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3)
‘제대로 될까?’
하겠다고, 해도 되냐고 확인까지 하면서 저지를 때라고 자신만만하게 꺼낸 일이기는 했지만, 투란은 느끼고 있었다. 세란드가 이 한 가지 일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시알라 남매에게 줄 마지막 선물로서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은 일인가.
그 과정은 투란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해서 드라고니아에게 슬쩍 내밀고 제대로 된 것인가 물었을 때, 드라고니아는 호쾌하게 웃는 것처럼 대답했었다.
―꽤나 궁리했군. 게다가 투란, 너를 본보기로 삼아서 이제까지 방식을 바닥부터 갈아엎은 모양이다. 배틀 그림모어의 새로운 형태라고 봐야 할 정도일걸.
투란이 처음 세란드에게 전해받았던 배틀 그림모어의 원판, 드라고니아에게 황금매와 얽힌 상황에 대한 설명을 위해 고스란히 전했던 것을 되새기면서 나온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투란이 남매에게 전할 배틀 그림모어는 ‘세란드’가 다시 궁리하고 정리한 새로운 것이다.
‘세란드’, 괴물과 망령이 한 가지 일을 함께 준비한 것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막무가내로 따르자니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라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검토를 부탁했고, 드라고니아는 그 내용에 몇 가지를 더하고 고쳐서 투란의 뇌리에 새겨 넣어 줬다. 그 고쳐진 부분을 ‘세란드’에게 전하니, ‘세란드’는 이를 받아들여 뭔가 또 고쳐넣고…….
중간에서 전하는 역할에 충실한 투란이었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말로는 떠들 수 있겠는데, 실제로 그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힘든 이상한 마법의 주문을 고치는 짓이니까!
그렇게 기묘한 교정(矯正) 끝에 완성된 새로운 배틀 그림모어, 그것을 남매에게 전하려 할 참이 되자 묘한 긴장감이 투란의 가슴을 두드리며 ‘제대로’ 될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쿡쿡 뇌리에 쑤셔박는다!
이 불안한 긴장과 의문을 세란드는 전혀 느끼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윌 라이트가 투란의 의지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과시하듯 금방 한마디를 던진다.
―잘 될 거야. 옴니앙을 기반으로 주문을 해석하고 구성했다.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은 수준도 아니고…… 딱 네 수준에서 단련을 통해 적절하게 상용(常用)할 수 있는 범위다. 뭐, 주문 자체는 금색의 마도사만의 특기라는 융합중첩(融合重疊)으로 이뤄진 특수한 형태지만…… 새겨 넣고 항상 써먹는 데는 전혀 지장 없어. 안심해.
‘야, 안심하라면서 이상한 말은 왜 끼워넣어? 특기는 뭐고, 융합? 중첩? 그거 연금술사들이 폭발하는 거 만들 때 쓰는 말이잖아!’
―나중에 그 연금술사의 용어에 대해서, 네가 아는 게 뭔가 심각하게 한번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세란드 쪽의 일에 신경 써.
‘쳇.’
투란은 다시금 드라고니아가 자신에게 학습과 교양에 대한 잔소리를 하려 하는 낌새를 느꼈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따지겠다는 것이지만…… 언짢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투란은 바로 눈앞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뿜어내는 시알라 남매의 일부터 마무리 지어야 하니, 그 언짢은 기분은 감쪽같이 묻어버릴 수 있었다. 파묻힌 기분은 다행스럽게도 금세 투란의 마음에서 사라지는 듯했고, 투란은 아주 고요하고 평온하게 ‘가디언’의 주문을 투사(透寫)해서 넷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마력을 통해 주문의 형태를 전한 다음에 할 일은 간단했다.
“따라 외워요. 가, 디, 언.”
투란의 말에 따라 시알라부터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마력을 느끼면서 ‘가디언’의 키워드를 읊었다.
그리고 곧바로 투란은 볼 수 있었다.
투란이 심상과 문장이 엮어낸 황금매의 풍경, 그 깊이 가라앉은 괴물 세라드의 앞에서 볼 수 있었던 망령…… 금빛 안개로 이뤄진 세란드가 남매의 모습 위로 살짝 덧씌워지듯이 겹쳐지는 광경…….
‘망령이 씌워져서 잘못되는 것 같은데!’
투란에게는 딱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기껏 살려놨는데 망령에 제정신을 잃고 미쳐 날뛰는 꼴이라면…… 힘차게 때려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투란의 심사(心思)는 고스란히 세란드에게 전해졌고, 곧바로 펄쩍 뛰는 세란드의 모습과 함께 격렬한 반박이 투란의 뇌리로 되돌아왔다.
―뭘 때려죽여! 제대로 되고 있다고! 이걸 얼마나 궁리했는데! 저 괴물 녀석까지 나서서 도운 결과라고! 기다려봐!
‘아, 그래. 그랬다고 했지.’
