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6)
Chapter 46. 황금매의 비상
휘이이이!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혹은 바람결이 작은 피리 속을 통과하는 듯한 소리는 시알라의 귓가를 들쑤시고 간지럽게 했다. 손을 움직일 수 있다면, 바로 귀를 손끝으로 쑤시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간지러움이었다.
‘하지만 난 못 움직이잖아.’
시알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눈꺼풀이라도 좀 꿈틀거리게 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간지러움에 대해서는 반쯤 포기했다. 그러나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결, 휘파람의 집요함은 끝내 시알라의 손을 움직이게 했다.
짜악!
“아얏!”
자기도 모르게 움직인 손이 자신의 귀퉁이를 후려치는 감각은 시알라를 깜짝 놀라게 했고,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눈을 뜬 다음에야 시알라는 자신이 깨어난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조금 전의 순간을 되새겨보니, 사실은 깨어난 채로 멍하니 눈을 감고 있었던 모양이 아닌가!
‘내가 깨어났……?’
멍하니 눈을 깜박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더듬던 시알라는 문득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묘하게 옆으로 선 듯한 사람의 모습을 겨우 알아차렸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힘들게 머리를 왼쪽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자세로 자신을 바라볼까? 마치 벽에 달라붙어서 서 있는 시늉을 하는 듯한 모습이 너무 이상하잖은가?
시알라의 이런 생각은 금세 고쳐져야 했다.
“깨어났나? 아, 시알라 맞죠?”
어딘가 낯설고 서툰 말투로 상대가 묻고 있었고,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어깨 쪽으로 꺾으며 시알라와 마주 보려 하는 모습…… 그건 시알라의 생각처럼 상대가 벽에 발을 붙이고 힘겹게 선 것이 아니라, 시알라가 옆으로 드러누운 채로 상대를 보면서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다.
“어…… 네.”
뒤늦게 입을 열면서, 시알라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알라는 자신의 균형감각이 상당히 헝클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누워 있으면서 자신이 똑바로 어딘가에 기대선 것처럼 착각했고, 움직여보려 하니 다시 감각이 세상과 맞물리듯이 자신이 누운 것을 느낄 수가 있던 탓이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시알라가 자신의 상태에 어이없을 때, 시알라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말을 이어간다.
“힐링 팩터가 몸을 회복시키고 있으니까, 곧 멀쩡해질 거에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요.”
“아…….”
시알라는 저 말에 비로소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맴돌고 있는 마법의 힘을 알아차렸다. 이제껏 그냥 몽롱하고 부드럽게 어딘가에 기대고 있겠거니 했던 느낌이었다. 사실은 아주 단단한 돌 위에 몸이 눕혀진 채인데, 그 단단한 돌의 따스함과 겹쳐진 채로 몸을 맴도는 마법의 치유는 시알라를 회복시키며 다시 세상과 어울리게 하려 애쓰고 있었다.
사일라가 조급하게 굴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누운 채로 세상이 옆으로 서 있어요, 같은 생각을 계속하며 게으름 피우는 것도 좀 이상하잖은가?
그래서 시알라는 천천히 움직여 보려 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하늘이 먼저 시알라의 눈동자에 비쳤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시원하고 맑은 하늘의 풍경이 한껏 펼쳐진 덕분이었다.
시알라는 그제야 자신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 이렇게 엉망이야.’
도무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마치 온몸이 새로 짜이는 것처럼 엉망진창이라 전부 뒤늦게 깨닫는 듯한 이게 대체 뭘까?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고, 순간 시알라는 자신의 가슴에서, 목에서 깊은숨이 흘러나가는 감각에 움찔했다. 그리고 바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니까. 마법사에게 모든 마력을 완전히 빼앗길 뻔한 것 때문에 느낌이 좀 이상한 게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요.”
‘마법사? 아, 마법사!’
또다시 뒤늦게 시알라는 기억해냈다.
뭔가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고, 생각되고 기억나는 것의 연속이란 점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갑작스럽게 마법사에게 휘둘렸다는 것이 더욱 경악스럽게 시알라의 마음을 찔렀다.
도대체 마법사는 시알라에게, 동생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을까?
“멜란드! 제란드, 페란드!”
