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5)
‘어, 알았어. 알았다고.’
투란은 고스트 핸드가 무슨 흙장난할 때 쓰는 작은 삽 같은 것이 아니라는 강한 압박이 잔뜩 실린 세란드의 설명에 결국 납득했다고 대꾸해야 했다. 물론 그렇게도 쓸 수 있다는 부분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이는 드라고니아에게도 남몰래 한숨을 쉬는 듯한 낌새가 흘러나오게도 했다.
아무래도 세란드가 선택한 여덟 번째 주문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뭔가 마도사의 징표(徵表)가 어쩌고 하는 장황한 설명은 마음 깊이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마법에 대해 잘 알아야 뭔가 깊이 느낄 듯한 이야기라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러니, 투란의 관심은 드디어 가장 알고 싶었던 아홉 번째 부분으로 훌렁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황금매의 전이 과정에서 생생하게 새겨들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들을 되살리며 투란은 시알라 남매처럼 집을 지을 수 있는가를 열심히 따져보려고 했다.
‘어라? 어?’
아홉 번째 주문, 세이프티 하우스는 그 첫 부분의 간략한 한마디부터 투란의 작은 꿈을 쪼개려 들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에 품은 집의 모양에 따라서, 라고 하는 시작이잖은가!
세란드의 한숨짓는 듯한 말이 투란의 뇌리로 바로 스며온다.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신에게 가장 낯익은 집의 형태를 구현해내는 마법이라고! 거기에 다양한 방어기능을 갖춘…… 마도사들이 궁극의 보호마법이라고 하는 생텀(Sanctum)에 가까우면서 황금매의 수준에서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란 말이다.
‘우이잇! 그런데 왜 저런 집을 지어! 그런 거면 그냥 소일 헛에다가 방호주문을 잔뜩 걸어두는 쪽이 더 효율 좋은 거 아냐?’
투란은 세란드의 말을 들으면서 세이프티 하우스의 특성과 효과를 확인하며 으르렁거렸다. 여러 가지 안전확보를 위한 방호주문이 집과 함께 바로 완성되기는 하지만, 소일 헛보다는 느리게 지어지는 집이었고 소일 헛을 지은 다음에 방호 주문을 여러 가지 겹치는 것보다 조금 빠를 뿐이었다.
굳이 아홉 번째로 고르지 않아도 될 듯한데, 굳이 저렇게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는 집을 짓지 않아도 될 듯한데 뭔 짓인가……라고 투란은 투덜거리는 셈이었다.
과연 이 투덜거림은 세란드에게 조금 세게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었다.
―그, 그건…….
투란은 더듬대는 세란드의 말이 뇌리에서 울린 순간, 바로 깨달았다.
진짜로 세이프티 하우스는 필요 이상으로 좋은 집을 지어준다!
‘그건 왜?’
한층 더 의아해하며, 자신은 똑같은 주문으로 그런 집을 짓지 못한다는 짙은 아쉬움을 담아 투란은 바로 물었다.
―그래, 내 미련이다. 내 동생들에게 이뤄주고 싶었던 꿈,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의 한 토막. 다 같이 소원하는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이다. 이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꿈처럼 저 애들이 안전하게 느끼며 함께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게 금방 사라질 수 있는 환상이 될지라도.
‘야, 집이 넷이라고! 각자 따로 들어가게 생겼는데, 뭐가 다 같이 함께야! 그런 거 없어 보이잖아!’
투란은 아주 엉뚱한 부분을 붙잡고 이죽거렸다.
세란드가 주춤하는 낌새를 보였고, 그 틈에 투란은 떠올릴 수가 있었다.
애초에 심연의 각인을 품은 황금매와 함께 새로운 배틀 그림모어를 전할 때, 세란드가 준비한 주문은 열두 가지였다는 것! 하지만 아홉 번째 세이프티 하우스 이후가 없었다. 실행 순위가 열 번째인 주문이 없는 것이다. 그저 급하게 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둔 다채롭고 다양한 주문이 우르르 수십 가지 순위 없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뭐야, 이건…….’
의아해하는 투란의 뇌리로, 이번에는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빠르게 스며왔다.
―일부러 비워놓은 스펠 스택이다. 세란드는 모든 것을 지정해 주지 않았어. 아홉 번째까지는 자신의 경험과 너를 지켜본 바에 따라서, 경험 없는 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생각된 것을 지정한 거고. 나머지 여분은 상황에 따라 동생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놨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스택에 다른 주문을 기재할 수 있게 말이야. 열두 가지 주문을 한꺼번에 실행할 수 있지만, 그중 세 가지 정도는 동생들에게 직접 선택하게 한 셈이지.
‘열두 가지라는 게, 한꺼번에 중첩해서 쓸 수 있는 주문의 수였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꺼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무슨 뜻인가 깨닫고 놀랐다.
그리고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스펠 스택, 한 가지 주문만 기재할 경우가 원 스택이었고 여럿을 기록할 수 있으면 멀티 스택이라고 한다는 것…… 그리고 멀티 스택이란 여러 마법을 동시에 발현할 수 있다는 것!
