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1)
Chapter 49. 황금의 파티
투란은 세란드의 말을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혼자도 아니고 넷이나 되는 몬스터 로드, 그것도 다른 몬스터 로드와 다르게 강력한 마법까지 발휘할 수 있는 황금매의 문장을 지닌 네 명의 몬스터 로드가, 서로 등을 찌르고 내다버리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를 기꺼이 지켜주려 하는 핏줄을 과시할 정도인 몬스터 로드 넷이 어째서 살아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인가?
정작 살아나가기 어려운 쪽은 이제부터 다시 혼자 걸어나가려 하는 투란 자신일 텐데, 세란드는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을 넷이서 할 수 없다고 앙앙거리고 있다니?
하지만 이런 차분한 생각보다 먼저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짜증이 투란의 입을 움직이게 하려 했다.
―투란, 어째서 함께 갈 마음이 없지?
그때, 아주 시원하고 차갑게 드라고니아의 한마디가 투란의 뇌리를 쿡 찔러왔다.
순간적으로 투란은 세란드의 모습이 정지된 듯한 광경을 느꼈고, 이것이 드라고니아에 의해 집약되고 압축된 시간감각인 것을 알아차렸다. 드라고니아가 이 한순간을 확장하며,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함께 갈 이유가 없잖아! 함께 가지 말아야 할 이유라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
보다 차분한 드라고니아의 반문이었다.
투란은 여기에 대한 대답보다 먼저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한 거지? 꼭 악마의 심장으로…… 주변이 잠시 멈출 때 같은데?’
―마법으로 같은 효과를 일으킨 것뿐이야. 함께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지?
드라고니아는 침착하고 끈질기게 물음을 되풀이했다.
얼굴은 멈춰진 것처럼 굳어진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짜증 나서 구긴 듯한 기분을 담뿍 담아 투란은 소리 없이 대답한다.
‘천칭…… 난 천칭을 쓸 거라고. 이 이상한 마법사가 된 느낌…… 별로야. 노리고 쫓아오는 녀석 잡으려고 미끼 삼아 둔 것뿐이었다고. 이상하게 꼬이고 꼬여서 이 모양까지 되기는 했지만, 난 천칭의 몬스터 로드잖아.’
―그렇지, 넌 특별한 ‘천칭’의 몬스터 로드지. 그런데 그게 함께 가면 안 되는 이유가 되는 거야?
드라고니아는 진지하게 의아해하며 묻고 있었다.
‘키린이 조심하라고 했잖아.’
투란은 조금 삐죽거리는 기분을 담아 가능한 한 간략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무리 멈춰진 듯한 세란드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자신의 안팎에 멋대로 나타나는 망령이라는 점이 거슬린다고…… 말이 아닌 감각과 의지로서 드라고니아에게 전하면서 하는 대답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드라고니아로부터 뭔가 힘찬 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투란은 그 낌새에서 이상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거들먹대는 듯한 드라고니아를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네가 사용한 생텀의 주문은 단순히 물질계통의 방어만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계통의 방호까지 함께 처리하지. 이곳에서 누군가의 비밀은 그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면 밝혀지지 않는다. 세란드가 너에 대해 동생들에게 뭔가 비밀스럽게 전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너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만약 천칭을 숨기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야, 가슴에 고스란히 떠오르는데 뭘 숨겨, 숨기긴!’
투란은 매우 현실적인 부분을 바로 짚었다.
문장은 가슴에 그 무늬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 무늬를 보게 되면 어떤 몬스터 엠블럼을 지녔는가 금세 알 수 있는데, 감추고 뭐고 할 수는 없었다. 아예 몬스터의 형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서 무늬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도, 그 지속시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밝히는 태도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로드가 지닌 몬스터 형상의 유지시간은 그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그대로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하다면 이용당할 수 있었고, 약하다면 해코지를 당할 수 있었다. 이는 투란이 어릴 적부터 봐온 몬스터 로드들에게 직접적으로 얽힌 부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오랜 지속시간은 이모저모로 피곤하고 귀찮은 일을 일으킬 수 있다고 키린이 경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가능한 한 천칭의 문장, 투란이 지닌 ‘천칭’에 대해서 숨기라고.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깊은 생각과 간결한 반박에 신난 듯이 호응하며 대꾸한다!
―마법으로 가릴 수 있다. 감쪽같이, 천칭 위에 황금매의 문신을 마법으로 덧씌울 수가 있지!
‘뭐?’
