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1)
Chapter 47. 골든 서클
‘하아, 힘들다! 정말 힘들어!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것도 막 하는 일이 아니었어!’
숨을 몰아쉬면서, 어느덧 저물어가는 해가 물들이는 붉은 언덕을 보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붉은 하늘 너머를 바라보는 투란의 등 뒤에는 빛을 엮어 빗어놓은 모양을 한 고치가 네 개, 보기에 따라서는 네 개의 타원형 관짝처럼 늘어진 채이기도 했다. 고치는 은은한 금빛을 품었고, 그 속에는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가 담긴 듯한 상태였다.
―막판에 인간의 암수관계에 대한 미숙함으로 조금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동의를 얻어내서 잘 해냈잖나.
‘암수 관계? 야, 누굴 짐승 취급하는 거야? 인간의 암수 관계라니!’
드라고니아가 위로를 하는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애매한 소리를 늘어놓았고, 투란은 바로 언잖은 기색을 띤 채로 소리 없이 반박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생생한 기억이 되새겨지기도 했으니, 한숨이 저절로 투란의 입가에서 새나왔다.
―버, 벗으라니? 가슴살!
뭔가 황당하고 기겁한 모습으로 시알라가 경악했었다.
가라앉아 드러난 암반의 안쪽을 내려다보던 형제 셋도 뭔가 충격을 받은 듯이 어리둥절하고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짓는 상황이었다.
투란에게는 대체 뭘 그리 놀라고 있는가 의아한 상황이었고, 손에 담은 듯이 내밀고 있는 황금매의 작은 형상을 들어 올리며 말해야 했다.
―각인을 옷에다가 하라고?
그제야 시알라는 놀라던 표정 대신에 어이없어하다가 작은 한숨을 대놓고 뿜어대며, 목 아래 옷자락을 살짝 풀었다. 손바닥이 닿을 정도의 넉넉한 살갗이 드러날 때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옷자락이 젖혀졌고, 투란은 시알라의 가슴골이 살짝 패인 모습을 보일 때 바로 황금매를 전이시켰다.
아주 가볍게 손바닥을 살갗 위로 대듯이 가까이 한 것만으로 전이는 시작되었고, 빛의 고치에 휩싸인 시알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다음, 제란드와 멜란드를 거쳐서 페란드에 이를 때까지 한 명씩 황금매를 전이시켰다. 그 결과는 다시 암반 위에 네 개의 금빛 고치를 둔 채로 멀뚱거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이 상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를 통해 투란에게 인간의 암컷이니 수컷이니 하는 소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암수 교미에는 탈의(脫衣)의 의식이 관계되어 있어서, 투란의 꺼낸 말에 시알라 남매가 착각한 것 아니냐고…….
―암수 분별에 딱히 문제가 될 부분이 있었나? 아, 인간은 자신들의 암수 분별을 남자, 여자로 하던가? 잠깐 잊었군.
뭔가 이상하게 투란을 놀리는 낌새가 섞인 말이었다.
투란으로서는 대체 뭘 놀리는 중인지 애매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저 석양과 함께 찾아오는 밤을 바라보며 투란은 이야기를 돌렸다.
‘잊은 거는 그냥 잊은 채로 두고…… 이제 세란드의 동생들이 별문제 없는가부터 확인해달라고.’
투란의 조금 심각한 기분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도 놀리는 낌새를 지우고 진지하고 신중하게 답한다.
―아직 융합의 결말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섯불리 결과를 추론하는 것은 이후의 대응에 잘못된 의견을 전제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지금은 그저 놓치지 않고 관측하는 것이 가장 좋아. 어떤 추론도 하지 않고 순수한 관측과 통찰만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편이 저들에게도 안전할 테고.
‘음…… 세란드는 여전히 너랑 나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 거야?’
―윌 라이트의 구성에 대해서 짐작도 못 하고 있으니까. 뭐, 옴니앙의 비전을 완벽하게 사용한다면 금세 알 수도 있겠지만…… 망령이든 괴물이든, 세란드는 마도사의 비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사람의 성품이 온전하게 남은 상태가 아닌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저 자신의 미련, 자신이 관심을 둔 상황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봐야겠지.
‘그러면, 세란드의 관측은 어때? 동생들이라고 알아보고 지금도 계속 변이상태를 측정하고 있는 중인데…… 제대로 하는 건가?’
―제대로 하고 있어. 윌 라이트를 미리 성립시켜놨기 때문에 너의 심상(心想)이나 사고(思考), 연상(聯想) 계통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해놓을 수 있었다. 아니라면, 넌 지금 세란드가 저지르고 있는 관측, 통찰의 자료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딴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걸.
