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0)
“착각?”
불안한 얼굴로, 이미 결과가 나온 불행한 일에 대해서 시알라가 상상하며 낮게 웅얼거림을 토해냈다. 이는 바로 페란드에게로, 제란드, 멜란드에게로 옮겨가는 분위기가 되어 모두 투란을 향해 눈과 귀를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투란은 느릿하게, 슬쩍 주변을 돌아보는 시늉을 하면서 좀 더 가라앉은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황금매는…… 그건 처음부터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기 위한 각인이었고, 몬스터 엠블럼을 연구해서 나온 마법의 각인이었다는 거죠. 그게 불완전하고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진짜 몬스터 엠블럼과 맞닥뜨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때 걱정한 일이라고는…… 세란드가 무사할는지, 그대로 죽게 될지…… 아니면 시간을 끌다가 그대로 괴물이 되어 이 산맥을 방황하게 될지…… 그런 것만 잔뜩 생각하고 있었던 거든요.”
잠시 말을 멈추며 투란은 알아들었냐는 듯이 남매를 둘러봤다.
모두 어두운 기색을 더욱 깊이 품은 것처럼 고요하게 투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더 이상 눈앞에 있는 투란을 바라본다기보다는, 세란드가 몸부림치는 광경이라도 보는 것처럼 지난날을 향해, 머나먼 저편에 눈길을 둔 듯했다.
“그래서…… 불완전한 황금매가, 진짜 문장을 만나게 되면 이런 꼴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죠. 아니, 아예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거고…… 결국 나는 이 꼴이 되었고, 세란드는 마력의 고갈과 함께 쓰러졌어요. 내 문장이 변하는 일이 끝날 때까지 나는 거의 정신을 잃고 있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세란드는 이미 죽어 있더군요.”
가만히 결말을 말한 다음, 투란은 다시 시알라를 바라봤다.
세란드의 최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는 것처럼.
투란의 눈길은 곧 페란드를 거쳤고, 제란드와 멜란드까지 옮겨갔다.
시알라 남매 넷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채로, 자신들이 십여 년을 넘게 찾으려 했던 세란드의 일에 대해 더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듯이 침묵했다.
그 침묵을 지켜보며 대강 열까지 세다가 투란은 다시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시알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연다.
“그 뒤로 변해버린 문장을 품은 채로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헤매고 있었어요. 어쨌든 여길 벗어나면…… 세란드가 남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시알라부터 찾아갈 예정이기는 했는데…… 먼저 찾아왔군요. 이상한 마법사랑 함께…….”
“아? 아…….”
시알라가 뒤늦게 투란의 말투가 어딘가 꾸짖는 듯하고, 뭔가를 탓하는 듯한 낌새인 것을 알아차린 듯이 작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체 뭘 꾸짖고 뭘 탓하는 것인지 멍해져버린 머리로 알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세란드의 최후를 말하다가 저렇게 꾸짖고 탓하는 표정일까?
페란드의 목소리가 시알라의 귓가에 먼 곳에서의 메아리처럼 울렸다.
“투란,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형이 이 각인을 품고 죽는 것을 봤으니까, 대강 예상할 수 있지 않아요?”
시알라의 낯빛이 하얗게 변해갔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어?’ 하다가 뒤늦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난데없이 페란드가 남매 전부를 죽기 직전의 병자(病者)로 만들고 있잖은가!
투란은 조용히, 잠시 말없이 페란드를 바라봤다.
페란드는 그런 투란의 눈길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묻는 듯한 것을 느꼈고, 설혹 그렇지 않다 해도 지금 자신이 꺼낸 말에 대해서 누나와 동생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다시…… 이번에는 누이와 동생들을 향해 말한다.
“투란이 처음부터 말했잖아. 어떻게 형을 죽게 만든 마법사와 함께, 형을 죽게 한 마법의 각인을 새긴 채로 왔냐고. 그게 무슨 뜻인가…… 정말 우리와 함께 온 겔퍼가 형과 함께 있던 아겔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지만…… 지금까지 한 투란의 말대로라면, 우리도 형과 마찬가지라고. 괴물이 되든가…… 사람으로서 죽든가. 형이 어떻게든 살려고 고른 방법은…… 실패했다니까. 거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나, 투란은 알겠죠?”
“그, 그건……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잖아! 투란이…… 어, 그러니까 투란을 처음 만난 거라고! 투란이 하는 말이 맞는지…… 투란이 정말 세란드 형을 만났는지 어떤지 알 게 뭐냐고!”
멜란드가 페란드의 말에 버럭 화를 내듯이 마구 나오는 대로 떠들어댔다.
시알라와 페란드는 막내의 떼쓰는 모습이 낯을 찌푸렸다.
제란드가 멜란드의 어깨에 손을 얹어 힘껏 누르듯이 잡아당기며 말한다.
“여기서 투란이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투란은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가면 된다고. 우리를…… 내버려 둔 채로.”
“그…… 우릴 따돌리거나, 이용하려고 할 수도 있잖아! 알게 뭐냐고, 그런 거!”
