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8)
‘젠장, 이거 맛있잖아!’
억울한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맛을 갖춘 고기를 먹게 된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굳이 돌이켜볼 것도 없이, 몬스터 엠블럼을 품은 이후에 처음이 아닌가!
혀끝에 매달린 듯한 묘한 양념은 고기를 물어 삼킬 때마다 번지는 느낌이었고, 계속해서 맛을 북돋워 줬다. 그저 한 번 혀끝에 댄 것만으로도 그 맛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한 점이었으니, 제대로 요리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곳에서 맛을 위해 만들어지니 양념이란 점이 바로 돋보였다.
배고파서 뭐든 맛있을 때가 아니더라도, 그저 심심해서 맛을 느끼기 위해 먹을 정도가 되는 점이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투란은 잠시 먹는 데 열중했다.
시알라 남매 역시 잔뜩 배고픈 모습으로 투란처럼 먹기는 했다.
“이게 대체 무슨 고기지요?”
하지만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도 멜란드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시알라나 페란드는 갸웃하면서 투란을 흘깃했지만, 양념 맛에 홀랑 넘어간 표정으로 입에 잔뜩 담은 고기를 두 손에까지 가득 든 채인 탓에 대답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묻고 싶으면 다 먹고 나서 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물어본 멜란드 역시 금방 깨달은 듯, 곧 먹는 일에 집중했다.
씹고 삼키는 소리와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만이 잠시 암반 위를 맴돌았다.
뼈가 고기를 익히던 자리에 남았고, 검은 암반 위에서 불꽃을 잔뜩 머금은 채로 이글거리던 흙의 융단 역시 거뭇한 잿더미가 되었다.
시알라는 그 흙의 융단이 신기한 듯했고, 페란드는 먹어치운 고기의 뼈를 슬그머니 모아 맞추면서 대체 뭘 먹었는가를 가늠하려 했다. 제란드는 배가 너무 부르다는 듯이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고, 그 곁에서 가볍게 고개를 젖혀 허공에 대고 트림하는 시늉을 한 멜란드가 다시 묻는 말을 꺼낸다.
“이 근처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이게 대체 무슨 고기였나요?”
이 소리는 시알라를 흠칫하게 했고, 제란드의 눈길도 하늘에서 투란을 향하게 했다. 가만히 뼈를 맞추고 있던 페란드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로 귀를 쫑긋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잘 먹고 나서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고 투란은 빙긋 웃었다.
“사슴. 이 근처에 많이 있는 놈인데……?”
대답을 하다가 문득 갸웃하며 의아하다는 듯한 투란이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의 모습을 보며 시알라부터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페란드도 자신이 맞춰가는 뼈를 다시 내려다보면서, 투란을 보고 턱을 떨구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눈을 껌벅이면서 ‘이 근처?’라든가 ‘많이?’라는 소리를 되뇌었고, 곧 시알라나 페란드와 비슷한 분위기로 해쓱한 낯빛을 띠고 말았다.
다들 놀라는 그 모습은 투란을 한층 더 갸웃하게 했다.
“왜들 놀라요?”
“아니, 그…… 그러니까…… 이 근처의 사슴이라면…….”
시알라는 더듬거리며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여기가 자신들이 아는 곳이랑 아예 떨어진 다른 곳인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잔뜩 품은 표정을 한 채였다.
그런 시알라의 기분을 뭉개듯이 페란드가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확인하려는 말을 꺼내는데…….
“혹시 어깨에 검고 단단한 껍질이 붙어서 목덜미랑 뿔 언저리까지 덮고 다니는 그 사슴 말인가요? 뿔도 네 쌍이나 되어서 어깨까지 늘어진 것처럼 차례대로 돋아 있고…… 어, 이빨도 날카로운 그 사슴 고기를 방금 우리가 먹었나요?”
“맞아요, 맛있잖아요?”
투란은 입맛을 다시며 밝고 가볍게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대체 시알라 남매가 왜 놀라고들 있는가 전혀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투란이었다.
때문에 시알라는 헛기침을 하며 난감해했고, 멜란드는 제란드의 귓가에 대고 ‘토, 토해야 해?’라고 낮게 묻는 소리를 꺼내면서도 투란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페란드는 가슴에 손을 얹어 꽉 누르면서, 몸에 이상이 있는가 없는가 확인하듯이 숨을 두어 번 몰아쉬고는 투란에게 다시 묻는다.
“그거…… 피와 살에 독이 있는 사슴 아닌가요? 굽거나 삶아도 독이 빠지지 않고, 어, 한번 그 독에 걸리면 며칠을 꼼짝도 못 한다는…… 그런 독이 뿔에 깊이 배어 있기까지 해서 피해왔는데…… 어떻게 독을 제거했지요?”
말을 하다가 페란드는 자신이 의외로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투란에게 ‘우리 죽어, 살아!’라고 물으려 하던 말을 고쳐서 꺼냈다.
