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7)
춤추는 산맥, 고대로부터 여섯 왕국이 둘러싸듯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산맥은 ‘몬스터의 낙원’, ‘마물의 고향’, ‘괴이의 원천’이라는 다양한 별명도 함께 지닌 곳이다.
하지만 세상에 몬스터가 이 산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물이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신비롭고 괴이한 현상이 이곳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이름은 별명이 되었고, 그 본명이라 일컬어지는 이름은 거대한 지형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소용돌이치는, 이 산맥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한마디로 정해졌다.
고대에 세워진 여섯 왕국은 이 산맥을 감싼 경계가 되었으며, 안팎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 기준에 따라 산맥의 안쪽은 괴물의 영역으로 불렸고,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상식이 자리 잡았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왕국의 경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지워진 셈이었다. 그 경계의 안쪽, 산맥의 내부 지역은 괴물의 영역으로 인정한 셈이기도 했다.
투란은 여섯 왕국의 이름을 헷갈려하고, 그 나라마다 지닌 특성에 대해서는 머나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겼다. 아슬아슬하게 왕국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맥 안쪽에 가까운, 혹은 그냥 안쪽이라고 여겨지는 샤오콴 마을에서 살다 보면 마을 밖에 왕국이 여섯이 있든 열여섯이 있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선을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맹수와 괴물이 얽혀 싸우는 위험이 살갗에 와닿는가를 따지는 일이었다. 넓고 넓은 왕국의 경계 따위는 군단의 정찰병이나 신경 쓸 일이지, 작은 마을의 소년이 알 바 아닌 것!
하지만 그런 작은 마을의 소년이기 때문에 알 수밖에 없었다.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투란이기에 드라고니아의 한마디를 깊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구야?’
이 산맥 깊은 곳에 집이라니!
이걸 대체 어디다 쓴단 말인가!
세이프티 하우스, 좋은 마법으로 지어지기는 했으니까 튼튼하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튼튼할까?
지나가다 호기심으로 불을 뿜는 드레이크에게 버틸 수 있을까?
붉은 그랑츄가 워어거리고 떼로 몰려와서 두들겨 부수려 해도 끄떡없을까?
카프리곤이 껑충거리다 밟고 가면?
파이어 몽거가 파이어워커를 따라 뛰어 지나갈 수도 있는 곳인데!
아무리 집이 좋아도, 여기서는 좋다고 할 수가 없다!
뒤늦게 던져진 한마디는 투란으로 하여금 슬슬 시알라 남매의 눈치를 보게 했고, 머리를 쥐어짜게 했다. 이미 좋다고 던진 한마디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시알라는 마법으로 지어진 집이 마력이 소모되며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분명히 세이프티 하우스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지되지 못하고 알아서 무너져 내린다고 ‘각인’된 채이니까.
페란드도 갸웃거리고 있었고, 제란드나 멜란드도 자신들이 ‘각인’받은 주문의 설명에서 벗어난 집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였다.
‘에이, 몰라!’
투란은 스윽 돌아서면서 일단 시알라 남매로부터 닥쳐올 의혹의 눈길을 회피했다. 돌아서고 보니 훤히 보이는 것은 검은 암반을 파고들며 자리 잡은 골든 서클…… 저절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흘러나온다.
“여기 골든 서클이 새겨졌잖아요. 특별한 곳이니까, 쉼터가 있어도 좋잖아요. 여기라면…… 뭐, 골든 서클 바로 앞이니 마법도 여유롭게 쓸 수 있고, 나름대로 안전하기도 할 테니까.”
―그렇군…… 쉼터로군.
세란드가 미묘하게, 투란이 대체 뭘 생각하나 궁금해하는 듯하다가 호응해왔다. 이는 곧장 시알라 남매에게도 옮겨간 듯했다.
“아, 쉼터…….”
페란드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 쉼터라면…….”
“그러네, 좀 깊은 곳이기는 하지만.”
제란드와 멜란드도 알았다는 듯이 호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알라의 목소리가 약간 들뜬 듯이 뒤늦게 울린다.
“그렇군요. 쉼터라면, 우리 마력이 아니라 저기서 나오는 마력으로 유지되는 쉼터라면…… 정말 마음 놓고 쉬겠군요.”
투란은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골든 서클에 눈길을 고정한 채로, 허리춤에 손을 턱 올려놓은 자세로 살그머니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하면…… 벽을 좀 높이 세워도 되잖아요. 마력도 넉넉한데, 마법 좀 펑펑 써보는 연습을 하는 셈 치고요! 아하핫.”
낮은 웃음소리가 곧 시알라 남매 쪽에서 흘러나왔다.
투란은 이를 확실하게 자신의 말에 동의한 것으로 여기고 바로 권하기로 했다. 살짝 돌아서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집으로 가서 쉬어요. 지금은 쉬어야 할 거예요. 편히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져서 황금매도 조금 더 쉽게 다룰 수 있을 테니까.”
