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1)
Chapter 45. 아바타의 종언
하늘은 맑고 밝았다.
올려다보고 있자니, 푸른빛이 옅고 짙은 바탕에 뒤섞인 채 엮이며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 맑고 밝은 여린 빛으로 가득한 듯, 구름 한 조각도 없는 하늘 아래에서 투란은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마그마 로드의 자취라든가 냄새가 숨결 사이에 섞인 느낌이 없었다.
아직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몸 한구석에 지니고 있는 탓에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으음, 졸려.’
격전(激戰)을 마쳤고, 그 뒤처리를 끝내려는 지금 투란은 나긋하게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잠들 때가 아니었기에, 바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투란은 저쪽을 잠깐 노려봤다. 거기에는 아까부터 투란을 흘깃거리며 오락가락하는 묘한 보라색 비늘의 큰 도마뱀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신기한 거냐, 아니면 이런 네모난 바위를 처음 봐서 그러냐?’
궁금해서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투란은 저 보라색 비늘의 큰 도마뱀이 지금 무슨 기분인가 짐작할 수 있기는 했다. 한쪽 다리를 늘어뜨린 채 건들대는 꼴로 투란이 앉은 네모난 바위…….
시커멓고 번들거리는 광택을 뽐내며 땅에 단단히 박힌 채로 치솟은 2미터 정도의 담장 혹은 벽처럼 보이는 바위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결코 자연적일 리가 없다고 외치는 듯한 정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모서리가 10미터이고, 그 중앙에는 움푹 파여 들어간 작은 정사각형 모양이 새겨진 듯이 자리 잡고도 있었다. 작다고 해도 모서리가 8미터는 되는 탓에, 외곽의 1미터 두께로 이뤄진 네모난 띠를 두른 것처럼도 보였다. 그 작은 정사각형은 깊이가 고작해야 40센티 정도였고, 네 사람이 나란히 놓인 채이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네 사람을 제물로 바쳐 하늘 아래 놓아두는 제단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데…….
투란은 그 네모난 검은 바위의 가에 앉아 한쪽 다리를 늘어뜨리고 다른 쪽 다리는 접어 그 무릎 위에 턱을 괸 채로 꾸벅거리던 참이었다. 피로와 졸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이기는 하지만…… 지나가던 누군가 본다면, 결코 투란 가까이 올 생각은 들지 않을 상태이기도 했다. 검은 벽 아래로 늘어뜨린 듯한 투란의 한쪽 다리, 그 종아리 아래쪽은 꿈틀거리며 붉은 줄기 무늬를 품은 검은 암석의 괴이(怪異)가 매달린 채였으므로!
이 검은 암석의 붉은 줄기는 맥동하면서 어스름하니 옅게 보이는 열기와 짙은 안개처럼 뭉클거리는 연기를 간간이 토해내기도 했다. 자신의 본질이 마그마 로드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혹은 졸던 투란이 잠시 정신이 흐려진 탓에 멋대로 날뛰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
이는 투란이 이 지역에 추적자를 대비하기 위해서 덫으로 뿌려두었던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었고, 지금 회수되는 중이었다. 이제 거의 끝나서 겨우 다리 한 짝에 매달린 듯한 작은 덩어리 정도만 남은 셈인데, 그 때문인가 뭔가 마음이 풀리면서 투란은 꽤 졸려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을 깨우겠다는 듯, 혹은 투란이 먹을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는 듯이 저 보라색 비늘의 큰 도마뱀은 멀찍이 거리를 둔 채로 주변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거참, 신기한 놈이네.’
저 도마뱀이 자신을, 혹은 이 바위를 신기해하는 것인가 궁금해하던 투란은 문득 저놈이 꽤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머리통에 길게 찢어진 눈이 오른쪽 왼쪽 한 쌍이 아니고, 여러 쌍으로 보였다. 길게 찢어진 눈가처럼 보이는 흔적이 데굴거리는 눈알이 박힌 눈가 뒤로도 나란히 여럿 늘어진 듯했으니까. 하지만 눈알 박힌 눈매 뒤에 줄줄이 쌓인 듯이 간격을 두고 그어진 찢어진 틈새에는 눈알이 없었다. 대신 보라색 비늘과 맞춰진 듯한 보라색의 옅은 안개, 혹은 입김을 뿜어내는 듯한 모락모락 거리는 뭔가를 뿜어내는 틈새였다.
뭔가 삼키고 괴상한 것을 뿜는 꼴을 보니, 그냥 잘 모르는 몬스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 들기는 했는데…… 그 보라색의 모락거리는 것이 조금 짙어질까 싶으면 도마뱀은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듯이 움직였다. 도마뱀 특유의 빠르고 날렵한 동작, 거기에 곁들인 꼬리의 휘청임…… 그러면 불씨가 튀어 오르면서 짙어진 보라색의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것이 불타오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데 그렇게 자기가 뿜어내고 불을 붙여 놓은 녀석이 그 자리를 피하고 있으니…….