‘흠, 고마워. 미리 좋은 주문 써주고 생색내서 아주 고마워. 그러니까, 세란드가 지금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얌전한 까닭은 예정된 대로 세알라네 문장이 제대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세란드가 옴니앙을 통해 연상계측한 대로 진행되고 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 계속 그냥 둬도 되는 거지?’
―그래. 설명을 듣고 싶나?
조금 무겁고, 위압적인 느낌으로 드라고니아가 묻고 있었다.
분명히 묻는 말투였지만, ‘들어! 들어야 해!’라고 살짝 강요하는 낌새가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재빠르게 입을 열고 소리 내서 대답했다.
“아니…….”
이 소리는 금방 투란의 가슴에서 황금매를 반짝이게 했고, 곧바로 세란드의 목소리가 드라고니아를 대신해 투란의 뇌리에 울리게 했다.
―뭐라고?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저 둘둘 말아놓은 꼴은 언제 끝날 것 같아?”
미리 뱉어놓은 한마디에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붙인 물음이 투란의 입에서 낮게 흘러나왔다.
세란드는 투란의 지루함을 알아차렸다는 듯, 곧장 소나기를 퍼붓는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황금매…… 마도사가 심어놓은 마력을 변환시키는 과정이라서 오래 걸린다. 이쪽에서 전이시킨 황금매, 심연의 각인을 품고 있는 황금매의 마력으로 변환이 끝나게 되면…… 함께 전이한 몬스터 에센스, 그랑츄의 정수를 중심으로 각인이 완성된다. 다른 몬스터 엠블럼의 전이라면 금방 끝났을 과정이지만, 이미 황금매의 각인을 지닌 채인 데다가……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할 만큼 섬세한 과정이라서 그만큼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동안 주변의 방해가 없도록…….
“하아, 없어. 그 불붙이고 뛰어다니는 도마뱀도 꽤 멀리 간 모양이고…… 맛있는 사슴 녀석들도 몇 마리 잡고 나니 재빨리 이 근처에서 도망쳤거든. 뭐, 새로 오는 놈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이쪽으로 가까이 올 기분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투란은 세란드가 걱정하는 바에 대해서 조금 길게 잔소리하듯이 반박해줬다.
밤을 기다리며 석양을 지켜보는 한가함을 왜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곧 갸웃하던 투란은 곧바로 소리 없이 묻는다.
‘그런데 그냥 황금매의 각인을 두들겨 박으면 안 되는 거였어?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면 처음에 정신 잃고 있을 때 깨우지 말고 바로 전이시켜놓는 편이 더 깔끔하고 빨리 끝났을 텐데…….’
―그건 아니다, 투란.
윌 라이트로부터 잔잔하게, 싱긋 웃는 듯한 낌새를 띤 채 드라고니아의 짧은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그 위로 겹쳐지듯 세란드의 요란하고 힘찬 호통 같은 대답이 쩌렁쩌렁 울린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마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 마력를 기반으로 한 본능적인 방어태세 또한 갖췄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신의 근본에 자리 잡은 힘에 대해 외부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이 간섭하려 하면 본능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을 지닌 자! 그렇게 억지로 각인을 새겨 넣었다가는 바로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내 동생들이 뒤틀려 죽어가고 있었을 거야!
뭔가 뇌리를 울리는데 귀가 따가운 느낌이 투란을 심드렁하니 대꾸하게 한다.
‘헤에…… 그러니까, 그저 자신이 겪은 일이 창피해서 거짓말 시킨 게 아니라고? 솔직하게 마법사를 죽이려고 괴물이 되었고, 그 탓에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하기 창피해서 거짓말 시킨 줄 알았더니…… 흠…….’
―말하지 마라. 절대로.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내 동생들에게 하지 마.
풀죽은 듯한 기색이 가득한 세란드의 말이었다.
‘이미 거짓말을 잔뜩 해놨잖아? 이제 와서 사실은 어쩌고 하면, 거짓말쟁이라고 날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미쳤어?’
투란은 투덜거리며 바로 대꾸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세란드가 느끼는 것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투란 역시 어느 정도 느끼는 바였다.
세란드가 자신이 괴물이 된 것을 감추고 싶어 하고, 동생들에게 차마 전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는 것처럼…… 투란 역시 세란드가 괴물인 채로 만나자마자 자신을 박박 찢어놓고 갔기 때문에 쫓아가서 때려잡아 삼킨 것이라고, 그 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히히거리면서 말하기는 좀 이상하잖은가!
아무래도 투란과 세란드는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어디 가서 말하기가 좀 난감한 기분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근데, 파워 서클로 뭐 한다며? 아무것도 못 느끼겠는데, 뭘 하는 거 맞아?’
