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29)
“그리 복잡한 얘기는 아니고…….”
일단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듯이 투란은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와 멜란드는 그런 말투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찾아온 세란드, 오빠이자 형인 맏이의 죽음에 대해서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 남매를 향해 투란의 말은 가볍게 이어져 나온다.
“그 마법사, 세란드에게는 아겔이라고 접근했던 마법사가 모습을 바꾼 채로 당신들을 찾아간 것이 좋은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쯤은 이제 알아차렸겠지요?”
이는 먼저 시알라의 인상을 구겨지게 했다.
페란드도 불편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제란드와 페란드도 입매를 일그러뜨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꾸벅대는 고갯짓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결국 시알라도 살짝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투란의 말을 긍정하는 대답을 해야 했다.
“그래요…… 우리를 앞장세우고……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우리 의지를 강제로 억누른 채로 우리가 품은 마력을 강제로 끌어가 뭔가 하려 한 것만큼은 확실히 느꼈으니까요. 대체 겔퍼가…… 그가 진짜 아겔이었다면, 대체 그 마법사는 오빠부터 우리까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실험이었다네요. 세란드가 한 말은 그랬어요.”
투란이 바로 시알라의 말에 대꾸했다.
어리둥절한 남매 넷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투란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잘해 줘…….
투란의 의도를 느낀 듯, 세란드의 목소리가 한층 더 조심스럽게 뇌리에 부탁하는 것을 한쪽으로 치우면서!
“아까도 잠깐 말한 것 같은데…… 황금매라는 마법의 각인은 제대로 된 몬스터 엠블럼이 아니에요. 마법사가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겠다고 이리저리 실험하던…… 아주 불완전한 마법의 각인이죠.”
잠시 말을 멈추면서 투란은 시알라를 시작으로 페란드를 거쳐, 제란드와 멜란드까지 주욱 둘러봤다. 여기까지 알아들었냐는 듯…….
당장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을 껌벅이면서 멀뚱거리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페란드의 입이 열렸고, 시알라가 뒤늦게 흠칫하는 낌새가 보였다.
“그 말은…… 우리한테…… 마법의 실험을 했다는 겁니까? 로그 메이지가 한다는 그……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금지된 실험을?”
더듬거리며 나오던 소리가 결국 말하고 있는 페란드 자신을 재촉하며 빨라졌고, 높아졌다. 이 말의 의미를 이미 깨달은 듯한 시알라가 입을 꽉 다물며 이를 악무는 표정을 지었고, 제란드와 멜란드는 그보다 더 늦게 화들짝 놀란 듯이 입을 열고 눈을 크게 뜨는 꼴이었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투란은 이 분위기에 어울리듯, 달아오른 열기가 가라앉기 전을 노리듯이 대꾸하며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세란드가 죽어야 했던 까닭이 그 때문이에요.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괴물이 되어 살 것인가. 세란드는 선택했어요.”
때를 잘 맞춘 덕분인지, 오래된 춤추는 산맥의 속담은 순식간에 시알라 남매를 얼어붙게 했다. 스산하게 맴도는 분위기 탓인지, 따스한 암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이 한층 더 차갑게 일행의 살갗을 긁는 듯했다.
투란은 가만히 기다리는 표정으로 남매 넷을 지켜봤다.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었냐는 듯이…….
“그, 그럴 리가 없어! 형이 죽기로 했을 리가 없다고! 형은…… 약속했단 말이야! 돌아온다고! 돌아오지 못할 때라도, 우리가 찾아낼 때까지 살아서 버틴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침묵을 깨는 멜란드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떼를 쓰는 어린애 같은 그 모습을 투란은 가만히 바라봤다.
아까와 달리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혹은 그러지 못하는 ‘세란드’의 기분이 투란의 마음 깊이 다가서는 듯했다.
괴물이 되고, 망령인 채로…… ‘세란드’는 이 몬스터가 가득한 산맥의 깊은 곳을 헤매고 있었다. 막내인 멜란드가 저리 외쳐주는 말은 투란에게 그 까닭을 깊이 깨닫고 느끼게 해주는 열쇠였다.
‘흐흠, 그랬었군. 과연…… 미련 가득한 망령이 될 만한 약속을 하긴 했군. 그런 괴물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기는 했어.’
엇비슷한 이야기를 가끔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산맥에서 살다 보면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도 하는…….
몬스터 헌터도, 몬스터 로드도 아니지만 몬스터와 싸우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 늘 등장하는 사연이었다.
