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4)
오랜 굶주림, 간신히 한 방울씩 삼키던 물로 겨우 연명(延命)하던 자의 허기(虛飢)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게걸스럽게 ‘천칭’이 흘려내는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섭취하려는, 포식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었다.
‘우왓!’
투란은 놀랐지만, 살갗에서 짙게 흘러내리는 ‘패러블랙 잉크’는 자연스럽게 그 허기와 갈망에 호응하며, ‘악마의 심장’이 유지하는 냉정함에 따라 가죽 속에서 반응한 잉크의 잔유물로 섞여 들어갔다.
허기가 곧 사라졌고, 뿌득거리며 팽창하는 가죽의 질감이 또렷하게 투란에게 느껴졌다. 흙으로 이뤄진 황갈색의 껍질 틈새로 파고드는 것처럼, 가죽은 투란의 바지 속을 꽉 채우는 느낌을 줬다. 이미 가죽만으로 장갑(裝甲)이라 불릴 정도의 견고함을 과시하면서 ‘소일 커버’로 만들어진 의상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슬그머니 배꼽 아래에서 탱탱하게 박혀드는 것처럼 불끈거리는 ‘소울테이커’의 무늬도 있었다. 이는 투란을 살짝 쓴웃음 짓게 했다. 아무것도 아니란 듯,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파고들면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소울테이커’의 감각…… 겨우 살갗 위로 미세하게 덧칠한 듯한 흔적만 남기면서도 배 속 깊숙이 가늘고 깊게 자리 잡으며 몸의 모든 상황을 더듬고 파악하는 느낌이 이전과 다르게 선명하다!
‘이놈, 잊고 있었는데.’
‘소울테이커’의 형상을 품고 나니, 새삼 투란은 하얀 괴물 세란드에게 박박 찢겨 망가졌던 일도 새록새록 뇌리에서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그 복수를 하려고 하다가 꼬이고 꼬인 일이 이 지경까지 왔다!
―그럭저럭, 정상인 것 같군. 굳이 소울테이커까지 형성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드라고니아의 놀리는 말투에 투란은 발끈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몬스터의 제어에 실패한 듯하지만, 지금 투란은 자신의 생존본능이 ‘소울테이커’까지 끌어낸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당한다면 다치더라도 죽기 싫다!
“후우읏! 호오오옷!”
일부러 입술로 숨을 내쉬면서, 투란은 멀리 눈길을 던졌다.
눈가에 거뭇하게 물들었고, 눈썹 사이까지 번져갔다.
뿔수리의 눈이 투란의 눈썹과 살짝 겹쳐진 듯이 이마 쪽에 한 쌍 생겨났다.
‘아, 이것도 해봐야지.’
투란은 눈을 감았고, 잉크의 가죽 속에 덮인 눈동자로 드레이크의 형상을 불러냈다. 바로 잉크가 이에 반응해왔고…… 세상이 달라졌다.
“켁.”
투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소리가 새고 말았다.
황금매와 어울리는 동안에 느껴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섬세하고 가녀린 돌의 무늬, 빛살을 살짝 흘려내며 곱게 드리운 그림자, 가볍게 휘날리는 티끌의 한 점 한 점이 제멋대로인 듯이 선명한 자태…….
이전에는 익숙해서 그냥 그렇구나 했던 것인데, 잃었다가 되찾고 나니 이 시야의 선명함은 흡사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장님이 아니었던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황금매의 마법으로도 굉장히 잘 보였는데…… 아, 드레이크의 눈 때문일까? 거기에 뿔수리까지 더해져서? 그래서 저 도마뱀 떼가 잘 보이…… 엥?’
잠깐 풍경에 취해 있던 투란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원래 붉은 그랑츄가 울타리를 세웠던 이곳, 주변이 보다 큰 울타리처럼 치켜 올라간 언덕으로 둘러싸여 낮게 가라앉은 것처럼도 보이는 곳이고, 그 한복판에 투란이 심어놓은 네모난 암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암반에 선 채로 훤히 보이는 언덕의 풍경, 그 언덕의 곱고 부드러운 선을 망가뜨리듯이 돌출된 돌덩이, 바윗돌의 삐죽거림으로 보이던 것들이 모두 가죽색을 주변과 맞춰놓은 도마뱀이잖은가!
그 찢어진 눈, 살짝 패인 듯한 눈 뒤의 생김새가 조금 전까지 보라색 가죽을 보이면서 보라색 안개 같은 입김을 등 뒤로 뿌리고 불붙이며 뛰어다니던 놈이랑 거의 똑같았다. 바로 그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같은 품종의 도마뱀이다!
그런 녀석들이 떼로 언덕에서 변색(變色)으로 위장(僞裝)한 채, 투란이 서 있는 암반을 노려보면서 입매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분명히 딱 저 먹잇감을 대체 어떻게 잡아먹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꿈틀거림이다!
사람의 눈, 황금매의 마법으로 강화된 시각으로도 파악할 수 없던 변색위장 능력이었지만 드레이크의 눈과 뿔수리의 눈은 선명하게 파악해냈다.
