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9)
투란은 시커먼 심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끝없이 메아리치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그 별빛 무리의 기억을 마음에 품고 정신에 새겨 넣으면서.
어둠, 너무나 깊고 방대한 시커먼 풍경은 투란에게 고리 너머의 하늘과 닮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마치 한쪽은 맑고 밝으며 여린 빛이 가득하고 한쪽은 시커멓고 짙은 어둠만이 있더라도, 한 가지라는 듯한 기괴하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어느 쪽이든 투란에게는 단지 ‘심연’이라는 듯했다.
그 뒤틀리고 꼬인 괴이(怪異) 속에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그 별빛 무리의 형상을 더욱 세차게 마음에 품으려 하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고 있었고, ‘작은 늪’이 오러 몽거의 ‘어비셜 볼텍스’의 유동(流動)을 삼키면서 되풀이하고 있었다. 거기에 붉은 늑대, 그림울프의 치열한 포효가 어우러졌다.
‘모두 거기 있어! 아니, 여기 있어!’
투란은 자기 정신 깊이 새겨진 몬스터의 형상을, 그 정수(精髓)가 치열하게 ‘살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세란드’가 말한 것처럼, 단 한 가지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 깨달음과 함께 투란은 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 무리, 끝없는 메아리의 원흉(元兇)인 드라고니아가 자신을 감추는 광경을 봤고, ‘천칭’이 시간 속에서 얼어붙은 것처럼 고요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시커먼 심연의 어둠을 넘어, 투란은 ‘천칭’의 풍경 속으로 돌아왔다.
“아하핫! 있다, 있어!”
깊고 그윽한 외침이 저절로 투란의 정신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존재’에 대한 깊은 포효처럼.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그 포효에 낮고 깊은 울림으로 메아리를 되돌려줬고, 신음하는 듯한 콧소리를 내는 어린 드레이크―누앙 드라클이 겨우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척을 흘렸다. 심장이 없는 오러 몽거의 정적(靜寂)이 메아리와 콧소리를 튕기고 삼키는 듯한 고요함을 느끼게 해줬고, 다른 것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한 머리 셋인 여우의 하품이 소리 없이 선명했다. 카프리곤의 꼼지락거리는 묘한 태도, 마그마 로드의 정교하게 짜인 형상은 뭐든 당연하다는 듯했고…….
찰랑이는 검은 잉크가 톱니의 맞물림 사이를 채우고, 소리 없이 굴러가는 헤아릴 수 없는 눈알, 단단하게 뭉친 크리스털의 성채 속에서 아르고니아가 모든 눈길을 다 모아 ‘천칭’이 중심인 풍경의 세세한 부분을 한 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밝게 해줬다.
너무나도 분명한 풍경 속에서, 듣지 않을 수 없는 높은 소리가 다시 한 번 투란을 향해 격노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정신 차려 투란! 거기서 벗어…….”
“하하핫!”
험악한 파도 위로 겹쳐진 웃음이 드라고니아의 높은 소리를 끊었다.
투란은 더 크게, 더 세게 외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있다, 있어! 모두 있어!”
“닥쳐!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버럭, 천둥이 울리는 것처럼 환하게 빛나는 별빛 무리 속에서 맹렬한 포효가 바로 되돌아와 투란을 후려쳤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주먹을 휘두르는 듯, 발길질을 하는 듯한 거센 충격을 주는 힘이 가득 담긴 포효였다.
정신을 파고드는 그 충격 속에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또 하나의 자신으로서 ‘사고(思考)’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깊은 ‘사고’의 결과는 투란의 마음에 들었다.
이제까지의 일을 하나씩 말로 하기에는 얽힌 상황이 복잡했다.
그리고 투란은 ‘천칭’ 정상에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없었던 것이 도도하고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황금을 녹여 흐르게 해서 만들어낸 듯한 매의 형상…… 발목에는 황금의 사슬이 걸려 있었고, 꼬리처럼 길게 흘러내린 사슬은 ‘천칭’의 기둥과 간격을 둔 채로 빙빙 돌며 저 아래를 향해 흘러내리는 듯했다. 그 사슬이 ‘천칭’이 관통하고 있는 듯한 심연 속으로 이어진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이는 복잡한 상황을 한층 더 복잡하게 뒤트는 광경이었다.
냉정한 생각의 결론은 이 복잡한 상황, 모든 것을 투란이 모조리 알고 단숨에 해결할 수 없다고 했고…… 투란에게는 생각을 도와줄 ‘존재’가 있었다. 투란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오래 세상을 지켜보며 살아온 삶을 지닌 ‘존재’가!
“드라고니아!”
크게 외치면서 투란은 마음을 열었고, 정신 깊이 새겨진 기억을 뿜어냈다.
황금매를 가슴에 새긴 채로 우왕좌왕하면서 헤매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천칭’의 풍경을 향해, 이 허공을 향해 퍼져 나갔다.