즉, 새로운 황금매는 열두 가지 주문을 모두 중첩시켜 사용 가능하다는 것!
―그걸 이제 알았냐!
드라고니아가 기막혀했다.
투란은 시치미 떼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쓸어보기부터 했다.
금빛 자취 속에서 시알라 남매는 자신의 손발을 내려다보면서, 찢기고 해진 옷 위로 새로운 무장을 덧씌우고 있었다. 몸에 스며있는 마법을 바로 실행해보는 모습인데, 그 위로 살짝 가디언으로서 무장한 채로 달라붙은 듯한 세란드의 형상이 보이고 있었다.
그 배경처럼 넷의 너머로 보이는 네 채의 집…….
살짝 뾰로통하고 자잘한, 심술궂은 생각이 투란의 입을 열게 한다.
“옷만 확인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집도 확인해봐요. 겉보기만 그럴듯한지, 아니면 집 안도 원하는 대로…… 꿈꾸던 대로인가 보는 게 더 즐겁지 않겠어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라도 있으면 고쳐도 보고…… 다 고쳤으면 서로 구경도 하고 그래 봐요.”
곧바로 각자 따로 놀아보라는 심술이 가득 배인 투란의 기분을 느낀 세란드가 기겁하는 낌새를 보였고, 투란은 장난꾸러기의 즐거움을 느낀 채로 말꼬리에 살짝 세란드의 희망도 달아줬다.
‘뭐, 괜찮잖아.’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집에 형제자매를 초대한다.
이야기 속에 흔히 있는 일 아니던가.
그다음에 형제와 자매가 보물을 놓고 피 튀기게 싸웠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많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니 지나가던 음유시인이 재미를 위해 하는 이야기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함께 목숨을 걸고 세란드를 찾아온 시알라 남매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약간 관대한 쪽으로 생각을 돌리기도 하는 투란이었다.
그러면서 투란은 진지한 마음을 품고 세란드에게 소리 없이 말한다.
‘이제 너도 동생들 따라가야잖아. 가디언의 계약을 통해, 미련을 떨치고…… 쪼개져 간다며?’
―나의 집착과 미련을 쪼개서 떨쳐내는 거는 맞는데, 그렇다고 이 괴물 곁에 머무는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단지…… 가디언의 계약을 통해 이 파워 서클 앞에서 동생들에게 힘을 보태며 침묵하는 석상 같은 꼴이 될 테니까…… 어지간해서는 투란, 너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할 기회가 앞으로 드물고 힘들다는 것뿐이라고.
‘흠? 뭐, 마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영 모르겠네. 아무튼, 동생 돌보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다들 자기 집으로 가고 있잖아.’
투란은 시알라 남매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각자의 주문에 의해 생성된 집을 향해 뛰는 뒷모습을 보며 세란드를 부추겼다. 망령이 자신을 조각내서 가디언으로 재구성하고, 네 사람에게 들러붙는다……라는 괴상한 마법을 써놓고 계속 투란 자기 안에 머물지 않게 보채는 셈이었다.
―그래, 투란. 이제는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를 돌볼 때지. 하지만 만약 네게 내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망설임 없이 불러라. 가디언의 계약은 너에게도 유효한 형태로 짜여 있으니까.
‘에? 나한테도? 아니, 그건…… 필요 없으니까 마음 놓고 가셔!’
살짝 어이없어하면서도 다시 보채는 투란이었다.
곧 투란은 마음속 풍경 속에서 망령인 세란드가 금빛 석상처럼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 드라고니아. 이 파워 서클, 이렇게 놔둬도 되나?’
문득 투란은 귀퉁이에서 남매가 떠난 다음에 남은 금빛 자취를 보다가, 자신이 선 검은 암반을 상자 삼아 그 속을 채워가는 파워 서클의 사본이 변해가는 광경을 보며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검은 암반의 육면체 형태에 각기 깃든 모양이 된 금빛의 원의 가닥이 안으로 스며가며, 소용돌이치고 엮이면서 뭔가 검은빛의 투명한 상자 속에 자리 잡은 금빛 무늬의 공이 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힘을 부여하는 마법의 무늬라고 했는데, 과연 이걸 이렇게 괴물들이 날뛰는 산맥 깊은 곳에 생겨난 그대로 놔둬도 되는가?
투란으로서는 새삼스럽지만, 분명히 의아한 일이었다.
―파워 서클을 위협할 만한 상황은 세상에 거의 없다. 특히나 첫 번째 사본은 원본과 한없이 가깝기 때문에 거의 원본만큼이나 강력하고 확고하지. 그럼에도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월드 가디언이 바로 파워 서클을 수호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응? 다만?’