죽을 때까지 싸우고, 죽고 나서도 싸우는 자들!
‘아주 싫다고, 그런 얘기.’
자라면서 봐온 몬스터 헌터나 몬스터 로드, 몬스터에 얽힌 이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죽음 이후에도 피곤한 꼴이라고, 정말 죽고 나서는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들 싫어했다!
덕분에 투란도 싫었다.
무엇보다…… 망령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이 싫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누군가 너의 뒷덜미에 손을 올려놔서 차갑다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투란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야, 정신 차려.
돌연 뇌리를 울리는 소리는 세란드가 아니었다.
손목의 가벼운 떨림, 고요하게 지켜보기만 하던 드라고니아의 윌 라이트가 울리며 느껴진 소리였다.
아직 멜란드의 목소리가 여운이 되어 울릴 때였고, 투란은 딴생각을 했지만 대꾸할 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약속, 세란드는 그걸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어요.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텼어요.”
괴물이 되기까지 하면서 그랬다는 말은 당연히 빼놓았다.
그리고 잠깐 멈추면서 먼 산을 보는 시늉을 잠깐 하고…… 언젠가 과거를 추억하는 척하기에는 먼 산 보는 시늉이 제일이라고 누가 하던 말을 기억해낸 탓에 제대로 될지 안 될지 모르면서 투란은 먼 산 한 번 보고 시알라를 향해 눈길을 돌리면서 말을 잇는다.
“얼마나 되었는가, 정확하게는 몰라요. 여기서 대체 얼마나 내가 헤맸는지 따져볼 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한 일 년이나 이 년? 그 정도 전까지 세란드는 버텼어요. 그리고 도저히 더 어쩔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게 동생들에게 전해달란 말을 하고…… 죽었어요.”
“잠깐, 형이 자살이라도 했나? 아니면 투란이……?”
페란드가 돌연 눈을 부릅뜬 채로 묻고 있었다.
투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황금매의 마력을 강제로 절단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죽은 거예요. 자살이 아니라…… 마법사가 실험을 위해 걸어놓은 제약(制約) 때문에 죽었지요. 살 수 있을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혹시나 해서 내게 마지막 말을 부탁한다고 했었고…… 그게 진짜 마지막이 된 셈이에요.”
“마력을…… 절단하다니? 투, 투란! 그게 무슨 말이죠?”
시알라가 놀라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다급하게 물었다.
투란은 조금 더 차분하게 가라앉은 말투로 되묻는다.
“아겔이라 했든, 겔퍼라 했든…… 그 마법사가 황금매를 박아줄 때, 들은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마력을 완전히 소모하게 되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몬스터 엠블럼이라서 그렇다고 말이에요. 세란드는 들었다던데…… 들었어요?”
조금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듯한 투란이었고, 이는 시알라부터 차례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반복될 듯했다. 그래서 남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는 대답을 저마다 해야 했다.
투란은 숨을 조금 깊이 들이쉬는 시늉을 하며, 이제부터 중요하다는 듯이 눈을 조금 부릅뜬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마법사는 자신의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서, 실험당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조금 더 많은 결과를 뜯어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세란드가 알아낸 바로는…… 그 마력이 지속되는 한, 황금매의 각인은 마법사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고요. 진짜 몬스터 엠블럼이라면, 완전한 문장이었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세란드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마법사 아겔과 함께 다니며, 황금매를 다루면서 얻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마법사가 된 것처럼 궁리해서 찾아낸 방법이에요. 하지만 어느 쪽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고…… 목숨을 걸어야 했죠.”
투란은 살짝 입술을 혀로 핥았다.
마른 입술을 다시 축이는 듯한 모습이었고, 남매는 이를 지켜보며 숨죽인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 번째 방법은, 마법사가 원하는 결과…… 황금매를 완성하는 방법이었어요. 황금매가 완전한 몬스터 엠블럼, 문장이 된다면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을 완벽하게 형성한다면 몬스터 로드니까 마법사의 간섭 따위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 마법사가 일부러 누락시켜 놓은 몬스터 엠블럼의 중요한 요소를 어떻게든 다시 황금매 속에 끼워넣어야 했는데…… 그게 그리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지요. 아무리 황금매를 잘 다룬다고 해도, 주문이 가득 새겨진 마법의 각인을 다루는 일은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닌 상태에서는 힘들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세란드는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황금매를 완전하게 만들기보다는, 아예 이상 없는 제대로 된 문장을 새로 전이받는 거죠.”