별빛 무리가 화난 듯이 일렁이던 빛을 거뒀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그동안 끝없는 외침 속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이제 모두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투란은 지금 해야 할 일,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바로 물음을 꺼낼 수 있었다.
“아케인 버스터 체인, 그걸로 정말 저 마법사를 죽일 수 있어? 나중에 귀찮게 굴지 않게 할 수 있는 거야?”
“제기랄, 아겔페스! 금색의 마도사,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먼저 꺼낸 말은 투란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황금매를 쫓아 나타난 마법사 아겔페스, 그에 대한 불만이었다.
투란은 해맑은 웃음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
역시 투란이 모르는 세상의 일이라도, 드라고니아는 알고 있다!
‘세란드’가 떠드는 말을 어디까지 귀담아들어야 할지, 드라고니아는 정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일 수 있어? 죽여도 되지?”
바로 투란은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별빛 무리가 밝아졌다 흐려졌다 하면서 잠깐 드라고니아의 고뇌(苦惱)를 드러냈다. 그리고 침착하고 깊은 울림이 담긴 대답이 흘러나온다.
“죽여야 한다. 하지만 아케인 버스터 체인만으로 죽여서는 안 돼. 그 전에 파워 서클을 그려둬야 하고, 월드 가디언을 설계해야 해. 그다음에 아케인 버스터 체인을 써야, 고대 악마종(惡魔種) 아바타리안의 비술 마법이 완벽하게 세계에서 제거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겔페스는 보다 더 뒤틀린 모습을 하고 나타날 거야. 세계 어딘가에…… 그러니, 저 세란드가 지닌 궁극의 스펠 오브, 옴니앙(Omnian)에서 파워 서클과 월드 가디언의 주문도 끌어내도록 해. 자세한 이야기는…… 아겔페스에게 ‘평온(平穩)한 안식(安息)’을 이루도록 해준 다음에 하도록 하지.”
투란은 어딘가 음울한 느낌이 담긴 ‘평온한 안식’의 의미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죽인다, 그러면 죽은 자가 도달하게 되는 상태…… 죽음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평온한 안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보다 깊은 의미가 새겨진…… 투란에게는 그저 죽음인데 뭔가 다른 죽음이라고 느껴지는 어떤 것이었다.
“옴니앙? 그게 뭐야?”
“대가리 뒤에 달고 있는 큰 구슬! 그것도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고! 일단 내놓으라고 해! 젠장, 어쨌든 그 황금덩이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투란, 이번에는 잊지 마라! 여기가 너의 진정한 본질이 새겨진 ‘곳’이라고!”
“에…… 잊지 않을 거야! 절대로!”
강한 의지로 답하면서 투란은 황금의 매, ‘천칭’의 정상 난간에 고고하고 도도하게 앉아 있는 형상에 집중했다. 황금의 깃 속에서 기이한 광채가 검게 번들거리는 매의 모습이 투란의 마음에 비쳤고…… 다시 한 번 깊고 어두운 시커먼 심연 속으로 투란의 마음이 던져졌다.
‘어라? 이번에는…….’
‘천칭’의 풍경으로 돌아올 때와는 다른 새로운 것이 보였다.
금빛 사슬이 길게 어둠을 가로지르면서 투란을 인도하며 ‘길잡이’ 노릇을 하는 광경이었다. 이 광경은…….
‘처음이 아니야?’
투란의 흐릿하고 여린, 아주 옅은 기억을 되살려줬다.
애초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겪었던 일, 처음에 황금매를 가슴에 품게 된 까닭을 투란은 이제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금빛 사슬의 ‘길잡이’를 따라 투란은 심연을 건너, 황금매의 문장이 생성해낸 풍경 속으로 뛰어들었다.
워어어어―!
붉은 그랑츄의 작은 조각이 가장 세게 울어대고 있었다.
그르렁거리는 낮은 울림으로 조금 점잖게, 하지만 보다 위협적으로 파이로-칸이 흘리는 소리가 붉은 그랑츄의 포효 위로 겹쳐졌다. 그 곁에서 작게 컹컹거리며 히엔나가 짖어 대는 소리도 선명했다.
돌과 돌이 마찰하고 마그마의 격류가 검은 바위 틈새를 깨고 나와 용암의 연못을 만들어내는 광경 또한 선명했다.
거기에 ‘세란드’의 미친 듯한 외침이 한 겹 덧씌워지니…….
“뭐야, 어디 갔어! 어디 있나아아―!”
드라고니아가 뭘 하고 있었는가를 황금빛 가득한 풍경 속에서 흉내 내는 듯한 꼴이었다.
즉시 투란은 ‘세란드’가 차지하고 자리 잡은 풍경, 하얀 괴물과 망령이 검고 얕은 수렁 위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우리 속에 자신을 가둔 영역으로 마음을 옮기며 외쳤다.
“옴니앙! 파워 서클, 월드 가디언이 필요해! 아케인 버스터 체인을 제대로 쓰려면, 저 마법사를 완전히 죽여놓으려면 필요해! 어서 내놔!”
