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5)
우웅!
가벼운 진동이 한 쌍의 날개에서 흘렀다.
―그래, 이게 바로 의지(意志)로서 이뤄지고, 의지를 담는 마법의 빛이다.
“에? 어?”
뇌리를 울리는, 소리 같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머릿속에 들이박히고 꽂혀드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투란을 놀라게 했다. 황금매가 가슴에서 금빛 얼룩처럼 반짝거리는데, 이 또렷하고 분명한 드라고니아의 말이라니!
투란은 눈을 부릅뜨고 박쥐의 날개가 무늬처럼 새겨지고 그 안을 채워가는 나선의 모양으로 자리 잡은, 작은 항아리 같은 알의 형상을 노려봤다. 오로지 맑은 빛으로 이뤄진 기묘한 형상인지라 손으로 만져질지 어떨지조차 아리송했다.
―손.
가벼운 한마디가 엉겁결에 투란에게 오른손을 내밀게 했다.
―음, 좋아. 의지가 제대로 전해졌어. 이빨 담은 손을 원했거든.
기분 좋은 듯이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다시 한 번 투란의 뇌리에 꽂힌 것처럼 울렸다.
“야, 이게 뭔…….”
입을 열다가 생각보다 크게 울린 자기 목소리에 투란은 움찔했고, 시알라 남매 쪽을 잠깐 둘러봤다. 지치고 힘든 표정이지만 깊이 잠든 남매 넷은 투란의 목소리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꺼내던 말을 생각으로 이어갔다.
‘뭐냐고, 이게!’
대답보다 먼저 빛의 항아리 알이 먼저 움직였다.
살며시 투란의 손등으로 내려앉았고, 살갗 속으로 스며들면서 흩어지듯이 날개를 펼치며 손과 손목의 뼈를 휘감는 광경이 투란의 두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잠깐 투란의 손이, 손목이 투명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느긋한 말투의 설명이 이어진다.
―윌 라이트. 드라코눔의 기초 마법이자…… 궁극의 마법이기도 하지.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고…… 무엇보다 다른 주문을 연계하고 매개할 수가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투란은 뼈에 새겨질 듯이 휘감기던 날개의 빛이 손바닥 쪽으로 뭉쳐들다가 툭 튀어나오는 것을 봤다. 그리고 뼈에 감긴 박쥐 날개의 형상을 한 끈이 아주 단단히 새겨지는 느낌! 아프거나 하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뼈를 살며시 누르는 느낌이 골수를 통해 등골까지 울려오는 듯했다.
그 느낌과 함께, 투란의 눈에는 다시 금빛 항아리와 나선으로 꼬인 채 그 속을 채우며 외곽의 문양처럼도 보이는 얇고 긴 가죽 날개가 비쳤다. 이번에는 날개의 중심, 깃촉이 서로 만나며 교차되어 작은 방울 모양이라도 만들어내는 듯한 부분이 아까와 달랐다.
‘고양이 눈?’
가끔 뱀눈이라고도 부르는,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를 지닌 눈알이 하나 나타난 채였다. 그저 비어 있던 구멍을 채우듯이! 그리고 방울 모양의 외각에 살짝 솟아난 작은 돌기…….
―흠, 과연 세상은 이렇게 보이고 들리는군. 새삼스럽지만, 여전하다고 해야 하나…… 정말 오랜만이야.
뭔가 깊은 감회를 토해내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투란은 바로 저 고양이 눈의 용도, 작은 돌기의 쓰임새를 알아차렸다.
보고 듣는 마법…… 배틀 그림모어에서도 정찰과 탐색을 위한 중요한 것이라 여기는 주문이 낳은 형상이었다. 단지 드라고니아의 것, 드라코눔의 마법은 황금매에 담긴 것과 전혀 다른 형태와 양식을 지녔을 뿐이다.
그 보고 듣는 마법으로,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감각을 거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다시 보고 듣는 중이었다.
‘윌 라이트로…… 네가 주문을 쓸 수 있게 된 거야?’
투란은 바로 물었다.
―그렇지. 매개체를 둔 채로 원격에서 주문을 거는 오래된 방식이다. 뭐, 이 경우에는 멀다고 하는 말이 좀 애매하긴 하군. 아무튼, 황금매를 통해 완성되었다 해도 이 주문의 주체와 근본은 너이고, 내가 제어만 하는 방식이야.
점점 선명하게 귀에 들려오는 듯한 말소리였다.
하지만 투란은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게 귀를 통해, 청각을 통해 들리는 소리가 전혀 아니란 것을!
‘말하는 주문도 있나?’
―윌 라이트를 매개로 실감 나게 말을 전할 뿐이다. 하지만 진짜 들어야 하는 주변 소리와는 확연히 격차가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
‘어, 그렇기는 하지.’
약간 실망한 듯, 투란은 웅얼거림으로 대꾸했다.
자신의 감각이 예리해져서 간파했나 했더니, 원래 알 수 있는 일이란다.
