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0)
그워어어!
황금빛에 휩싸인 붉은 그랑츄가 괴성을 질렀다.
돌격하고 때려부수겠다는, 그랑츄가 전투를 선포할 때 흔히 토해내는 괴팍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랑츄에 대해 많이 겪은 이에게는 얼른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 중 한 가지는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알려주는 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겔페스는 어느 쪽도 고르지 않은 채로 당황했다.
‘움직여!’
수확을 위한 회색의 마력을 없앤 것까지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무슨 일인가 알아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알라 남매를 통한 황금의 마력은 그랑츄의 온몸을 덧칠하며 움켜쥔 채였다.
그러니 아무리 엘리트 그랑츄라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고,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포효하고 움직인다!
아겔페스에게는 마법사로서 납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이건 또 어떻게!’
이 또한 ‘심연의 포식’ 탓일까?
완성된 황금매가 그런 능력을 대체 어디서 갖췄을까?
세상에 심연을 품고 이용하는 몬스터라도 있는 것일까?
황금매가 그런 몬스터를 사로잡은 것인가!
아겔페스의 고민은 여러 가지였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포효하는 그랑츄는 그런 아겔페스의 사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 걸음씩 옮기다가 어느새 돌진해오고 있었다. 열 걸음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쿵쾅거리며 뛰어 달려들고 있었다.
아겔페스를 바로 두 손으로 잡아 찢을 듯이!
시알라 남매의 황금상이 바로 단단히 걸린 자물쇠처럼, 벽처럼 그랑츄의 앞을 가로막았다. 둥실거리며 부유하는 모습 그대로…….
그워어억!
두 손이 합쳐진 채로, 손끝을 모아 황금상이 둥실거리는 틈새를 노리고 찔렀다.
그랑츄의 둔해보이는 두꺼운 손끝은 망치를 몇 개 겹친 듯한 굵기로 무겁게 황금상과 황금상의 사이를 후려치듯이 파고들었다. 장막을 이룬 황금빛과 붉은 그랑츄를 덧씌운 황금빛이 뒤엉키며 굳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꿈틀거리는 찰나, 그랑츄가 입을 열며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을 터뜨렸다.
소리는 그랑츄의 뼈와 살을 울렸고, 힘줄과 핏줄을 자극하며 옅은 불길까지 일으키게 했다. 그리 크지 않고 옅은 불길은 곧바로 주변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검은 재와 불티가 휘말리며 이곳저곳……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는 듯한 폭음이 터졌고, 주변의 열기가 맹렬한 돌풍이 되어 밀어닥쳤다.
열기의 돌풍, 자신이 일으킨 불꽃을 보다 짙게 하며 그랑츄는 황금빛 장막에 파고든 두 손, 두 팔에 힘을 줬고…… 몬스터의 괴력은 황금상 넷을 좌우로 둘씩 나누듯이 밀어내며 자막을 찢었다.
그워어―!
그랑츄의 굵고 두툼한 발가락이 바닥을 파고 움켜쥐었다.
곧 발목부터 시작된 역동(力動)이 괴물의 몸을 황금빛 속으로 파고들게 했다.
이 광경은 아겔페스에게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머리 따먹기라는 건가.’
그랑츄가 손발을 휘둘러댈 때, 그걸로 자신의 적을 포착하지 못하면 서슴없이 물어뜯는다고 했다. 이 춤추는 산맥을 누비고 다니는 그랑츄라면, 사람 정도는 가볍게 한입으로 목 위를 끊어 따먹는 참경(慘景)까지 보일 지경이고!
그보다 더 크고 강력한 이 엘리트 그랑츄는 캐슬링의 큐브 방어까지 밀어붙이고 들어와 아겔페스의 머리통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려 한다! 이 상황에서 그랑츄의 머리 따먹기라는 짓거리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것은 아겔페스에게 조금이나마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명이 돼 줬다.
