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38)
크릉, 크르륵!
“싫은데?”
사나운 짐승의 목울림을 잠시 흘리다가, 하얀 괴물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잠깐 투란은 맹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곧 투란의 기분은 울화로 채워졌고, 바로 폭발했다.
“뭐? 싫어? 이게 지금 싫고 좋은 걸로 결정될 일인 줄 알아?”
대답은 바로 하얀 괴물의 혀끝을 타고 굴러나온다.
“아니, 이건 분명히 싫고 좋은 것을 따져야 하는 일이지. 투란, 네가 이 나를 거부하기 때문에 사라지라고 하는 거잖아? 왜 내가 이 풍경 속에 머무는 것이 싫다는 거지?”
“첫째! 넌 전혀 쓸모없이 자리만 채우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넌 전혀 쓸모없이 자리만 채우고 있고! 셋째, 넌 진짜 자리만 채우면서 너 하고 싶은 일 아니면 아무 짓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고!”
“셈이 이상하잖아! 뭐가 첫째고 둘째야!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면서!”
투란이 버럭버럭 질러대는 소리에 하얀 괴물이 하나씩 짚어보듯이 듣다가 어이없어하며 반박했다.
이는 잠깐 투란에게도 자기가 한 말을 되새겨보게 했다.
“아무튼! 이 몬스터 엠블럼 속에 내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데다가 아무 힘도 끌어낼 수 없는 너를 놔두면서 내 힘을 낭비할 수가 없다고! 몬스터 로드라고, 난! 다른 녀석을 삼켜야 하는데 너 때문에 빈자리가 없어서 삼키지 못하는 억울한 일은 원하지 않아!”
뭔가 앙앙거리며 억지와 떼를 쓰는 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게 했다.
하얀 괴물이 동글동글한 눈매를 조금 가늘고 길게 만들면서 파워 서클 너머에 흐릿한 바람결 같은 투란을 잘 보겠다는 듯한, 어딘가 깊이 가라앉은 침착한 태도로 말한다.
“투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잖아…… 첫째, 몬스터 엠블럼의 용량 문제라면 지금 내가 빈둥거리거나 말거나 너에게는 아직 엄청난 ‘빈’ 자리가 있다. 저 마그마 덩어리를 삼키고도, 겨우 바닥에 무늬 하나 더 그려졌을 뿐이라고. 게다가 그랑츄나 히엔나를 봐라. 아예 조그만 인형 수준이잖아! 그러니 몬스터 로드로서의 그릇이 채워지니 어쩌니 하는 문제는 앞으로 천 이상의 몬스터를 삼킨 다음에나 고려해야 할 거다.”
“어떤 미친놈이 몬스터를 천 마리나 삼켜! 바보냐!”
투란이 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하얀 괴물은 히죽 웃음을 흘리며 다시 차분하게 하던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넌 미쳐서가 아니라, 그만 한 그릇을 갖췄으니까.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는 짐작도 가지 않지만, 넌 나를 삼키고도…… 옴니앙을 품은 채인 나를 삼키고도 마그마 덩어리를 다시 삼켜냈다. 그럼에도 황금 궁전은 거의 비어 있는 풍경을 유지하고 있지. 고작해야 궁전 바닥에 깔린 무늬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라고. 그러니, 몬스터 로드로서의 ‘용량’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둘째, 내가 왜 도움이 안 돼! 옴니앙에서 파워 서클, 월드 가디언의 주문을 찾아 옮겨준 게 나잖아! 게다가 저 망령이 원하는 주문도 내가 찾아줬다! 황금매의 스펠 스택을 재구성하는 주문을 모두 내가 찾아줬구만! 뭐가 도움이 안 된다고 헛소리를 하냐고!”
“떽! 억지 부리지 마! 그게 날 위해서 한 짓이냐! 세란드, 너 좋자고 한 짓이잖아! 마법사를 다시 완벽하게 죽이고 싶어 한 것도 너고, 동생들을 구하겠다고 바락바락 날뛰면서 배틀 그림모어도 다시 기록한 것도 너라고 세란드!”
투란이 휘몰아쳐 내는 소리가 하얀 괴물과 금빛 안개의 망령을 관통하듯이 퍼져 나갔다. 소리에 힘이 담긴 듯, 몰아붙이는 여파가 황금의 벽과 풍경을 깊이 진동시키며 투란의 기분을 전하는 듯했다.
이는 하얀 괴물이 앞발―두 팔뚝 위에 턱을 괴게 했고, 굉장히 한가한 말투로 대꾸하게 했다.
