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5)
콰아아, 푸핫!
쏟아지는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손으로 물을 받아 입에 담았다가 요란하게 헹궈내면서 투란은 고개를 젖혔다. 높은 공중에 뜬 삐죽한 끝의 타원석(?圓石)이 금이 가고 쪼개진 꼴로 지상을 향해 물을 쏟아내는 광경이 물보라 사이로 보였다.
“좋아, 쥐어짜 내서라도 써먹어주마!”
물줄기를 떨구는 타원체의 돌과는 상관없는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묘한 각오를 하는군. 딱히 짜낼 것도 없는 것 같다만.
‘응? 없다니? 녀석은 그래도 한순간에 날 찢어놨었다고, 그런데 없다니!’
―그래, 특이한 능력으로 갑작스럽게 기습을 하기는 했지. 하지만 투란, 넌 죽지 않았고 여유롭게 그 상황을 모두 견뎌냈다. 오히려 마그마 로드를 삼키고 녀석까지 삼켰지. 쉽게 말해서, 너보다 약한 녀석이란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그런 녀석에게서 짜낸다고 해봐야…….
“젠장!”
투란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면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미 투란도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황금매의 문장 따위, 마법에 기대는 이런 문장이 없어도 자신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해보니, 세란드가 도약능력을 내걸었던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것은 투란에게 그다지 호소할 만하지 못하지만, 하얀 괴물인 세란드의 도약능력…… 단숨에 거리를 가로지르는 아빈가의 여우와 같은 그 능력만큼은 투란을 기습할 정도의 효과가 있었으니까.
―그보다는, 세란드가 넘겨준 이 스펠 리스트 쪽이 더 흥미로운데…….
‘응? 마법? 왜?’
―녀석이 말한 대로 이건 아겔페스가 골라놓은 목록이다. 이걸 보다 보니, 아겔페스가 뭘 원하고 있었는가, 이전에는 생각 못 한 새로운 면모가 보였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죽은 마법사의 소원은 나중에 얘기하고! 그래서 괴물 세란드의 능력을 짜내는 쪽은 어떤데?’
투란은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드라고니아가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늘어놓으려는 것을 슬쩍 막는 말로 되물었다. 드라고니아도 이런 투란에게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을 한다.
―괴물인 세란드 역시 이 목록의 마법을 상당히 써먹고 있었던 같다만…….
이는 바로 투란의 기억 한구석을 찔렀다.
확실히 뭔가 엄청나게 차가운 것을 쏟아내는 마법을 썼었다.
마그마 로드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그건 네가 천천히 연구해도 되잖아. 그보다는 몬스터 엠블럼이랑 상관없이 몬스터의 능력을 빼내 쓴다는 요술 쪽을 먼저 따져봐야 하는 거 아냐? 난 그쪽이 먼저라고!’
투란은 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살짝 혀를 차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기척이 투란에게 바로 전해졌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말을 인정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세란드가 유혹하기 위해 꺼냈던 요술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으니…….
―그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몬스터 로드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응?’
―몬스터 엠블럼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요술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몬스터 로드로서 몬스터를 삼켜뒀다, 라는 점이 아주 중요해지거든.
‘헐?’
―애초에 요정의 일족 쪽에서 기원하고, 마녀라는 특별한 존재들에 의해서 다듬어진 것인 데다가…… 흑의 마법 쪽이 개입되어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 요술의 첫째 조건이 능력을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이 서로의 존재양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무슨 소리야?’
―음, 간단히 말하자면…… 빌려주는 쪽이 허락을 하고, 빌리는 쪽은 그 허락해준 상대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 이게 원래 마수라든가 짐승,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교류가 가능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요술이거든. 마수라든가 짐승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과 서로 목숨을 지켜줄 정도로 친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 몬스터는 세계로부터 어긋난 존재라서, 그 존재양식을 인정한다는 부분이 아예 성립을 하지 않거든. 이 부분은 ‘거의’ 절대적이라서 몬스터에게 이 요술은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거였지.
‘거의, 라고 아주 특별하게 말한 거야?’
―그래, 강조해서 말했어. 왜냐하면 세란드는 그 부분의 빈틈을 찾아냈거든. 너에게 제안할 수 있는 빈틈을 말이야.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세란드는 분명히 투란에게 가능한 요술이기 때문에 미끼로 내걸었다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에게도 절대적으로 채워 넣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조건을 해결할 수 있는 틈새를 찾아내서!
‘세란드, 생각보다 마법에 익숙하네?’
―아니, 그저 익숙한 정도가 아닌 것 같다만.
살짝 깊은 한숨을 쉬는 듯이 중얼거리고, 드라고니아는 본론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투란의 말이 먼저 이어진다.
‘그런데,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힘을 쓰잖아? 그 요술의 조건이라는 거, 몬스터 로드는 어떻게 돌파한 거지?’