시알라는 겨우 자기랑 동생들이 함께 당했다는 것을 생각해냈고, 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야 했다. 자신이 이 지경인데 동생들은 과연 멀쩡할까!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다들…… 시알라가 가장 먼저 눈을 떴어요. 뭐, 조금 있으면 다들 깰 것 같기도 한데…… 서둘지 말고,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요. 힐링 팩터에 괜히 끼어들지 말고…….”
다독이는 소년의 말투는 시알라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시알라는 손끝에 힘을 주고 팔로 버티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도 겨우 몸을 조금 일으켜 볼 수 있었다. 결국 젖혀진 채 대롱거리는 고개로 시알라는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잠깐 봤고, 한쪽에 퍼진 듯이 누워 있는 동생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데 모두 축 늘어진 모습이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 알 수가 없잖은가!
더욱 급한 기분이 시알라를 재촉했다.
“아, 진짜 세란드 말처럼 성질 급하네. 누워 있는 게 좋을 텐데, 꼭 일어나겠다면…… 에이, 잠깐 기다려봐요.”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사박거리며 단단한 돌을 부드럽게 밟는 소리와 함께, 소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알라는 곧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고 등을 받쳐서 앉게 해주는 손길과 함께, 다시 한 번 똑바로 자리 잡은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시알라가 세란드를 마지막으로 봤을 시절의 나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시알라를 옮겨서 한쪽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앉혀줬다.
곧바로 시알라는 페란드부터 제란드, 멜란드가 널찍하고 편안하게 눕혀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혹 뒤척일 듯이 꿈틀거리기도 하는 움직임도 있는 듯하지만, 지친 기색이 짙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디 다친 곳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겨우 안도하다가 시알라는 문득 자신을 도운 손길의 주인, 소년이 투덜댄 말 속에 담긴 이름을 깨달았다.
“세란드……! 오빠, 오빠를 알아요?”
하지만 소년은 시알라에게 동생들을 바라볼 자리를 만들어 주고는 다시 자기가 뭔가 하던 쪽으로, 시알라의 시야 밖으로 가서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려 해도 뭔가 뻐근한 느낌이 힘든 시알라에게 느긋한 대답이 짜증 날 정도로 느리게 들려온다.
“알아요. 하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지금은 참고 기다려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정도까지 회복될 때까지. 시알라, 계속 조급하게 굴면 억지로 재워놓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침착하게 회복하는 게 먼저니까…… 세란드가 했다는 것처럼 내가 억지로 재우게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시알라는 진정해야 했다.
오빠 세란드가 자신을 재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거기 담긴 억지란 부분이 뭔가 알고 있다면 시알라로서는 진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란드는 어린 시알라를 종종 침대에 묶어두기도 했고, 묶인 채로 굴러떨어지는 꼴을 보면 침대 위의 천장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가끔 어디선가 배워왔다는 과격한 수법으로 기절시키기도 했고…….
뭔가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이 슬쩍 시알라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으니, 그냥 동생들이 무사히 드러누운 꼴을 보고 있는 편이 좋지 않은가!
“저, 당신은…… 누구죠?”
고개 돌리는 것도 힘들지만, 시알라는 최소한 알아야 할 바를 생각해냈고 물었다.
오빠를 아는 사람, 아직 좀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모습이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혹시 시알라 남매들보다 먼저 오빠를 찾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오빠에게는 친구들이 좀 있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이름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지 알면 이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잖은가?
그런데…….
“투란.”
이라니?
고개 돌리는 것도 힘겨웠지만, 대체 어떻게 아까 손을 움직이고 몸을 뒤척였는가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시알라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사납게 눈알을 굴려 대답한 소년을 노려볼 수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체 왜 세상에서 가장 쉽게 들이대는 가짜 이름을 들춰내는가!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편이 더 낫다는 이름이잖나!
그렇게 노려보는 시알라를 향해, 투란이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진짜 내 이름 맞거든요? 왜 이런 이름이냐고 따져봐야…… 나 말고, 귀찮다고 아기한테 그런 이름 지어준 사람에게 따져야 할 테니까, 날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요. 내 이름은 진짜로 투란이니까.”
시알라의 눈이 껌벅였다.
뭔가 믿기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그럴 수 있겠거니 하는 눈빛이 뒤늦게 시알라의 눈동자에 깃들고 있었다.