시알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가 서로를 돌아봤다. 확실히 남매 넷은 지쳐 있기는 했다. 황금매를 전이받고, 문장 속에 새겨진 마법주문을 알아야 했고, 몸으로 느껴봐야 했다. 그리고 마법으로 꿈에 그리던 집을 지었고…….
어떻게 따져봐도 뭔가 쉴 틈 따위는 없는 여정이었다.
멀리 가지 않고 한곳에 머물렀음에도, 길고 긴 여정의 피로가 저절로 남매에게 찾아들고 있었다.
페란드가 누나와 동생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어느 집으로 가지?”
바로 멜란드가 재빠른 대답을 한다.
“난 높은 곳 싫어!”
제란드는 곧장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멜란드는 ‘등대는 너무 높다고! 방이 아래에 있어? 아니잖아!’ 따위의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페란드의 눈길을 받은 시알라가 힘차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큰소리친다.
“여관에는 방이 충분해! 침실도, 바를 둔 퍼브까지 있어! 가자!”
누나의 큰 소리는 곧 떠들던 동생들을 조용히 시켰고, 페란드가 더하는 한마디가 가야 할 곳을 결정지었다.
“대장간에는…… 방이 하나니까.”
시알라는 동생들이 의견을 모으는 것을 보다가 불쑥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쉬어야 하잖아요?”
남매 넷이 느끼는 피로만큼 투란도 피곤한 상태일 거란 예상을 했기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물으면서도 시알라의 태도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투란이 만들어놓은 이 풍경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저렇게 싱글거리며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전혀 지친 낌새를 느낄 수가 없으니까!
투란은 싱글거리는 표정 그대로, 시원하게 대답한다.
“가서 쉬어요. 나는 아직 여기서 혼자 할 일이 있어서…….”
“그럼, 음…… 어, 혹시 괜찮은 침대가 필요하면 내 여관으로 와요. 방이 거의 열 개가 넘으니까,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시알라는 잠깐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하고는 여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거침없이 등을 보이며 가는 누나의 뒤를 동생들이 쫓았다.
투란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렸다.
‘아, 얼버무렸다!’
작은 기쁨이 투란의 가슴을 채웠다.
세란드의 깊은 의혹이 이 기쁨을 향해 바로 날아든다.
―얼버무리다니? 혹시 내 동생들에게 무슨 수작을!
‘어? 야, 산맥 안쪽에 쉼터라니! 바보 같잖아!’
―그건 분명히 바보 같은 소리기는 하군. 하지만 이 광대한 지역을 감싼 보호 주문을 펼치고 한 말이 바보처럼 들릴 리가 없잖아? 파워 서클의 힘을 받아들여 특별히 강화되기까지 했는데.
‘어? 그래? 아하핫, 난 마법에 별로 자신이 없어서. 뭐, 그렇다니 다행인 거고…… 그러면 세란드, 이제 우리 일을 마무리 지을까?’
투란은 가슴을 폈고, 눈앞에 자리 잡은 드라코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정팔면체의 풍경을 바라보며 황금매의 풍경 속으로 정신을 몰입시켰다.
* * *
“마무리?”
금빛 안개로 이뤄진 세란드의 형상이 의아함을 토해냈다.
짙고 선명한 안개는 거의 금가루처럼 흐르면서 세란드의 모습을 잔주름 하나까지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망령 세란드 너머의 금색 찬란한 우리, 그 속에 새하얀 모습으로 나른하게 늘어진 괴물 세란드까지 한꺼번에 마음에 담으며 말한다. 쩌렁쩌렁 울리게, 금빛의 무늬로 이 심상을 현실로 삼아 자리 잡은 파워 서클의 원본이 영롱하게 빛나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또렷하게!
“이제 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잖아? 괴물의 모습이나 기억 따위는 깔끔하게 없애고, 옛 모습 그대로…… 아니, 옛날에는 아니었던 가디언의 모습이랑 힘을 갖추고 동생들 한 명 한 명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잖아. 그렇지?”
“그래, 아직 고맙다는 말도 못 했던가? 투란, 정말 고맙다! 내 미련 가득한 소원을 들어준 점에 대해서는 정말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모르다니, 세란드…….”
투란이 낸 소리에는 깊은 한숨이 담긴 듯했다.
“응? 갚을 방법이 있는가? 그렇다면 말해다오, 그게 뭐지?”
금빛 안개로 이뤄진 얼굴 깊이 진심이 가득한 표정이 새겨진 채로 되묻는 말이었다. 저편의 하얀 괴물은 하품을 하고 졸린 눈매로 히죽거리는 듯한데…….
다시 한숨이 섞인 소리로 투란은 말해야 했다.
