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
투란은 잠시 고민하며 생각했다.
‘응? 아, 그런 것도 할 수 있었지.’
답이 슬그머니 뇌리에 떠올랐다. 처음에는 샤벨투스의 이빨을 좀 길게 키워 살짝 긁거나 하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럴 때 악마의 심장이 하는 짓, 본능에 각인된 탐색 활동이 있었다.
구근 형상의 본체가 가기에는 조금 멀고 애써 뻗은 넝쿨이 조금 아쉽게 닿지 않는 곳이라면, 덩굴줄기를 살짝 잘라서 보내 볼 수 있었다. 덩굴줄기가 닿은 곳에 뭔가 제대로 섭취할 것이 있다면 돌아와 이어질 테고, 돌아오지 않으면 별 볼일 없는 것이니 다른 데로 가면 된다.
물론 그렇게 버려진 악마의 심장 넝쿨이 의외의 곳에서 양분을 얻어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한 새로운 악마의 심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항아리 도박판을 벌이는 녀석들이 매번 새로운 악마의 심장을 주우러 다니는 일도 없다잖던가. 잘라서 다른 그릇에 물과 함께 담아 두면 심장으로 성장하는 녀석이 나오니까.
‘그렇다면…….’
투란은 몸에서 떼어 보낼 넝쿨을 어디서 뽑을까 생각하다가 머리카락 한 올을 당겼다.
꼬물거리는 지렁이처럼 머리카락이 손바닥에서 춤을 췄다.
투란은 바닥을 향해 손을 기울였고, 머리카락은 투명한 실그물과 살점으로 엮인 채 꼬물거리며 노랗게 물든 땅 위를 기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노래지더니 파삭 부서져 버렸다.
할 말도 없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표정으로 투란은 노랗게 물든 숲과 땅을 쳐다봐야 했다.
이건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길이었다.
저 너머, 호수를 감싼 분지의 한 자락을 그대로 무너뜨린 것처럼 번져 있는 노란 숲, 색이 좀 묘하더라도 숲이잖은가 했던 생각이 싹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야?’
숲 자체가 노란 색채를 띤 괴목(怪木), 괴초(怪草)로 가득한 것일까?
아니면 나무와 풀 들이 노랗게 물들면서 버텨 낸 것일까?
‘어느 쪽이든…….’
투란은 뒤로 물러나 돌아섰다.
이제는 저편의 그늘진 곳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
만약 그곳마저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
‘절벽을 그냥 넘는 수밖에.’
나름 각오를 다지면서 투란은 하얀 호숫가의 자갈과 돌멩이를 밟고 나아갔다.
눈으로는 가까워 보였던 것이 막상 걷다 보니 꽤 멀었다.
투란은 갈라진 틈새 앞에서 숨을 돌리며 잠시 멈춰야 했다.
어째서 걷는 것이 이리도 힘든지 이상했고, 뭔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러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러 봐야 먹을 것은 결국 이슬과 가죽…… 가죽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디로든 가야 했다.
‘아, 잠깐!’
투란의 걸음이 자신을 향한 외침으로 멈춰졌다.
분지를 둘러싼 하얀 벽이 크고 거대한 도끼 같은 것에 맞아 쪼개진 듯한 곳.
사람이 보면 절벽이 갈라진 틈새라서 그림자가 어둠처럼 짙었다. 멀리서도 딱 그 자리에만 그늘졌다 보였을 정도, 바로 앞에 있어도 그늘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리쪼이는 빛이 장막인 듯이 시야를 방해하는 탓도 있었다.
‘이거 방심하기 딱 좋네.’
혹시나 해서 잔머리를 굴려 머리카락에 넝쿨과 살갗을 입혀 노란 풍경 속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그냥 노란 물만 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저 좀 낯익다고 멀쩡한 곳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잖은가? 이상한 풍경이 가득한 이곳에서 갈라진 틈새의 그림자 속만이 멀쩡할 리가 있을까?
아주 잠깐 사이에 투란은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방법이 있기에 머뭇거리며 고민만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면 좋은 거지, 뭐.’
투란은 살짝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댔고, 머리카락이 넝쿨과 사람의 살갗을 두르며 손가락에 감겼다. 이전보다 상당히 세련된 반응이었다. 걷는 사이에 넝쿨을 다루는 감각이 좋아진 듯하니 일단 기분은 좋았다.
천천히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투란은 그림자 안으로 손끝조차 담그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바탕으로 삼아 가늘지만 거의 팔꿈치 정도 길이가 된 넝쿨이 지친 투란을 대신하려는 듯이 기운차게 움직여 그림자 안으로 쭉 몸을 뻗으며 떨어졌다. 잠시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던 넝쿨의 줄기는 더 안쪽으로 스륵스륵 열심히 기었다.