“흐흠, 그런 부분이라면…… 거기 망령을 사라지게 하면 끝나는 일이군. 동생을 위해 옴니앙을 뒤지거나 배틀 그림모어를 다시 구성하거나, 가디언의 계약을 한 것도 모두 그 녀석이 한 짓이니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망령을 여기서 사라지게 하면 되는 거잖아. 나 빼고 말이야.”
“뭔 소리야, 세란드? 너네 둘로 나뉘었지만 하나잖아! 누가 남고 누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세란드’ 바로 네가 이 풍경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투란의 외침이 보다 강하게 울려 퍼졌다.
괴물과 망령, 둘로 나뉘어 있는 듯하지만 그 정수(精髓)가 나눠진 것이 아니었다. 황금매라는, 불완전한 마법의 각인에 의해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세란드’는 본래 한 마리 몬스터가 되었던…… 이전에는 인간이었지만 인간이 아닌 자였다.
몬스터 로드로서, 그 정수를 삼킨 투란이 명확하게 느끼며 이해하는 진실이었다.
그 진실을 하얀 괴물인 세란드 쪽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부정하다니…….
불쾌함과 함께 투란은 놀림받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 음…… 투란, 그 부분이 조금 변했는데…….”
금빛 안개로 이뤄진 형상에서 곤란하고 민망한 일에 대해 말 꺼내는 것이 약간 부끄럽다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변해?”
“그러니까, 아까 투란도 말한 것처럼…… 내가 동생들에게 가디언의 계약을 했잖아. 그리고…… 괴물인 부분, 저 녀석에 대해서는 완전히 감춘 일…… 그게, 그러니까 저거랑 내가 완전히 갈라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거든.”
“에……, 엥?”
투란은 울화를 터뜨리기 위해 가득 채워놓았던 허파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게 뭔 소리인가?
* * *
‘드라고니아, 이런 얘기 알아?’
망령을 품은 괴물이 둘로 갈라졌다.
그것도 망령인 부분을 잘라내고.
하늘을 그려내는 듯한 정팔면체의 위쪽을 바라보며 투란은 재빠르게 손목을 쥐고 은밀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가지를 쳤다거나 부모, 자식 같은 관계가 되어서 완전히 독립된 개체가 되는 경우의 몬스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경우 같군. 일단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 저 ‘세란드’는 괴물이든 망령이든 분명히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으…… 말 안 듣는 놈은 얼른 위든 아래든 구멍 깊이 처박아야 하는데…….’
―나도 처리하고 싶다고? 흥, 쉽게 처분될 것 같냐!
‘야, 성질부리지 말고 도움이 되라고, 도움이!’
투란은 다시 황금매의 풍경, 하얀 괴물과 파워 서클이 자리 잡은 심상 속으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 * *
크륵, 크큭.
하얀 괴물로부터 거칠게 웃는 듯한 소리가 새나왔다.
“네 덕분이야, 투란. 저 귀찮은 미련 덩어리 망령을 떼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네 덕분이지.”
“에, 설명 좀 듣고 싶은데?”
투란이 낑낑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금빛 안개의 망령 세란드는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고, 하얀 괴물인 세란드가 여전히 거친 웃음소리를 섞어 대답을 한다.
“파워 서클, 투란 너는 자신의 심상과 풍경을 현실로 삼아 세계의 균열과 파괴를 막는 대마법의 각인을 새겼다. 저 각인은…… 여기, 이 자리, 내가 머무는 이 황금 궁전의 하부 감옥에 ‘현실’을 부여했다. 물론 이 ‘현실’은 여기가 여전히 너의 심상이며, 너의 문장 속 풍경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아. 오히려 그 성질을 보다 강하게 드러내게 하는 쪽이지. 그런 ‘현실’을 내가……, 나와 망령이 받아들였다. 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자신을 혐오하며 하나로 엮여 있을 필요가 없이, 이렇게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였다.”
“혐오?”
난데없는 한마디가 투란에게 아주 언짢고 스산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금빛 안개의 망령이 한숨을 쉬는 모습으로 괴물의 말을 잇는다.
“내게 소중한 것은 동생들을 지키고 돌본다는 한 가지뿐이다. 오직 그 미련만이 남아서 내가 존재하게 해줬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괴물이 된 녀석은…….”
“마법사를 죽인다. 내가 이런 몰골로, 인간의 한계를 지키지 못한 채로 괴물이 되게 한 마법사, 그 잔해가 티끌 하나 남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죽인 줄 알았던 놈이 강력한 마법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살의(殺意)와 원한(怨恨), 격노(激怒)는 한층 더 그런 성질을 강화했다. 거기에는…….”
“세란드라는 인간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않은 괴물이 된 거야. 도저히 저런 괴물과 어울릴 수가 없어.”