조금 자기 수준이 높아졌나 했다가 아니라니 묘한 실망감이 저절로 찾아오는 셈이었다.
바로 투덜거리는 듯한 물음이 투란의 뇌리에서 튀어 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주문을 써서 어쩌려고?’
원래 아겔페스를 죽인 세 주문에 대해 점검을 하려던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건 어쩐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문장 밖으로 탈주를 준비하는 듯한 짓이잖은가!
―너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봐라 하고 잔뜩 말해두고 네가 그걸 한 다음에 이렇게 되어서 저렇게 되었네, 라고 대답을 가지고 돌아오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 이러쿵저러쿵해 가면서 점검을 하면…… 뭔가 잘못된 것을 찾아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릴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러니까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이렇게 내가 직접 보고 듣고 살필 수 있다면 훨씬 빠르고 쉽게 끝날 테니까…… 너도 내가 토해내는 잔소리를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는 꼴이 되는 것보다는 이게 좋잖아?
약간 의심을 품던 투란은 바로 납득을 해버렸다!
드라고니아는 실로 영악하고 교활한 지혜를 발휘해 이 상황에 대처하는 수단을 아주 잘 골랐다!
비록 그 설명에 슬그머니 빠져 있는 부분, ‘너의 그 원숭이 같은 지능에 의지해서 수준 높은 마법을 점검하겠다는 미친 생각 따위는 내게 전혀 없다!’라는 것이 투란에게 고스란히 느껴져서 좀 그렇기는 했지만…….
“근데,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쳐도 말이야. 그 파워 서클은 내 심상과 문장의 풍경 속인데 어떻게 보려고?”
약간 미심쩍은 부분부터 묻는 말을 소곤소곤 꺼냈다.
작지만 확실하게 내 목소리를 들어보란 듯이!
피식하는 듯한, 혹은 히죽하는 듯한 기척이 뇌리에 먼저 전해지면서 드라고니아의 당당한 대답이 또박또박 울린다.
―윌 라이트, 의지의 빛은 너를 주체(主體)로 한다고 했잖아. 네 몸에 유니마크까지 확실하게 새겼다. 그 뼈를 감싼 무늬를 반신(半身)으로 삼고, 너의 의지를 반신(半身)으로 삼은 윌 라이트는…… 네 의지가 닿는 곳은 모두, 너와 똑같이 느끼고 알 수 있다. 그게 네 심상 속이든, 네 꿈속이든!
‘야, 꿈은 좀 빼자.’
―안 봐! 볼 수 있다고 한 거지, 본다고 한 게 아니야! 아무튼, 몬스터 엠블럼이 좀 이상한 지금이지만 내가 한 걸음 더 객관적으로 너를 파악하고, 너의 감각과 별개로 사물을 관측할 수 있다고. 알겠어?
‘어, 알았어. 그러면…….’
―그래, 이제 파워 서클을 점검할 때지!
* * *
“음, 이건 또 뭔 일이래…….”
투란은 하얀 괴물과 망령, ‘세란드’가 여전히 따로 놀고 있는 풍경을 향해 중얼거려야 했다. 이전과 다른 미묘하다면 미묘하고, 노골적이라면 노골적인 변화가 풍경에 드러난 채였다.
금덩이로 만들어진 우리가 좀 더 납작한 반구형의 새장에 가까워진 채로 살짝 바닥에서 들려진 채였다. 새장의 바닥에서 흘러내리는 검게 끈적이는 듯한 질감을 지닌 늪의 진흙이 그 아래에 고이며 번지는 채로 이 풍경의 바닥을 채우려 하고 있기도 했다.
하얀 괴물은 그 우리 안에서 앞발에 턱을 괴고 기분 좋은 낮잠이라도 자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망령은 우리를 잠가 놓은 문 앞에 선 채로 금빛의 형상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한데 망령이 선 자리가 이지러진 달의 모양처럼, 호형(弧形)의 반석(盤石)으로 받쳐진 채였다. 그리고 투란이 이 풍경을 지켜보는 자리 역시 호형의 반석이었다.
두 반석의 중앙에는 원반이 놓였고, 원반 위에는 파워 서클의 무늬가 빛의 잔영처럼 맴도는 느낌을 주며 새겨진 채로…….
심지어 이 반석에 자리 잡고 보고 있자니, 투란은 자신의 몸까지도 희미한 연기 모양의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연기인 몸까지 있다면 아예 파워 서클을 만져볼 수도 있을 듯했다!
이전과 다른 풍경과 상황에 의아해하는 투란의 마음속으로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스며든다. 은밀하게, 이 풍경의 누구에게도 들릴 리가 없게!
―파워 서클이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원 위에 드리워진 월드 가디언, 저 금색 안개의 유령 같은 놈을 기반으로 한 거지?
‘그래.’
투란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처럼 대답하려고 했고 어느 순간 그렇게 된 것을 알아차렸다. 윌 라이트의 힘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듯했고, 이 심상 속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신기한데, 이거?’