눈에 닿는 거리를 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보다 짙은 그림자, 뭔가 어둠이 서 있는 듯한 부분에 닿자 넝쿨의 가닥이 뭔가에 잡힌 듯, 눌린 듯이 멈춰 섰다.
투란은 눈을 부릅뜨고 그림자 속을 쳐다봤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잠시 동안은.
크륵.
하지만 이내 뭔가가 으르렁거리기 위해 목젖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직하게, 신경이 곤두선 채로 귀를 기울였기에 겨우 들릴 만하게 새 나왔다.
투란의 발이 저절로 한 걸음 물러났다.
크르르, 꾸룩.
짙은 그림자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두 개, 투란의 키 두 배는 될 법한 곳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세 가닥으로 갈라진 길고 굵은 맹수의 갈고리발톱 같은 것도 보였다.
‘손톱? 삼지창?’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투란의 발은 빠르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이대로 더 간격을 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투란에게 막 떠오르는 순간, 그림자 속의 거대한 것이 움직였다.
크를, 꾸르륵!
모든 것이 한순간에 투란의 눈앞에서 흘러갔다!
“허읏!”
그야말로 허파에서 헛바람이 새 나오는 짧은 사이에.
놈의 생김새는 딱 두꺼비 머리통이었다.
덩치는 투란이 세상에서 제일 큰 덩치가 아닌가 의심해 본 적 있는 몬스터 헌터보다 분명히 더 컸다. 키가 2미터 50센티에 달한다는, 위로도 옆으로 잘 자란, 어딘가 잘못된 그 작자.
머리통의 울퉁불퉁한 두꺼비 가죽이 목덜미, 어깨를 거처 팔로 이어지고 손등 쪽으로 보였다. 턱에서 시작된 상앗빛 껍질은 은근히 도마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그런 비늘의 빛에 어울리는 상앗빛 발톱이 물갈퀴가 달린 굵은 손가락 셋의 끝에서 쭉 뻗어 나온 채로, 힘차게 내어 휘두르는 팔의 길이 탓에 그늘진 절벽을 억세게 파내며 투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뒷걸음질 치면서 거의 몸을 뒤로 반쯤은 누인 꼴이었던 투란의 가슴에 손톱 하나가 살짝 스쳤고, 손톱 둘은 그의 눈앞을 시원하게 긁고 지나갔다.
그렇게 긁거나 빗나간 손톱과 달리 두꺼비 머리가 벌린 입으로 뿜어낸 혀는 확실하게 투란의 배꼽 높이에서 허리를 스쳤고, 바로 굽어지며 세게 말아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겨우 뒤로 몸을 날린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우거? 아니, 두꺼비 대가리를 한 오우거가 있던가?’
왠지 한가한 망상인 듯싶은, 지나간 기억 속의 이야기였다.
“응? 몬스터 오우거? 음, 어디 보자…… 깊은 숲이나 산속에서, 덩치가 아주 커서 사람 허리 정도는 가볍게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입을 떡 벌리면 윗몸 정도는 가볍게 한 번에 씹어 삼키는 그런 괴물이겠지? 그러니까 오우거라고 하는 거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놈이 한둘이냐! 이래저래 덩치 크고 사람 씹어 먹는 놈은 다 오우거라 하지 말란 말이다! 짜증 나! 제대로 파악을 하든가, 아니면 닥치든가!”
몬스터 헌터에게 몬스터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때문에 덮어놓고 자기가 아는 이름을 마구 들이대면서 괴물을 잡아 달라고 의뢰하는 자들은 몬스터 헌터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그보다는 차라리 돈 뜯어내겠다고 사기 치려 하는 녀석들이 덜 밉다는 것이 몬스터 헌터가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한데…….
‘어, 얘가…… 딱 오우거 스타일이네.’
대가리 생김새가 좀 이상하기는 하고, 혀는 그 생김새가 일리가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처럼 죽죽 잘도 늘어나서 그를 벌레 채듯이 채려 한다. 하지만 녀석은 분명히 덩치가 크고, 긴 손톱의 한 손만으로 그의 허리를 덥석 잡을 만하고, 두꺼비 혀가 튀어나온 입속에는 육식 물고기의 가지런한 이빨도 보인다.
투란이 남에게 이런 녀석에 대해 설명하자면 딱 나올 만한 말이 ‘두꺼비 오우거’뿐이잖은가?
몬스터 헌터가 성질부리는 꼴을 봐야 하더라도 생김새를 그대로 전하는 수밖에…….
‘……응? 나 왜 이렇게 한가한 생각을?’
이어지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는 투란이었다.
생생하게, 한 점도 놓치지 않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두꺼비 머리를 한 덩치 큰 괴물—두꺼비 오우거—을 지켜보면서, 몸을 빗나간 손톱과 허리에 감기는 기다란 혓바닥까지 모두 파악하여 어떻게 대처할까를 살피면서, 꽤나 한가하게 기억을 더듬어 피식대기도 하고 있다니!