“살의와 원한보다 동생들이라고? 크흐흣, 나는 인정할 수가 없는 선택이지! 그 살의와 원한, 격노가 부족했기 때문에 다시 마법사의 악랄한 수작이 가능했던 것이잖아! 예전에 마법을 간파하고 해치웠다면, 그 동생들의 일이고 뭐고 전혀 문젯거리가 될 리가 없지!”
“저딴 생각으로 동생들에 대해 내팽개친 놈을 나는 ‘나’라고 인정할 수가 없어!”
분노보다는 깊은 슬픔이 담긴 소리로 금빛 안개의 형상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반짝거리는 파워 서클을 느끼면서, 도대체 괴물과 망령이 번갈아 가며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가 생각해야 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면서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한다고 느낀 탓에 뭘 먼저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냅다 둘로 찢어진 꼴인 것 같은데, 과연 그렇다고 이제부터 남남이라고 따로 ‘존재’하자고 할 수가 있는 것인가?
크르르!
“세란드라는 이름으로서…….”
“우리는 과거를 공유하지.”
“하지만 마법사와 형제자매, 원한과 수호라는…….”
“갈라질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현실’로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를 나눴고, 서로 다른 미래를 택했다.”
파워 서클이 둘의 말에 귀 기울이듯, 알고 있다는 듯이 반짝거렸다.
조용히 오락가락, 서로 주고받는 듯이 말하는 둘의 소리를 듣다가 투란이 불쑥 한마디 던진다.
“그럼, 둘 다 꺼져!”
* * *
“아오오옷!”
투란은 우선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느릿하게 허공을 날고 있는 뾰족한 타원의 바위, 땅을 긁으면서 볼록하고 뾰족한 알처럼 보이는 바위가 바람과 흙 사이에서 내는 음향 속으로 투란의 외침이 섞여 들어갔다.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꽉 잡은 채로 윌 라이트에 집중하며 생각한다.
‘아니, 뭐 이런 편리한 놈이 되었데?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랑 찢어져? 둘이 돼? 뭐냐고, 이 편리한 마법은!’
―마법이라고 하기 어렵다.
‘어? 마법이 아니라고?’
―그래…… 아무래도 둘이 각자의 ‘현실’을 쥐었다고 해야 할 것 같군. 원래 세상에서는 용납될 리가 없는 일이지만…… 몬스터 엠블럼을 통한 풍경, 그 특별한 심상 속에서 네가 둘을 따로 대할 수 있다는 상황이 ‘현실’을 획득하면서 가능한 일이 돼 버린 것 같아.
‘무슨 말이야, 그게! 결국 내 탓이냐!’
간략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투란은 털썩 주저앉았다.
―네 탓은 아니지. 다만 옴니앙을 통한 마법적 관조, 파워 서클이라는 단단한 배경을 바탕으로 녀석이 온갖 궁리를 다 한 다음에 자신의 의지를 확고하게 한 덕분에 가능한…… 이상한 일일 뿐이야.
‘뭡니까, 그게! 드라고니아 씨! 굉장히 이상한 소리를 하시고 있는데, 아십니까!’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라고 했잖아!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라고!
‘어? 해결 방법?’
―그래, 이러쿵저러쿵해봐야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저 ‘세란드’는 괴물이든 망령이든 여전히 너의 몬스터 엠블럼 속의 존재라는 거지. 몬스터로서, 네 안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다면…….
‘여전히 몬스터…… 아?’
―맞아. 지금 네가 떠올리는 그대로다. 둘은 지금 완벽하게 네 의식 속에 포착된 상태지. 나랑 다르게 말이야.
‘으흠, 그렇다면……!’
―심연 깊은 곳으로 빠뜨려 지울 수 있다는 거야. 침착하게, 신중하게 할 일이다. 투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좋았어!’
투란은 꼿꼿하게 앉은 채로 다리를 모으면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가지런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 * *
“어머나?”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들뜬 기분이 훅 날아가서 뭐라 할 말이 없는 순간을 소리로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얀 괴물, 금으로 된 우리―많이 벗겨진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녀석이 네 발을 우뚝 세운 채로 뒤통수 언저리에 투명한 구슬, 복잡한 무늬가 빛으로 잔뜩 그려진 듯한 구슬을 매달고 으스스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 주문이 진행되면서, 하얀 괴물의 형상이 검게 변하는 듯한데, 그 시커먼 색채는 하얀 괴물의 하얀 가죽만을 덮고 있지 않았다. 하얀 괴물의 우리, 새장 속을 가득 채우며 번져가는 색채였다.
그 시커먼 색채로 반쯤 지워진 형상으로, 하얀 괴물 세란드가 낮게 외우던 주문의 끝마디를 토해낸다.
“다커 블랙, 섹스탄트 크로스(Sextant Cross).”
“야, 뭐 하는……!”
풍경의 한 부분에서 변화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