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2)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 제발 어서 깨어나!”
망령이 외치는 소리가 보다 세차게, 풍경 속에 관심을 두는 순간에 투란의 뇌리로 스며왔다. 이는 투란이 지금 하려던 짓을 잠깐 멈추게 했다.
‘깜박했네.’
자신을 향해서 투란은 약간 멋쩍은 투덜거림을 흘려냈다.
‘에어 가드’, ‘소일 커버’를 몸에 둘렀고,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도 모두 마쳤다. 하지만 망령이 저리 걱정하는 남매들에 대해서는, 그저 널찍하고 큰 바위에 살짝 얹어놓았을 뿐이었다. 물론 쉽게 보이지 않도록 남매를 놔둔 곳은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 있기는 했지만, 위에서 누가 내려와 채간다 하면 그냥 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날짐승이 없고, 구름도 없기는 했지만 이곳에는 가끔 몇 미터짜리 뱀도 발톱으로 낚아채서 날아다니는 뿔수리 같은 놈이 있기는 하잖은가.
하얀 괴물이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모아둔 앞발에 턱을 괸 꼴로 쳐웃는 꼴을 한 번 더 보며 투란은 그냥 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역시나 망령이 점점 거세게 초조해하는 꼴을 겹쳐보니 뭔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정해야 했다.
‘뭐, 잘못되면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더 없을 테니까.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뭐든 해두는 게 좋겠지.’
조금 자신의 결정에 대해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일단 문장의 풍경에서 벗어났다.
* * *
살짝 시알라 남매 쪽을 둘러봤지만, 아직 깨어나거나 일어나서 스스로 뭔가 알아서 할 낌새는 없었다.
“에어 헛(Air Hut).”
바람이 커다랗게 맴돌면서 10미터짜리 정사각형의 암반(巖盤)을 휘감았다.
투명한 방벽이 사방을 덮어씌운 듯했고, 냄새까지 차단했다.
싱싱한 사람의 살을 냄새 맡고 맛보기 위해 올 놈은 이제 없을 것이다. 혹은 오다가 길을 잃든가.
“라이트닝 가드.”
그래도 투란은 소소한 덫 하나를 덧씌웠다.
황금매의 기초 마법은 모두 아케인 포스를 바탕으로 네 가지 속성을 띤 채로 전개되면서 서로 겹쳐놓을 수 있었다. 그 간단한 특성이 기본적인 주문을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구성해내게 하는 넓은 응용력을 지니게 한다.
배틀 그림모어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자신이 쳐놓은 마법의 방벽을 둘러봤다. 아케인 포스를 품은 시각 속에서…….
바람이 두껍고 얇게 휘몰려 다니는 속에서 작은 빛의 조각이 맴돈다.
보기에 따라서는 얇은 냇물이 투명해진 채로 둥글게 암반을 덮은 채이고, 그 물결이 햇살을 가볍게 튕겨내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뭐든 저 바람의 움막을 건드리면, 그 속에 담긴 번개가 일단 날벼락이 되어 후려칠 터였다.
‘이 정도면…… 급할 때 금방 알 수 있겠지.’
다시 투란은 숨을 고르고, 문장의 풍경 깊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천칭’에 닿기 위해서!
* * *
얇고 분명한 금빛 사슬을 따라, 시커먼 심연의 자취를 더듬으며 투란은 ‘천칭’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정신 깊이 느껴지는 몬스터의 정수가 바로 투란을 기분 좋게 했다.
곧바로 버럭 튀어나오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투란을 웃게 했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 끝났으면 바로 알려달란 말이다!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투란 너 지금 엄청나게 위험한 주문을 시전하러 간 거라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손을 써놔야 한단 말이다!”
“어? 에…… 뭐가 잘못된 건지, 내가 알겠어? 그러니까…… 음, 뭐 이렇게 되었는데 말이지.”
말로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보다, 투란은 마법사가 으스러지는 광경과 함께 그가 마지막으로 드러냈던 정신의 파동을 통해 전해온 것을 기억해내며 그대로 별빛 무리를 향해 뿜어냈다.
곧장 ‘천칭’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돌면서 그대로 가늘게 이어진 별빛 무리 쪽으로 투란이 겪은 바를 고스란히 전했다. 투란의 문장 속에 머무는 자라면, 이 ‘천칭’에 의해 그 정수를 풍경 속에 담고 있는 몬스터라면 모두 알고 느낄 수 있도록!
그로 인해 투란은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눈앞에서 마법사의 최후를 보고 겪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몸이 으스러지고, 소리 없이 경악하던 마법사의 정신까지 사라져가던 광경…… 사방을 가득 채웠던 금빛의 벽이 녹아내리며 흘러서 시알라 남매를 휘감으며 뭉쳐가던 형상…… 곧 시알라 남매 네 사람의 몸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져간 금빛, 풀썩거리며 쓰러지던 네 사람의 모습…… 그 위로 겹쳐지듯이 도도하고 당당하게 나타나던 네 개의 그림자, 월드 가디언의 늠름한 중무장…….
