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0)
세란드는 망령의 수준에서 벗어난 가디언의 형체라고, 징징대는 투란을 겨우 납득시켰다. 우는 척하는 시늉에 몇 번 금빛 찬란한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지만, 세란드는 휘두르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투란이 마주 주먹을 쥐는 꼴을 보이면, 재빨리 말을 듣는구나 싶어 얼른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자신이 납득한 바를 확인하듯 묻는다.
“에…… 그러니까, 원래 가디언이 급하면 이렇게 진짜 있는 것처럼 모습을 보이면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지?”
“실물(實物)과 현상(現像)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디언이라 불리는 거라고 해야겠지. 음, 내 경우에는 원래 사람이니까 이렇게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이겠고…… 너와 나는 계약의 유효한 부분만 사용하고 있어서 무장이 완전한 꼴은 아닌 거야.”
“그래서, 왜?”
삐딱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은 멀쩡한 세상의 하늘 아래…… 드라코눔의 풍경 속에서 서 있는 세란드를 보며 뚱한 소리로 물었다. 마치 이제는 세란드가 안팎으로 나타나서 자신에게 들러붙은 망령이라는 듯!
쓴웃음으로 금빛을 흘려내며 세란드는 답한다.
“괴물이 된 내가…… 음, 그러니까 이제는 완전히 갈라선 하얀 쪽의 내가 너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순전히 마법사에 대한 집착으로 저러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내게는 아겔…… 내 동생들에게는 겔퍼라는 이름을 댔던 마법사…… 아겔페스라고 하는 진짜 자신의 이름을 숨겼던 그자는 마도구 옴니앙을 갖고 있었어. 괴물이 되면서 내가 빼앗아버렸지만…… 그 안에 담긴 주문은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내라는 거지. 그래, 조금 더 간단히 말하자면…… 투란, 지금 파워 서클을 품었고 그 첫 번째 사본 앞에 서 있는 네가 자신의 심상, 문장의 풍경 속에서 하얀 괴물이 된 나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면…… 마법사가 어딘가에 만약을 대비해 자신을 숨겨뒀을 경우도 포착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래, 알아. 아케인 버스터 체인은 여전히 세상을 맴돌고 그 숨겨둔 마법사가 다시 실체를 드러내면 또 박살내려 하겠지. 하지만 마법사는 아케인 버스터 체인이 자신을 포착하고 쫓아가는 틈새를 이용할 수가 있어. 짧겠지만, 그 짧은 순간을 반복해서 긴 시간을 쌓고…… 옴니앙을 이용해서 아케인 버스터 체인을 해제할 수 있는 디스펠 가드를 만들 수도 있다고.”
“디스펠 가드?”
투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뇌었다.
순간적으로 윌 라이트로부터 투란의 뇌리로 지식이 스며들어왔다. 말로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투란에게는 드라고니아의 의지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금 세란드가 하는 말을 반드시 알아들어야 한다고!
짧은 투란의 되뇜을 듣고 난 세란드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어떤 주문에 대해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효과를 지닌 마법의 방패,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초월적인 주문이라 해도 막아내고 효과를 지운다…… 단 한 가지 용도인 데다가 구성하는 것부터 완성되어 제대로 구현되는 과정도 어려운 거야.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아. 특히나 옴니앙을 이용할 수 있고,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파괴당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대단한 마법사라면…….”
“왠지 몇백 년은 걸릴 정도로 힘든 일 같은데?”
투란이 툭 한마디 던졌다.
금빛 안개가 휘청거렸고, 세란드의 형상이 흔들렸다.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굉장히 의심스럽게 던진 듯했지만, 드라고니아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짚어 말한 것이었다.
이론상으로 디스펠 가드는 모든 주문에 대응해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론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까닭도 명확했다.
하나의 주문에 대응하는 디스펠 가드는 다른 주문에 적용되지 않는다, 라는 명확한 한계점 때문이었다. 같은 효과를 내더라도, 다른 구성을 지닌 주문을 전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마법의 주문에 늘 자기만의 변화를 담기 바쁘다. 결국 디스펠 가드는 아주 특별한 경우의 한 가지 주문에 대해서만 그 효과가 통하는 것이다. 그런 디스펠 가드를 구성하고 구현할 시간이면, 전해오는 방어 마법을 몇 가지 중첩시키는 편이 훨씬 나았다. 굳이 한 가지 주문만을 없애겠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아케인 버스터 체인 또한 그런 디스펠 가드로서, 아바타리안의 비술을 격파하기 위해 조성된 궁극의 주문이었다.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몇 배로 더 오래 사는 드라고니아에 의해서!
그런 아케인 버스터 체인에 대항하는 디스펠 가드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 만들어질 리가 없다는 것이 드라고니아의 판단이었고, 그 구성에만 수천 년은 걸릴 거라고…… 그나마도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아예 없지만 않을 뿐이라고 했다.