투란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
마법으로 문신을 그리겠다니……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무슨 마법의 힘을 지닌 각인을 새기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마법으로 살갗 위에 그림을 그려서 덧칠하겠다고 하는 소리를 드라고니아가 태연하게 내뱉고 있었다.
‘아니, 야…….’
―걱정 마라. 문장의 힘을 사용해 변화할 때는 거기에 맞춰서 살짝 사라지게도 할 수 있고, 꼭 황금매가 변하는 것처럼 꾸며놓을 수 있으니까. 마법으로 그린 그림을 본 적 있다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잘 모르겠나?
드라고니아가 은근히 뻐기는 척하며 건드리는 말이었고, 투란은 어이없으면서도 살짝 욱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알아! 마법이 깃든 마수도감이라는 거, 나도 본 적 있거든!’
그려진 그림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면서 마수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방향에서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마수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조차도 훤히 보여주는 마법의 도감이 있었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느낌을 팍팍 풍기는 금장식, 은장식에 보석까지 박혔던 그 도감을 갖고 샤오콴 마을에 찾아왔던 상인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마수의 가죽을 구하려고 왔던 사람이었다. 샤오콴 마을에 잠시 들러 길잡이와 사냥꾼을 고용한 다음에 떠났고, 그다음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 상인이 샤오콴 마을을 돌면서 그 마수도감(魔獸圖鑑)을 들이대면서 그런 마수를 사냥했다거나 마수를 본 이에 대해서 묻고 다녔고…… 마을의 애들은 그 신기한 도감을 눈동냥으로 보겠다고 상인을 졸졸 따라다녔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자기 가슴에 그려넣겠다니…… 투란으로서는 드라고니아가 자신을 무슨 구경거리로 만들려는가 하고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그림까지 마법으로 그려가면서 투란이 시알라 남매랑 함께 가야 하는가? 그렇게 그려놨다가 마법의 그림이란 것이 들통나면, 그 때는 또 뭐라 할 것인데!
거짓말이라는 것은 일단 시작하면 나중에 무슨 가지를 치고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알 수 없는 법!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잖은가?
결국 이러쿵저러쿵해봐야 역시 투란에게는 시알라 남매와 따로 가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이는 쪽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같이 가야 할 이유라도 있어?’
투란은 떨떠름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이유도 없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마법도감에나 쓰일 듯한 마법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설 리는 없다는 막연한 추측을 담은 물음이었다. 뭣 때문에 이러는지 이유부터 듣고 싶어지는 태도잖은가.
설마 투란이 시알라 남매에게 발목 잡힌 꼴이 되어서 이 산맥을 헤매기를 원하는 것일까? 혼자 가도 헤매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발목 잡혀서 낑낑거리지는 않을 텐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고생하라고 권하는 것일까!
한데 투란의 복잡한 기분을 아는 시늉도 하지 않으면서 드라고니아는 지체 없이 대답을 늘어놓는다.
―투란, 저 남매는 이 산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쩌면 네가 황금매의 문장으로 마그마 로드를 제압하려 들고나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 쉽게 말해서, 저들은 가장 최근의 외부인이다. 바깥세상에 가장 가까운 길목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저들에게는 산맥 밖의 냄새가 배어 있다고 말하면 쉬우려나? 아니, 길잡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알기 쉽겠나? 투란, 저 남매는 자신들의 역량만으로 여기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최소한의 지표를 몸으로 겪고 온 이들이란 말이다. 나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어라?’
투란은 깜박여지지 않는 눈동자 위로 자연스럽게 비춰들고 있는 세란드의 금빛 안개 형상을 다시 주의해서 바라봤다. 멈춰진 듯한 풍경 속에서 금빛 안개는 허공에 박힌 무늬처럼 보였고, 희미하게 곁눈에 잡히는 물보라가 살며시 흩날리는 바람결을 올라탄 듯한 티끌과 엮인 듯한 광경…….
분명히 춤추는 산맥의 지형은 변화한다.
그 변화는 아주 빠른 곳도 있지만, 아주 느린 곳도 있다.
투란이 봤던 아빈가의 숲처럼 홀랑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한 백 년 동안 한곳에 못 박힌 것처럼 흘러가는 주변을 지켜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변화의 속도를 이용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 산맥을 드나드는 것이 베터랑인 몬스터 헌터나 몬스터 로드……. 샤오콴 마을은 그들이 드나드는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자란 투란이기에 드라고니아가 무슨 말을 하는가, 아주 넉넉하고 여유롭게 알 수 있었다. 함께 갈 생각이 아예 없어서 염두에 두지 않았던 부분…….