투란은 가만히 듣다가 눈을 껌벅이면서 시알라 남매를 둘러봤다.
이제야 왜 다들 놀라고 있는지 알았다는 듯…….
그러나 곧 투란의 입가에는 웃음이 기묘하게 흘렀고, 자세한 설명보다는 놀리는 듯한 말이 나온다.
“헤에, 독이 있었다고요? 몰랐는데…… 그냥 내장 빼고 가죽 벗겨서 구워버린 것뿐인데,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요?”
이는 페란드의 입매를 굳게 했다.
억지로 웃으려 해도 웃지 못하겠다는 페란드의 눈가가 살살 떨렸고, 시알라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숨을 몰아쉬고 몸의 감각을 점검하며 한층 더 의아해하는 표정이 되어야 했다.
제란드나 멜란드는 팔다리를 더듬고, 숨을 고르면서 갸웃거렸다.
아무도 아픈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때문에 당황해하고 있는 꼴이었다.
투란이 빙긋 더 짙게 웃으며 묻는다.
“힐링 팩터가 제대로 효과가 있지요? 잘 먹고 나니, 몸이 훨씬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
“그, 그렇기는 한데…….”
페란드가 당황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알 수 없어 하는 혼란을 더 깊이 눈동자에 담은 채로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의 말처럼 몸 안을 누비고 다니는 마법의 효과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디에도 독에 물들어 고통스럽거나 마비된 듯한 곳이 없었다.
시알라가 결국 한숨과 함께 항복했다는 듯이 묻는다.
“어떻게 된 거죠? 고기는 맛있게 잘 먹었어요. 정말 독이 있는 사슴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독을 없애는 방법이 따로 있었던 건가요?”
투란은 다시 시알라 남매 넷을 차례대로 돌아봤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가 확인하듯…… 그리고 나서야 투란의 대답이 나온다.
“힐링 팩터를 제대로 느낀 적이 없어요? 웬만큼 지독한 경우가 아니면, 어지간한 해로운 것은 몸이 알아서 소화시켜 주게 하는데…… 적어도 그랑츄가 먹고 탈 나지 않을 정도면 황금매의 힐링 팩터가 거의 다 이겨내는데…… 세란드는 분명히 알고 있던 일인데, 몰랐어요?”
시알라 남매는 침묵했다.
투란은 그 표정을 보며 갸웃했다.
잠시 있다가 시알라가 동생들을 둘러보고는 맏이로서 입을 연다.
“투란…… 오빠를 알고 있다고 했었지요…… 오빠는 어디 있나요?”
사슴 고기에 독이 있는가 없는가는 몸이 멀쩡한 상태에서 더 따질 기분이 아니란 점이 드러나는 물음이었다. 그보다는 왜 여기에 왔는가, 여기서 자신들이 찾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깊이 느낀 채로 묻는 물음이었다.
이에 대한 투란의 대답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나왔다.
“죽었어요.”
짧고, 단순하게…… 아주 분명하게!
시알라가 먼저 입술을 꽉 깨물 듯이 다물었다.
페란드는 음울한 표정을 띠었고, 두 손으로 무릎을 꽉 잡으면서 석상이 앉은 듯이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입술을 벙긋거리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투란은 뇌리에서 폭발하듯이 꽥꽥거리는 세란드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봐! 그렇게 앞뒤 자르고 말하면 어떻게 해! 차분하게 말해야 할 것 아니야!
‘시끄럽고! 그 사슴이 맛있다더니, 독은 뭐야, 독은!’
―히, 힐링 팩터.
‘그건 내가 느끼고 알아낸 거잖아!’
―혀끝이 짜릿해서 맛있다며!
‘그래, 그러니까 잠시 닥치고 계셔요! 헷갈리면 거짓말 제대로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아옹다옹하는 뇌리의 대화를 끝내면서, 남매의 모습이 무겁고 심각해진 광경을 지긋하게 보는 척하다가 투란이 불쑥 묻는다.
“세란드의 얘기를 더 해주기 전에, 대체 어쩌다가 그 마법사랑 함께 왔는지 좀 들어야겠어요. 세란드를 속여서 이리 끌고 왔고, 결국 죽게 한 마법사였는데…… 어떻게 그런 마법사랑 손을 잡은 거죠?”
“네?”
“무, 무슨?”
