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
투란은 손을 내려다보며 방금 본 것을 되새겼다.
간단하게 하자면 다시 손을 그늘 속으로 넣었다 빼면 될 일이지만, 한순간에 꽁꽁 얼음이 돼 버린 듯한 광경이 행동보다 생각을 먼저 하도록 강요한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등골부터 위장까지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이래?’
앞서 보냈던 넝쿨은 신나게 잘도 그늘 속에서 꼬물거리지 않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가 손을 들이밀자 바로 얼어 버리는가?
머리통의 두꺼비 가죽이 보글거리며 녹는 한편으로 아래턱 쪽부터는 얼어붙고 있는 저 기괴한 덩치 녀석을 봐도 이상했다. 녀석이 얼고 녹는 그 모든 일은 그늘에서 나온 다음에 일어났다. 결코 그늘 안에서 얼어붙거나 하지 않았다.
‘여기가 이상한 곳이라는 건가?’
절대로 투란 자신은 이상할 리가 없었다!
근거 없는, 그저 막연한 자신감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놓이므로 투란은 그런 생각을 근거로 해서 주변의 이상한 풍경 속에 뭔가 있는 것이라 여기며 다시 사방을 둘러봤다.
왜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얼어 버리는가? 여기 바깥에 대체 뭐가 있기에?
‘빛…… 서리 끼게 하는 안개, 돌이 하얀 것도 서리…… 어? 어라!’
투란은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체온에 녹은 것처럼, 하얀 돌이 미묘하게 서리 껍질을 벗고 검은 바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발아래 깔린 돌이 보이는 상태와 달리, 아까 걸어오면서 남겼던 발자국은 이미 다시 서리가 끼어 하얗게 변한 것이 보였다.
‘이건가?’
투란으로서는 일단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리 안개, 다른 말로 뭐라 하기 곤란한 이 녀석은 하늘에서 둥실대는 여러 개의 태양으로 인해 깔끔하게 으스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몇 개나 되는 태양의 빛이 없는 곳이라면 어떨까?
궁리를 좀 더 했지만 추론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는 바가 없으니 막연한 추측밖에 할 수 없는 탓이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단순한 것만 남았다.
‘해 보는 수밖에.’
투란은 머리카락에서 뽑아낸 넝쿨의 상태를 상기하며, 다시 한 가닥의 머리카락 넝쿨을 뽑아냈다. 반짝거리고 투명한 껍질에 덮인 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늘 속으로 살짝 떨어지게 밀자, 우선 허공에서 꼬물거리는 실벌레처럼 움직이다가 헤엄치듯 안쪽으로 기어갔다.
그 꼴은 어떻게 봐도 얼어붙은 상태랑은 거리가 멀었다.
투란의 눈이 가늘어지고 집중하는 시선이 만들어졌다.
그늘 속에서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살짝 반짝거리며 꼬물거리는 머리카락 넝쿨.
‘……빛?’
악마의 심장으로 만들어 낸 투명한 줄기, 껍질에 감싸인 머리카락 넝쿨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것 말고는 별달리 이상한 것이 없었다.
‘돌아와.’
투란은 되뇌었고, 이 마음의 외침에 호응하듯 심장이 독특하고 억센 고동을 울렸다.
그 순간, 몸의 모든 감각이 자극을 받는 느낌이었다. 꼬물거리며 그늘 안을 헤매던 머리카락 넝쿨이 돌아오는 것도 느껴졌다. 덤으로 먼저 보낸 놈이 덩치 큰 두꺼비 머리, 오우거 아래에 깔린 채로 버둥거리는 것까지 느껴진다!
투란은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며, 천천히 쪼그리고 앉아 그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돌아오는 넝쿨을 마중하려는 손길이었다.
한데…….
‘헐!’
그늘 속에서 나온 넝쿨 가닥이 갑자기 말라비틀어지진 나뭇가지처럼 굳어 버리잖은가!
그렇다고 머리통이 다 날아간 덩치처럼 아주 끝장나지는 않았다. 잠시 뒤에 껍질 색이 조금 더 밝아진 넝쿨 가닥은 다시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결국 그의 손을 타고 올라 팔목에 감겼다.
투란은 쪼그리고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했다.
‘어차피 커다란 악마의 심장이 되어 여기가 박살 날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지.’
과연 그런 순간이 올까?
몇 개나 겹쳐진 태양들의 빛과 단단한 서리 안개의 장벽으로 덮인 분지에서 마냥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할까?
몬스터일 뿐인 악마의 심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투란은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형성한 채로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해서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문장의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도 버틸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이상한 곳이 박살 난다면 또 어디로 휩쓸려 갈지가 더 염려스러운 것이다!