“세란드, 나 몬스터 로드야. 어설프든 이상하든 몬스터 로드였던 세란드라면, 몬스터 로드가 삼키면 안 되는 경우라든가 하는 얘기 들어본 적 있을 텐데?”
“그래, 들은 적이 있다.”
작은 소리의 대답이 금빛 안개의 망령 속에서 흘러나왔다.
투란은 조금 더 센 소리로 말한다.
“너, 자기가 그 경우라는 거 알고 있잖아.”
잠시 금빛 안개로 이뤄진 입술이 흐릿하니 사라졌다.
마치 입이 없어서 대꾸할 말이 없어요, 라고 주장하듯.
하지만 다시 할 말을 찾은 듯이 입술이 나타났고, 세란드의 말소리가 나온다.
“그 얘기 속에는…… 무엇 때문이라는 부분이 늘 비어 있지. 확실히, 내 경우가 그런 경우이기는 하다. 하지만 투란, 그 때문에 너에게…… 어, 음…… 결과적으로 손해는 없다고 해야 하잖나?”
“야! 결과가 나왔다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다 없던 걸로 하려고! 그런 게 어딨어! 게다가 앞으로 또 뭔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이제 진짜 고생이 시작인지도 모르잖아!”
“부정하지 않겠다. 그래서, 어쩌고 싶다는 거야? 아, 혹시 가디언의 계약을 정식으로 맺을 생각은 없나? 마법의 계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한다면 나중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어떤가?”
금빛 안개 형상으로 상냥하게 말하며 미소를 한껏 띤 채로 말하는 세란드였다. 저 너머의 하얀 괴물이 키득거리며 노골적으로 히죽거리는 배경을 둔 채로!
“세란드, 너 석상이 된다며! 석상을 예정하고 있는 기분이 전혀 없는 말이잖아! 아니, 그보다 석상도 필요 없다고! 가버려! 망령의 잔해 같은 걸 품고 있고 싶지 않아! 넌, 동생들 생각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잖아! 이제 동생들만 돌보면 되는데 뭔 계약이야, 계약은! 그리고 거기 괴물! 너도 이제 남은 볼일 없잖아, 그렇지?”
금빛 안개의 형상이 잠시 침묵했고, 저편의 하얀 괴물이 스윽 고개를 들면서 뿔더듬이를 까닥거렸다. 그리고 웅장한 소리로 포효하듯이 대꾸한다.
“아직…… 마법사의 조각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조각들이 부서지고 으깨지며 이 세상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일이 조금 더 남아 있지!”
“헛소리하지 마. 아겔페스의 아바타는 이제 없어. 아케인 버스터 주문의 연쇄반응이 이제 멈춘 거 알거든? 모두 박살냈다고. 그런데 뭐가 남아, 남기는!”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서 들은 바를 바탕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얀 괴물은 히죽 이를 드러내며 여전히 포효하듯 울리는 큰 소리로 답한다.
“분명히, 아겔페스의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독립성은 모두 파괴되었지. 잘 아는군! 하지만 투란, 마법사를 우습게 보지 마. 녀석은 자신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아바타가 이런 주문에 걸려 파괴될 경우를 대비해서 ‘자식’이라는 특수한 화신을 준비해놨고, ‘계승’이라는 의식을 통해 재생을 준비해놨다.”
“그건…….”
잠깐 투란은 말을 멈췄다.
마음 깊은 곳, 정신의 아늑한 곳으로부터…… 저 시커먼 심연의 너머에서 곧장 드라고니아의 지식이 여리면서도 분명한 파문으로 투란에게 지식을 전해왔다.
투란의 멈췄던 말이 이어진다.
“옛날 아바타리안의 최후 수단이잖아. 너, 아칸 스펠을 우습게 보는 거냐? 그럴 경우라도 결국은 아겔페스의 의식이 선명해지게 되면…… 그 개성의 십 분의 일이라도 갖춰지게 되면 버스터 주문에 바로 걸린다고! 더 이상 아겔페스는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어! 아칸 스펠 중에서도 금기로 여겨진 까닭이 그 끝없는 파괴 탓이었다고! 괜한 핑계 대지 마! 너도, 더 이상 미련 둘 일 없어!”
“미련? 아니다, 투란. 이건 미련이 아니야. 원한이다! 놈이 세상에 한 조각 티끌조차 남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원한이다!”
“야, 괴물이 되면서 그 원한 홀랑 잊고 있었잖아. 한번 죽인 걸로 만족해서 괴물인 꼴로 싸돌아다닐 만큼 다녔잖아. 그러니까…….”
투란의 말이 나직하면서도 선명해졌다.
하얀 괴물이, 금빛안개의 망령이, ‘세란드’가 파워 서클의 원본 너머에서 살랑이는 바람결처럼 느껴지는 투란에게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따지는 듯이.
그래서 투란도 확실하게 말을 맺었다.
“이제 사라져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