―원본을 품은 자로서, 네가 좀 더 분명하게 이 사본을 인식할 수 있는 이름이 있으면 더 좋다. 첫 번째 사본을 부를 때,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그 존재를 의식 속에 각인하게 말이야. 원본이 네 심상 풍경 속에 박힌 것을 고려하면, 정말 여러 가지로 쓸모 있을 거고, 유리하기도 할 거야.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금덩이 공처럼 뭉쳐가는 녀석에게 이름 지어주면 좋다는 거지?’
―그래…….
살짝 한숨을 쉬면서도 투란이 이름 지을 낌새를 보이는 것에 안도하듯이 드라고니아가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이름을 궁리해봤다.
‘에, 어디 보자…… 어쨌든 파워 서클이고, 금박 무늬 같은 녀석이 금덩이처럼 섞이는 꼴이니까…… 아, 그래! 골든 서클! 드레이크도 비늘이 금빛이면 골든 드레이크니까, 골든 서클! 좋지?’
―야, 이 단순한 놈아! 그게 뭐야! 너 대체 이게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데, 그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이름을 붙이겠다는 거야!
잠깐 기막혀 얼어붙은 듯한 낌새에 이어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대는 소리로 투란의 뇌리를 마구 두들겼다. 동시에 손목 쪽에서 윌 라이트가 진동할 지경이기도 했으니, 투란으로서는 드라고니아가 이름에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잘 지었다고, 기억 저편의 드레이크까지 떠올리면서 의기양양해하던 자신의 태도를 고칠 생각은 투란에게 전혀 없기도 했다!
‘모른다고! 이게 대체 뭐가 위대한지 모른단 말이야! 나중에 알게 되면 신나게 자랑할 테니까, 기다려. 그리고 이름을 복잡하고 길게 지어서 뭘 하자고! 골든 드레이크라고 하면 다들 만나면 죽는다든가 무서운 놈이라고 바로 알잖아! 금덩이 같은 파워 서클, 그러니까 골든 서클! 얼마나 확실해! 좋잖아!’
드라고니아의 기를 죽이겠다는 듯이 열심히, 소리 없이 떠들고 투란은 후욱 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듣지 못하고,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만의 망상 같은 말다툼이었다.
그보다는 이제 막 이름 지어 준 파워 서클―골든 서클을 이대로 두기가 아쉬운 기분이 투란에게 더 중요했다. 특히나 저쪽에 네 채의 멋진 집이 있는데, 그 중심에 놓인 채로 거기에 힘을 부여한 골든 서클이 투란의 네모난 검은 암반에 박힌 채로 우두커니 놓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마치 누가 보고서, ‘집은 넷 모두 멋진데 저 네모진 상자 같은 시커먼 바위는 뭡니까, 이상한 금칠까지 되어 있네요?’라고 놀리는 소리를 당장 투란에게 지껄여 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딱히 문제 될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단지 이상하게 약 오를 뿐이다!
뭔가 저 네 채의 집보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풍경이었으면 싶은데…….
‘어이, 너네가 사는 곳은 어떻게 생겼어? 덩치도 크고 막 날아다니기도 하잖아, 너네…… 사람이 사는 도시랑은 느낌부터 확 다르겠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투란은 윌 라이트가 깃든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쥐어가며 세게 물어갔다.
―그야…… 드라코눔은 인간이 아닌 우리를 기준으로 삼으니 당연히 그렇지. 그건 갑자기 왜…….
‘네가 세이프티 하우스를…… 아니, 아까 그보다 한 단계 위로 있다는 생텀인가 하는 마법을 쓰면 그곳의 풍경이 가장 먼저 집에 나타나는 거지?’
―그렇다만?
조금씩 미묘한 불안함을 느낀 듯이 드라고니아가 조심스럽게 투란이 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확인하려 했다.
물론 생각나는 그대로 생각을 이어가며 쏟아내는 투란은 거침없이 윌 라이트를 향해 강한 의지를 쏟아부으니…….
‘주문도 이미 알고 있지? 세이프티 하우스보다 수준 높다는 거!’
―생텀? 물론 알고 있다만…… 대체 무슨 생각을…….
‘골든 서클이 위대한 업적이라며! 그럼,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드라고니아가 사는 동네의 크고 좋은 풍경을 만들어 놓자고. 누가 와서 봐도 와, 드라고니아가 꾸며놓은 곳이다, 조심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말이야!’
―뭘 어째?
‘골든 서클이 아주 안전하게 해주자고! 하자! 하자! 하자고, 얼른 하자!’
투란의 마음은 윌 라이트에 집중되었고, 떼를 쓰듯이 생각을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투란은 골든 서클을 향해서도 속삭이듯 생각했다.
‘골든 서클, 너도 같이 졸라! 보고 다들 우앗, 할 정도로 좋은 집을 짓는 거니까!’
―야, 대체 너…….
완전히 기가 막혀서 당황해하는 드라고니아의 기척을 느꼈지만, 투란은 손을 높이 올리고 보다 세차게 윌 라이트에 의지를 쏟아부으며 외쳤다.
“하자아아아!”
생텀의 마법이 펼쳐졌다.
드라코눔의 아칸이 기억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