―강압적으로 때려누이고 그 정수를 삼켜서 재구성해내는 거잖아! 이건 존재를 인정하는 게 아니고, 몬스터가 이 세상에 자신을 성립시키는 존재양식을 그냥 강탈해서 쓰는 거라고! 빌리는 것과 빼앗는 것의 차이 정도는 알잖아!
‘헤에…… 빌리는 거는 안 되는데 뺏는 것은 된다라…….’
투란은 마법이 역시 이상하다고 갸웃거렸다.
다시 푸욱, 아까보다 훨씬 깊은 한숨을 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그래, 그게 바로 세란드가 찾아낸 빈틈이야. 몬스터 로드는 어긋났음에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형상(形相)과 양식(樣式)을 갖춘 몬스터를 삼켜서 그 이치를 받아들이고 구현해내지.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는 자신이 삼킨 몬스터를 이미 인정한 것이고, 인정받고도 있는 셈이야. 가장 성립하기 힘든 요술의 첫 번째 조건은 그렇게 해서 채워질 수 있고 말이지.
‘뭔가 아주 이상해. 아무튼, 그냥 쓸 수 있는 몬스터의 능력을 허락받고 쓰는 꼴이 된다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지금 네 입장에서는 전혀 가져다 쓸 수 없는 몬스터의 능력을 가져다 쓰는 샛길이 되어 주는 요술이다만?
‘쳇.’
투란은 기분이 조금 언짢아질 수밖에 없었다.
꼭꼭 숨어버린 괴물 세란드 탓이잖은가!
―그리고 두 번째 조건도 만만치 않아.
‘엥? 조건이 여러 개야?’
―당연하지. 두 번째 조건은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이 기본적으로 대등한 능력의 ‘그릇’이어야 한다는 거다. 음, 아주 쉽게 말하자면…… 빌려주는 쪽이 괴력을 지녔는데, 그 괴력이 순전히 뼈대와 힘줄에서 나오는 경우라면 빌리는 쪽도 그와 닮은 뼈대와 힘줄을 지녀야 한다는 거야. 굵은 팔뚝이라 힘이 센데, 이쪽이 얇은 팔뚝이라면 힘을 제대로 빌려 쓰지 못한다는 소리다. 알아들었어?
‘굉장히 괴상한데!’
―하지만 빌려주는 쪽이 능력이 그런 물질적인 바탕이 없는, 마력이라든가 이상한 영력 계열이라면 빌리는 쪽의 그릇은 그저 그걸 수용하기만 하면 되지. 이 부분은 상당한 강점이야. 빌리는 쪽의 부담조차도 빌려주는 쪽이 감당해주는 거니까.
‘흠…… 세란드가 내걸었던 도약은 어느 쪽이지?’
―그건 분명히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능력이지. 아빈가의 여우는 요정의 일족이 지녔던 요술로부터 그 능력을 얻었고…… 그 능력 탓에 신체적인 변이점까지 지니게 된 거야. 아, 그래 쉽게 말해서 몸과 상관없다. 뭐, 투란 네가 빌리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딱히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넌 몬스터 로드잖아. 몬스터로 변화할 수 있는 네 경우에는 두 번째 조건도 별 장애가 없다.
‘음, 어째 빌려 쓰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쓰고 난 다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머리를 긁적이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서 투란은 짚어 물었다.
쓴웃음 짓는 듯한 낌새와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나온다.
―맞아, 이 요술은 효과를 발휘하고 반발이 있다. 일종의 보정(補正) 현상인데…… 존재양식이 다른 둘이 서로의 힘을 공유하는 거라서, 능력을 발휘하고 나면 서로의 존재양식에 어긋남이 생긴다. 그 어긋남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뭐랄까, 잠깐 몸과 마음이 멈추는 현상이 생긴다고나 할까? 마비? 경직? 뭐, 그런 영향을 받는다는 거야.
‘잠깐! 그게 뭔 헛소리야! 능력을 쓰고 나서 바보 된다는 거야? 그런……!’
투란은 걸음을 멈추고 어이없어 따졌다.
드라고니아가 이에 대해 혀를 차는 말투로 설명을 한다.
―바보가 되는 게 아니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다음에 그 영향을 받는다는 거야. 물론 그 반발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할 수는 있고…….
‘여기서 잠깐 넋 놓고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몰라? 죽어, 죽는다고!’
―딱히 네가 걱정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면…… 그리고 그 반발 역시도 제어가 가능한 부분이야. 알기 쉽게 얘기해줄 테니 들어봐. 이 요술의 보정에 의한 반발은 사용한 능력의 크기에 따라 커진다. 능력을 어느 수준에서 제약해 사용한다면, 큰 반발도 부담도 없이 괴물인 세란드를 쥐어짜 내서 쓸 수 있다고!
점점 거칠어지는 듯한 투란의 기분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는 서둘러서 투란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써먹었다. 효과가 있었다. 투란은 입술을 더듬으면서 얼른 묻고 있었으니…….
‘쥐어짜 낼 방법이 있다고?’
