도 크게 놀라고 있는 사이, 망령이 포효하는 듯한 외침이 울린다.
“보복이라니! 무슨 보복! 내가 네게서 빼앗다니! 난 네게 아무것도 뺏지 않았어! 뺏기는커녕, 내가 지닌 모든 것을 줬잖아! 황금매의 문장도, 배틀 그림모어도! 네가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도왔잖나!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뺏지 않았다, 투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기만 했어! 이 생명도, 이 형상도!”
말과 함께 망령이 과감하게 들어 올린 두 손은 하얀 괴물을 향해 있었다.
뭔가 보고 듣던 투란이 ‘아니,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할 때, 하얀 괴물도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망령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이 형상도? 이 어리석은 조각이! 그 멍청한 감정 탓에 놈을 제대로 죽일 기회조차 놓치게 했던 놈이 감히 어디서! 그 멍청한 배틀 택틱(Battle Tactic)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잡아먹힌 꼴이 되게 한 놈이 어디서 헛소리를!”
이에 망령이 한마디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반박한다.
“따르지도 않았으면서 나의 전술(戰術)을 비난하지 마라! 다시 한 번 몬스터 엠블럼을 전이받으면 도로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날뛴 것이 누군가! 다시 한 번 다른 몬스터를 삼키면 찢어진 황금매가 복구될 거라는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은 대체 누구냐!”
그리고 다시 오가는 몇 마디 다툼…….
가만히 그 오가는 말을 듣던 투란은 알 수 있었다.
하얀 괴물이 카프리곤을 쫓던 까닭, 혹시나 그 정도 되는 놈을 붙잡아 삼킨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본모습…… 세란드라는 인간의 탈을 다시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노력이었다.
자신보다 빠르게 카프리곤을 삼킨 투란을 향해 바로 덮쳐온 까닭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로드를 삼키면, 다른 몬스터 엠블럼을 통해서 황금매가 다시 한 번 몬스터 엠블럼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때문…….
‘뭔 미친 수작이야?’
투란은 바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괴물, 망령이 다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삼킨다’라는 의미는 몬스터 로드가 ‘삼키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이 하얀 괴물과 망령은 손으로 찢고 이빨로 씹어 삼킬 작정이었다!
게다가 되새겨보면, 정말로 그럴 작정으로 처음 만난 투란을 갈기갈기 찢고 부셔놓지 않았던가!
다시 생각해봐도 말하는 것이랑 저지르는 짓이 사람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미친 괴물을 봤나.’
어째서 이런 녀석이랑 투란이 진지하게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해 이러고 떠들고 있을까? 아무리 오버시어의 특별한 효과를 통해 이 심상 속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실제 몸쪽에서는 거의 눈 깜박할 순간조차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시간낭비가 아닌가!
투란은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기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한데 그 마음을 품는 순간, 하얀 괴물이 이빨을 드러냈고 망령이 끔찍한 괴성으로 포효를 터뜨린다.
“뺏지 않았다고! 우리는! 너한테 삼켜진 것뿐이라고! 우리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뺏지 못했어! 우리의 존재마저, 겨우 웅크리고 숙인 채로 너의 허락 속에서 이렇게 머물고 있을 따름이라고!”
투란에게는 처음으로 망령과 하얀 괴물이 하나가 되어 떠드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분하고 분명하게 투란도 대답해주기로 했다.
―나의 문장, 내 몬스터 엠블럼은…… 지금 내 가슴에 없어. 네 탓이잖아.
또박또박, 선명하게 말을 울려낸 순간 새로운 분노가 투란의 정신에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키린도 놀라게 한 그 특별한 ‘천칭’의 문장을 지닌 채였다면, 저 마법사가 부리는 수작 따위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얀 괴물, 망령…… 이 ‘세란드’란 얼간이가 아니었다면 용암의 호수에 몸을 담근 채로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 따위를 겪지 않았을 터였다!
도대체 이 ‘세란드’, 하얀 괴물인지 망령인지 모를 녀석과 엮이면서 투란에게 좋은 일이라고는 전혀 없잖은가! 다시 한 번 이 녀석이 앞에서 알짱거리는 꼴을 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살내고 왜 그랬는가 나중에 생각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화풀이는 당연하지 않은가?
마법사를 죽이고, 시알라 남매도 모조리 죽인다.
마법사가 아주 기묘한 마법으로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그 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이런 풍경 속에서도 망령을 자극하고 버럭대게 하는 남매를 모조리 죽인다면, 아마도 투란이 ‘천칭’을 잃은 기분을 망령이라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 귀찮은 일이 더 없도록 ‘세란드’를 저 고리 속의 하늘 너머로 날려보내면 된다.
투란에게는 깔끔하게 해야 할 일이 정리된 셈이었다.
‘음, 보복은 아니라고 보복은…… 원래 사람이라면 누군가 괴물에게 먹혀서 괴물이 되려는 것을 구해야 한다잖아?’
게다가 한편으로는 또 다른 까닭조차 사람답게 명확하잖은가!
“헛소리하지 마!”
‘세란드’가 망령과 하얀 괴물의 두 목소리를 하나로 겹치듯이 외쳤다.
투란은 바로 짓궂고 못된 말투를 한껏 떠올린 채로 대꾸하는데…….
―사람이라면 내가 당연히 옳다고 하겠지. 괴물이 되어서 넌 그리 생각 못 하는 것뿐이라고. ‘천칭’에 대한 부분은 덤이라고, 덤.
어딘가 잔혹한 낌새가 섬뜩하게 배어 있는 야유였다.
검은 수렁이 얕게 찰랑였고, 하얀 괴물을 가둔 금제 우리가 뒤틀린 소리와 함께 투란의 의도가 얼마나 꼬여 있고 스산한가를 드러내듯이 일그러져갔다.
이는 바로 ‘세란드’를 필사적인 상태로 몰아붙인 모양이었다.
투란은 그 상태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하얀 괴물의 뿔더듬이가 부풀어 오른 스펠 오브 속을 헤집으면서 지혜(智慧)를 쥐어 짜내는 광경…… 망령이 손발의 형체까지 모두 뚜렷하게 갖추면서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투란을 설득할 말을 찾는 모습…….
거기에 대해 투란의 심술궂고 잔혹한 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하듯이 바닥에 얕게 깔린 듯한 검은 늪, 수렁이 세차게 요동치며 이리저리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호응하듯, 황금의 벽과 굵고 튼튼한 창살 위로 일그러진 가시가 툭툭 불거져 나오기까지 했다. 누구라도 이 풍경이 무엇인가의 못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할 모양으로!
‘자, 그럼 이제…….’
괴로워하는 ‘세란드’를 느끼며 투란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결하려 했다.
미리 붉은 그랑츄의 울타리처럼 꾸며놓은 마그마 로드, 그 속에서 불길과 함께 흐르는 용암을 뿜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법사든 누구든 상관없이 모조리 집어삼키게 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옥좌(玉座)! 황금매에는 없는 심연(深淵)과 함께, 넌 우리 앞에 나타났다! 투란, 너의 문장은 어디 가지 않았어! 단지 심연 너머에 있을 뿐이다! 저 옥좌에 박힌 심연 너머에 있다고! 우린 빼앗지 않았어! ‘나’는 뺏을 수가 없었다고! 옥좌를 봐! 네가 이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자리에서, 뒤돌아보라고!”
‘세란드’가 분명하고 강렬하게, 괴물과 망령이 완전하게 하나가 된 외침을 터뜨렸다. 투란을 다시 한 번 이 문장 속의 풍경에 붙잡아 두려는 듯, 세상의 시간을 잠시 더 멈춰 세워놓으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