투란의 손가락이 살살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 손짓에 이끌린 듯, 시알라 남매의 눈길이 모였고…… 황금빛 얼룩무늬가 보다 선명하게 그 형상을 시알라 남매의 눈동자 속에 새겨 넣었다.
“어? 저거, 우리 랑…….”
제란드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소리를 신음처럼 쏟아냈다.
이는 바로 시알라와 페란드, 멜란드에게서도 비슷한 소리를 내게 했다.
얼핏 봤을 때는 투란의 가슴에 박힌 것도 그저 자신들 가슴에 박힌 것과 똑같은 황금매의 형상처럼 보였다.
다른 색이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황금색으로…….
한데 투란의 가슴에 박힌 황금매는 그렇지 않잖은가.
검은 매의 윤곽 위로 씌워진 듯한 황금투구…… 매의 형상 위로 덧씌워진 황금의 깃이 갑주처럼 꾸며진 황금의 매…….
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투란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황금빛 매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말을 이어간다.
“세란드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 두 번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였어요. 이 근처에서 그나마 스쳐 가던 몬스터 로드, 그게 나뿐이었으니까. 여기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이 사는 곳에 가까우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최악의 경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엮여서 큰 피해를 입지 않는 쪽으로 일을 해결한다고 머리 굴려서 찾아온 게 나였지요. 아무튼, 세란드가 원한 것은 자신의 황금매에 내 문장…… 매의 문장을 박아넣어 달란 거였어요.”
투란이 잠깐 말을 멈추자 침묵이 맴돌았고, 한껏 의아한 눈빛이 시알라 남매 사이에서 반짝거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한, 그런 일이 되겠냐는 듯한 의혹이었다.
투란도 알겠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지금 생각하고들 있는 것처럼 나도 생각했어요. 이미 마법사인 사람에게, 혹은 강력한 마법의 각인을 지닌 사람에게는 몬스터 엠블럼을 전해줄 수가 없잖아요. 그런 건 몬스터 로드가 되고 나서 금방 아는 일인데, 세란드는 그 안 되는 일을 해달라고 온 거니까. 될 리가 없다고, 그건 방법이 아니라고 했지요. 그런데 세란드가 생각보다 더 기묘한 방법을 말하더군요.”
“기묘한……?”
시알라가 오빠를 염려하듯 잠깐 중얼거림을 꺼냈다.
이미 죽었다고 말했지만, 시알라에게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이란 듯…… 아직 세란드가 살아 있을 거라고 느끼는 듯한 태도였다.
투란은 그런 시알라를 향해 침착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했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는데…… 세란드가 그러더군요. 몬스터 로드는 미쳐 날뛰는 마법도 삼킬 수 있다고 말이에요.”
“어? 아!”
페란드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시알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호오? 진짜 아는 이야기인가 보네.’
남매의 반응을 보며 투란은 세란드가 꾸며낸 거짓말이 제법 통한다는 점에 감탄했다. 그럴듯하게 느끼고 있다면, 다음 말은 더 쉽게 통할 것일 테니!
“세란드는 자신이 품고 있는 황금매가 불완전하고, 마법사의 통제에서 벗어나 미쳐 날뛸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게 황금매를 삼키게 해서, 자신에게서 지우는 방법을 생각해낸 거예요. 그리고 다시 완전한 문장을 전이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그게 대체 무슨……?”
시알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페란드가 투란의 말을 되새기는 듯하다가 묻는다.
“그 이야기는…… 형의 몸에 새겨진 문장만을 투란이 뽑아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인가요?”
“사람 몸에 스며든 몬스터라도, 몬스터 로드가 포착해서 삼킨 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우겨댔어요. 어쨌든…… 세란드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다른 방법도 없었어요.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더 크고, 그럴듯하니까, 일단 해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거죠. 거기서 우리가 착각을 했어요.”
약간 불길하게, 손끝으로 가슴을 더듬으며 투란은 심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이런 투란에게 호응하듯 세란드는 고요하게 다음 상황을 기다리는 듯했고, 드라고니아는 놀리는 소리를 흘렸다!
―미끼 놓은 덫은 다 깔았고, 이제부터 제대로 사기 치는 거냐?
‘시꺼. 분위기 깨지 마.’
투란은 표정을 관리하면서도, 드라고니아에게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