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6)
Chapter 48. 드라코눔의 풍경 속에서
‘헤에? 우와!’
투란은 마음속에서 부풀어오르는 풍경, 드라고니아로부터 흘러오는 기억 속의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들은 적도 없는 이질적(異質的)인 형상이 그 시작이었고…….
정팔면체(正八面體), 드라고니아가 이렇게 말하는 입체상(立體像)이 정사각형의 단면을 보이는 채로 상하(上下)로 나뉘어 하늘과 땅에 놓인 듯한 광경의 한복판에 자신이 그려낸 파워 서클의 사본을 품은 큐브가 둥실거리며 자리 잡았다는 것은 투란을 아주 즐겁게 했다.
‘둥둥 떠 있는데도 이어져 있잖아!’
황금의 무늬를 깊숙이 품은 시커먼 큐브의 상하, 여덟 개 꼭지로부터 뻗어나온 검은 안개와 바람의 줄기가 하늘과 땅을 향해 뾰족하게 뿔을 드러낸 정팔면체의 단면, 정사각형의 꼭지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 큐브는 뒤뚱거리고 있었지만, 그 위에 선 채로 주문을 발하고 있는 투란은 흔들림을 느낄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것은 검은 암반의 큐브가 아닌 세상인 것처럼!
동시에 투란은 검은 암반의 시커멓게 물든 색채를 투명하게 밝히는 듯한 금색의 무늬, 원을 그리고 그 속을 채우며, 암반의 큐브 안에서는 구체(球體)를 형성하는 금빛이 자신의 감각을 확장시켜 주는 것도 느꼈다.
이는 주변의 풍경을 기묘하게, 마치 투란이 자신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어떤 광경 속에 머무는가를 바라보는 듯한 시야와 함께…… 높은 하늘의 스쳐 가는 바람이 울려내는 옅은 소리, 아래쪽에 파여 나가는 땅이 세모꼴을 만들어내면서 정팔면체의 하부(下部)에 의해 밀려가며 내는 사각거림도 듣고 느낄 수가 있었다.
하늘과 땅의 풍경에 새로운 변화가 ‘설치’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정팔면체의 상부를 감싼 바람이 거대한 반구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을 일그러뜨리며 시야를 왜곡했다. 왜곡된 시야를 통해 반구체의 안쪽에는 지금 위에 있는 하늘 풍경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의 하늘을 강제로 끌어다 몰아넣은 듯한 기괴한 배경을 보여줬다.
땅을 찌르는 정팔면체의 하부는 자신의 형상 그대로 세모꼴의 경사면(傾斜面)을 지닌 구덩이를 형성시키고 있었다. 경사면의 흐르는 듯한 흙은 부드럽게 쌓이며 멈추지 않는 듯했다. 뭐든 저 경사면에 닿으면 그대로 파묻으며 아래로 흘려내서 땅속 깊이 사라지게 할 기세였다.
이렇게 하늘과 땅을 향해 뻗은 정팔면체의 한복판이 갈라진 곳, 정사각형의 단면이 위아래로 벌어진 곳에 큐브는 보다 더 투명하면서도 시커먼 유리 형태를 띤 채로 금빛의 구체를 품고, 여섯 면에 선명한 금빛 무늬로 채워진 원을 또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투란은 큐브의 윗면에서 점차 거세지는 압박(壓迫)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압박은 첫 번째 사본인 파워 서클의 마력이었고, 여기에 버티고 서 있지 말라는 경고처럼 투란에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투란이 황금매의 문장, 그 심상 풍경 속에 담아둔 원본 파워 서클로 호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머물든가, 떠나든가를 결정하라는 듯한…….
“웃차!”
투란은 기운찬 소리를 내며 뛰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파동을 일으켰고, 마법으로 자아낸 옷이 날아갔다.
트리니티 히엔나의 다리가 순식간에 투란의 다리가 되었고, 첫 번째 도약은 투란을 큐브의 가장자리로…… 두 번째 도약은 투란을 점차 간격을 벌리려 하는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닿게 해줬다.
“어이쿠!”
한 발을 미끄러뜨렸지만, 다른 한 발의 발톱으로 억세게 허물어지기 직전의 가장자리를 잡아당기며 투란은 몇 미터 더 앞쪽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고 나서 바로 감각이 이지러지는 듯한 미묘함이 투란을 찾아왔다.
투란은 그 의미를 금방 깨달았다.
저 위에 있을 때의 확장된 감각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대신에 온전하게 돌아온 자신의 감각으로, 황금매가 본능적으로 키워주는 오감(五感)으로 투란은 느꼈다.
“우아핫! 이게 뭐야!”
―드라코눔의 경계탑이다.
빠르고 분명한 울림이 손목을 통해 투란의 뇌리로 전해졌다.