‘저런 덩치가 버틸 수 있고 나는 못 버티는 곳일 수도 있지.’
투란은 다시 한 번 결심을 가다듬었다.
두꺼비 오우거의 손톱과 혓바닥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저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뿐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환경에서 버틸 거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악마의 심장 덕분이었고!
“운이 계속되길 바라지 마. 행운은 불운과 쌍둥이, 아니면 빛과 그림자의 관계지. 행운이 닥쳐오면 주의하고, 불운이 닥쳐오면 기대하는 거야.”
‘사기꾼 말을 들어야 하다니.’
사기도박을 하다가 쫓기고 쫓겨 샤오콴 마을까지 왔다는 도박사의 말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조금 더 씁쓸해져 입매를 뒤틀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투란의 숨결은 조금씩 깊어졌고, 투란의 몸을 덮은 투명한 넝쿨의 껍질은 조금 더 두꺼워졌다. 아직 남아 있는 옷감, 가죽 바지와 얇은 셔츠 쪼가리 속으로도 넝쿨의 줄기가 부지런히 뻗어 가 점점 두껍게 쌓였다. 옷감을 잡으려는 듯, 투명한 실그물의 영역을 좀 더 넓히려는 듯.
한쪽 팔은 빛살 아래 둔 채로, 투란은 가능한 한 많은 빛을 몸에 머금고 나서 그늘 속으로 걸음을 들였다.
감각이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살았다!’
투란은 빛살 아래 두었던 한쪽 팔마저 그늘 속으로 당기고, 덜덜 떨리는 몸을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몸 곳곳에서 서리 안개의 잔해가 빛의 잔해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몸에 엉겨 있던 서리 안개와 나중에 스며든 빛살은 그의 몸을 전장 삼아 한동안 겨루었다. 그러다가 빛살이 지워지는 곳에 들어서니 바로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얼지 않았지?’
몸이 조금 진정되자 투란은, 여전히 머리통을 빛살 아래 내놓은 채로 엎어져 있는 두꺼비 오우거를 내려다봤다. 빛살이 없는 이 그늘 속에서라면 바로 서리 안개에 얼어붙을 만하지 않은가?
조금 갸웃하던 투란은 바닥을 살피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검다.’
바닥의 돌이 그늘 속이란 것을 강조하듯이 검고, 서리가 덮이지 않은 꼴이었다. 두꺼비 오우거의 몸 아래를 보니 그늘에서 조금 벗어난 곳까지, 상당히 미묘한 경계를 두고 서리가 낀 돌바닥이 아니었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고, 그늘 밖의 저편을 봤다.
서리가 뭉쳐 있는 호수, 그 위로 내리꽂히는 빛줄기가 노란빛의 층을 만들고 있었다. 그쪽 풍경 안에 있을 때는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서리 안개가 또렷하게 뭉쳐진 근처일수록 노란빛이 엷었고, 거의 바닥에 하얗게 깔린 지점에서는 위쪽이 아예 황금색에 가까웠다.
‘그렇구나, 이게 그…… 힘의 영역인가 하는 것이야.’
천천히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분지 안의 풍경, 그걸 만들어 내는 녀석들의 실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녀석들이 뿜어내는 힘에는 한계선이 있었다.
투란이 들어선 그늘 속은 그 한계선에서 벗어난 부분이었고, 덕분에 두꺼비 오우거가 여기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날 잡아먹으려고 서둘지 않았다면 너도 안 죽…… 아, 내가 죽는 건가?’
뭔가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생각이었다.
투란은 저 빛과 안개의 영역에서, 그 미묘한 힘의 균형 사이에 머물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반면에 두꺼비 오우거는 그 한계선 너머로 머리만 조금 내밀었다가 죽어 버렸다.
만약 투란이 얼쩡얼쩡 그늘 안으로 발부터 들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놈 위장 속에서 녹고 있었으려나.’
연금술사의 줄자로 재려 해도 세워 놓고는 사다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키만 해도 거의 3미터는 되는 데다 거기에 어울리는 큰 덩치의 괴물과 맞설 방법은 없었다. 바로 두꺼비 머리의 가지런히 돋은 이빨에 깨물려 잘근잘근 씹히고 삼켜졌을 것이다.
투란은 양옆의 벽을 봤다.
두꺼비 오우거라면 팔을 펴기만 해도 양쪽에 닿을 좁은 폭이지만, 그로서는 두 팔 쭉 뻗고 드러누워도 안 닿을 폭의 절벽에 삼지창 같은 손톱이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게 파여 있었다. 그쯤 되면 씹히기 전에 토막 나고, 씹을 필요도 없이 삼켜졌을지도 몰랐다.