“좋아, 잘못된 것은 없군.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어. 거칠지만, 잘했다.”
드라고니아는 찰랑이는 별빛을 드러내며 안도하는 기척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투란’―‘악마의 심장’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정리했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의문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중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아칸 스펠. 금기, 위험하다는 그 마지막 경고. 진심이던데, 괜찮은 거야? 왜 괜찮은 거지?”
뒤탈이 정말 없는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었다.
아겔페스가 그 정신의 파동을 통해 진심으로 쏟아냈던 경악이었으니까.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아주 태연하게, 어딘가 냉소를 담은 말투로 여유롭게 답한다.
“그걸 막기 위한 월드 가디언이고, 파워 서클이다. 악마종의 비술을 꺼내 쓰던 놈이 걱정할 일도 아니지. 애초에 그런 게 진짜로 걱정된 놈이라면 아바타리안의 아바타 비술 따위는 손대지 말았어야지!”
말끝이 살짝 올라가면서 화난 기색이 어려 있기도 했다.
투란은 그 말속에서 한마디를 짚었다.
“아바타?”
“그래, 녀석이 말한 군체…… 끝없이 나뉘어 있는 또 다른 자신, 자기이면서도 자기가 아닌 존재로서 형성된 자아를 기반으로 한 실체. 그게 바로 아바타이지. 원래는 신족이 세상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그 의지를 시현(示現)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권능(權能)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고대의 악마종 중에서 정말 지옥에서 기어나온 듯한 녀석이 마법으로 구성해냈다. 아니, 녀석은 지옥에서 원래 그런 놈이었고 그 능력을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허용하는 마법이란 틀을 빌려야 했고…… 그 때문에 놈과 싸우는 우리는 골치 아팠다.”
줄줄 이어져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드라고니아는 문득 과거의 전설을 더듬는 듯한 감상이라도 하는 말투였다. 그래서 투란은 잠깐 말이 멈춘 사이에 다시 물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바타가 뭐야? 애매하게 말고, 알기 쉽게 좀!”
“그 원숭이랑 별 차이 없는 지능에 알맞게 설명해주자면, 마법으로 자기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거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둘이 되게 하고,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한쪽으로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 그게 아바타란 비술마법이다. 단지 목숨이 둘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완전한 몸을 지닌 둘이 되는 거야. 하지만 고대 악마종의 비술은 그 수가 둘이 아니었다. 만들고 싶은 만큼, 세계의 범위 내에 지니고 있는 마력의 용량만큼 제멋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지. 게다가 그 종(種)도 반드시 자신과 똑같지 않은 아바타였다. 어떤 것은 악마의 형상을, 어떤 것은 짐승의 형상을, 어떤 것은 인간의 형상을 고스란히 품을 수 있는…… 심지어 몬스터의 형상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진짜 지옥의 비술이었지.”
“그럼, 하나 잡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
뒤늦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바를 깨닫고 놀라 소리쳤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조금 우쭐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고대 악마종을 완전히 멸살하기 위해서, 옛날 드라코눔의 아칸들이 강력한 주문을 창안했다. 뭐, 그때 온갖 이상한 악마종이 설쳐대던 시절이라 창안된 주문은 그 한 가지…… 아케인 버스터 체인만이 아니었지. 그렇게 해서 창안된 주문들을 아칸 스펠이라고 부르는 거야. 한결같이 깊은 지혜와 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강한 의지가 담긴 주문들이었다…… 정말 지혜로웠고 아직까지도 그 영광을 드리우고 있는 드라코눔의 선대 아칸들이었다.”
“오, 그래……가 아니지! 마법사, 아겔페스가 왜 다 죽는다고 했냐고! 슬쩍 넘어가려고 하지 마!”
“넘어가긴! 이제 말하려고 하잖아! 끊고 끼어들지 말라고!”
“흐흥? 그래, 잘 듣고 있으니까 어서 말해줘.”
“악마종과의 전투는 때때로 너무 급박했고,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간혹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었다. 그게 주문을 구성해내는 과정에 끼어들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부작용…… 아주 부정적인 효과가 세계에 드리워지기도 하지.”
드라고니아의 말이 잠시 멈췄다.
투란은 자신이 딱히 끼어들지 않는데도 멈춘 것에 조금 볼멘소리를 내려다가, 문득 드라고니아의 착잡하고 복잡하게 엉킨 기분을 느끼고 멈췄다. 아무래도 그 영광스러운 선조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지금 자신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각오한 듯한 낌새가 아주 심각하잖은가.
