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6)
Chapter 50. 새로운 시작
시알라는 잠이 깨면서 서서히 정신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미한 느낌에서 보다 분명한 느낌으로, 정신은 황금매의 마력과 어우러지며 시알라의 몸을 감싸는 포근함을 일으켰고 이는 시알라에게 자신이 얼마나 새로운 문장―마법의 각인을 품게 되었는가를 다시 깨닫게 해줬다.
하지만 그런 분명한 깨우침과 별개로 시알라는 살그머니 몸을 뒤척였고, 덮고 있는 담요를 끌어당기면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가늘게 뜨인 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실내의 풍경, 분위기는 시알라가 잠든 때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널찍하고 아늑한 카페 위에서 저마다 마음에 드는 모양과 크기의 담요를 몸에 두르거나, 아이처럼 돌돌 말고서 큰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대로였다. 마지막에 잠든 시알라가 본 모습대로.
그리고 세 동생의 중심, 시알라가 누운 자리에서 바라보면 넷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희미하고 투명한 광채로 이뤄진 형상으로 서 있는 세란드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가디언으로서, 남매 넷이 함께 가까이 있는 자리라면 저렇게 스며나오는 마력을 이용해 시각적인 형태를 보일 수 있다고 알려준 대로였다.
시알라에게는 등을 보인 채로, 동생들을 내려다보는 모습…….
“오빠…….”
시알라가 입술을 달싹이면서 자신의 귓가에조차 들릴락 말락 한 소리를 냈다.
투명하고 희미한 세란드가 고개를 돌렸고, 시알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곧 거품이 공중에 스며드는 것처럼 사라졌다.
시알라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웃을 수 있었다.
가디언이 된 세란드는 어디로 가지 않으므로…….
담요를 어깨에서 밀어내고 흘려내며 시알라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잠들기 전, 몸이 회복되었지만 그동안 쌓여온 정신의 피로에 의해 완전히 탈진한 것처럼 잠들기 전에 가디언이 된 오빠 세란드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시알라의 뇌리에 다시 떠올랐다.
그 처음부터 남매 넷에게는 꽤나 충격을 줬던 이야기였다.
―먼저 말해둘게. 투란이 너희에게 말하지 않고 숨긴 일이 있어. 그건…… 내가 유언을 남기고 곱게 죽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했잖아. 그렇지 못했어. 보다시피 나는 가디언의 핵을 이룰 정도의 일그러진 망령(亡靈)이 되었단다. 그래, 투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죽었으면서도 너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산 사람에 들러붙으려는 사악(邪惡)한 망령처럼 되고 말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곁에 있던 산 사람, 투란에게 들러붙으려 했지. 하지만 투란은 몬스터 로드였고, 그 상황에서 망령인 나를 삼키는 데 성공했다. 쉽지는 않았어. 거의 죽을 뻔했으니까. 그런 일을 겪고도 투란은 나를 너희에게 돌려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가디언의 형태를 갖춰서 돌려보내 주려고 애를 썼어. 너희도 황금매를 몸에 새겼으니 알 거야, 불완전한 황금매였으니까 지금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겠지. 가디언의 계약을 위해서 소모되는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맞아, 정상적으로라면 완전한 황금매로서도 가디언의 계약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마법사와 다르게 몬스터 로드에게는 자신의 마력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잖니…… 그래, 몬스터를 삼키는 거지. 자기 심연으로 더 많은 몬스터를 바치면 바칠수록, 몬스터 로드의 역량이 커지면서 마력도 증가해. 황금매의 문장을 지닌 자는 주문에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수준이 달라지고 말이야.
‘투란…….’
시알라는 너무 흔한 이름이라 일컬어지며 꽤 오랫동안 가짜 이름으로 쓰였다는 이름을 되뇌면서 제란드를 흘깃했다.
저 이야기를 듣고 제란드는 세란드에게 말했었다.
의심스럽다고…… 투란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거의 아무 대가도 없이 어째서 세란드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냐고.
거기에 대해 가디언 세란드는 아주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었다.
“착한 제란드가 이상해졌구나! 우리 제란드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사람의 호의를 의심부터 하고, 형의 말까지 거짓말이라고 의심해!”
바로 제란드의 얼굴이 벌게지고 말았고, 시알라부터 폭소(爆笑)할 수 있었다.