‘신기해, 정말!’
투란에게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심하게도 보였다.
저렇게 불이 잘 붙은 보라색 입김, 남아서 맴도는 꼴이 딱 안개 같은 것을 뿜어내놓고 거기다 불씨를 던지는 꼬리도 지녔다. 하지만 정작 그 불길이 번지면 자기가 먼저 부리나케 도망간다!
뭔가 불을 지르기는 하지만 불에 대해 버티는 재주가 전혀 없다는 증거 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정말 그럴까?
호기심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쫓던 투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리게 했다.
저놈을 잡아서 한번 불에 그을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손을 움직이게 했고, 검게 물든 손등, 손목을 투란이 보는 순간…… 손바닥에서 검은 재가 길게 회오리바람의 결을 남기며 도마뱀을 향해 뻗어나갔다.
‘어? 아, 블랙 애시!’
손에 잠시 옮아가듯이 형성된 것은 마그마 로드였고, 본능을 자극한 호기심은 마그마 로드의 감각을 저쪽으로 뻗어내게 했다. 그것이 곧바로 블랙 애시의 형상을 이루며 뻗어갔으니…….
슈하아아―!
도마뱀이 큰 입을 벌리며 네 발을 무섭도록 빠르게 움직였다.
보라색의 안개가 도마뱀의 움직인 자취를 따라 짙게 남았고, 잠시 뒤에 휘둘러진 꼬리는 바로 안개를 점화(點火)시켰다.
블랙 애시가 그 불길이 번지는 자리로 올라가는 순간, 작은 폭발이 연이으며 길게 이어진 회오리바람의 결을 따라 투란에게로 이어져 왔다.
쿠웅.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 그 울려오는 감각은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고 그저 슬쩍 뭔가를 손으로 쥐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는 투란에게 꽤 새로운 발견이었다.
마그마 로드가 기본적으로 그 형상을 빚어내는 검은 암석의 살갗, 거기에 닿은 블랙 애시의 폭발은 작게 이어졌지만 약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저편에서 여기까지 길게 늘어진 탓에 돌이 굴러다니는 바닥에서도 폭발이 있었고, 그 파괴력은 돌을 산산이 흩어놓고 있었다.
그 광경은 문득 투란에게 마법사가 으스러지면서 오그라들다가 사라지던 좀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마법사가 사라졌고, 투란은 이렇게 한가하게 지나가던 큰 도마뱀을 보다가 이상한 발견을 한 셈이다.
사아―!
저쪽에서 입을 열고 혀를 날름대는 도마뱀을 향해 다시 투란이 손을 뻗었다. 검은 재가 허공에서 짙게 흩어질 듯하며 회오리치며 다시 뻗어나갔다. 짙었던 색채는 멀리 나아가면서 옅어졌고, 도마뱀은 뭔가 꺼림칙하다 싶으면 바로 피하는 버릇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시 날렵하게 움직였다.
화앗, 콰콰콰아―!
이번에는 작은 폭발음을 투란은 똑똑히 귀를 기울여 들었다.
손바닥에 착 감겨오는 충격, 중간에 폭발에 휘말려 으스러져 가는 돌멩이들의 자태…….
사람이 뭔가를 더듬는 듯한 짓을 마그마 로드는 이렇게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투란은 깨달았다. 용암의 호수, 뭔가 터질 겨를도 없이 검은 재가 용암의 분출에 쓸려나가고 마그마에 잠식당하던 풍경에서는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그저 얕게 주변에 둘러놓으면 뭔가 다가와 닿을 때 알 수 있겠거니 했던 블랙 애시의 감각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터지면서 전해오는 ‘촉감’은 보다 확실하다.
물론 그 폭발은 작더라도 확실한 파괴력을 발휘하니, 폭발에 휩쓸린 것은 다시 볼 때쯤에는 거의 대부분 그 자리에 없다.
‘이러니 뭘 보고 흉내 내는 재주가 있어도 써먹을 수가 없지.’
검은 암석으로 이뤄진 아주 단단한 창의 형태가 아니면 뚫기도 힘든 파이로-칸 정도가 아니면 마그마 로드는 더듬을 수도 없었다. 블랙 애시의 저 폭발에 견뎌낼 정도의 강인한 뭔가라도, 다시 분출되는 마그마―용암에 휩쓸려 버틸 수가 있느냐를 따져봐야 할 테고!
슈하아아―!
호기심이 맴돌던 눈알을, 길게 찢어진 눈매 속에서 데굴거리던 큰 도마뱀이 꼬리 끝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투란을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고…… 곧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갔다.