이제는 본격적으로 투란의 말을 부정하려고 드는 멜란드였다.
시알라와 페란드가 조금 난감한 표정 속에서 ‘혹시?’ 하는 눈빛을 살짝 띄웠다.
과연 남매를 어딘가에 이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없을까?
전혀 그래야 할 까닭을 남매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투란에게 뭔가 모를 이유가 있다면…….
‘음, 역시 거짓말이라 안 먹히나? 어쩔까, 세란드?’
투란은 담담하게, 저런 소리 따위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태연하게 시알라 남매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시늉을 했다. 사실 이 거짓말을 이 남매 넷이 진짜라고 믿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쯤에서 포기하고 산뜻하게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투란의 마음속에서 새록새록 피어오르는데…….
―멜란드에게…… 엉덩이에 흉 지게 만든 에리나랑 잘 되고 있냐고 물어봐.
‘응? 뭐야 그게?’
―네가 나와 만났다는 증명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멜란드가 증인이 될 거야. 투란, 네가 나와 만난 사람이라고.
세란드의 아련한 목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기묘한 의문을 심어주며 울렸다.
대체 뭔 소리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투란은 일단 씨근거리는 멜란드의 목소리가 더 카랑카랑해지기 전에 말해 버렸다.
“멜란드, 에리나랑 잘 되고 있어요? 그…… 음, 엉덩이에 흉 지게 만든 에리나랑 잘되는지 세란드가…… 꽤 궁금해하던데.”
더욱 기세 좋게 목청을 높이면서 제란드의 손길까지 뿌리치려던 멜란드가 조용해졌다. 입을 다물고 몸부림까지도 딱 멈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갔고……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멜란드를 바라봤다.
그 분위기를 투란은 금방 깨달았다.
저건 마치 티아가 야란 아줌마의 폭로에 당황할 때의 모습과 꼭 닮았다!
‘에, 그러니까 자다가 똥 싼 얘기 같은 건가?’
샤오콴 마을의 기묘한 추억이었다.
옆집의 티아가 말썽을 부리면서 잘난 척하면 야란 아줌마는 갑자기 동네를 돌면서 티아가 자다가 똥오줌 못 가린다고 흉보고 다녔었다. 물론 티아는 굉장히 억울해했다. 자다가 오줌은 쌌지만, 똥은 안 쌌으니까.
“에, 에리나라니! 왜, 왜, 갑자기 에리나 얘기가……. 휴, 흉 지게 한 거 에리나 아니거든! 지, 진짜라고! 젠장, 왜! 왜 세란드 형이 에리나 년 이야기를……!”
멜란드는 조금 전까지 투란의 말에 대해 온갖 의심을 다 쏟아내려던 태도와 전혀 다르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변명하려고 버둥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채 막내가 저절로 입을 다물 때까지 노려봤다!
투란은 남매들이 조용해진 것을 기다렸다가…… 멜란드가 고개를 푹 숙이고 벌겋게 변한 얼굴로 침묵하는 꼴과 가만히 눈길을 모아 자신을 바라보는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연다.
“에리나가 누군지는 모르겠고, 뭔 일인지는 세란드가 끝까지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모르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뭐, 뭘 들어 듣기는! 켁!”
멜란드가 흠칫하면서 다시 소리지르려 했고, 이번에는 제란드의 손에 뒤통수를 맞아 말을 끊기고 말았다. 잠깐 그 꼴을 향해 시원한 웃음을 살짝 흘린 다음, 투란은 상쾌하게 하던 말을 잇는다.
“세란드가 살기 위해서 하려던 일의 나머지, 그때 세란드에게는 이것저것 부족해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일…… 그걸 좀 해보고 싶은데, 어때요?”
시알라와 페란드가 먼저 움찔해서 투란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직 얼굴을 붉힌 채인 멜란드는 또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고, 제란드는 조금 의아해하며 입을 연다.
“그게 무슨…… 뭘 해보고 싶다는 거죠?”
“세란드가 생각해낸 그 기묘한 방법.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장의 변화 때문에 내가 하지 못했던 일. 불완전한 황금매 위에…… 완전한 황금매를 전이해 새겨 넣는 것…… 만약 세란드의 예상했던 대로라면…… 괴물이 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예요. 뭐, 또 무슨 일이 꼬여서 엉뚱한 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법사는 죽였고…… 다른 방법은 모르잖아요. 물론 할까 말까는 여러분이 결정해요.”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맺었다.
사람 사이에 찾아온 침묵을 가르고 바람이 지나갔다.
따스한 암반에 앉은 채로, 여러 가지 생각이 바람결에 휘둘리듯이 사람의 얼굴 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느긋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얼굴 위로 다양한 굴곡을 타고 내리는 작은 그림자를 그려냈다.
돌연 시알라의 목소리가 침묵을 가르며 울려 나온다.
“투란, 오빠는…… 세란드 오빠는 분명히 당신에게 목숨을 맡겼었지요? 그리고 우리 일에 대해서 말하고…… 우리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 멜란드가 우리한테까지 숨기고 있던 에리나와의 일을 알려준 거겠죠? 아무것도 오빠의 증표로 가져올 수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우리와의 추억을 증표로 말해준 걸 테고요. 그러니까, 우리도 투란을 믿어야 하겠죠?”