투란은 그런 드라고니아의 이야기 중에서 수천 년이란 부분을 수백 년으로 고쳐서 꺼내놓았다. 아무래도 수천 년은 너무 심하다고, 너무 과장된 부분이라고 느껴진 탓에 뭔가 말하기가 껄끄러운 때문이었다.
허풍도 정도가 있고, 공갈을 쳐도 적당히 쳐야 한다니까…….
금빛 안개로 그려진 세란드는 그런 껄끄러움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몇 천 년이 걸려도 안 될 일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야.”
당당하게 몇 천 년이라 하잖는가!
투란이 어이없어 바라보니 세란드가 금빛 안개를 흐트러뜨리며 웃었다.
“그래, 어이없는 핑계를 대고 있는 셈이야. 거의 있을 리가 없는 일에 한없이 매달리는 거야. 괴물이 손에 넣은 현실을 붙들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 자기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봐도 될 정도지. 그러니까 괴물인 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고…… 하지만 투란, 나는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라도…… 그게 내 동생들에게 위협이 된다면, 결코 있을 리가 없는 일에 대한 대비라도 반대할 수가 없어. 나 또한 미련 가득한 망령이고…… 이제 겨우 다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니까.”
“어이! 그래서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거야! 뭐가 그래!”
투란은 바로 버럭대는 으르렁거림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넌 재수 없다, 라고 손가락질하는 꼴 아닌가!
세란드가 고개를 저었다.
“책임을 지라는 말이 아니야. 괴물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알라고 말해주는 거지. 그 미련을 끊을 수 있도록 설득한다면, 녀석이 아겔페스에 대해 품은 집착과 원한, 증오를 버리도록 납득시켜야 한다는 거야. 나는 한때 나였던 녀석을, 이제 겨우 나눠진 또 다른 나에게 그 미련을 버리라고 말할 수가 없어. 단지 너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는…….”
“정보 제공이냐! 좀 더 도움이 될…….”
퍼엉! 콰아아아!
세란드의 금빛 안개를 휘저으려 하며 꽥꽥대려 하는 투란의 머리 위로 폭음과 함께 새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 벌써…….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라당 물에 젖은 꼴이 된 투란은 뇌리 한구석을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들었고, 한층 더 성난 기분이 되었다!
“이게 뭔!”
울컥한 투란의 말에 대한 대답은 세란드에게서 나왔다.
금빛 안개의 형상이 괄괄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빛나며 보다 선명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파워 서클이…… 세상과 교류를 시작했어. 그 첫 단계로 ‘정령(精靈)의 수호(守護)’가 작용하는 거야.”
―골든 서클은 섭리에 호응한다. 세상에 머물면서 세상의 이치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정립(正立)시키려 하지. 그래서 세상을 이루는 근원의 소재, 거기에 감응하는 정령의 힘을 주변으로 끌어모은다. 그렇게 모인 힘이 ‘엘레멘탈 가드’로서 구성되는 것, 그게 정령의 수호야.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디스펠 가드 때처럼 투란의 뇌리에 새겨줬다.
“정령의 수호라…… 그런데 왜 내가 물에 젖어야 하는데?”
세란드를 향해 투란이 중얼거렸다.
금빛 안개가 짙게 뭉친 눈알을 굴리며 세란드는 위를 향해 눈길을 던진 채로 투란에게 대꾸한다.
“인사인 모양이군…… 자신이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갓난아기가 칭얼대는 것처럼 투란에게 파워 서클이 인사하는 모양이야.”
바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은 슬슬 옆걸음질을 하며 세란드의 눈길을 따라 위를 올려다봤다.
날고 있던 바위가 금이 쩍쩍 가서 갈라진 틈새로 괄괄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날기를 관두고, 대신 허공에 둥실거리는 꼴로 물을 쏟아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 되었다는 듯한 꼴이었다.
퍼엉, 콰아아!
저편에서도 바위 몇이 멈추고 쪼개지면서 땅을 향해 폭포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땅에 쏟아진 물줄기는 이제껏 바위가 땅을 긁으며 파놓은 고랑을 채우며 흘렀다. 정팔면체의 아래편이 파놓은 세모꼴의 경사를 지닌 구덩이를 메우겠다는 듯이…….
쿠웅, 콰앙.
화르르…….
격한 바람결과 쇳소리가 울렸고, 투란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대장간이 놓인 방향에서, 불꽃이 너울거리며 그 화로를 채우는 광경이 얼핏 보였다. 대장간 주변으로 옅게 깔리는 불티가 붉은 안개처럼 엉기고 있었다.
세란드가 투란을 향해 고요하게 말한다.
“물, 불, 바람과 흙…… 네 가지 정령의 수호가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은…… 이제 정말로 이 산맥 깊은 곳에서 안전한 영역이 돼 가는 거지. 네 덕분이야, 투란.”
“아, 그래요? 하아…….”
허탈하고 맥이 풀린 듯이 투란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세란드가 금빛 안개의 모습을 조금 분명하게 굳히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투란, 이런 건 마법사들이 간절히 바라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아하? 위대해서 위로하십니까!”