오랜 추억이 깊이 당긴 드라고니아의 대답이었다.
놀라고 즐거워하는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는 향수(鄕愁)를 담아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옥타헤드론(Octahedron)의 형상으로 빗어졌고, 천공(天空)과 지상(地上)을 동시에 관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지. 하지만 이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 저렇게 상하가 갈라진 단면은 없다. 그저 순수한 정팔면체이까. 그 속에 우리가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要塞)니까.
‘주변에 떠다니는 바위도 있었어?’
투란은 아직도 지속되는 마법의 힘을 느꼈고, 주변에서 치솟고 있는 타원형에 가까운 기둥 모양의 바위를 보며 물었다.
―오비탈 디펜서(Orbital Defencer)…… 저것까지 모사(模寫)해내다니! 과연 생텀 주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파워 서클의 확장성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군.
‘무슨 소리야?’
―경계탑은 드라코눔을 수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안과 밖을 이어주는 접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탑이라고 부르지. 위아래를 향해 동시에 뻗어 있다는 뜻으로 탑이니까. 그래서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부속물을 지녔다. 주변을 맴돌며 방어하는 저런 거…… 궤도를 갖추고 비행하며 요새를 수호하는 거지. 그러니까 단지 주문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부속물은 아니야. 그런데 그걸…… 만들어낸 거다. 네가 꺼낸 주문의 결과물처럼…….
‘헤에…….’
투란은 이제 크고 넓은 나선(螺線)의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기둥 바위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점차 위아래가 날카롭게 깎여 나가는 듯한 저 기둥 바위의 수는 순식간에 수십을 넘어선 채였고, 침입해오는 것에 대해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과연 저것이 생텀 주문으로 이뤄졌을까?
혹은 투란에게 미묘하게 의지를 전해오는 파워 서클이 풍경에 필요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주문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것일까?
드라고니아가 궁금해하는 바를 어렴풋이 느끼면서 투란은 웃었다.
어느 쪽이든, 이 안전가옥은 투란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글러먹었다!
투란이 그 위에 선 채로 주문을 외우는 순간, 파워 서클의 첫 번째 사본은 날렵하게 그 힘을 낚아채서 자신을 지킬 안전한 영역을 만들어낸 셈이니까!
쿠우우…….
“응?”
저 건너편에서 기둥 바위 하나가 비스듬히 땅을 긁어가며 꽂히는 듯한 광경이 보였다. 잘 날고 있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듯한 꼴이 묘하다 싶은데…… 거칠게 땅을 긁더니 다시 날아오른다!
쿠우, 쿠르르!
하나만이 아니었다.
곧 수십 개의 기둥 바위가 제멋대로 땅에 내려앉을 듯하다가 긁고 치솟는 광경이 이어졌다.
―방어 지형을 만들어내는군.
드라고니아가 작은 신음처럼, 윌 라이트를 맥동시키며 투란에게 말했다.
무슨 뜻인가, 투란은 금세 알아차렸다.
몬스터 사냥을 할 때, 헌터가 은신할 곳을 찾다가 없으면 땅을 파내서라도 만들어낸다. 군단병의 참호(塹壕) 기술을 응용한 것이라 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없는 구멍을 만들어서 숨는 재간이었다. 하지만 이 참호는 때때로 지나다니는 데 방해도 된다!
지금 위아래를 뾰족하게 가다듬은 기둥 바위, 오비탈 디펜서는 지상을 질주하며 다가올 자들을 방해하면서도 자신을 지킬 형태로 땅껍질을 만드는 셈이었다.
‘흠, 골든 서클은…… 겁이 좀 많은가? 내가 잘못했나?’
갸웃하며 투란은 의아해했다.
이번에는 한숨처럼 드라고니아가 답한다.
―겁내는 것이 아니야.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을 갖추는 것뿐이다. 섭리에 따라 왜곡을 정제하고, 그 정제된 왜곡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서 섭리를 지키는 것이 파워 서클이니까. 언제 어느 때라도 혼란을 낳으며 힘을 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방어하게 되어 있지. 이 경우에는 가디언의 영향력이라고 봐도 되고…….
‘그래? 뭐든 신기해! 그런데, 내가 다른 곳에 가서 세이프티 하우스를 쓰려고 하면 늘 이렇게 되는 거는 아니겠지?’
―될 리가 없지. 파워 서클 위에서 애초에 그런 주문을 외웠다는 것부터가 상식 밖의 짓거리였어.
‘어? 상식 밖?’
―어떤 주문도 파워 서클 위에서는 뒤틀린다. 무엇보다 먼저 파워 서클이 마법의 왜곡을 집어삼키니까. 이 경우에는…… 꽤나 긍정적으로 결과가 나온 것뿐이다.