투란은 흘깃 주변을 둘러봤고, 캐슬링의 큐브에 의해서 보호되는 검은 암반이 아주 안전한 것을 확인했다. 그다음, 가디언의 주문을 읊은 넷을 보니…….
시알라 남매 넷은 고치가 아닌 금빛 안개를 두른 채로 잠시 정신이 어디 가버린 듯, 혹은 전혀 색다른 뭔가를 보듯이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아주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제대로 되는 모양이네.’
문득 투란은 세란드가 열심히 설명하고 드라고니아가 해석해 준 저 ‘가디언’이 뭔가 느낄 수 있었다.
동생들을 지키고자 하는 세란드의 미련, 한 집에 모여 살지 않는다면 하나씩 따라가서라도 지키고 싶다는 세란드의 갈망…… 산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당연했지만, 망령인 상황이라면 더욱 곤란한 미련이고 갈망이었다. 하지만 세란드는 괴물이 되어 삼켜진 지금, 망령이 돼 버린 채로 몬스터 로드의 문장 속에 머문다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이용해서 그 미련과 갈망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그 해답을 드라고니아는 월드 가디언의 마이너 카피(Minor Copy), 삭제와 축소를 거친 축약판이라고 불렀다. 뭔 소리인가 정확하게 투란에게 와닿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대충 느낄 수는 있었다.
파워 서클을 지키는 가디언보다 훨씬 작고 약할지 모르지만, 사람 하나 지키기에는 아주 넉넉한 수호자. 세란드는 그런 수호자를 동생들에게 붙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 수호자를 자신이 직접 다루기를 원했다. 가능하다면, 세란드 자신이 그런 수호자이기를 원했다, 아주 강하게!
망령의 그러한 염원에 괴물이 호응했다.
‘세란드’는 열심히 그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가디언의 주문을 구상했고, 옴니앙을 통해 필요한 요소를 찾아내 구성했다. 드라고니아가 그 가디언의 주문을 검토하고 수정했다.
그 결과, 투란은 옆구리에 배틀 그림모어를 책의 형태로 끼고 황금매의 투구와 갑주를 걸친…… 세란드랑 아주 닮은 모습의 가디언의 형상을 시알라 남매에게 전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자신만의 심상 속에서 가디언 세란드를 만나고 있을 터였다. 앞으로 황금매가 지닐 열두 가지의 특별한 주문을 받으면서!
‘그러면, 이제 나도 마무리할 때가 맞지?’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란은 물었고, 금방 ‘그래.’라는 대답을 받았다.
자신만의 심상을 바라보는 네 사람을 둔 채로 투란은 검은 암반의 중심을 향해 옮겨갔다. 그런 투란의 행동과 함께 네 사람을 덧씌운 가디언, 세란드의 모습도 준비대로 움직였다. 가디언의 형상이 살짝 부풀어 올랐고, 그 속에 담긴 넷은 슬그머니 띄워진 채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허공을 보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꼴 그대로 네 사람은 검은 암반의 네 귀퉁이로 옮겨졌다.
그 모습을 잠시 둘러보고, 투란은 속삭임을 토해낸다.
“자, 세란드. 이건 내가 너와 동생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기뻐하라고.”
―뭐?
세란드가 동생들과 교감하던 와중에 흠칫하듯이 짧게 한마디로 되물어 왔다.
하지만 투란은 거기에 답하지 않고 집중했다.
손목에 잠겨지고 감긴 윌 라이트로부터 드라고니아의 지식을 되새기며, 황금매의 문장 깊은 풍경 속에 가라앉은 듯이 자리 잡고 괴물과 망령의 금제 우리 앞에 버티고 선 파워 서클에게로 의지를 전하고…… 투란은 ‘힘’을 끌어냈다.
깊고 그윽하게, 오롯하니 투란에게만 들리는 웅장한 드라고니아의 말은 이 순간에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
―위대한 업적이다. 드라코눔의 아칸조차도 쉽게 성취할 수 없는 위업이지. 투란, 이 순간을 기억해라. 이 순간이 아늑한 옛날이 될 때, 되새기며 자랑스러워해야 하니까.
‘시꺼. 바쁘잖아! 잔소리는 나중에 하라고.’
스쳐 가는 반박을 끝으로 투란의 마음은 ‘힘’에 몰입해서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파워 서클로부터 흘러나온 ‘힘’이 검은 암반의 중심에 내리꽂혔다.
‘힘’의 형상이 세계에 드러났다.
금빛의 벼락처럼, 물결처럼…….
검은 암반 위로 금빛 무늬가 흘러넘칠 듯이 번졌다.
무늬는 검은 암반 속으로 스며들었고, 금빛을 뿜어내며 검은 암반이 투명해서 속을 드러내는 것처럼 만들었다. 흡사 검은 수정 너머에 금빛 무늬가 자리 잡은 듯한 형태가 이뤄졌고…… 투란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대강 3미터 정도가 되는 동그라미의 테가 그려졌고, 무늬가 그 속을 채웠다.