시알라부터 페란드를 거쳐, 놀란 표정과 당황해하는 기색이 물 흐르듯이 번져갔다. 투란이 꺼낸 말이 상당히 예상을 벗어난 데다가 전혀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투란은 그런 분위기를 놓고 다섯 정도를 세듯이 보다가 차분하게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 마법사의 이름은 아겔. 황금매의 문장이라는…… 자기가 만든 마법의 각인을 실험하기 위해서 세란드를 이용했고, 산맥 깊은 곳으로 데려와 아무도 모르게 죽이려 했어요. 결국 세란드는 상처를 입은 채로 간신히 도망치기는 했지만…… 황금매의 각인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요. 자, 그러니까 말해봐요. 대체 세란드의 동생들이 어떻게 세란드를 죽인 마법사와 함께, 그를 죽게 만든 불완전한 마법의 각인까지 새긴 채로 여기까지 왔냐고요. 세란드가 남긴 금전으로 도시에서 착실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어딘가 윽박지르는 듯한 말투가 끝에 살짝 서린 채로 투란의 말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시알라 남매가 대답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이 선명하게 투란의 얼굴에 서려 있기도 했다.
멍하니 듣다가 당황해하던 시알라가 고개를 저으며, 역시 남매의 맏이로서 혼란스러워하는 동생들을 대신하듯 대답을 꺼낸다.
“그건…… 먼저 마법사는 아겔이 아니에요. 아겔의 얼굴은 나도 알아요. 그 마법사는 겔퍼…… 아겔과 같은 학파라고 했어요.”
“속았군요. 음, 모습을 바꾸는 마법이었을까?”
갸웃하는 얼굴로, 투란은 확실하게 시알라의 말을 부정했다.
이는 시알라의 말문을 막았고, 페란드가 대신 말을 잇게 했다.
“겔퍼가 정말 아겔이라고 해도…… 우리는 알 수가 없었어요. 단지 우리가 세란드 형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는 것처럼 겔퍼도 같은 마법 학파에서 형제처럼 자란 아겔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그래서 아겔의 흔적을 더듬다가 세란드 형의 동생들인 우리에게까지 찾아왔다고 했어요.”
투란은 페란드의 목소리와 겹쳐지는 세란드의 화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쓰레기……! 그렇게 내 동생들까지!
‘시끄럽다고, 좀 조용히 해!’
구박하는 생각을 전하면서도 투란은 조용히 페란드를 보고 재촉하는 눈빛을 흘렸다. 잠시 말을 멈춘 페란드가 입술을 축이며 다시 말을 이으려 할 때, 시알라가 정신 차린 표정으로 대신 이야기를 잇는다.
“겔퍼는…… 아겔 마법사와 세란드 오빠가 굉장히 위험한 사냥에 나섰다고, 거기까지 알아냈다고 했어요. 산맥의 깊은 곳이라 겨우 연락이 닿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간간이 살아 있다는 소식만이 마법의 전언문(傳言文)으로 날아온다고 했어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사냥이라서…… 오빠가 반드시 잡아 삼키고 싶어 하는 몬스터라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지요.”
“잠깐, 연락이 닿고 몇 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여기까지 그러고 왔다고요?”
투란이 툭 끼어들어서 눈살을 찌푸린 채로 물었다.
시알라가 ‘어?’ 하는 표정을 지을 때, 페란드가 대신 대답을 한다.
“겔퍼와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형과 마법사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만 했어요. 그러다가 떠났고, 몇 달에 한 번씩 우리에게 들러서 자신이 얻은 소식을 전해주고는 했지요. 그러다가…… 사냥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산맥이 변하면서 벗어날 수 없어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요. 그때부터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몇 년 전인데요?”
투란은 다시 툭 끼어들었다.
투란의 물음에 시알라와 페란드가 잠깐 멈칫했고, 제란드가 옆에서 대신 답한다.
“형이랑 아겔 마법사를 마지막으로 본 게 십삼 년 전이잖아. 겔퍼 마법사는 십이 년 전에 처음 봤고…… 두 번째 본 거는 그때부터 일 년 뒤, 그러니까 십일 년 전이지.”
이 소리에 투란이 뭔가 생각하기 전에 세란드의 욕설이 투란의 뇌리에 화끈하게 쏟아졌다.
―더러운 마법사 새끼가! 내 손에 갈가리 찢긴 다음에 바로 움직였어!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려고 몇 년씩 준비를 했어! 내 동생들을 속이려고! 추잡한 악질 마법사 새끼가!
‘알았어,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세란드!’
속으로 되뇌면서 투란은 다시 묻는 말을 꺼낸다.
“그 마법의 각인, 이 황금매를 어쩌다 새기게 된 겁니까? 그거, 세란드가 죽게 된 원인인데…….”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확실하게 한 번 더 세란드의 죽음이 무엇 때문인가를 강조하듯이 꺼낸 소리였다. 아까 슬쩍 말했을 때, 남매가 흘려들은 것을 다시 짚어 주는 것처럼!
이는 시알라 남매를 분명하게 자극했고, 한층 더 당황시켰다.
“그게 대체…….”
“형이 이 문장 때문에 죽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시알라가 뭐라 물어야 할지 곤혹스러워 말문을 열 때, 페란드가 분명하게 물었다.
그래서 투란은 본격적으로 준비된 거짓말을 꺼낼 때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