새삼 위협을 느낀 투란은 빛살과 서리를 등지고 돌아서 그늘 속의 틈새를 걷기 시작했다. 어서 위협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 가득 담긴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걸음은 열대여섯 정도에서 멈춰지고 말았다.
투란의 태도에서 망설임이 뿜어져 나왔다.
곧 한숨을 쉬듯 어깨가 처진 투란은 다시 그늘과 빛의 경계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머리통이 녹고 얼면서 꼼짝도 못하는, 죽은 두꺼비 오우거를 노려봤다.
자신을 위협하고 잡아먹으려 했던 놈, 이런 놈을 잡아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배고프다고.’
그늘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서기 위해서 몸을 감싸는 좀 더 두꺼운 넝쿨 껍질을 만들며 소모한 것이 너무 컸다. 양분은 지금 당장, 그것도 많이 필요했다. 덩치가 이놈보다 두어 배 큰 송아지를 갖다 준다 해도, 혼자 다 먹겠다고 호기롭게 외칠 정도로!
‘피도 모자란데…….’
투란은 천천히 오른손을 폈고, 아주 적은 양의 피를 샤벨투스의 이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샤벨투스의 이빨이 얇은 두께를 유지한 채로, 보다 날카롭게 변했다.
거칠고 낮은 소리로, 투란은 샤벨투스의 이빨에 입을 대며 속삭였다.
“잘라라, 제발.”
오우거라 불리는 괴물 녀석들은 대부분 살가죽이 단단하고 강했다. 칼날이나 창, 화살에 쉽게 뚫리지 않기 때문에 그 덩치와 괴력이 보다 큰 위협이 되는 놈들을 오우거라 부르는 것이다.
샤벨투스의 이빨은 날카롭게 뻗어 나오면 거의 모든 것을 뚫고 잘라 버린다 했다.
투란으로서는 온갖 오우거의 전설보다 샤벨투스의 전설이 한 수 위이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면 다시 저 녹고 얼어붙은, 이미 벗겨진 살갗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다행히도, 투란의 소소한 염원을 담은 샤벨투스의 이빨은 두꺼비 가죽을 아주 쉽게 뚫고 들어가 썰어 냈다.
잔뜩 빌면서 쑤신 자신의 꼴이 왠지 무안해졌지만, 투란은 그냥 기뻐하기로 하고 가죽과 함께 살 조각을 조금 떠냈다. 손바닥에 적당한 크기로 올려진 살점을 가죽에서 발라낸 다음, 잠시 노려보다가 입으로 집어넣었다.
덩치의 살점은 투란의 입안에 들어간 순간, 살아난 것처럼 꿈틀 자극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곧 목구멍을 관통해 위장 속으로 미끄러지듯 뛰어들었다.
‘으앗, 뭐야!’
얼얼함이 입과 목, 배에서 동시에 투란을 두들겼다.
투란으로서는 꽤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악마의 심장은 전혀 당황할 것 없다는 듯이 바로 대응했다. 장기들이 꽈악 조여지며, 쳐들어온 살점을 으스러뜨리고 으깨는 율동과 함께 내장 안으로 흡수했다.
그럼에도 투란이 느끼는 얼얼함은 오히려 혈관을 타고, 세세한 덩굴줄기까지 번지는 듯했다.
쿠웅!
억센 고동이 심장에서 울렸다.
심장 안까지 스며든 얼얼함이 사라졌다.
뭔가 든든한 느낌이 얼얼함을 지우고 억누르듯이 혈관을 타고 번졌다.
이내 목 줄기와 입안의 얼얼함도 반 이상 사라졌고, 투란은 깊은 허기를 느꼈다. 뭐든 있으면 일단 먹고 보자는 강한 배고픔이 그의 손을 움직이고, 더 많은 살과 가죽을 썰어 내고 발라 삼키게 했다.
무슨 다디단 거대 과일을 탐식하듯 정신없이 몬스터 고기를 잘라 먹던 투란은 조금 늦게, 악마의 심장이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처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못 먹는 것도 용케 처먹게 해 주는구나.’
몬스터의 독성을 악마의 심장이 처리해 주는 것이다.
열심히 몬스터를 썰어 먹으라고!
샤벨투스의 이빨은 조금 더 많은 피를 머금었고, 더욱 날카롭고 길어지면서 두꺼비 오우거의 등짝을 더욱 깊숙이 후벼 냈다.
투란으로서는 먹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먹어 둬야 했기에 망설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