투란은 문득 세란드가 황금매의 문장을 전하기 위해, 마력의 변환을 위해 파워 서클을 이용한다고 한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돌리고 싶은 기분이었고, 적당히 묻고 싶은 것이었다.
―하고 있다. 이건 느끼지 않는 쪽이 아주 좋은 상태란 증거니까, 뭔가 느낀다면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응? 왜?’
―이 파워 서클은…… 대체 네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세계의 한 부분에 새겨야 하는 힘의 원천(源泉)이다. 세계의 한 부분에 새겨진 채로, 세계와 호응하면서 서서히 성장하며 동조한 자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 그게 원래 파워 서클이지. 한데 투란, 너는 이걸 네 심상 속의 풍경에 단단히 박아놨다. 뭐, 어쨌든 세계의 일부라는 점에 있어서는 맞기는 하지. 인간이란 분명히 세계의 한 조각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파워 서클을 자신의 내부, 물질적인 구성부가 아닌 심상 속에 새겨 넣는다는 것은…… 옴니앙의 기록 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파워 서클은 최초의 동조(同調) 이후에는 힘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커질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한다.
‘흐흠, 그래? 그럼, 나도 그릇이 커질 때…… 어라? 그게 뭐야? 그릇이 커진다고?’
―파워 서클에 동조했다고 해도, 받아들인 개체의 성질과 기량에 따라 부여받는 힘의 격차가 나타난다. 그 격차는 파워 서클이 동조하는 자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 개체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힘의 부여는 개체를 파괴할 수도 있거든. 하지만 개체는 성장할 수 있고, 혹은 단련해서 자신의 그릇을 키울 수가 있다. 그럴 경우, 파워 서클로부터 부여되는 힘은 서서히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계를 넘어설 때 한순간에 증폭된다. 그때, 동조한 자는 처음 파워 서클을 느낄 때처럼 다시 파워 서클의 존재를 느낀다는 거야.
‘헤에, 그런 거야?’
투란은 어둠이 짙어지고 별이 또렷해지는 밤하늘을 보다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노닥거리는 기분으로 앉아서 주변을 감시하는 보초처럼 있다 보니, 어느새 밤이었고 금빛의 고치가 환하게 암반 위를 밝혀주는 광경은 마치…….
“흙이라도 뿌려놔야 하나, 지붕이나 벽으로 감싸둬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놔두니까 꼭 무슨 덫에 놔둔 미끼 같잖아.”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중얼거렸다.
이는 바로 세란드를 자극했고, 대꾸를 끌어냈다.
―캐슬링, 지금 너라면 적절하게 쓸 수 있는 강력한 주문이다. 캐슬링이라면…… 변환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주 안전하게 모두 지킬 수 있어.
‘음? 그거 혹시?’
―그래, 아겔이 너와 싸우면서 쓴 네모난 마력의 상자를 만든 주문이야.
‘세란드, 마법사가 쓰던 주문을 그냥 쓰라고 막 권해도 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뭐 그런 거 없어?’
기묘한 호기심으로 투란이 물었다.
뭔가 싫어하는 놈이 좋아하거나 자주 쓰는 거라면, 그것도 싫어하는 놈과 겹쳐보면서 함께 싫어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잖은가.
―황금매도 그놈이 구상하고 거의 완성에 가깝게 만들어낸 거다. 나는 녀석을 싫어하지만, 녀석의 마법은…… 동경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녀석이 나를 향해 휘둘러대기는 했지만, 그 힘만큼은……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 면이 있지. 그 때문에 나는 녀석의 유혹이 넘어가서 황금매를 새겨 넣었으니까.
아련하게 옛날 일을 떠올리는 세란드의 기척은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죽이고 죽는 관계로 끝장났고, 괴물이 되게 한 마법사일 텐데 세란드는 상당히 기묘한 호감을 품고 있다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세란드의 말이 꼭 이상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투란도 금방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좋다고 하는 것은 뭔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주문은…… 그냥 키워드를 외치면 되나?”
다시 머리를 긁적거리며 일어서서 천천히 고치 주변을 맴도는 걸음을 디디며 투란은 물었다.
―그래, 준비해놨다. 네 의지를 열쇠 삼아, 마법을 펼쳐라.
“캐슬링.”
투란의 한마디는 바로 가슴의 황금매로부터 금색의 광채를 끌어냈고, 금빛 고치가 올려진 검은 암반을 모조리 덮는 거대한 금빛 큐브가 생겨났다.
시알라의 고치가 이 마법을 느낀 것처럼 맥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