꽥, 투란은 소리를 질렀고 세란드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어딘가 멋쩍고 민망하게 웃는 세란드를 보며 투란은 한 번 더 욱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포기하겠다는 듯이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만하자고. 그냥 여기서 작별하는 게 좋겠다. 가디언의 계약으로, 더 이상 나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이제부터는 동생들에게 들러붙어. 나한테는 신경 쓰지 말아줘, 제발!”
웅얼거리다가 결국 큰 소리를 한 번 지른 다음, 투란은 몸을 돌렸다.
딱히 정한 방향은 없는 듯하지만, 결국은 세란드가 선 자리의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투란이었다.
투란의 발아래에서 어느새 살짝 고인 물이 밟히며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세란드가 잠깐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몇 걸음 더 나아간 투란을 향해 불쑥 묻는 말을 던진다.
“투란! 어디 가는 거지? 애들은 여관에 있는데!”
“앙? 작별이라고 했잖아, 작별! 네 동생이지, 내 동생이냐!”
돌아보지도 않은 채, 투란은 울컥한 소리의 대답을 하고는 좀 더 힘차고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바로 자신을 스치며 바람처럼 흘러오는 금빛 안개가 맺히면서 세란드의 낯짝이 바로 코앞에 눈알을 데굴거리며 나타난 꼴을 봐야 했다!
한데 그 낯짝이 일그러진 꼴이 몹시 성난 망령이잖은가?
“에? 왜…….”
멀쩡한 척하더니 갑자기 미쳐 날뛰는 꼴로 되돌아갔나!
의아해하는 투란을 향해 세란드가 금빛 입술을 흐트러뜨리며 빠른 소리를 쏟아낸다.
“여기서 작별이라니! 우리 애들…… 내 동생들을 죽일 참이야! 그래, 내게 불만이 있고…… 괴물인 나에게는 나도 불만이 있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내 동생들을 죽게 내버려두다니! 그건 용납할 수 없어! 형으로서, 오빠로서, 가디언으로서!”
“잠깐! 거기 세란드, 갑자기 뭔 헛소리야? 죽이다니? 내가? 내가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를 죽여? 기껏 황금매 새겨놓고 골든 서클까지 새겨서 마력까지 채워놓고, 죽인다고? 이제 와서? 어떻게 갑자기 그런 괴상망측한 미친 소리를 할 수가 있지?”
“작별이라며!”
“그래, 작별! 넌 네 동생들이랑 가고, 내 안에서는 석상처럼 된다며! 그러니까, 난 나 갈 데로 가고! 그럼, 작별이잖아! 멀쩡하게 잘 살아서 좋은 집에서 안전하게 쉬고 있는 네 동생들을 놓고, 뭘 갑자기 죽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냐고!”
“투란,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여기는 춤추는 산맥의 깊고 으슥한 안쪽이다! 내 동생들을 여기 가둬놓을 참이야? 죽는 거랑 똑같잖아, 그러면 안 돼!”
“저기, 세란드 씨? 가두다니요? 전혀 이해가 안 가고 있습니다만?”
거의 금빛 안개의 이마를 박치기라도 하듯이 들이대며 꼬박꼬박 대꾸하는 세란드를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기 때문에 항복이라는 몸짓을 하며 투란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물어야 했다.
한데 세란드도 잠깐 몸을 뒤로 물리며, 박치기하는 듯한 태도를 바꾸며 이상하다는 듯이 투란에게 되묻는다.
“어째서…… 어째서 모르는 거지, 투란? 내 동생들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어.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다고. 그저…… 숨만 쉬고 여기 갇힌 꼴이 된다는 걸, 왜 몰라?”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
더욱 답답하다는 듯이 투란이 으르렁거리고 말았다.
금빛 안개의 형상이 살짝 갸웃거리며 휘청이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거렸다.
“투란, 설마…… 설마 내 동생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산맥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나야 혼자 헤매니까 힘든 일이지. 하지만 세란드, 네 동생들은 밖에서 여기까지 왔잖아! 황금매도 완전하게 새겨졌고, 나한테 줬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림모어도 전했고! 심지어 이 근처에서 활개 치며 다니는 붉은 그랑츄까지 품고 있는 몬스터 로드라고! 나보다 훨씬 빨리 나갈 것 같구만!”
말을 하다 보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가슴에 벅차오르는 투란이었다.
그래서 쿡쿡 손끝으로 금빛 안개를 찌르며 세란드의 어깨, 가슴을 흐트러지게 하며 씩씩대고 쏟아낸 이야기인데, 세란드가 보다 깊고 그윽한 한숨과 함께 답한다.
“투란, 그건 네 기준으로 생각한 거고. 내 동생들은…… 가디언으로 내가 돕는다 해도, 동생들의 능력으로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산맥을 벗어나려 시도하다 모두 죽는다고.”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