‘에? 야, 그런데 왜 말리지 않…….’
―이 자식! 앞뒤 안 가리고 저질러놓고 누구한테 책임을 떠넘기려고!
‘어? 아하핫, 좀 그랬나?’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가 날고, 땅을 긁는다.
느닷없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파내는 거대한 녀석이 둥실거리며 등장한 결과였다.
그 결과는 주변의 색채에도 서서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붉은 그랑츄의 부락이 자리 잡았던 돌투성이였던 낮은 분지(盆地) 곳곳에 묘한 잡초가 돋는 중이었고, 하늘은 안개와 구름을 품은 채로 어디선가 끌어온 아침과 저녁의 풍경을 반구형으로 일그러진 안쪽에 잔뜩 그려내고 있었다.
넓어지던 땅의 구덩이는 이제 느릿하게 고정된 듯했고, 모서리를 따라 단단한 돌벽이 맺혀지는 듯한 묘한 상태였다.
변화는 끝나지 않은 듯, 색다른 조합을 짜내면서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투란은 홀린 듯이 이런 풍경을 바라봤고…….
“이, 이게 뭐예요?”
어느 순간에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투란이 돌아보니, 어느새 시알라가 거기 있었고……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가 모두 놀란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문득 투란은 넷이 완성시킨 제각각의 세이프티 하우스가 이 변화하는 풍경과 그 너머의 경계처럼 자리 잡은 것을 알아차렸다. 파워 서클의 첫 번째 사본, 골든 서클이 네 사람의 안전한 마법의 건축을 자신의 외곽으로 삼은 듯했다.
“드라코눔, 드라고니아 일족의 도시라고…… 음, 잘 몰라요?”
“에, 모르겠는데요?”
대답은 페란드가 했다.
시알라는 입만 벙긋거리고, 대체 그게 뭐냐고 하는 듯한 눈길만 보냈고 제란드와 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투란이 진지하게 아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을 보내자, 어쩔 수 없이 페란드가 답한 모양이었다.
“헤헷,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제법 멋지지 않아요? 그럴듯하게 안전한 곳을 만들까 했는데…… 골든 서클이 조금 과하게 반응해서 이 모양이 된 것 같아요. 나중에 드라코눔에 가보면, 얼마나 닮게 되었나 알 것 같기는 한데…… 아, 집은 어때요? 편했어요?”
주섬주섬 늘어놓다가 투란은 뒤늦게 네 사람이 마법으로 그려낸 집이 어떤가를 묻고 있었다. 마치 한창 자기 말을 늘어놓고 뒤늦게 안부를 묻는 듯했다.
페란드나 제란드, 멜란드는 어정쩡하게 ‘좋았아요.’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시알라는 살짝 한숨부터 쉬었다. 그리고 약간 매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한참 좋아라 하고 있는데, 콰쾅거리고 난리가 났기에 놀라 나왔죠.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지은 집이 우리 손을 떠난 것처럼 단단해진 것 같던데,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음? 손을 떠나다니…….”
투란이 의아해했다.
그리고 곧바로 세란드의 강한 목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울린다.
―파워 서클의 마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고정(固定)되었다고! 얘들이 주문을 외워 성립시킨 마법인데, 이제는 파워 서클과 이어져서 주문해제가 안 된단 말이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한 거지?
문득 투란은 따지고 드는 세란드가 자신의 문장 속이 아니라, 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나뉘어 있던 세란드가 각자 자기가 지키는 시알라 남매로부터 불안감을 끌어내와 투란에게 쏟아붓는 듯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더 이상 주문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된 것 같은데…….”
조금 늦게 시알라가 같은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려 하고 있었다.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세란드가 가디언으로서 파악한 바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낀 탓인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보다 자세히 설명하려 하자 곤란한 듯한 표정도 바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이 말을 끊었다.
“어쨌든 집은 멀쩡하잖아요?”
“어?”
“음?”
“그, 그러네?”
시알라가 홱 돌아보는 사이, 형제들이 중얼대며 자신들의 세이프티 하우스를 흘깃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투란이 다시 이야기한다.
“좋은 집이고, 유지할 마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거잖아요? 다 같이 마음 놓고 돌아가며 쓸 수도 있고…….”
“그, 그러네?”
멜란드가 어리바리하게 대답했고, 시알라가 자기 집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 홱 돌아서며 말한다.
“무너지지 않는다고요? 마법이 해제가…….”
“안 될걸요. 그냥 손으로 지은 집처럼, 누가 와서 때려부수려면 부서지려나?”
투란은 갸웃하며 중얼거리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돌연 드라고니아의 묘한 야유가 투란의 뇌리에 푹 꽂힌다.
―좋겠다, 이런 산맥 깊은 곳에 좋은 집 장만해서.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