‘아, 그거구나!’
투란은 돌연 닥쳐온 엄청나게 빠른 혀와 손톱 놀림에도 자신이 본 것은 꽤나 느릿한 움직임이었음을 알았다.
이미 겪었던 일, 생각이 무지하게 빨라진 것이다!
덤으로 몸도 꽤 빠르게 반응했다.
한순간에 뒤로 눕듯이 몸을 튕겨 보려 한 것은 분명히 사람으로서는 아주 빠른 대응이었다. 다만 상대의 크기와 자신의 크기, 속도에 너무 차이가 나서 잡혔을 뿐.
이렇게 자기 일이 아닌 듯이 상황 파악을 냉정하게도 하는 까닭 역시 분명했다.
‘걱정할 상황이 아닌 거네.’
그랬다.
두꺼비 오우거가 내민 혀는 사람 머리만큼이나 굵었지만, 이제 위쪽은 자글거리며 타고 아래쪽은 허옇게 서리가 끼며 얼고 있었다. 앞서 빗나간, 투란의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지나갔던 손톱을 세운 팔도 두꺼비 가죽처럼 우둘투둘하니 기포를 머금고 녹아 으스러지는 중이었다.
그 꼴임에도 녀석은 주둥이를 더 삐죽이며 혀로 투란을 낚아 당기려 하고 있었다! 그다지 멀쩡해 보이지 않는 혀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왠지 위기가 반쯤 지나간 듯하니, 투란으로서는 살짝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멀뚱거리며 이 위기가 그냥 지나가겠거니 구경만 할 수도 없었다.
저 녀석이 어떤 꼴이 되든, 일단 투란이 그림자 안으로 당겨지면 그다음 순간 맛있는 간식거리일 뿐이다!
그런 짓을 당할 수는 없기에 투란도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바닥에 몸을 고정하려 했다. 이에 호응하듯 발톱이 굵어졌고, 꽤 괜찮게 바닥을 파고드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그 느낌 속에서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버티면서, 두 팔을 허우적거려 바닥을 손으로 긁고 더듬었다.
곧 손에 서리 안개에 물든 하얀 돌멩이가 쥐어졌다.
투란에게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설혹 별 의미가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야 했다.
하얀 돌멩이가 두꺼비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돌멩이는 두꺼비의 머리통, 혀를 내민 입속으로 부딪치듯 뛰어드는 꼴이 되었고, 신경을 거슬리는 괴성이 엄청 기분 나쁜 반향과 함께 울려 나왔다.
꾸륵! 키이이이이! 크륵, 크륵.
결과는 투란을 놀라게 했다.
녀석이 내민 팔과 혀의 상태로 봐서 그럭저럭 이 위기에서 벗어날 거란 생각은 분명히 했다. 기분도 그 생각보다는 더 여유로웠고!
하지만 이 결과는 대체 뭔가?
녀석의 머리 가죽이 하얗게 물들고, 혀뿌리와 입안까지 온통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리고 마치 투란을 향해 한껏 몸을 기울인 탓이라는 듯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그 큰 몸통의 반을 그늘진 곳에서 빛살 아래로 내밀며 엎어졌다.
두꺼비 가죽이 온통 기포를 일으키며 녹아 으스러진 것, 서리가 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덩치의 아래쪽을 덮은 것, 얼어 가던 머리가 엎어지면서 울퉁불퉁한 기포와 함께 녹아 반쯤 흐르는 꼴까지 보고 나니, 바로 한 가지 생각이 불쑥 뛰어들었다. 투란으로서는 도저히 막아 낼 수 없는 생각이었다.
‘나…… 쟤가 못 버티는 곳에서 버틴 거야?’
몸이 얼고 녹고 하면서, 배도 고프고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닌 것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저 여러 개의 태양이 드리운 빛의 장막, 깊이 뭉친 호수의 안개가 뿌리는 서리가 가득한 이곳이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닌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말로 나불거리자면 오우거라고 할 수밖에 없는, 머리는 비록 두꺼비지만 손톱을 휘둘러 바위 벽을 깊숙이 긁어 대고 사람을 혀로 감아 당겨 씹어 먹으려 드는 괴물을 단숨에 작살낼 수도 있는 곳일 줄이야!
투란은 괴물이 쓰러진 너머, 그림자 속을 잠시 노려봤다.
‘젠장!’
별수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하니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생각이라면, 저 안에서 뭔가 만나더라도 도로 이리로 도망칠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나마 조금 안도할 수 있잖은가?
투란은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혹시나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해서, 일단 손부터 들이밀었다……가 얼어 버렸다.
‘이건 뭔!’
당황한 투란이 바로 손을 뺐……더니 녹았다.
그림자와 빛의 경계선에서, 하얀 돌바닥을 밟고 선 채로 투란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