―익숙해지라고. 윌 라이트를 내가 관리한다고 해도, 주체가 너니까. 결국 네가 직접 이 윌 라이트를 다뤄야 할 때가 온다.
‘음…… 겁주지 말고. 아무튼, 주문 점검은 어때?’
잠깐 침묵이 있었다.
짧은 드라고니아의 침묵 속에서 투란은 윌 라이트로부터 스며오는 감각이 이 풍경을 제대로 더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어딘가 어둡게, 살짝 우울하게 들려오는 대답이 있었다.
―주문은 모두 제대로 된 것 같다만…… 역시 옴니앙의 불완전함 때문인가,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큰일 날 뻔했군.
‘뭐가 잘못되었어?’
―월드 가디언이 제 역할을 완전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 파워 서클과 아케인 버스터 체인을 이어놔야 하는데…… 저 망령의 성격을 기반으로 해서 그런가. 세계를 지켜야 하는 녀석이 쓰러져 있는 넷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상태야. 쉽게 말해서, 멀리 가지 않고 이 주변만…… 저 넷을 중심으로만 지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드라고니아가 한 말은 투란을 어느 정도 납득하게 했다.
‘음, 세란드 망령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줘야지. 그러면 월드 가디언이 제대로 각성할 거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는 별로 문제가 아닌 걸 알게 되면 제대로 된 수호의 역할을 수행할 것 같기도 하고……. 투란, 녀석에게 말해라. 네 사람을 통해 마법사가 되돌아올 수 있다고. 그러니까…….
드라고니아의 이어지려는 말보다 앞서, 투란이 우렁차고 낭랑하게 외치는 소리가 하얀 괴물과 망령을 향해 터져 나간다.
“세란드! 네 동생들, 괴물이 되기 전에 마법사로 변해버릴 수 있다! 그 꼴 보고 싶어? 하나도 아니고 넷이다! 넷! 네 동생들이 마법사가 된다고!”
캬앙!
하얀 괴물이 턱을 괴고 있던 머리를 치켜올렸다.
“뭣? 대체 무슨……!”
망령이 으르렁거리듯이 투란을 향해 따지려 했다.
그리고 월드 가디언도 이 소리에 제대로 반응했다.
교차시킨 팔을 풀었고, 웅크렸던 몸을 펼치며 똑바로 서는 듯한 모습의 월드 가디언이 눈에서 백금(白金)의 광채를 뿜어냈다. 파워 서클이 찰랑거리는 빛의 파문을 쏘아내서 이에 호응하는 순간, 투란은 이 풍경 속에서 월드 가디언의 형상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좋아, 제대로 활동을 시작했어. 이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아케인 버스터 체인이 파괴할 아바타에게서 세계를 분리시키고 복수할 거야. 이미 부서진 것도 수습할 테고, 그 왜곡에서 발생하는 마력은 파워 서클로 중계해서 진정시킬 거야. 그러면 마력은 세계의 흐름 속에 정리할 테고……. 이제 아바타의 마지막 하나까지 파괴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드리고니아가 약간 명랑하게 투란에게 설명했다.
뭔가 자세하고 중요한 설명은 다 빼놓은 듯했지만, 투란에게는 충분했다.
요약하면 아케인 버스터 체인이 쫓아가서 파괴하고, 월드 가디언이 그 뒤를 따라가 파괴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파괴되는 것을 막아낸다…… 그 충돌이 흘리는 위험한 힘은 파워 서클에 의해서 진정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윌 라이트를 통해서 드라고니아가 제대로 투란을 돕는다!
‘자, 그렇다면…… 이제 세란드, 저걸 정리할 차례인가.’
―투란?
갑자기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강인하면서도 섬뜩한 정신의 파문은 드라고니아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그 낌새는 투란을 씁쓸하게 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투란은 말한다.
“세란드, 이 주문…… 겨우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네가 마법사를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네 동생들만 생각한 탓에 말이야. 그 사이에 세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법사가 바로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지. 하지만 넌 관심 없었지, 세란드?”
하얀 괴물과 망령이 동시에 강한 울림을 흘려내며 대꾸해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차분하게 투란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너는 괴물이거나 망령이고…… 마법사 아겔페스가 이 세상에 박아놓은 말뚝이잖아, 세란드. 그래서 몬스터 로드인 내게 삼켜졌고. 이제 아겔페스는 죽고 끝장날 거야. 그러면…… 불완전한 황금매를 지녔던 너와 지니고 있는 네 동생들만이 세상에 남는 파편이 되겠지. 몬스터 로드인 내가 그 파편을,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란드, 답은 알고 있지?”
차분히 듣고 있던 하얀 괴물의 머리 위에서, 금박을 벗으며 투명하고 큰 구슬이 다시 형상을 드러냈다. 그리고 망령인 세란드의 금빛 안개가 보다 선명해졌고…… ‘세란드’가 맹렬하게 생각에 집중한 것을 투란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설프게 징징거리는 답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