‘음, 저게 몬스터였나 마수였나.’
투란에게는 이런 의문을 남긴 채로!
몬스터가 자신의 힘을 견뎌낼 수 없을 경우, 세상 어딘가에 나타나기가 무섭게 사라지기 쉬웠다. 자신이 불 지르고 거기 타버린다면, 대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마수라면, 최소한의 생명에 대한 방어 본능이 있어서 저럴 수가 있었다. 불 지르고 위험하니 도망간다.
‘뭐, 아무려나.’
투란은 잡념을 버리고 천천히 덜렁거리던 다리를 당기며 일어섰다. 그리고 가만히 손바닥에서 꾸물거리는 검은 암석의 살갗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느 정도 휴식이 끝났으니,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저 남매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몬스터 엠블럼은 어떤 상태인가!
황금매 속에 천칭을 품었다면, ‘천칭’의 문장으로 삼킨 몬스터를 황금매를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황금매가 가슴에 느껴지는 까닭은 황금매로 삼킨 몬스터를 형성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 회수한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천칭’을 알아냈으니, 황금매가 사라지고 ‘천칭’이 다시 투란의 가슴을 차지할 것인가?
무엇 하나 투란이 들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어찌할 방법이라면, 여전히 직접 겪으면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 * *
캬아, 캬캬캬! 크으, 크크킁!
하얀 괴물은 쳐 웃고 있었다.
황금의 새장 속에서 배를 쭉 깔고, 낄낄대는 모습이었다.
눈매마저 가득 휘어진 것이 좋아 죽을 지경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새장 앞쪽에서는…….
“안 돼,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얘들아, 살아남아야 해.”
오락가락하는 금빛의 안개로 이뤄진 망령이 초조하고 다급한 기색으로 파워 서클의 앞에서 얼쩡대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세란드’라는 하나된 의지는 없는 상태로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괴물은 마법사를 죽여서 행복해하고, 망령은 핏줄인 남매 네 사람이 심하게 탈진하고 고갈된 듯한 몰골인 것에 대해 미친 듯이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틀렸구만, 이거.’
투란은 ‘세란드’에게 지금 뭘 물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은 지금 앞에 놓인 파워 서클이라든가, 그 위에 도도하게 팔을 교차시킨 모습으로 가슴에 품은 듯한 모습의 월드 가디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잔소리 들으러 가야 하나.’
뭔가 주문을 요구하자마자 내놓았으니까, 자세한 설명도 기대했던 투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대체 마법사를 박살낸 주문이 뭔지, 이 파워 서클은 뭐고 월드 가디언은 뭣에 쓰는 것들인지 투란 자신에게 설명해줄 녀석은 드라고니아뿐이란…… 떨떠름하면서도 어딘가 달콤한 현실!
물론 그 전에 투란은 보다 분명하게 해둘 일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 풍경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옥좌였다.
투란의 마음은 바로 최초로 이 풍경을 보던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서 볼 수 없었던 옥좌, 오직 바닥에 둘러쳐진 기묘한 띠의 형태 속에 주문이 박혀 있는 것만을 어느새 알게 되었던 자리.
투란은 그 주문이 새겨진 여러 무늬를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봤고, 결정했다.
“좋아, 아케인 포스…….”
* * *
“에어 가드.”
세찬 바람결이 살갗에 닿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두꺼운 외투를 몸에 두른 느낌이었고, 그 느낌 속에서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마지막 한 조각 형상까지 해체했다. 온전한 사람의 몸으로, 새롭게 주변의 바람결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으아, 아직 독하잖아.’
조금 전까지 맑고 시원하기만 했던 숨결 사이로 아직은 독한 유황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곧 ‘바람의 수호(守護)’가 생존 주문과 연계되었고, 투란은 다시 맑고 시원한 숨결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었다.
“소일 커버.”
발가락 사이로, 바람결에 실려온 흙먼지가 쌓이고 엮이며 장화를 지어내며 서서히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거의 닳고 헤진 느낌의 검은 가죽 사이를 채우면서 마른 진흙처럼 투란의 몸을 덮는 ‘흙의 의상(衣裳)’이 완성되었다.
이 또한 생존 주문과 연계시켰고, 급할 경우에는 ‘메자이 아머’의 강력한 방어로 전환될 준비를 마쳐놓았다.
일단 걸어놓은 주문이 애써 해제하지 않으면, 뭔가에 심하게 거슬리지 않으면 계속 유지될 거란 점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투란은 다시 문장 속의 풍경으로 마음을 던져 넣을 각오를 다졌다.
이제는 ‘천칭’으로 넘어갈 때였고, 이 가슴에 다시 ‘천칭’을 불러낼 때였다.
미묘하게 불안한 기분으로, 투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한 번 더 굳게 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