투란은 조용히 듣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를 믿지 않아도 돼요. 나도 좋은 결과가 나올지 어떨지 알 수 없으니까. 일이 잘못되면…… 처음 한 명이 실패하면, 다들 날 죽이려 할지도 모르는 거고…… 뭐, 그렇게 되면 난 열심히 도망갈 테고, 다들 세란드처럼 끝장나기는 할 거예요.”
분명히 처음에는 시알라의 무거운 말에 대답하는 중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투란은 아주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일이 잘못되면 도망갈 거라고…… 시알라 남매는 죽을 거라고 떠들고 있었다.
이는 잠시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를 황당하게 했고, 그 얼굴을 조금 허옇게 질린 쪽으로 물들였다.
이게 대체 무슨 협박이란 말인가!
한데 시알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을 잔잔하게 품은 채로 시알라가 말한다.
“하하…… 투란, 처음에 내가 제일 먼저 뛰어왔을 때…… 세란드 오빠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내가 제일 먼저 투란 앞에 섰을 때…… 정말 세란드 오빠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가, 이제 좀 알겠네요. 정말 세란드 오빠처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은 장담하지 않는군요. 알았어요. 해요. 어차피 괴물이 되어 망가진다면…… 우리끼리 있다가 괴물이 되어서 서로 죽이거나 하는 꼴이 되기보다는…… 세란드 오빠가 끝내지 못한 일이라도 끝낼 수 있나 해봐야죠. 그럼, 나부터 하죠. 어떻게 하면 되죠?”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시알라가 결심을 말하는 순간 투란은 바로 움직였다.
벌떡 일어선 채로 투란은 손짓했고 암반의 낮은 부위로 옮겨가며 묻는다.
“혹시 오면서 그랑츄를 삼키거나 했어요? 이 근처에서 뭔가 삼킨 몬스터, 있어요?”
“아니요…… 이 근처에서는…… 하나같이 힘이 증폭된 몬스터가 대부분이라고, 마법사가 주변을 탐지해서 피해서 왔어요. 우리가 몬스터 에센스를 흡수한 건…… 이번 여행에는 없군요. 모두…… 산맥의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 경계지역에서 몇 년에 걸쳐 두어 번 흡수한 것뿐이네요.”
시알라는 투란을 쫓으며 대답했다.
암반의 중심부에 손을 짚으며 투란이 바로 말한다.
“그거, 전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 각오해야 해요. 완전한 황금매는, 제대로 된 몬스터 엠블럼의 기능을 모두 갖췄어요. 그러니까…… 몬스터 에센스랑 같이 전이시켜야 해요. 이전에 불완전한 상태에서 삼켰던 몬스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전이와 함께 그랑츄를 품을 수는 있을 거예요. 뭐, 성공할 경우지만…….”
시알라는 굳이 실패할 경우에 대해서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투란의 손이 짚은 곳부터, 암반이 가라앉았다.
쭈물거리며 따라오던 페란드나 제란드, 멜란드는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서며 내려앉는 암반을 향해 놀란 눈길을 던졌다. 여태껏 앉아 있던 암반이 조금 묘하게 따뜻하다는 것이야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 안으로 내려앉으며 사방에 두꺼운 벽을 둔 빈 마당처럼 될 줄은 몰랐으므로.
시알라도 놀랐다.
투란과 함께 서 있던 약간 낮았던 부분이 완전히 내려앉으면서, 마치 커다란 상자 안에 담긴 듯한 풍경을 보는데, 벽 속에 방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공간이 열리면서 붉은 살갗의 그랑츄가 쓰러진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겹겹이 쌓인 여러 마리가 얼핏 보이는 것이 아래쪽이 더 깊어 보였다.
‘이게 뭐야, 이건 꼭…….’
이 검은 암반은 마치 몬스터를 사냥해서 저장해 둔 창고 같잖은가.
투란은 거침없이 붉은 그랑츄 한 마리를 잡아당겼고, 그 순간 시알라는 볼 수 있었다. 투란의 한 팔이 한순간에 굵고 커지며 딱 붉은 그랑츄의 팔처럼 변한 광경…….
그리고 곧바로 다시 사람의 손으로 되돌아와 투란의 가슴을 더듬었고, 황금빛의 작은 고리, 동전 같은 윤곽이 붉은 그랑츄에 닿았다. 투명하게 붉은 그랑츄가 사라졌고, 투란의 손은 다시 가슴으로 갔다가 떨어졌다.
시알라는 투란이 내미는 손 위에서 날개를 접고 얌전히 앉은 듯한 매가 황금빛의 투명한 알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을 봤다. 작은 알 속의 매는 황금빛 장막을 두른 채로 시알라를 향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날게 해줄 거냐고 묻는 것처럼.
투란이 하는 말이 조금 늦게 시알라의 귓가에 들어왔다.
“자, 이제 벗어요. 가슴살이 보이도록.”
“어,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