자기가 직접 저지른 일도 아닌데 뭐 저리 심각할까?
투란이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채로,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감추며 기다리는 동안 드라고니아는 생각과 기분을 정리한 듯이 이야기를 잇는다.
“아케인 버스터 체인의 부작용은, 고대의 아칸들에게 아주 충격적이었다. 아바타리안, 아바타의 비술마법을 쓰는 악마종이 어째서 자신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하던 다른 악마종과 다르게 이 세계의 마법을 응용하고 있었는가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거든. 아, 그래 간단히 말할 테니까 계속 다물고 들어! 아바타리안의 아바타는 이 세상의 일부로 정착되는 성질을 지녔다. 쉽게 말해서, 녀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새로운 자신은 이 세계의 일부였단 말이다. 아케인 버스터 체인은 그걸 모조리 추적해서 파괴하는 마법이었지. 악마종 중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형태로, 환경을 바꾸는 놈들도 있었다. 그 아바타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 역시 그런 오염의 일종이라고 여기고, 추적해서 파괴하게 했는데…… 세계가 함께 파괴되고 있었던 거다. 심지어 아바타 중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자신이 악마종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뿐이라고 기억만 하는 놈도 있었지. 즉, 그런 놈은 그저 정신의 일부가 오염된 꼴이었을 뿐이고 사실은 완전히 이 세계의 정당한 존재였단 말이지. 한데 아바타의 다양한 형태를 모조리 파괴하기 위해서, 그 오염을 없애기 위해서 버스터 체인은 그 모든 변이가 어떤 수준인가 아랑곳하지 않고 쫓아가 파괴한다.”
“모두 죽는 거네.”
겨우 투란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의 냉정해진 한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점을 깨닫고 있기도 했다. 이 세상의 일부로서, 정당하게 자리 잡는다…… 그건 예전에 드라고니아의 일족이 했던 일 아닌가? 그렇다면 그 고대 악마종은 다른 세상에서…… 지옥에서 기어나왔다고 지적된다고 해도 결국 이 세상에 머물며 살려던 것인데, 굳이 저렇게 위험한 결과를 낳아버린 주문까지 만들어야 했을까? 세계가 같이 부서져나가는 부분은 부작용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악마종을 반드시 없애겠다는 강력한 결심으로 만든 것 같은데? 어떻게든 이 세상의 일부라 되려던 종족을, 심지어 거의 완전히 이 세상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까지 없애야 했을까?
이런 의혹은 곧바로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바로 대답이 별빛 무리에서 흘러나온다.
“그게 녀석에 대한 대처가 꽤 늦었던 이유였지. 다른 세계로부터 소환된 악마종들은 이 세상을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 순수하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우리에게 그들을 악마라고 느끼게 했던 것뿐이고, 사실은 이계(異界)에서 찾아온 손님이 돌아가지 못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아바타리안은 진짜 지옥에서 찾아온 놈이었다. 녀석은, 그 악마종은 이 세상에 적응을 하거나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려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통째로 파괴해서 지옥으로 떨궈버리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의 형상을 빌려 쓰고 그 속에 숨은 채로 끝없이 자신을 늘려나가려 했지. 오직 이 세상에 자신만이, 아바타로만 가득 채울 생각으로 말이다. 그 속셈을 드라코눔의 아칸이 알아차렸을 때는…… 홀로 이 세상에 건너왔던 지옥의 존재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수만인지 수천만인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언제 지옥문이 열리고, 이 세상이 통째로 거기 빠져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아케인 버스터 체인은 제대로 검토할 여유가 없이 빠르게, 아주 강력하게 만들어진 주문이 돼 버린 거야. 세계를 파괴할 정도로 위험하게 말이지.”
“겁나네. ……어? 그런데 어쨌든 수습할 수 있었던 거네?”
아직 세계가 부서지지 않고 있잖은가?
부작용, 그 부정적인 효과를 막을 주문까지 둘씩이나 있고!
과연 드라고니아가 고대의 선조 아칸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이렇게 투란이 느끼는 순간, 씁쓸하고 깊은 아쉬움이 담긴 드라고니아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일족이 수습한 게 아니다. 파워 서클, 월드 가디언은…… 우리 일족이 뒤늦게 아케인 버스터 체인의 끔찍함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혼돈의 성궤를 찢어발기며 이 세상으로 찾아왔던 대마도사, ‘진정한 아크메이지’라고 일컬어지는 이가 펼쳐낸 대마법(大魔法)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 일족 또한 그때까지 불안정했던 부분이 잔뜩 있던 존재의 기반을 완벽하게 다질 수 있었다고…… 우리에게 전승된 기록은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헐? 대체 누구야, 그게?”
투란은 저절로 궁금해졌다.
드라고니아를, 저 별빛 무리를 주눅 들게 하는 듯한 이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