시알라 남매의 황금상은 밀린 채로 저편으로 밀려났고, 그 앞의 황금빛 장막은 찢기는 와중에도 안개처럼, 물결처럼 다시 새로운 장막이 되어 그랑츄 앞에 새로 뭉쳐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장막은 아겔페스를 향해 움푹 파이듯이 밀려든 채였고, 이 영향은 황금빛 육면체의 다른 부분까지 확실하게 닿고 있었다.
거품이 부풀 듯, 평판이던 다섯 면이 모두 부풀고 있었다.
마치 그랑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억지로 밀려나듯…….
아겔페스는 자신의 앞에 꽂혀 있는 지팡이까지 앞쪽의 장막이 곡면을 이룬 채 버티며 밀려오는 광경을 봤고, 침착하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워어!
허우적거리는 두 손을 연이어 휘두르고, 매번 쏟아내는 괴력으로 황금의 마력을 두들기는 몬스터를 향해 마법사의 한 손이 느릿하니 내밀어졌다.
“라이트닝 버스터.”
키워드가 외워졌고, 마법사의 손목부터 시작된 작은 번개는 손끝을 거치며 굵은 벼락을 자아냈다. 회색에서 시작된 번개가 벼락이 되는 순간, 백열(白熱)하는 섬광(閃光)의 줄기가 가시 돋친 여광(餘光)을 남긴 채로 그랑츄의 심장을 노리고 직격(直擊)했다.
아겔페스는 눈부신 섬광이 자취를 감추는 광경 속에서 혀를 찼다.
‘쳇, 역시 캐슬링의 방벽까지 밀어붙일 정도의 항마력이군.’
심장을 관통하고 저편의 풍경이 보이도록 그랑츄의 커다란 몸에 창을 뚫어야 할 섬광의 창이 뒤틀리며 어깨를 삼키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랑츄의 큰 팔이 파괴된 어깨 탓에 한쪽에 나뒹굴고 있기는 했지만, 그랑츄는 괴물의 본성을 드러내듯 거침없이 더 앞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러면서 끊어져 버린 팔이라도 휘두를 듯한 몸짓을 보이기도 하는데…….
콰르르르!
땅이 흔들리고 돌 울타리가 붉은 가닥의 줄기를 터뜨리며 밀려오는 광경이 그랑츄의 뒤쪽에서 펼쳐졌다.
아겔페스는 그 광경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고, 잠시 구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용암을 핏줄로 두른 바위 괴물?’
검은 돌, 붉은 줄기가 꿈틀거리며 새겨진 울타리가 거대한 뱀이 된 것처럼 그랑츄를 향해 휘청이며 날아든다! 엘리트 그랑츄의 3미터 가까운 큰 몸이라도 저 머리 없는 뱀은 그 앞의 단면만으로 충분히 찍어 누를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 검은 돌기처럼 보이는 앞쪽은 붉은 금과 함께 입을 열 듯이 갈라졌고, 그대로 그랑츄의 어깨를 물어뜯듯이 달라붙었다.
이 순간, 아겔페스는 한 걸음 물러섰다.
3미터, 충분히 거대한 체격이지만…… 입을 열 듯이 갈라진 검은 돌의 길고 굵은 가닥이 비록 앞쪽에서 조금 가늘어진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저렇게 물어뜯는 듯한 상황에서 겨우 어깨만 내주고, 가슴 위를 살짝 무는 정도로 그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이는 광경이라니……!
‘커졌어? 아니, 이건 그랑츄가 아냐!’
‘오버시어’의 주문이 아겔페스에게 냉철한 계측을 유도했고, 아겔페스는 달려들던 괴물이 더 이상 그랑츄라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닮기는 분명히 닮았지만, 이건 결코 그랑츄가 아니었다.
어느 틈에 머리와 등으로 살랑거리는 불길을 외투처럼 흘리고 있는 모습, 붉은 털이 아니라 불꽃을 손발에 돋아나게 한 형상…… 눈알조차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광채로 물든 꼴!