페란드도 멜란드도 어이없어하다가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제란드는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세란드는 가디언의 광채를 뿌리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투란은 분명히 호의로서 한 일이다. 그리고 남에게 잘해주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생긴다잖아? 기억하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그동안 형이 안 보인다고 나쁜 짓 많이 하지는 않았겠지? 농담이 아니고…… 이 춤추는 산맥의 깊고 깊은 안쪽에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할 첫 번째 괴물은 고독(孤獨)이고, 살아남아야 할 까닭이 필요하다는 거야. 살아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 고독을 물리치고 살아남을 수 있다. 투란은…… 나를 핑계 삼은 셈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가디언의 계약이 완성되면, 보다시피 이모저모로 쓸모가 많아진다. 무엇보다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돌봐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이지. 어차피 살아남기 위해서 몬스터와 싸우고 삼키는 중이었으니까…… 망령인 나를 설득하기에도 좋은 이야기였고 말이지. 하지만 투란이, 망령인 내가 가디언의 계약을 성립시키기 전에 너희가 찾아왔다. 아주 못된 마법사에게…… 내 동생들답게 나처럼 속아서, 투란에게 잔뜩 해코지할 생각으로 말이지. 뭐, 그때 상황에서 본다면…… 망령인 나는 너희를 알아보지 못했어. 그저 투란이 잘못되면 안 된다고,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투란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다. 너희는…… 투란이 망령인 나를 쓰려고 들었다면, 내게 죽었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가디언의 계약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망령의 괴력을 휘두를 수는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도 투란은 그러지 않았다. 너희가 누군지, 망령인 채로 잊은 나보다 먼저 알고…… 마법사를 타도하려고 했지.”
선명하게 빛나는, 투명한 가디언의 형상인 채로 세란드가 하는 이야기는 네 남매에게 분명한 ‘진실’이 되어 들어박혔다. 세란드가 망령인 상태에서의 기억이 엉망진창일 수도 있었고, 뭔가 다른 일이 끼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디언으로서 어떤 이견(異見)도 용납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시알라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세란드는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투란에게 말 꺼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 했다. 투란이 일부러 피한 이야기를 굳이 들춰내려 하지 말라고…… 남매를 배려해서 감춘 이야기를 억지로 들춰내서 투란을 민망하게 하지 말라고.
시알라는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황금매를 전해 줬고, 가디언의 계약마저 성립시켜줬으며……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강대한 마력의 원천과 이어주기까지 했다.
도대체 투란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잃어버렸던 오라버니를…… 가디언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려준 것부터 뭐라 고마워해야 하는지 말문이 저절로 닫힐 뿐인데!
―살아서 돌아가지 못해 미안하다. 그 약속을 깨뜨리고 여기까지 너희가 찾아오게 한 것은 내 죄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렇게 가디언으로서, 너희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할 거야. 그러니까…… 용서해다오.
세란드가 이야기했을 때, 페란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누나와 둘째 형을 따라 맏형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 나서, 밀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도대체 누이인 시알라가 맏이가 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잠시 맏이 노릇 하던 누나에 대해 진짜 맏형이던 세란드에게 나머지 동생들이 한꺼번에 고자질하는 듯한 분위기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소란은 완전히 지쳐 쓰러져 누울 때까지 왁자지껄하게 이어졌다.
죽었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오라버니를 보며 시알라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몸보다 더 피로했던 마음이 겨우 평온함을 되찾는 잠이었다.
그리고 이제 깨어나서, 잠들기 전의 일을 기억해낸 시알라는 볼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벌떡 일어섰다.
짜작, 펄럭.
너무 세게 때렸는지 볼이 얼얼했고, 담요는 부드럽게 휘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시알라는 씩씩하게 발을 디뎌…… 바닥을 차지한 나무판의 단단함과 깔끔함을 느끼면서 여관을 거닐었다.
넷이 이야기하고 잠들기 위해 차지했던 곳은 여관의 2층, 널찍한 거실이었고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시알라는 1층의 입구를 보며 가볍게 걸으며 여관 실내를 둘러봤다.
마법으로 지어진 여관은 돌과 나무, 카펫, 가죽의 다양한 질감을 한껏 드러내면서 치장된 채였다. 가구, 벽감조차 다양한 모양으로…….
시알라가 거의 잊고 있던 꿈을 섬세하게 모두 기억나게 해주겠다는 듯, 그 쓸데없이 세세했던 꿈 그대로!
콧노래가 저절로 새는 것을 느끼면서 시알라는 여관 1층의 정문을 열었다.