실제로 버려진 애한테 정성껏 이름 붙여주는 경우보다, 그냥 투란이니 카엘이니 하는 이름을 던져주고 마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까. 시알라 남매는 그런 경우를 적잖게 보기도 했으니, 전혀 납득하지 못할 이야기도 아니긴 했다. 저 투란의 말이 사실일 경우에는…….
하지만 가끔 있기 마련이다, 이름을 투란이라 대면서 진짜라고 우기지만 가짜인 경우도 말이다.
결국 어느 쪽이든 지금 시알라에게는 따져 묻기 힘들었다.
그래서 시알라는 일단 저 소년, 투란이 말한 대로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이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자마자, 시알라는 새로 찾아드는 의문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힐링 팩터에 대해 알고 있지? 마법사는? 겔퍼는 어디 간 거야? 우리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지? 투란, 넌 누구지? 오빠는, 세란드 오빠는 대체 어딨고!’
굳이 급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이곳까지 오게 된 모든 일을 고려할 때 시알라로서는 도저히 솟구치는 의문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저 입을 꽉 다문 채로 참아보는 수밖에 없기도 했지다.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부스스하니 몸을 일으키는 동생, 페란드의 모습이 곧바로 시알라의 생각을 치워놓게 했다.
“페란드! 괜찮니?”
시알라가 바로 묻는 말을 꺼냈다.
페란드는 입을 손등으로 훔쳐내면서 멍한 표정으로 맹한 눈길을 흘리다가 시알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누나……?”
약간 의혹이 깃든 그 목소리는 시알라를 움찔하게 했다.
혹시 자신의 모습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는가?
페란드는 숨을 몰아내쉬다가,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면서 시알라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거기 있는 투란에 대해서 금세 의혹을 느낀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래서 시알라는 바로 말해야 했다.
“투란! 페란드가 깨어났어요! 좀 봐줄 수 없어요?”
페란드는 의아한 눈길을 그대로 돌려 시알라를 바라봤다.
대체 누나가 왜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있는가?
멀뚱하니 앉은 채로 꼼짝도 않으면서 왜 저런 말을 할까?
“누나……? 어디 아파? 몸을 못 움직이는 거야?”
조심스럽게 페란드가 묻고 있었다.
“아냐! 그냥 잠깐…….”
대답하다가 시알라는 자신의 손이 움직이는 꼴을 보고 말을 멈췄다.
페란드는 시알라가 자기 팔다리를 꿈틀거리며 가지런히 모으는 꼴을 보며 자신도 곧 따라 하듯이 팔다리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몸을 점검했다. 그리고 페란드는 흘깃 시알라의 어깨 너머를 보며 입을 꽉 다문 채로, 눈매를 좁히며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시알라는 가슴이 미묘하게 떨리면서, 페란드가 소리없이 묻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누나, 누구야? 우리 지금 어떤 처지야?
황금매의 독특한 공명을 이용한 물음에 시알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답을 한다.
―몰라. 일단 제란드와 멜란드가 깨기를 기다려야 해. 몸은 어떠니? 저리거나 힘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부분은 없어?
미묘하게 페란드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 누나는 있어?
―조금…….
시알라가 살짝 턱짓으로 끄덕이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들어야 했다.
―힐링 팩터가 진정되고 멈출 때까지는 쉬는 편이 좋아요. 적어도 혼자 뭘 먹을 정도까지는 앉아서 쉬라고요.
시알라도, 페란드도 자신들과 똑같이 황금매의 문장이 지닌 공명을 이용해 말하는 투란을 동시에 돌아봐야 했다.
그 눈길을 받으며, 투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굳이 입으로 말하기 싫다면, 계속 그렇게 대화를 해도 좋아요. 여기가 입 벌리고 떠들기 좋은 곳이 아니긴 하네.”
시알라와 페란드는 표정을 굳힌 채로 투란을 바라봐야 했다.
투란으로서는 어떻게 황금매를 지녔느냐고 묻는 듯한 둘의 말 없는 물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묻지 않아도 한번 말해줘야 할 부분이었다.
“뭐, 보다시피…… 나도 황금매를 품은 처지라…… 이건 마법사에게 받은 것이 아니고, 세란드에게 받았다는 점이 좀 다른 상황이려나?”
남매는 한층 더 놀란 모습으로 투란을 바라봤다.
새삼스럽게 당황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