“뭐? 그런 주문 따위는…….”
‘세란드’가 당황한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투란이 뿜어내는 기척, 그 안에 담긴 지식…… 바로 조금 전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알게 해준 지식이 ‘세란드’를 향해 맹렬하게 흘러간 탓이었다.
하얀 괴물의 눈가가 실룩였고, 망령이 격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그렇게 된 것이었군!”
“이따위 마법으로 죽음을 피했어!”
다시 나눠진 듯, 격노가 제각각의 표현으로 하얀 괴물과 망령에게서 새 나왔다.
투란은 그 앞에 다시 외침을 던졌다.
“내놔!”
“알았다.”
‘세란드’가 간략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곧 곤란한 말투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파워 서클은 특정한 장소가 필요하다. 아무 곳에나 파워 서클을 새겨 넣을 수는 없다고! 파워 서클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은…….”
“여기 새길 거야.”
투란의 대꾸는 단호하고 빨랐다.
더불어 하얀 괴물을 덮고 있는 금제 우리의 앞쪽, 검은 늪이 찰랑거렸다.
“뭐? 그런……! 정신 속에 파워 서클을 품겠다니, 그게 무슨…….”
“네 앞에 바로 새겨놓는다고! 여기도 특정한 곳이니까. 엉뚱한 일에 휘말릴 리가 없는 아주 좋은 곳이지!”
“월드 가디언에게는 기초를 잡아줄 캐릭터가 필요하다, 여기에 파워 서클을 넣는다면 네 성격을 이용할 것인가?”
“그건 너! 세란드, 너를 기초로 사용할 거야. 여긴 놀고 지내는 곳이 아니거든!”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투란의 의지는 확고했다.
‘세란드’는 마침내 이를 깨달은 듯…….
“너는 이 정신의 풍경이 ‘실재(實在)’라고 여기는군. 정말 자기가 뭘 하려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의심 가득한 물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토해내고 있었다.
낭랑하고 유쾌한 웃음이 ‘세란드’의 주변을, 투란이 새장으로 바라보는 금빛의 우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투란의 대답이 함께 한다.
“너는 내 망상이 아니라고. 네가 머무는 이곳이 환상이 아닌 것처럼! 내가 이곳을 인정하는 한, 여기는 실재한다. 그리고 너도 진짜라고, 세란드.”
“그게 몬스터 로드의 사고방식이냐? 과연, 그렇군. 그랬었어.”
‘세란드’의 말과 함께 하얀 괴물의 머리 뒤쪽에 둥실거리던 투명한 구슬이 품고 있던 무늬를, 복잡하게 뒤엉킨 궤적 같은 무늬를 토해냈다. 하나는 하얀 괴물에게 엮이고, 하나는 망령에게 엮이는 두 가닥의 궤적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문득 자신이 ‘세란드’를 바라보는 자리가 고정된 것을 알아차렸다. 둥실거리며 이 영역을 떠돌 듯이 가까이서 멀리서 왔다 갔다 하며 자유롭게 보고 듣던 자리가, 망령을 문턱처럼 마주 보는 앞쪽에 고정되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검고 얕은 수렁, 이 이상한 늪의 바닥에 불쑥 솟아난 마름모 모양의 황금판 때문이었다. 황금판은 마치 그 마름모의 안쪽에 투란을 담고 있는 채로, 망령을 향해 황금의 우리에 갇힌 하얀 괴물을 향해 뾰족한 꼭지 한쪽을 들이대고 있는 듯했다.
“파워 서클.”
하얀 괴물의 낮고 깊은 소리가 풍경을 울렸다.
곧 투란은 볼 수 있었다.
황금빛 우리를 향해 내밀어진 황금판 꼭지에서 일어난 금빛 파문이 동그란 판을 만들어내며 이해가 불가능해 보이는 무늬를 품어가는 광경이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알기도 전에 망령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터졌다.
“월드 가디언!”
금빛 안개로 엮인 망령에게서 금색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금색의 그림자는 망령보다 더 짙어졌고, 두 팔을 활짝 펼친 채로, 망령에게는 없는 듯한 두 발끝까지 모으고 금빛 파문이 그려내는 원판(圓板) 위로 올라섰다.
그다음, ‘세란드’가 괴물과 망령의 소리를 융합한 듯이 속삭인다.
“아케인 버스터 체인.”
금빛이 반짝이는 얼음 조각, 돌을 두드려 만든 창날 같은 조각이 투란을 향해 둥실거리면서 허공을 가로질러 떠내려왔다. 투란은 자신을 고정하고 있는 황금판 위에서 조각을 받아 품었다.
“그럼, 마법사를 죽여볼까.”
도도한 한마디를 남긴 채, 투란은 정신을 붉은 그랑츄의 형상에 집중시켰다.
여전히 마법사 앞에 선 채로, 황금의 마력을 흠뻑 뒤집어쓴 현실이 투란에게 선명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