“파이어 몽거!”
아겔페스는 몬스터 도감 한구석에 희귀종으로 분류되는, 그 서식지에서는 퇴치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낙인되어 있는 몬스터를 기억해냈다. 불을 일으키며 불을 삼키는 괴물…… 오로지 불꽃의 열기만을 원하는 괴물, 때문에 화염중독자(火焰中毒者)라는 의미를 담뿍 담은 파이어 몽거라고 부르는 몬스터였다.
그 괴력은 그랑츄의 수십 배……!
불꽃의 순수한 힘을 잔뜩 꼬아 뭉치는 특이능력으로 인한 마법에 대한 저항력은 최상급으로 분류해도 될 수준이지만, 고집스러운 마법사들은 헬플레임이라는 강대한 주문을 막아낼 정도는 아니라고 그냥 상급으로만 분류해놓은 업화(業火)의 괴물이었다.
‘이런 제기랄! 난 헬플레임을 모른다고!’
대신 아겔페스에게는 라이트닝 버스터가 있었다.
주문을 다루는 마법사의 기량만을 놓고 본다면 헬플레임과 라이트닝 버스터, 어느 쪽을 익히든 비슷한 수준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래서 한쪽을 익히면 한쪽은 익히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불꽃과 벼락, 두 주문의 파괴력은 거의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고 그 결과 역시 엇비슷하게 얻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파이어 몽거가 상대라면…… 헬플레임을 막아내지 못한다고는 해도, 상당히 버텨내는 저 괴물에게는 번개라는 속성이 아예 먹히지 않는다! 저 지저분한 불꽃이 뿜어내는 열기가 번개의 방향을 뒤틀고 왜곡해버리는 탓에!
‘망할, 아까도 그래서 심장을 꿰뚫지 못했나! 사실은 파이어 몽거였던 거라서? 체격을 줄여놓고 억제하면 그랑츄처럼 보일 테니까…… 그걸로 날 속인 거냐!’
아겔페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 순간에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찰나, 파이어 몽거가 어깨를 휘둘러 내지른 검은 바위의 주먹이 지팡이를 후려쳤다. 지팡이가 뿜어내는 황금빛이 흩어졌고, 검은 바위 주먹이 곧 지팡이를 가볍게 분지를 듯이 보였다.
“도미너스, 도미니언!”
반사적으로 아겔페스가 토해낸 키워드는 휘청이며 노출된 지팡이로부터 회색의 분류(噴流)를 끌어냈다. 짙은 물결처럼, 뭉클거리는 안개 같은 자취를 남긴 회색이 황금 방벽 안을 채우며 파이어 몽거를 향해 범람(氾濫)했다.
회색을 타고 황금빛이 흘러넘쳤고, 파이어 몽거는 자신을 물들이는 회색과 금빛 속에 갇힌 듯이 잠시 그 격렬한 동작을 멈췄다. 아주 잠깐, 그저 멈칫하는 정도였지만 아겔페스에게는 새로운 주문을 생각하고 꺼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황금매여어어! 내가 주인이다! 임플란트 마크! 마인드 스카!”
연이어 쏟아진 아겔페스의 주문이 파이어 몽거를 후려쳤고, 짙은 회색이 격동하며 강하게 파문을 일으켰다. 회색은 그대로 파이어 몽거를 움켜쥐고 짓이길 듯이 보였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순간에 파이어 몽거의 주변에서 회색이 사라지고, 남은 마력의 색채는 캐슬링의 큐브로부터 흘러나오는 황금빛뿐이었다.