―그래…….
‘숨어서 메롱 하고 있는데도 말이지?’
슬쩍 투란은 자신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을 물었다.
―그 부분에서 이 요술의 특성이 꽤 대단하다고 해야 할 거야. 포착할 수 없는 상대라도, 측정할 수 있고 그 능력을 빌려 올 수 있거든. 뭐랄까, 서로 보이지도 만지지도 못하더라도, 서로를 인정하면 날름 빌려 쓴다는 거니까…….
‘허? 날로 먹는 도둑?’
―그런 표현도 가능하겠군. 다만, 이 경우에는 확실히 서로의 존재양식에 대해 인정한다는 점이 도둑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겠지. 어쨌든 그렇게 해서, 괴물의 도약능력이 지닌 한계점, 그걸 요술로 빌려 쓸 때 돌아올 반발의 범위, 이런 걸 모두 가늠해서 안정적인 범위 내에서 능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이야.
‘뭔 말인지 점점 복잡해지네…….’
투란은 한숨을 쉬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알라의 여관 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째서 마법이나 요술이란 것이 이리도 복잡하게 따지는 것이 많냐고 투덜대면서.
바로 드라고니아는 여기에 대해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으니…….
―생각 없이 본능대로만 살겠다고! 짐승이냐! 아니, 짐승도 생각을 하지! 사냥하기 위해 선택을 고려하고, 살아남기 위해 달아날 방향을 생각한다고! 하물며 넌 사람이라고, 투란! 사람이면 생각을 해서 자신을 향상시킬 궁리를 하란 말이다!
‘아니, 왜 갑자기 난리야!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그것만 알면 확실하잖아? 나도 그 정도는 생각해! 짐승보다는 훨씬 많이 따지고 생각한다고!’
―그게 뭔 생각이냐! 짐승도 되는 거 안되는 거 구분은 생각 없이 한단 말이다!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을 때는 몸부림치고! 자신을 관조하고 더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갈고닦는 것이 바로 생각이란…….
“우핫! 으핫! 이얍!”
투란은 자기 볼을 두들기고 귀를 울리면서 잔소리를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뇌리에 바로 꽂히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보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귀와 볼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간단히 압도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란은 시알라의 세이프티 하우스, 여관 앞 마당까지 오는 동안에 생각에 대한 드라고니아의 고찰과 결론을…… 잔소리로 모조리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투란은 아주 열린 마음으로, 한마디 되물어 드라고니아를 고요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네가 맡아주면 되잖아!’
투란은 이 침묵을 기회로 이용해서 얼른 살을 붙여 늘어놓는다.
‘마법이니 요술이니, 나한테는 너무 어렵잖아! 그냥 네가 맡으면 안 되냐? 네 몸을 빌려주지는 않더라고, 그 생각…… 에, 조금 전에 지성(知性)이라고 한 거…… 그걸 빌려…… 아니, 내 부족한 부분을 네가 채워주면…… 그걸 듣다 보면 나도 언젠가 너만큼 생각하는 지성을 갖추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음, 그래 맞아, 스펠 리스트가 어쨌다고 했지? 아주 흥미롭다고?’
―닥쳐!
드라고니아의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한마디였다.
투란은 그 한마디를 귀하게 여기고, 얼른 드라고니아에게서 관심을 멀리했다.
어느새 신기한 간판과 낯선 모양을 한 시알라의 여관이 훤히 앞에 놓인 풍경에 선 채였고, 투란은 그 풍경 앞에서 가볍게 황금매의 마법을 끌어냈다.
두툼하고 동그란 흙더미가 앉기 좋게 치솟았고, 투란은 그 위에 앉으면서 몸을 감싸는 차림새를 만드는 마법…… ‘소일 커버’보다 섬세한 ‘무장생성(武裝生成)’을 이용해서 옷차림을 갖췄다.
그리고 조용하게,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듯 묵묵히 앉아 있으니…… 조금 있다가 드라고니아 아주 희귀한 꼴을 본다는 듯이 묻는다.
―뭘 하는 거냐?
‘시알라랑 형제들이 나오는 거 기다리잖아.’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짧은 반문은 금세 나왔다.
투란은 실실 새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소리 없이 답한다.
‘부탁받았잖아, 세란드한테.’
―뭐? 죽이지는 않더라도 떼놓고 갈 작정이었잖아? 왜 새삼…….
‘억지 부리는 것도 아니고, 좋은 거 주고서 부탁했잖아. 너, 마음에 든다며? 스펠 리스트…… 그리고 세란드가 그리 말하기는 했지만, 시알라는 싫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자기네끼리 가겠다면 그 때 혼자 가도 되니까.’
투란은 뭔가 묘한 여유를 품은 채 답하고 있었다.
여태 잔소리 듣고 칭얼대던 태도랑은 아주 머나먼 곳에서 따로 놀다 왔다는 듯, 드라고니아를 울컥하게 하는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