검은 수정 속에 새겨진 금빛의 무늬…… 완전한 원(圓)을 경계로 삼은 무늬에 캐슬링의 금빛 방벽이 반응했다. 육면체인 검은 암반과 육면체인 금빛 큐브가 서로의 면(面)을 겹치는 듯했고…….
상판 일면에만 새겨졌던 금빛 무늬가 땅속에 파묻힌 바닥과 사방을 향해 네 면으로 번져갔다. 이 현상은 윗면에 무늬를 새겨 완성하고 살짝 한숨을 돌리려던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어? 이거 부작용?’
―아니, 파워 서클과 월드 가디언이 이 상황에 걸맞게 수정(修整)하는 거야. 여기는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고, 혼돈의 영향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곳이지. 투란, 너의 심상 속이라면 일단 너라고 하는 경계가 있으니 순수한 원의 형태로 유지해도 상관없지만…… 완전히 노출된 이 산맥의 한구석이라면 사본(寫本)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의 성질에 따라 변이(變異)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으로 네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방벽의 마법을 파워 서클이 독자적으로 응용하는 거야.
‘파워 서클이 생각하고 움직인 거라고?’
―그래. 파워 서클은 성장하고, 생각하며 판단한다. 세계의 섭리를 기반으로, 생명을 얻은 마법이니까.
‘헐? 뭐야, 그거…… 내가 무슨 괴물을 상상해냈는데 그게 세상에 뛰쳐나갔다는 말처럼 들려! 이거 진짜 괜찮은 거야?’
투란은 당황했다.
자기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이라면, 별 상관없었다.
자신이 새겨 넣은 곳에만 머물고 있다면…… 역시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파워 서클의 사본(寫本), 투란이 품고 있는 원본(原本)의 복제는 결국 원본의 의지와 성향을 따를 뿐이라고 했니까. 결코 투란에게 해를 끼칠 일도 없고, 원래 파워 서클은 세상에 해를 끼치거나 누구를 다치게 하는 마법이 아니라고 했다.
혼돈을 섭리로 걸러내는 마법이고, 그 과정에서 강대한 마력을 축적하게 될 뿐이라고 했다.
그 이상의 뭔가 자세한 이야기는 마법사에게나 통할 부분이었고, 투란이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니며 그러기도 힘든 내용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니…… 게다가 성장한다니!
바로 새겨 넣자마자 벌어지는 일이라니!
설마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사기를 쳤던가?
―야, 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파워 서클은 괴물이 아냐! 일그러지고 망가지더라도 철저하게 섭리를 따르는 초월(超越) 위계(位階) 마법이라고! 특히나 혼돈에 가까울수록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섭리에 충실한 자기방어를 하게 되어 있는 것뿐이라니까! 이상한 생각 그만해!
‘진짜?’
―진짜라니까!
‘진짜, 진짜 정말이지?’
―진짜! 진짜 정말이라고! 아, 이 자식이!
대답하던 드라고니아는 어린애 장난같이 돼 버린 말투에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래서 투란은 ‘진짜, 진짜? 진짜!’라고 하는 다음 말은 내놓지 않았다. 대신…….
‘어쨌든 이 사본 파워 서클이 시알라네한테 충분한 마력을 보급해주는 거 맞지?’
―그래. 봐라, 네 꼭지에서 기둥 위치를 차지하고 이미 마력을 보급받고 있잖아. 가디언의 계약에 소모된 것 이상을 이미 부여받은 상태야. 세란드가 준비해놓은 열두 가지 주문도 모두 완성할 거다. 지금 바로 말이야.
‘그래…… 다행이네.’
투란은 문득 한시름 놓은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이 파워 서클의 사본, 투란이 품고 있는 원본의 복제를 여기 새기려 한 까닭은 세란드가 동생들을 위해 준비한 황금매가 엄청난 마력을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세란드는 원본, 파워 서클의 오리지널을 바로 앞에 뒀기 때문에 눈이 돌아가버린 마법사처럼…… 동생들에 대한 걱정 가득한 맏이인 탓에 더욱 철저하고 강력하게 황금매의 주문을 준비했다.
거기 소모될 마력을 투란과 동생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준비였고, 장시간에 걸쳐 막대한 마력을 소모한 다음에나 완성될 복잡한 구성의 주문만 골라놓은 셈이었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점을 꿰뚫어 봤고, 그에 대한 대비로서…… 한편으로는 뭔가 드라코눔의 드라고니아인 탓에 해야 할 일이란 의무감까지 곁들여서 투란에게 이 사본을 새길 것을 권했다.
이렇게 새겨 넣자마자 파워 서클이 독자적인 활동을 대놓고 드러낼 거란 말은 쏙 빼놓은 채로!
‘하여간…… 마법에 빠져든 것들은…….’
마법사에 대해서, 몬스터 헌터들이 대놓고 드러내는 불신이 이런 상황을 되풀이해서 겪은 탓이 아닌가 의심하며, 투란은 파워 서클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둘러봤고, 시알라 남매가 보이는 변화를 지켜봤다.
투란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낯설기만 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