아겔페스는 그 광경에 표정을 굳혔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겔페스의 심경은 한없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보였다, 젠장! 심연이 있어! 황금매인데……! 어떻게 손에 넣었지? 어떻게 지워버린 심연의 각인을 다시 채워 넣은 거야! 옴니앙? 역시 옴니앙인가! 빌어먹을! 마력을 이렇게 포식할 정도로 심연을 다루는 자가 되다니! 저런 식으로 몬스터를 유지한 채로 이럴 수 있다면…… 역시 군주 레벨인가. 최상급 몬스터 로드, 세란드여 거기까지 도달한 거냐……. 그렇게까지 자신을 변질(變質)시켰나…….’
크워어어어어!
길고 큰 괴성이 파이어 몽거의 떡 벌린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겔페스는 그 입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것을 봤고, 웃었다.
그 입에 물린 지팡이가 부러졌고, 거칠게 토막 나 뱉어졌다.
하지만 아겔페스의 웃음은 한층 더 짙어졌다.
파이어 몽거가 검은 바위가 달라붙어 저편으로 길게 늘어진 어깨를 뒤로 젖히며 그 주먹으로 큐브의 벽을 치고, 본래의 형상을 한 다른 한 손으로 큐브의 반대편 벽을 쥐고 당기며 젖혔던 머리통을 내리찍으며 아겔페스를 짓이기려 했지만…… 웃고 있는 아겔페스의 입에서는 잔잔하고 담담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이걸로 끝은 아니라는 거…… 알고 있겠지, 세란드? 저번에는 그 하얀 손끝으로 내 심장을, 내 뇌수를 파냈었지만…… 이렇게 나는 새로운 몸으로 네 앞에 돌아왔다. 다음에는 더 쉽게 널 찾아낼 거야. 그러니 지금은 너의 노고를 칭찬하도록 하마. 황금매를 완성시켜줘서…… 완전한 몬스터 엠블럼으로 완벽하게 각성시켜줘서 고맙다. 하지만 그건 내 것이다, 세란드……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흐흐흣, 으하하핫!”
채앵! 채챙! 콰앙!
말이 이어지는 사이, 파이어 몽거의 머리통은 마법사와 자신의 사이에 놓인 단단한 황금빛 방벽을 망치처럼 두들겼다. 그 요란한 소리 속에서도 마법사의 말은, 아겔페스의 담담한 이야기는 기묘하고 명확하게 파이어 몽거에게 전해진 듯했고 아겔페스는 이를 분명히 알아차린 듯했다.
차아앙!
황금빛 방벽이 깨졌고, 들이밀어진 파이어 몽거의 거대한 이마가 아겔페스의 머리에 닿았다. 단숨에 자신의 머리가 으깨질 것을 기대하면서, 아겔페스는 웃음 끝에 한마디를 더 남기려 했다.
“나는 끝없는 아바타의 군체…… 세란드여, 너는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으니…… 다음에는 순순히 굴복하는 것이 좋을 거야. 후훗.”
―아케인 버스터, 체인.
소리가 아닌, 정신의 파동으로 주문의 열쇠가 한마디로 울려 퍼졌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그 울림을 느끼고 알아차린 아겔페스는 경악했고, 그 모습에서 웃음과 여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칸 스펠(Archon Spell)! 그건 금기)의…… 미친…… 너도 죽는 주문인 것을……! 네 형제까지 죽는다, 세란드!”
경악함이 토해져 나온 순간, 아겔페스는 자신이 말을 하였으되 소리로 말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주문의 열쇠가 한마디로 단단히 뭉쳐 울린 것처럼, 아겔페스의 지금 이 말 또한 정신의 파동으로 울려 퍼졌다. 덕분에 한 번의 숨을 내쉴 틈도 없는 찰나의 순간, 아겔페스는 자신의 생각을 모조리 파이어 몽거에게, 황금매로 이뤄진 몬스터의 형상 너머에 감춰진 정신을 향해 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마찬가지로 정신의 파동으로 이뤄진 응답을 받았다.
“내가 아직도 세란드라고 생각하나, 마법사?”
아겔페스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 정신부터 파괴가 시작되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