문턱 너머로 통나무로 이뤄진 마루 갑판이 자리 잡았고, 얕고 낮은 계단을 통해 길을 향해 이어진 모양이 나타났다. 누가 여관에 들어오든 계단을 밟고 마루 갑판을 거치다 보면 발에 묻은 흙이 떨어져 내리는 구조였다.
여관 안을 보다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여관 주인들의 요령 있는 갑판 배치였다.
시알라는 그 마루 갑판을 밟고 얕고 긴 계단길을 따라 눈길을 돌리다가 봤다.
여관의 영역에 닿을락 말락 한 자리에 흙으로 빚은 통나무 밑둥처럼 생긴 자리에 앉아 꾸벅거리는 투란…… 아마도 여관 안에서 남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려다가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뭔가 오랜만에 마음을 놓은 듯도 하고, 혹은 그냥 주변이 안전하다 여긴 탓인 듯도 한 모습이 투란의 코에서 거품 방울이 새나온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시알라는 그 분위기가 실현되는 상상을 하고 나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손으로 입을 누르며 참은 채로, 시알라는 조용히 투란을 살폈다.
검은 머리카락, 눈동자도 아마 검은 듯했고…… 세란드가 실종될 무렵의 시알라 자신을 떠올릴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설마…….’
시알라는 갸웃하면서 투란의 나이에 대한 추측을 바로 접었다.
잔뜩 음모를 꾸민 유능한 마법사조차도 이곳까지 들어오기 위해서 1년 가까운 준비를 했고, 2년 가까운 여정(旅程)을 거쳐야 했다. 거기에 시알라 남매까지 끼어 있었는데도…….
‘아니, 마법사는 자기 능력을 속였을 테니까. 그냥 우리에게 맞춰준 것일 수 있겠지.’
시알라의 생각은 저절로 깊어지려 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면서 시알라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디뎠다.
문턱을 넘고 마루 갑판을 밟고, 살짝 얕은 계단을 밟으며 주변이 부드럽게 정돈된 흙마당을 발끝으로 긁적이면서…… 시알라는 투란의 모습을 흘깃거렸다.
어려 보이는 투란은 대체 어쩌다가 이 깊은 곳까지 흘러왔을까?
세란드를 만나기 전에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디언인 세란드는 이런 곳에서 홀로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투란이 보통의 몬스터 로드와는 격이 다르다고 거듭 말했었다. 그런 투란이기에 세란드가 모든 것을 맡기고 죽을 수 있었다고…….
한숨이 살짝 시알라의 입가에서 새나왔다.
세란드의 소식이 끊어졌을 무렵이 기억나고 말았다.
어느 순간에 꽤나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십여 년 이상을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던 악몽은 단단하고 깊게 새겨진 기억으로서 여전히 시알라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어서 시알라는 길을 떠나기를 결심했다. 그때 시알라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을 무렵이었다. 막내인 멜란드가 열넷에 불과할 때이기도 했다. 열여섯이던 페란드는 누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했고, 제란드는 페란드가 따라가는데 고작 한 살 어린 자신이 안 될 것이 뭐냐고 들러붙는 소란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막내가 열다섯을 꽉 채우고, 최소한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 출발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남매는 함께 움직여야 했고, 그 시작부터 뒤로 미뤄야 했던 여정이었다.
거기에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시알라는 혼자라도 오빠를 찾겠노라고 큰소리쳤을 때의 두려움을 잊지 않았다.
오빠 세란드가 사라진 곳은 어지간해서는 실종이 바로 죽음이라는 산맥의 경계 안쪽이었으니까. 찾으러 나서는 것이 아니라 빈 관을 묻고 장례(葬禮)를 치르는 것이 현명한 보통의 선택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슬퍼하고 잊은 다음, 나중에 살아 돌아오면 오히려 몇 배로 기뻐할 수 있잖은가?
몬스터 헌터로 나선 피붙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오빠는 몬스터 헌터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음씨 좋은 마법사 덕분에 마법의 각인을 얻어서 보다 쉽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으로 산맥의 경계를 보다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다고 세란드는 안심하라고 어린 동생들을 설득했었다.
시알라보다 일곱 살이나 위였고,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의 오빠였기에 시알라도 말릴 수가 없었다. 오빠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먹여 살려야 할 동생들이 있었으니까. 부모를 잃은 맏이로서, 그 의무를 다하려 한 오빠이기에 시알라는 돌려받고 싶었다.
‘투란은 도대체 왜 여기 왔을까?’
갸웃하는 시알라의 눈길을 받으며 남매가 겪었던 그 모든 일의 결말을 맺어준 투란은 참 열심히 졸고 있었다.