투란은 눈을 깜박였고, 드레이크의 눈과 뿔수리의 눈을 다시 번갈아 가며 언덕을 따라 숨어 있는 도마뱀 떼를 둘러봤다. 양쪽의 시각이 어떻게 차이를 내는가를 확인하려는 짓이었고, 이는 분명한 차이를 바로 느끼게 해줬다.
드레이크의 눈은 주변과 색이 아주 똑같이 맞춰진 도마뱀의 살결이 그 과중에 꿈틀거리는 것을 정확하게 잡아냈고, 뿔수리의 눈은 색의 변화보다 굴곡진 도마뱀의 윤곽이 절대로 바위나 돌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줬다.
‘드레이크의 눈은 너무 좋은데? 이거 새끼의 시력이라기보다는…… 아, 잉크의 도움이구나.’
투란은 예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지나치게 뛰어난 드레이크의 눈이 아직 덜 자란 새끼 드레이크의 시각을 뛰어넘는 까닭을 알아차렸다. 아르고누스가 형성된 눈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게 해준 것이다. 여러 가지 눈으로도 풍경이 하나의 시야 속에 모두 담긴 채 보이게도 해주고…….
자신의 몬스터 능력에 새삼 감탄하다가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저 도마뱀 떼는 한 마리를 정찰대로 보낸 것이다.
이쪽이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 위협이 될 것인가를 예측해보려고!
게다가 저놈들이 그 보라색 안개 입김으로 이 주변을 모두 감싸고 불이라도 붙이면…… 붉은 그랑츄가 자리 잡은 언덕 아래의 지형은 순식간에 불의 연못이 될 수도 있었다.
당장 가볍게 가늠해봐도, 한 마리가 뿜어내는 것과 양이 다른 보라색 안개가 자욱한 상태가 된다면 그 불의 열기는 꽤 셀 듯하잖은가.
‘어이, 혹시 저런 이상한 도마뱀에 대해서 아는 것 없어?’
―파이어워커잖아. 몰랐나?
드라고니아는 심드렁하고 빠르게 답했다.
‘파이어워커?’
―불 지르고 뛰어다닌다고 가끔 파이어러너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보통은 불 지를 준비를 하고 걸어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저게 뭔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본 이들이나 보기 마련이지. 길게 이어진 불꽃을 깔면서 뛰는 꼴 말이야.
‘위험하지 않은 모양이네?’
―불에 약하다면 위협적이지. 너, 지금 불에 대해 뭔 걱정 있나?
‘없네.’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소리 없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천칭’에 담겨 있는 마그마 로드, 그 검은 암석의 살갗만 꺼내도 저 녀석이 지를 불의 열기 따위는 그저 따스한 바람결에 불과할 뿐이니까. 분명히 예전처럼 ‘악마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로 뜨거울 경우에 미리 대비할까를 염려할 필요가 없는, 전혀 다른 투란이잖은가!
‘근데, 저거 자기가 지른 불을 피하는 것 같던데?’
살짝 의아한 부분을 투란이 이어 물었다.
―원래 그래.
드라고니아가 살짝 웃는 기척과 함께 대답했다.
‘원래?’
―자기가 지른 불에 구워지기도 하거든. 뭐, 그중에는 뼛속까지 타버릴 때까지 날뛰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 그래서 가끔 레서 살라만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 그 몸을 불살라 난동을 부린다고 말이야. 그럴 때에나 몬스터이고, 보통은 마수야. 자기가 불 지르고 도망 다니는 조금 불쌍한 녀석이라고 해야겠지. 그보다, 이제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응? 아, 그래…… 쟤들한테 선물 하나 하고…….’
―뭐? 무슨……?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할 때, 투란은 언덕 너머를 겨냥하듯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받쳐 올리는 듯한 손짓을 했고, 곧 투란의 손바닥에서 검고 얇은 원반이 날아올랐다. 부드럽게, 그 속을 검은 재로 이뤄진 작은 톱니가 가득 채운 듯한 원반은 곧장 언덕 쪽으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천칭’의 마그마 로드는 확실하게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정교하게 제어된 블랙 애시는 분명하게 투란이 원하는 형태를 이루고, 제멋대로 하늘거리는 짓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원반을 이룬 정도라면 저기 닿기 전에 모두 흩어지면서 엷어져야 할 텐데, 지금 날아가는 ‘천칭’의 블랙 애시―마그마 로드의 감각은 정교하게 원반의 형체를 유지한 채로 저곳에 닿게 했다.
투란은 드레이크의 시각을 통해, 여린 보라색 안개와 검은 재의 원반이 닿는 것을 보는 순간…… 내밀었던 손을 움켜쥐었다. 저쪽에서 정교하게 맞물렸던 원반의 속의 톱니가 헝클어졌고,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듯한 어긋난 마찰을 일으키며 바로 불티를 날리고 불꽃을 피워 올렸다.