비록 마법사 아겔페스에게 속아서 이용당한 처지인 데다가 투란을 찾아올 때도 자신들의 힘보다는 마법사에 의지한 바가 많은 시알라 남매라고는 해도, 분명하게 자신들이 지나온 길에 대해서는 몸으로 겪어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중 몇 곳이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다고 해도, 시알라 남매는 밖으로 나갈 길에 대해서 최소한의 단서는 쥐고 있는 셈이었다.
막무가내로 하늘의 별을 보고, 높이 솟은 뾰족한 산을 향한다거나 그 산을 등진다거나 하는 방법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산맥의 경계 지역까지 길잡이를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아니, 잠깐! 그러면 정말 나랑 같이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약하지도 않고, 길도 이미 알 만큼 알고!’
새삼 투란은 세란드의 금빛 안개인 모습을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을 달래며 재빠르게 다시 말한다.
―투란, 왜 그렇게 심하게 함께 가는 것을 꺼리지 ? 문장이라면 숨길 수 있고…….
‘아, 그러니까! 눈속임을 해봐야 세란드가 다 보고 알잖아! 가디언이 된 상태로 속삭일 수 있잖아. 저건 황금매가 아니고 눈속임이라도 다 말할 수 있다고. 내 문장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란드가 다 떠들고 다닐 수가 있다고. 정말 위험하다니까, 함께 가는 거는…….’
―네가 구한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거냐?
조금 심각하게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애초에 죽이려고 했었거든요?’
투란이 한숨처럼 약간 심술궂은 말투로 되받아버렸다.
괴물이 되어 죽느니 사람으로 죽게 해주겠다…… 분명히 처음 시알라 남매에 대해 투란이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막상 구해낼 방법을 세란드가 찾아냈을 때도 되든 말든이란 기분으로 시도했을 뿐이라는 것이 진심이었고…….
그렇게 구해내고 나서는 키린의 경고가 투란의 속을 살살 긁적이니까 얼른 갈라설 준비도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구했지.
‘그래, 구했어. 그런데 도와준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막을 수도 없게 된 거잖아?’
한숨처럼 투란은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구해놓고 나서, ‘아, 생각해보니 내게는 지켜야 할 비밀이 있군! 너네 입을 막기 위해서 죽여주겠다.’라는 것도 무슨 이야기 속의 한심한 악당 아닌가! 죽일 마음도 없지만, 이제 와서 비밀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입을 다물라고 말 꺼내기는 더욱 곤란했다. 그런 말 꺼냈다가 대체 뭐가 비밀이냐고 물으면…… 아주 곤란하잖은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지금, 적당히 갈라서서 갈 길 가는 쪽이 좋다!
그 전에 살짝 여기까지 온 길에 대해 적당히 물어본다면 더 좋을까?
‘음, 길을 좀 물어보고 잘 있으라고 한 다음에 갈까…….’
드라고니아와 이야기한 영향 때문인지 슬그머니 투란의 마음속에 가늘고 약한 갈등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이를 느낀 드라고니아가 시원하고 큰 웃음을 투란의 뇌리에 꽂듯이 말한다.
―투란, 세란드를 통해 너의 내면에서, 심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새나가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괴물인 세란드는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고…… 가디언과 공명하는 존재인 세란드라도, 그러지 않겠지만 그럴 수 없게 할 수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윌 라이트를 품었다는 것, 윌 라이트를 통해 마법을 구현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이제 알게 해주겠다는 소리지.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투란 너에게 내가 드라코눔의 정신 방어술을 알려주겠다는 말이다. 누구도 너의 내면에서 너의 허락 없이 너의 비밀을 훔쳐내는 일이 없게 해주겠다고.
‘지금, 정신 어쩌고 하면서 살짝 얼버무렸지!’
투란은 놓치지 않고 짚었다.
드라고니아가 히죽거리는 듯한 낌새로, 숨을 몰아 내쉬는 듯한 소리로 바로 답한다.
―정신의 강화 및 단련에 의한 심리 방벽의 설치와 심상 구성을 바탕으로 한 비물질적인 침투, 침해, 오염을 단절시키기 위한 방어기제의 복합 술식인데…… 다 들으니까 기분 좋아?
‘어지러워!’
듣는 것만으로도 토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투란은 대답해야 했다.
엄청나게 수상하다는 느낌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이렇게 신나서 투란을 도우려고 나서는 이유가 뭘까? 잔소리하면서 훼방 놓던 녀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