도마뱀 떼가 흐릿하고 옅게 뿜어내던 보라색 안개가 그 불꽃에 바로 반응하며 언덕을 따라 길게 늘어진 불의 장벽이 치솟았다.
그 장벽 속에서 불꽃의 붉은빛으로 살갗색을 바꾼 도마뱀 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광경이 그다음 순간에 언덕을 채웠다. 그중에는 이미 몸에 불이 붙어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이 입을 벙긋거리는 놈도 있었고, 불붙은 꼬리를 뒷발로 잡아당겨 끊어내는 놈도 있었다.
―뭔 심술이냐?
드라고니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고, 여기 푹 쉬면서 회복 중인 사람들도 있잖아. 뭐, 곧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시알라 남매를 다시 둘러보면서, 투란은 ‘천칭’의 몬스터 형상을 해제해나갔다.
이제 다시 황금매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확인할 때였다.
* * *
“그래서, 어떻게 주문을 점검하지?”
별빛 무리를 향해 투란은 본론부터 바로 던졌다.
드라고니아도 머뭇거림 없이 바로 응해줬다.
별빛 무리의 한구석에서 작은 별빛이 뭉쳐 이뤄진 조각이 곧장 ‘천칭’의 정상을 향해 날아왔다.
“그걸 황금매 쪽으로 가져가서…… 주문으로 완성시켜.”
둥실거리는 별빛조각을 보며 투란은 의아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대체 이게 뭔데? 완성시키라니?
묻기 전에 바로 드라고니아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쪽에서 넌 주문을 외울 수가 있다. 마법을 발휘하지. 그 마법은 ‘천칭’에서 몬스터를 형성해도 유지되었고 말이야. 그걸 이용하기 위한…… 내 주문 구성체가 그거야. 그걸 가지고 가서, 저쪽에서 마법으로 펼쳐놓아 보라고. 그러면…… 그게 성공하면 상황이 꽤나 쉬워질 테니까.”
“어, 쉬워지는 거구나.”
다 옆으로 밀어버린 듯, 투란은 그 마지막 한마디에 달라붙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곧장 별빛 무리가 일렁이며 약간 울컥하고 짜증 난 기색이 흘러나왔다.
그 낌새를 느끼자마자 투란은 더 다른 말을 기다리지 않고 별빛조각을 마음으로 움켜쥐면서, 그대로 황금매를 향해 뛰어들었다.
차르륵!
길게 늘어진 사슬이 ‘천칭’의 거대한 축 주변을 맴돌며 묘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금빛 선을 더듬는 투란은 심연을 건네고 있었다.
황금의 반구, 금빛 격자의 입구.
투란은 자신이 품고 온 별빛조각을 살짝 옥좌 앞으로, 입구 쪽을 향해 들어 올리듯 자리 잡게 했다.
‘어라?’
별빛조각은 더 이상 ‘천칭’에서 드라고니아가 던져줬던 모양이 아니었다.
금빛의 타원형, 알 속에 길고 긴 끈이 헝클어진 채로 엉긴 듯한 형태가 되어 있었다. 끈은 금색이었고, 수많은 문자와 무늬가 마법을 품은 채로 새겨져 있었다. 그 속에서 투란에게 선명하게 의미를 전하는 것은 키워드…… 담긴 마법을 풀어놓을 열쇠의 한마디뿐이었다.
이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의 말을 분명히 이해하도록 했다.
이 마법을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황금매를 통해 얻은 경험을 전해받고 그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이 별빛조각을 건네준 것이다.
투란은 곧바로 행동하기로 했다.
“윌 라이트.”
해방된 마법이 금빛 껍질을 깨고, 금빛 격자를 넘어가는 광경이 느껴졌다.
* * *
즈읏.
뭔가가 선명하게 가슴에서 뿜어져 나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끄럽게, 부드럽게…….
그 형상이 바로 투란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황금매의 문장이 가슴에 자리 잡은 탓에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환하고 맑은 풍경은 세상에서 사라진 듯했지만, 새로 드러난 마법이 이뤄내는 형상은 빛으로 이뤄진 채 잘못 볼 수가 없게끔 투란의 눈앞에서 팔랑거렸다.
‘깃? 날개?’
작고 섬세한 깃 둘이 꼭지를 마주하며 엮이다가 길어지며, 날개처럼 두 방향을 향해 팔락대는 꼴을 보였다. 그리고 그 팔락임이 겹쳐지면서 새의 날개 같던 것이 박쥐의 날개처럼 변해갔다.
박쥐의 날개는 폭이 좁아졌고, 길게 늘어졌다.
늘어나고 길어졌음에도 박쥐의 가죽날개 같은 형상은 보다 뚜렷해졌고, 교차되었다. 그 날개가 교차된 채로 나선을 이루며 아래쪽을 향해 조금 뾰족하게 휘감기는 듯한 움직임이 끝나는 순간, 투란은 새로운 알―보기에 따라서는 항아리 같은 형상을 알아차렸다.
“윌 라이트?”
주문이 완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